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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시

공원, 잠시 지나가는 이 삶에 영원을 상징하는 공간

by brasero 2021. 1. 4.

아래는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집 ≪고독, 회랑, 다른 시≫(1907)에 제목 없이 여섯 번째로 실린 시의 전문이다. 1903년에 출판한 첫 시집 ≪고독≫에 <오후 Tarde>란 제목으로 게재된 시인데 수정을 거쳐 1907년 시집에 실렸다.

6

맑은 오후였다. 슬프고 노곤한
여름 오후였다.... 공원 담장에
먼지투성이 검은 담쟁이가 얼굴을 내밀고...
분수 소리가 났다.

낡은 덧문에 내 열쇠가 삐걱거리자
금속음을 내며 철문이 열렸고
죽은 오후의 침묵을 무겁게 때리며
녹슨 철문이 닫혔다.

적막한 공원에 물이 부글부글
낭랑하게 노래를 불렀고 나는 다가갔다.
분수는 흰 대리석 위로 단조롭게
물을 솟아내고 있었다.

분수가 말했다. 지금 노래 부르는
먼 옛날의 꿈을 기억하니?
나른한 여름 나른한 어느 오후였어.

분수에게 대답했다.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네 노래는
먼 옛날인 것을 나는 알아.
오늘 같은 오후였어, 내가 알던 대리석 분수는
수정 같은 물을 단조롭게 솟아내곤 했어.

네 앞의 은매화가 맑은 노래에
어둠의 긴 옷자락을 드리운 걸 기억하니?
노란 불꽃 마냥 잘 익은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었지
오늘처럼 열매가, 기억하니...
오늘 같은 여름 오후였어.

먼 옛날의 꿈을 흥겹게 노래하는
네 노래가 무얼 말하는지 나는 모르겠어.

수정같이 청랑한 물에
나무의 붉은 열매가 비쳤고
오래전 여름 오후 내 꿈은
먼 옛날의 고통이었다는 것을 알아.

아름다운 거울 같은 네 노래는
지난날의 황홀한 사랑을 닮은 것을 나는 알아.
하지만 말해 줘, 넋을 빼는 혀를 가진 분수여
잊어버린 환오하던 내 전설을.

환오하던 옛 전설은 나는 모르고
우울한 옛 이야기는 알아.

나른한 여름 맑은 오후였어...
홀로 괴로워하며 너가 왔어.
맑은 오후, 입술로 고요한 물에
입맞춤을 하며 네 고통을 말했어.

불타는 네 입술은 네 고통을 말했고
목마른 지금처럼 그때도 목이 말랐어.

다시 볼 수 없지만 안녕, 낭랑한 분수
잠든 공원에서 영원히 노래하라.
다시 볼 수 없지만 안녕, 한결같은 분수
내 고통보다 더 쓰라린 분수여.

낡은 덧문에 내 열쇠가 삐걱거리며
금속음을 내며 철문이 열렸고
죽은 오후의 적막을 깨며
녹슨 철문이 무겁게 닫혔다.

VI

Fue una clara tarde, triste y soñolienta...
tarde de verano. La hiedra asomaba
al muro del parque, negra y polvorienta...
La fuente sonaba.

Rechinó en la vieja cancela mi llave;
con agrio ruido abrióse la puerta
de hierro mohoso y, al cerrarse, grave
golpeó el silencio de la tarde muerta.

En el solitario parque, la sonora
copla borbollante del agua cantora
me guía a la fuente. La fuente vertía
sobre el blanco mármol su monotonía.

La fuente cantaba: ¿Te recuerda, hermano,
un sueño lejano mi canto presente?
Fue una tarde lenta del lento verano.

Respondí a la fuente:
No recuerdo, hermana,
mas sé que tu copla presente es lejana.

Fue esta misma tarde: mi cristal vertía
como hoy sobre el mármol su monotonía.

¿Recuerdas, hermano?... Los mirtos talares,
que ves, sombreaban los claros cantares
que escuchas. Del rubio color de la llama,
el fruto maduro pendía en la rama,
lo mismo que ahora. ¿Recuerdas, hermano?..
Fue esta misma lenta tarde de verano.

—No sé qué me dice tu copla riente
de ensueños lejanos, hermana la fuente.

Yo sé que tu claro cristal de alegría
ya supo del árbol la fruta bermeja;
yo sé que es lejana la amargura mía
que sueña en la tarde de verano vieja.

Yo sé que tus bellos espejos cantores
copiaron antiguos delirios de amores:
mas cuéntame, fuente de lengua encantada,
cuéntame mi alegre leyenda olvidada.

—Yo no sé leyendas de antigua alegría,
sino historias viejas de melancolía.

Fue una clara tarde del lento verano..
Tú venías solo con tu pena, hermano;
tus labios besaron mi linfa serena,
y en la clara tarde, dijeron tu pena.

Dijeron tu pena tus labios que ardían;
la sed que ahora tienen, entonces tenían.

—Adiós para siempre la fuente sonora,
del parque dormido eterna cantora.
Adiós para siempre; tu monotonía,
fuente, es más amarga que la pena mía.

Rechinó en la vieja cancela mi llave;
con agrio ruido abrióse la puerta
de hierro mohoso y, al cerrarse, grave
sonó en el silencio de la tarde muerta.

칙칙한 공원 (parque)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시꺼먼 담쟁이가 있고, 집의 녹슨 쇠창살 덧문과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고 나와 공원에 들어갔다. 오후였다. 나른하고 우울한 여름 오후였다. 오후는 모더니즘 시에 흔한 소재로 특히 해질 무렵, 현실이 흐릿해지고 어둠이 내리는 때는 영원으로 향할 수 있는 신비로운 시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오후는 죽었다. 고단하고 지루한 일상을 너머 영겁의 세계로 가는 통로는 막혀 있다.

물을 단조롭게 솟아내는 분수와 대화를 한다. 시적 영감이 공원에서 분수로 옮겨가며 자아를 찾는다. 분수는 시인에게 '옛날 꿈' 유년의 기억을 묻고 시인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늘 떠오르는 것은 아픈 사랑과 고통이다. 유년의 즐거운 한 때, 기억에서 지워진 즐거웠던 옛 이야기를 분수가 말해주길 바라지만 우울한 기억만 되돌려준다. 공원은 나 자신에 빠진 유아론의 상징이고, 자아를 회복해야 하는데 공원은 죽어 있고 분수는 행복한 유년을 돌려주지 않는다. 대화는 아무 결실을 얻지 못했다. 막힌 현실을 초월하려는 노력은 실패한다. 과거의 나와 만나지 못하고, 일시성을 초월하자는 하는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공원을 나간다.

이런 좌절은 사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의 흔적이다. 마차도의 시는 묘하게도 폴 베를렌의 시 <삼 년 후>와 닮았다. 아래는 시의 전문이다.

삼 년 후
                                     폴 베를렌

흔들거리는 좁은 문을 밀어젖히고
나는 작은 정원으로 들어갔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빛나고
모든 꽃들이 섬섬(閃閃)하게 빛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모두 보았다. 수수한 정자
등나무 의자, 구불구불 포도덩굴
분수는 한결같이 은빛으로 속삭이고
늙은 사시나무 변함없이 탄식한다.

장미는 예전처럼 고동친다, 예전처럼,
뽐내는 백합은 바람에 흔들리고
오가는 종달새는 나의 벗.

벨레다는 아직 서 있고
석고는 통로 끝에 갈라져 있고
물푸레나무 희미한 냄새가 심심하게 났다.

Après trois ans
                                          Paul Verlaine

Ayant poussé la porte étroite qui chancelle,
Je me suis promené dans le petit jardin
Qu'éclairait doucement le soleil du matin,
Pailletant chaque fleur d'une humide étincelle.

Rien n'a changé. J'ai tout revu : l'humble tonnelle
De vigne folle avec les chaises de rotin...
Le jet d'eau fait toujours son murmure argentin
Et le vieux tremble sa plainte sempiternelle.

Les roses comme avant palpitent ; comme avant,
Les grands lys orgueilleux se balancent au vent,
Chaque alouette qui va et vient m'est connue.

Même j'ai retrouvé debout la Velléda,
Dont le plâtre s'écaille au bout de l'avenue,
Grêle, parmi l'odeur fade du réséda.

베를렌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던 안토니오 마차도였지만 당시의 상징주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었다. 베를렌의 탄식하는 공원과 노래하는 분수는 마차도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심지어 마차도의 "낡은 쇠창살 덧문 vieja cancela'의 명사 cancela는 베를렌의 시에 "비틀거리는 좁은 문 porte étroite qui chancelle"의 동사 chancelle를 옮겨 놓은 것 같다.

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의 무상함에 한숨짓는 공간으로써 공원은 안토니오 마차도 이외의 스페인 모더니즘 시에 흔한 소재이다. 이를테면안토니오 마차도의 형인 마누엘 마차도 (Maunel Machado)의 시집 <영혼 Alma>(1900)에 실린 시 <회색 공원 El jardín gris>도 이런 비관주의가 넘친다. 정원사가 없는 공원! / 낡은 공원 / 영혼이 없는 공원 / 죽은 공원! 나무는 /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연못의 / 물은 썩었다. 물결도 없다! 새는 / 가지에 앉지 않는다..... ¡Jardín sin jardinero! / ¡Viejo jardín, / viejo jardín sin alma, / jardín muerto! Tus árboles / no agita el viento. En el estanque, el agua / yace podrida. ¡Ni una onda! El pájaro / no se posa en tus ramas... 바람도, 영혼도, 맑은 물도, 새도 앉지 않은 나무가 있는 공원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상징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런 공간은 후안 라몬 히메네스 (Juan Ramón Jiménez)에게는 "잠든 낡은 바람 (un aire dormido y viejo)"이 부는 "병든 공원 (jarsdines enfermos)"이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의 시집 <슬픈 아리아>(1903)에 시 - 병든 공원

이렇게 공원은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하지 못해 비탄을 하는 곳이자 동시에 이를 해결하려는 열망을 상징하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