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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74

아몬드잣과자와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경이로운 도시> 스페인어 최고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한 바르셀로나 출신 소설가 에두아르도 멘도사 Eduardo Mendoza (1943~)의 소설 ≪La ciudad de los prodigios 천재들의 도시≫(1986)를 적절하고 멋있게 번역한 민음사의 ≪경이로운 도시≫(2017)의 일부를 읽어 보자. "이제 맏딸이 둘째 딸을 도우며 부엌에서 빵을 굽고 있었다. 에프렌 카스텔스는 벌써 십사 킬로그램이나 되는 빵을 혼자서 먹어 치웠다. 에프렌 카스텔스는 빵 때문에 발기가 풀리지 않아 아파 죽겠다고 투덜대면서도 계속해서 빵을 먹었다." (경이로운 도시 2. 김현절 역. 민음사. 2017:91) 위 번역에 따르면 에프렌 카스텔스는 제공된 빵을 양껏 먹었고 이 빵 때문에 지속발기증의 고통을 호소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2021. 3. 3.
안토니오 마차도, 유년의 추억 - 레몬나무와 분수 우리 모두 영혼이 맑은 어린이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면서 탁해져서 그런지 순수했던 유년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시기였다. 어릴 때를 회상하면 항상 순백의 화폭이 펼치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사람마다 유년의 추억이 다를 것이다. 기쁨이나 설렘보다 아픔, 서러움, 슬픔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래 기형도(1960~1989)의 시 에는 걱정, 무서움, 쓸쓸함, 서글픔이 들어 있다. 엄마 생각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2021. 1. 31.
안토니오 마차도, 아내 묘지에 꽃을 보내다 호세 마리아 팔라시오에게 팔라시오, 좋은 친구 봄이 벌써 강가와 길가의 버드나무 가지에 옷을 입혔는지? 두에로 고원 초지에 봄은 더디게 오지 하지만 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운지!... 고목 느릅나무들에 새 잎이 좀 돋았는지? 아직 아카시아는 알몸이고 산맥에 산들은 눈이 그대로이고 아 몽카요의 정상은 희고 장밋빛 저기 아라곤의 하늘 아래, 얼마나 아름다운지! 잿빛 바위틈에 산딸기 꽃 여린 약초 틈에 하얀 데이지는 피었는지? 그 종탑들에 벌써 황새들은 둥지를 틀었겠지. 밀밭은 파릇파릇 파종한 밭에 갈색 노새들 사월의 비가 내려 농부는 늦은 파종을 하고 꿀벌들은 어느새 만리향과 로즈메리 꿀을 빨 테지. 자두꽃은 피었는지? 제비꽃은 지지 않았지? 사냥꾼들은 자고새를 꾈 후림 새를 슬그머니 긴 망토에 숨겼겠.. 2021. 1. 30.
가시를 뽑았더니 가슴을 느낄 수 없다 - Yo voy soñando caminos 나는 꿈을 꾸며 길을 간다 바란다. 이룰 수 없거나 가질 수 없다. 그러면 아프다. 우린 다 아프다, 다들 원하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아픔을 치유한다. 그러면 아프지 않겠지만, 아프지 않은 딱 그만큼 때론 아픔보다 더 크게 어디인지 모르게 헛헛하게 빈 속이다. 열망과 실망, 바람과 아픔의 공존, 양립할 수 없는 것의 조화가 삶이고 사랑이다. 안토니오 마차도의 아래 시는 이런 불합리한 진리가 함축된 역설을 노래하고 있다. 시집 ≪고독, 갱도, 다른 시≫(1907)에 열한 번째로 제목 없이 실린 시다. 원래 1906년 잡지 ≪아테네≫에 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것이다. 11 나는 꿈을 꾸며 길을 간다. 오후이다, 황금빛 언덕과 푸른 소나무들 먼지투성이 가시나무들!... 이 길은 어디로 가려나? 나는 노래를 부르며 먼 길을 가는 나그네다.. 2021. 1. 8.
공원, 잠시 지나가는 이 삶에 영원을 상징하는 공간 아래는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집 ≪고독, 회랑, 다른 시≫(1907)에 제목 없이 여섯 번째로 실린 시의 전문이다. 1903년에 출판한 첫 시집 ≪고독≫에 란 제목으로 게재된 시인데 수정을 거쳐 1907년 시집에 실렸다. 6 맑은 오후였다. 슬프고 노곤한 여름 오후였다.... 공원 담장에 먼지투성이 검은 담쟁이가 얼굴을 내밀고... 분수 소리가 났다. 낡은 덧문에 내 열쇠가 삐걱거리자 금속음을 내며 철문이 열렸고 죽은 오후의 침묵을 무겁게 때리며 녹슨 철문이 닫혔다. 적막한 공원에 물이 부글부글 낭랑하게 노래를 불렀고 나는 다가갔다. 분수는 흰 대리석 위로 단조롭게 물을 솟아내고 있었다. 분수가 말했다. 지금 노래 부르는 먼 옛날의 꿈을 기억하니? 나른한 여름 나른한 어느 오후였어. 분수에게 대답했다. 기.. 2021. 1. 4.
옛 사랑의 빛과 그림자, 미인, 아름다움의 상징-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 어두워진 거리 La calle en sombra 15 어둠이 내린 거리. 높은 집들에 가려 햇살은 죽어가고 발코니에 빛이 메아리친다. 꽃이 놓인 아름다운 발코니에 갸름한 장밋빛의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니? 유리창에 반사된 헛모습은 낡은 은판 사진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거리에는 네 발자국 소리만 들리고 석양의 메아리는 서서히 사그라진다. 아, 미어지는 가슴, 무겁게 저려오고.... 그녀일까? 그럴 수 없어.... 걸어가 사라진다.... 파랗게 별이 되어. XV La calle en sombra. Ocultan los altos caserones el sol que muere; hay ecos de luz en los balcones. ¿No ves, en el encanto del mirador florido, óvalo rosado de un ro.. 2020.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