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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74

두에로 강변 Orillas del Duero 안토니오 마차도 Antonio Machado IX 두에로 강변 종탑 높이 황새가 고개를 내밀었다. 덩그런 노옥과 탑 주위를 돌아 벌써 제비들이 찍찍거린다. 지옥처럼 시린 바람과 눈보라의 하얀 겨울이 지나갔다. 따스한 아침이다. 황량한 소리아의 땅에 볕기가 소곳하다. 푸르디 파란 소나무를 지나 봄은 한길과 강가 미루나무에 연한 새순을 틔웠다. 맑은 두에로강은 사뿐사뿐 가만가만 흐른다. 들판은 청년이기보다 사춘기 소년 같다. 잡초 사이 이름 없는 꽃 파란 꽃 흰 꽃, 언뜻언뜻 꽃 핀 들판 신비한 봄은 선연하다! 희끗한 길에 미루나무 강가에 버드나무 멀리 파란 하늘 아래 산의 거품 햇살 좋고 새맑은 날! 에스파냐의 땅 아름답구나! Orillas del Duero Se ha asomado una cigüeña a lo alto del campanario... 2020. 11. 21.
가을 새벽 Amanecer de otoño 안토니오 마차도 가을 새벽 잿빛 바위 무리 사이 긴 한길 허름한 초원 풀을 뜯는 검은 황소, 산딸기, 덤불, 돌장미 이슬 방울 젖은 땅 구부렁 강가 누런 은백양 길 보라빛 산너머 트는 첫새벽 등에 총을 걸치고 날렵한 사냥개와 길을 가는 사냥꾼 Amanecer de otoño Una larga carretera entre grises peñascales, y alguna humilde pradera donde pacen negros toros. Zarzas, malezas, jarales. Está la tierra mojada por las gotas del rocío, y la alameda dorada, hacia la curva del río. Tras los montes de violeta quebrado el .. 2020. 11. 16.
마른 느릅나무 A un olmo seco 아내에게 바치는 시- 안토니오 마차도 마른 느릅나무 번개에 갈라지고 절반은 썩은 느릅나무 고목에 사월의 비와 오월 햇살에 푸른 새순이 돋았구나 두에로 강물 넘실거리는 언덕에 백년 묵은 느릅나무 허연 껍질에 노란 이끼 벌레 먹은 몸통은 가루투성이 길가 강가에 늘어 선 버드나무에서 노래부르는 갈색 밤괴꼬리는 찾지 않아 개미들이 열을 지어 오르고 구새 먹은 속에는 회색 거미줄이 치렁치렁 두에로의 느릅나무 나무꾼의 도끼가 내리치기 전에 목수의 손이 종 축대, 수레 채 달구지 멍에로 바꿔 놓기 전에 길가 어느 쓰러진 오두막 내일 아궁이의 벌건 땔감이 되기 전에 하얀 산바람에 넘어지고 돌개바람이 쓰러뜨리기 전에 계곡과 골짜기를 지나 강으로 바다로 가기 전에 느릅나무 네 경이로운 푸른 가지를 내 공책에 옮겨 놓고 싶구나 내 가슴에 품어 본다 빛과 삶이 .. 2020. 11. 15.
'임질'을 '설사'라고 오역한 네이버, 엣센스 스페인어사전과 카밀로 호세 셀라의 소설 <벌집> 번역 198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밀로 호세 셀라 (Calmilo José Cela, 1916 ~ 2002)의 소설 (1951)의 번역 일부를 읽어 보자. "콧수염을 기른 피델은 밝은 연녹색 넥타이를 맸다. 그는 젊었을 적에 몸에 이상을 겪기도 했다. 특히 장기에 염증이 생겨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교활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순진하지만도 않게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살아왔다. 사실 운도 따라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과점에 오가는 고객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그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염증이 조금씩 치료되었다. 그즈음에는 끈적끈적한 노란색 크림이 범벅인 비스킷을 보기만 하면 그는 참을 수 없는 구토 증세를 느끼곤 했다." (남진희 옮김. 민음사 2015: 274) 위 번.. 2020. 11. 10.
눈 Snow - 루이즈 글릭 눈 십이월 말, 아버지와 나는 뉴욕으로 가고 있었다, 서크스를 보러 매서운 바람이 부는데 아버지는 날 어깨 위에 올렸다, 흰 종이 조각들이 침목 위로 흩날렸다. 아버지는 날 그렇게 올려놓고 서 있기를 좋아했다, 그래야만 내가 보이지 않으니까. 난 기억한다 아버지가 본 세계를 똑바로 응시했다 난 깨우치고 있었다 텅빈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폭설은 떨어지지 않고 우리를 휘돌고 있었다. Snow Late December: my father and I are going to New York, to the circus. He holds me on his shoulders in the bitter wind: scraps of white paper blow over the railroad ties. My fa.. 2020. 10. 9.
첫 기억 First memory 루이즈 글릭 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Louise Glück, 1943~)이 수상했다. 그녀의 시 이다. First memory Long ago, I was wounded. I lived to revenge myself against my father, not for what he was-- for what I was: from the beginning of time, in childhood, I thought that pain meant I was not loved. It meant I loved. 첫 기억 오래전 난 상처를 입었다. 난 살았다 나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아버지에 대항하며. 그때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 때문이었다, 태초부터 어릴 때, 나는 생각했다, 아픔이란 내.. 2020.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