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페인어/스페인어 낱말 바루기

불 황소 달리기 toro de fuego 황소 모양이 나오는 불꽃이 아니다

by brasero 2023. 11. 29.

toro de fuego, 문자 그대로 옮기면, toro 황소, de 전치사, fuego 불꽃 = '불꽃의 황소'이다. 전치사 de의 의미 중에 '소유'이면 불은 황소의 것이란 말이고, '목적'이나 '이유'이면 불을 타오르기 위한 황소이고, 앞 명사 toro의 의미를 보조하는 뒤에 오는 보어 명사 fuego를 연결하는 의미이면 '불이 붙은 황소', 줄여서 말하면, 좀 어색하지만, '불 황소'이다.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황소 모양이 나오는 불꽃'이라고 했다.

네이버 스페인어사전 toro de fuego 오역

'황소 모양이 나오는 불꽃', 이게 뭘까. 불이 황소 모양으로 나온다고? 마술인가? 불쇼인가? 궁금하다. 질문을 몇 개 던져본다. 누가 불을 붙이는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붙이는가, 마지막으로 중요한 질문, 불꽃으로 왜 황소 모양을 만드는가?

이 질문은,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오류이다. 왜냐하면 toro de fuego는 '황소 모양이 나오는 불꽃'이 아니라 '뿔이 불타는 황소'란 뜻이기 때문이다.  toro de fuego란 표현에 비록 뿔(asta, cuerno)이란 낱말은 없지만, 불은 황소의 뿔 위에 기름을 먹은 헝겊에 붙은 것이다. 우리의 사고나 뜻을 모두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언어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단점이라 하지 말자.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이 있는가.

DRAE(스페인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는 toro de fuego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보자.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아래 2번 정의를 참조한 것 같다. 번역을 하면, '뿔에(en las astas) 공 같은 인화성 물질(bolas de materia inflamable)로 불이 붙은(encendidas) 황소가(투우 toro) 대중이 참여하는  어떤 축제에서(en algunos festejos populares) 달리는(se corre) 것'이라고 했다. 즉 황소의 두 뿔에 천을 둥그렇게 감아매고 불을 붙여 달리게 하고 사람이 피하는 재미를 즐기는 스페인 전통 축제이다.

DRAE toro de fuego

다른 말로 toro embolado라고 하는데(이 표현은 DRAE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동사 embolar는 원래 소의 뿔이 상처를 입히지 않게 나무로 된 공 모양의 덮개를 씌우는 것을 뜻하나 여기서는 인화성 물질을 매단 철제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toro embolado는 문자 그대로, 뿔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장치가 있는 투우(toro de lidia)란 뜻이지만, 소뿔에 불을 붙여 달리는 놀이이다.

까딸루냐어와 발렌시이아어로  bou embolat[보우 엠볼랏]라고 한다 (발렌시아어는 까딸루냐어의 변이형 또는 방언인데, 발렌시아주는 발렌시아의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까딸루냐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발렌시아어사전 bou embolat- 역청 더미로 두 뿔에 불이 붙은 황소가 거리를 질주하는 대중 축제

toro de fuego는 toro embolado와 동의어이고 '황소 모양이 나오는 불꽃'이 아니고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 '불 황소 달리기' 놀이인 것을 확인했다.

toro embolado, bou embolat (발렌시아주 고데야 마을 영상 캡처)

하지만 요즈음 toro de fuego는 위에서 언급한 DREA의 정의, '뿔에 불을 붙인 황소 달리기'란 의미가 퇴색하고, '황소 같은 가면이나 장치에 폭죽과 같은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는 달리기'란 뜻이 되었다.

이 변질된 새로운 뜻의 toro de fuego는 아이들이 좋아하고, 스페인 전역에서 열린다.

  • toro de fuego = toro embolado DRAE 정의-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 '불 황소 달리기', 까딸루냐어와 발렌시아어 bou embolat
  • toro de fuego는 '모형 황소 불꽃놀이'란 뜻이고, toro embolado는'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라는 뜻으로 의미 분화가 진행 중이다. 새로운 의미의 toro de fuego를 DRAE는 언제 등록할지 지켜볼 일이다.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는 유튜브에  검색 해 보시길 바란다. 검색어를 toro embolado라고 해야 한다. toro de fuego 검색어는 아래 영상처럼 대부분 황소 모양을 한 기구로 불꽃놀이를 하는 영상이 검색된다. 물론 toro de fuego에는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 영상도 드물게 있다. 

toro de fuego 황소 모형 장치로 하는 불꽃놀이 - 스페인 북부 나바라주의 뚜델라시(Tudela) 2023년

toro embolado, 뿔에 불꽃이 타오르는 소를 피해 달리는 축제를 누가 즐길까. 스페인 지중해 주변의 발렌시아주, 무르시아주, 까딸루냐주, 서부 내륙의 아라곤주와 일부 까스띠야 이 레온주(예를 들어, 소리아 지역의 메디나셀리 Medinaceli), 북동부의 나바라주에서하는 놀이 또는 스포츠이다.*(주1 더보기) 주로 남자들이 참여하고 물론 여자는 보기 힘들지만 가끔 동여맨 둥그런 천에 불을 붙이곤 한다.

더보기

*주 1. 까딸루냐주는 투우(corrida de toros)를 하지 않는다. 까딸루냐는 투우 전통이 어느 주보다 강하게 남아 있지만 독립주의자의 입김으로 주의회를 의결을 거쳐 2012년 1월부부터 투우가 금지되었다. 2016년 10월 에스빠냐 헌법재판소가 투우 금지를 위헌으로 판시했으나 여전히 까딸루냐에서 투우는 열리지 않는다. 다만 뿔이 불타는 불 황소 달리기(toro embolado)는 여전히 개최되고 있으나 최근에 동물 학대 문제로 폐지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까딸루냐주 투우금지, 엘 빠이스신문 2010. 7. 28
el nacional cat 신문(2023. 3. 31) 매년 9월 24일에 열리는 그리사아축제(메르세축제)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에서 투우는 다시 열리지 않는다.
엘 빠이스 신문(2023.10. 25) 까딸루냐 의회는 'correbous 소달리기'를 폐지할 첫 발을 내딛다.

 

축제가 열리는 도시와 마을에 따라 다르지만 봄(4월-6월)과 여름과 가을(7월~10월)에 주로 열린다. 마을 광장이나 투우장에 세운 기둥(pilón)에 황소를 줄로 결박하고 한 사람이 소뿔에 불을 붙일 헝겊 더미가 있는 쇠(los herrajes con las bolas)를 설치한다. 다른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은 소꼬리를 잡고 설치 작업을 도와준다. 불을 붙이면 줄을 칼로 끊어서 뿔에 불타는 붙은 황소가 풀려나와 날뛰기 시작한다.

지금은 이렇게 말뚝에 줄로 소를 매지만 옛날에는 소의 얼굴을 가리고 불을 부칠 설비를 부착했다고 하니,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었다.

toro embolado 불 황소 달리기 - 황소 결박, 뿔에 장치 설치 및 점화, 줄 끊기 - 발렌시아주 무세로스(Museros) 마을

광장과 거리와 집은 소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합판이나 사다리 따위의 충돌 방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왜 이런 축제를 할까. 소와의 대적은 선사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소리아의 발론사데로(Valonsadero) 산의 동굴벽화에는 도끼가 있는 황소 벽화가 있어 신석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황소와 겨루었다는 의미에서 투우가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소는 전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인들 이전 시대에 이베리아반도인의  족장 오리손(Orisson)은 기원전 228년에 반도 남부를 차지하고 있던 카르타고의 하밀까르 바르까(Amilcar Barca)가 코끼리를 동원한 군대로 공격하자 수레를 끄는 뿔에 불을 부친 수소 떼로 맞받아쳐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아래 Milagro의 글 참조).

2021 Milagro 저,뚜데라의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 역사 2쪽

더욱이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2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치른 2차 포에니 전쟁의 하나인 에게르 팔레르누스 전투(Batalla del Ager Falernus, 기원전 217)에서 소뿔에 불을 붙인 소로 로마군을 공격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다(John Paddie, Hannibal's war. 1997. 91-93쪽).

어쨌든, 무서운 파괴력으로 돌진하는 뿔이 불타는 황소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충분하기에 두려움을 즐기는 것이다. 소머리에 받히거나  날카로운 뿔에 찔리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놀이, 죽음을 담보로  삶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발로이다. 어쩌면 이런 축제를 즐기기 때문에 스페인이 우리보다 자살률이 낮을 수 있다. 

매년 '불 황소 달리기'의 희생자는 늘 뉴스거리이다. 아래는 엘 빠이스 신문인데, 작년 '여름 발렌시아주에 뿔이 불타는 황소 달리기 축제에서 뿔에 찔려(cogida) 사망한 젊은이가 4명이다'는 제목 하에 까스떼욘도의 소네하(Soneja)에서 금요일에 18살 청년이 이 축제에서 황소 뿔에 찔려(embestida) 사망했다는 소식을 부제로 알리고 있다. 

엘 빠이스 신문 2022.8. 7

https://elpais.com/espana/comunidad-valenciana/2022-08-07/muere-un-joven-tras-la-cogida-de-un-toro-embolado-la-cuarta-victima-en-los-festejos-valencianos-de-este-verano.html

 

Muere un joven tras la cogida de un toro embolado, el cuarto fallecido en los festejos valencianos de este verano

El hombre de 18 años sufrió el viernes “una aparatosa” embestida en las fiestas del municipio castellonense de Soneja

elpais.com

소뿔에 찔리거나 소머리에 들이받히는 유튜브 영상을 조회하려면 toro embolado cogida 또는 toro embolado embistida란 검색어로 찾아보시길 바란다. 영상을 찾아 본 글에 올리면 되지만 그렇게 해도 연령제한으로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과 동물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 '불 황소 달리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판에 박힌 대로이다. 보수정당인 국민당(PP)과 극우보수 복스(VOX)는 전통을 유지하자는 입장에서 장려를 하지만 진보주의 좌익계열 사회노동당(PSOE)와 수마(Suma, 2023년 7월 선거 때 뽀데모스당의 일부와 그 이외 좌익계열이 결성한 새로운 당)은 금지와 억제가 기존 정책이다. 

참고문헌
Félix MIlagro. 2021. Historias del Toro de Fuego de Tudela [뚜델라 마을의 불 황소 달리기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