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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마차도13

안토니오 마차도, 유년의 추억 - 레몬나무와 분수 우리 모두 영혼이 맑은 어린이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면서 탁해져서 그런지 순수했던 유년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시기였다. 어릴 때를 회상하면 항상 순백의 화폭이 펼치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사람마다 유년의 추억이 다를 것이다. 기쁨이나 설렘보다 아픔, 서러움, 슬픔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래 기형도(1960~1989)의 시 에는 걱정, 무서움, 쓸쓸함, 서글픔이 들어 있다. 엄마 생각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2021. 1. 31.
안토니오 마차도, 아내 묘지에 꽃을 보내다 호세 마리아 팔라시오에게 팔라시오, 좋은 친구 봄이 벌써 강가와 길가의 버드나무 가지에 옷을 입혔는지? 두에로 고원 초지에 봄은 더디게 오지 하지만 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운지!... 고목 느릅나무들에 새 잎이 좀 돋았는지? 아직 아카시아는 알몸이고 산맥에 산들은 눈이 그대로이고 아 몽카요의 정상은 희고 장밋빛 저기 아라곤의 하늘 아래, 얼마나 아름다운지! 잿빛 바위틈에 산딸기 꽃 여린 약초 틈에 하얀 데이지는 피었는지? 그 종탑들에 벌써 황새들은 둥지를 틀었겠지. 밀밭은 파릇파릇 파종한 밭에 갈색 노새들 사월의 비가 내려 농부는 늦은 파종을 하고 꿀벌들은 어느새 만리향과 로즈메리 꿀을 빨 테지. 자두꽃은 피었는지? 제비꽃은 지지 않았지? 사냥꾼들은 자고새를 꾈 후림 새를 슬그머니 긴 망토에 숨겼겠.. 2021. 1. 30.
가시를 뽑았더니 가슴을 느낄 수 없다 - Yo voy soñando caminos 나는 꿈을 꾸며 길을 간다 바란다. 이룰 수 없거나 가질 수 없다. 그러면 아프다. 우린 다 아프다, 다들 원하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아픔을 치유한다. 그러면 아프지 않겠지만, 아프지 않은 딱 그만큼 때론 아픔보다 더 크게 어디인지 모르게 헛헛하게 빈 속이다. 열망과 실망, 바람과 아픔의 공존, 양립할 수 없는 것의 조화가 삶이고 사랑이다. 안토니오 마차도의 아래 시는 이런 불합리한 진리가 함축된 역설을 노래하고 있다. 시집 ≪고독, 갱도, 다른 시≫(1907)에 열한 번째로 제목 없이 실린 시다. 원래 1906년 잡지 ≪아테네≫에 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것이다. 11 나는 꿈을 꾸며 길을 간다. 오후이다, 황금빛 언덕과 푸른 소나무들 먼지투성이 가시나무들!... 이 길은 어디로 가려나? 나는 노래를 부르며 먼 길을 가는 나그네다.. 2021. 1. 8.
옛 사랑의 빛과 그림자, 미인, 아름다움의 상징-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 어두워진 거리 La calle en sombra 15 어둠이 내린 거리. 높은 집들에 가려 햇살은 죽어가고 발코니에 빛이 메아리친다. 꽃이 놓인 아름다운 발코니에 갸름한 장밋빛의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니? 유리창에 반사된 헛모습은 낡은 은판 사진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거리에는 네 발자국 소리만 들리고 석양의 메아리는 서서히 사그라진다. 아, 미어지는 가슴, 무겁게 저려오고.... 그녀일까? 그럴 수 없어.... 걸어가 사라진다.... 파랗게 별이 되어. XV La calle en sombra. Ocultan los altos caserones el sol que muere; hay ecos de luz en los balcones. ¿No ves, en el encanto del mirador florido, óvalo rosado de un ro.. 2020. 12. 27.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시나무(encina),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 Las encinas 가시나무 파르도 산행을 기억하며 마스리에라 선생님들께 검은 덤불 무성한 비탈과 언덕 산맥과 구릉에 카스티야의 가시나무숲 가시나무, 고동색 가시나무 순박하고 꿋꿋하구나! 도끼질에 숲 속 빈터는 늘어나는데 가시나무여 네게 노래해 줄 사람은 없구나! 떡갈나무는 전쟁이고 용기이자 용맹이고 요지부동 분노이고 뒤틀린 가지는 가시나무보다 더 거세고 울뚝불뚝 더 거만하고 고고하다. 키 큰 떡갈나무는 운동선수처럼 대지에 딱하니 어기차고 우람하게 서 있다 소나무는 바다이고 하늘이고 산이고 지구이고 야자나무는 사막이자 태양이고 먼 곳이고 갈증이고 거친 들판에서 찬 샘물을 갈망한다. 너도밤나무는 전설이다. 늙은 너도밤나무에서 우리는 끔찍한 범죄와 싸움 이야기를 읽는다. 소나무 숲에서 떨지 않고 누가 너도밤나무를 볼 수 있으랴.. 2020. 12. 7.
기차를 타고 En tren 안토니오 마차도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 마다 나는 늘 삼등 객차 나무 의자에 앉아 가고 홀쭉한 가방 한둘이다. 밤이면 늘 그렇듯 잠을 자지 않기에 낮이면 지나가는 작은 나무를 보느라 기차에서 좀체 잠을 자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멀리 떠나는 길은 얼마나 즐거운지! 런던, 마드리드, 폰페라다는 가 보고 싶은 멋진 곳 도착하면 고생이다. 나중에 기차 또 걷기도 하고 기차는 우리에게 꿈을 준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노쇠한 말을 거의 잊어먹었어 아, 젊은 수탕나귀는 목적지를 잘 알아! 여기가 어디지? 모두 어디서 내리는지? 내 앞에 자그마한 수녀님 정말 어예쁘다! 고통스럽지만 편안한 그 표정은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준다. 수녀님은 죄인들의 어머니 대신 예수님께 사랑을 드리니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녀님도 어머.. 2020.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