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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새

회색머리멧새 hortelano 식탐의 끝판 오르톨랑 요리

by brasero 2024. 3. 12.

hortelano[오르뗄라노]는 회색머리멧새이다. 멧새과의 회색머리멧새(학명 Emberiza hortulana)의 정식 스페인 명칭은 escribano hortelano('밭과 같은 경작지 곁에 서식하는 멧새 escribano'라는 뜻)이지만 줄여서 hortelano라고 한다. 영어로 ortolan[오톨런] bunting이고 프랑스어는 bruant ortolan이다. ortolan의 프랑스어 발음은 '옿톨랑' (알기 쉽게 '오르톨랑'이라고 표기하지만 발음은 '오ㅎ톨랑')이다.

국립생물자원관 회색머리멧새 학명

ortolan을 국내 영한사전과 불한사전은 정확한 종 명칭 '회색머리멧새' 대신 '촉새, 멧새'(동아출판 프라임 영한사전), '멧새류의 작은 새'(YBM 영한사전), '멧새'(동아출판 프라임 불한사전)라고 오역하거나 어정쩡하게 번역했다. 

오르톨랑, 회색머리멧새, 사진 inaturalista, Erik Eckstein

교학사 영한사전은 '멧새과의 촉새의 일종'이라고 오역을 했지만, 학명을 제시하며, 동시에 '맛이 좋다'라고 했는데 프랑스의 오르토랑 요리를 암시하고 있다. 

교학사 영한사전 ortolan 뜻풀이
회색머리멧새 수컷, 사진 ebird

'맛이 좋다'가 아니라 맛이 천하일품이다.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반드시 먹어 보고 싶은 강박증을 일으킬 정도로 맛이 좋다. 그 유명한 프랑스의 오르토랑 요리인데, 요리 방식이 푸아그라(foie gras)나 샥스핀을 먹기 위한 노력보다, 아니, 정치 검찰이 혐의가 나올 때까지 압색, 회유, 겁박, 난도질을 하는 것보다 일억 배 더 악랄하고 잔인하고 교활하다.

달큰 짭잘, 오독독 뼈를 바르고 난 뒤 후두를 애무하며 식도로 넘어가는 아르마냑 술 향기가 배인 부들부들 탱탱한 살코기를 맛보기 위한 것인데, 그 탐혹스러운 요리 과정과 먹는 방식을 간단히 알아보자.

아래는 Stewart Lee Allen이 지은 ≪악마의 정원에서, 금지된 음식이 지닌 죄악의 역사 In the Devil's Garden: A Sinful History of Forbidden Food≫ (2002)에서 '미테랑의 최후 만찬 Mitterrand's last supper'을 참조했다.

악마의 정원에서, 금지된 음식이 지닌 죄악의 역사. 2002. 72쪽

우선 회색머리멧새를 산 채로 잡아야 한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여름을 나고 늦가을에 아프리카로 겨울을 나기 위해 떠나는 녀석들을 나무로 만든 올가미 그물로 잡는다. 몸길이가 겨우 15 cm 정도인 오르톨랑을 엽총으로 쏘아 잡을 수 없지 않은가. 근육의 손상을 막는 것이다.

잡은 회색머리멧새를 천으로 덮어 빛을 가린 새장이나 상자 속에 넣어 한 달 정도, 조, 포도, 무화과를 먹여 체중을 4 배로 키운다.

요리는 간편하다. 우선 '벌크 업'된 새는 산 채로 바로 아르마냑 브랜디 술에 담근 익사 시킨다. 털을 제거한 후 그대로 오븐에 6 ~8분 구우면 된다.

팬에 굽히는 회색머리멧새, 사진 EL ORTOLAN AL ARMAGNAC, ES UN PLATILLO REPRESENTATIVO DE LA GASTRONOMA FRANCESA I NICO (아래 링크 사진 포함 글)

https://www.animalgourmet.com/2023/09/21/comida-prohibida-ortolan-bunting-un-platillo-tetrico-en-verdad/

노랗게 굽힌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회색머리멧새가 식탁에 오른다. 머리를 떼지 않고 그대로 또는 제거한 것일 수도 있다.

냅킨이나 수건을 머리에 쓰고, 머리가 달린 향긋한 회색머리멧새를 한 입에 넣는다. 머리는 입술에 대롱대롱거린다. 뜨거우면 혀로 가만히 누르고 입을 살며시 열어 열기가 빠져나가며 콧구멍으로 향기를 맛본다. 온 혀를 감싸는 달콤하고 짭조름한 고소한 맛을 음미한다.

식으면 먼저 이빨로 머리를 제거하고 천천히 씹는다. 15분이면 다 먹을 수 있다. 먼저 가슴과 날개를 공격하여 작은 뼈를  오돌오돌 씹어 버리고, 큰 뼈는 뽀도독뽀도독 빠락, 훗 훗 발라내며 살코기와 육즙을 넘기고 내장을 먹는다. 

어둠 속에서 머리를 숙이고 이렇게 먹으면 회색머리멧새의 전 생애를 먹는 것이다. 모로코의 밀 맛과 지중해의 소금 맛과 프랑스나 유럽의 라벤더 맛을 느낄 수 있다. 콩알만한 허파와 심장을 베어 물면 아르마냑 브랜디의 향기가 혀끝에서 뇌로,  머리에서 내려와 가슴과 배를 따라 다리로 발끝까지 꽃동산에 비가 뿌리듯 밀려간다. 극락을 체험한다.

냅킨을 쓰고 머리를 숙이는 것은 탐욕을 감추기 위한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의 도리라고 하는 견해가 있고, 맛을 천 배 즐기기 위한 오롯한 고독을 증가하기 위한 설도 있다.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은 암으로 죽어 가며 1995년 12월 31일 친구를 초대한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회색머리멧새를 먹었다. 첫 요리는 굴, 다음은 푸아그라 이후 닭요리를 먹고 후식이나 치즈도 먹지 않고, 시식이 도덕적 비난을 받던 그때 어른의 엄지발가락 만한  4 온스(113 그램) 회색머리멧새를 탐했다. 

미테랑은 전통 방식에 따라 두건 같은 냅킨을 머리에 쓰고 오르토랑을 통째로 입어 넣었다고 한다. 회색머리멧새는 프랑스 샹송에 순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하는 새다. 이 새를 맛보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고, 부끄럽지만, 마농 Mais non! (천만의 말씀), 당장 죽더라도 먹고 싶은 요리이다. 미테랑은 한 번에 한 마리라는 관습을 깨고 두 마리를 먹었다고 한다. 그 후 일주일 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회색머리멧새는 1999년에 프랑스에 포획이 금지되었고 2007년에는 포획이나 도살에 벌금을 최대 6,000유로를 물리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오랜 전통인 오르토랑 요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래는 프랑스의 미식가자 요리사인 마이떼(Maïté)가 냅킨을 사용하며 먹는 오르토랑(l'ortolan à la serviette) 영상이다.

마이떼의 회색머리멧새 먹방 유튜브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까지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는 흔한 요리였다. 참새구이에 소주 한 잔, 잔인한가. 그러면 소와 돼지는 어쩔 것인가. 오징어와 문어와 산낙지는 잔혹하지 않은가. 

회색머리멧새는 아래 DRAE(스페인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이 묘사하고 있듯 "부리에서 꼬리 끝까지 약 12 cm이고, 머리와 가슴과 등이 녹회색이고, 멱은 노랗고, 멱의 바로 아래는 재색이고, 꼬리의 양 가장자리는 흰 선이 있어 클립 모양(ahorquillada) 같고, 발톱은 갈고리 형태이고, 부리가 긴 스페인에 흔한 조류"이다. 

회색머리멧새 꼬리 양측의 흰 선이 문서 클립 같다. 사진, 그리스 동 마케도니아 Alexander Wirth
회색머리멧새의 갈고리 형태의 발톱, 사진 inaturalista, 러시아

DRAE는 escribano hortelano를 따로 등재를 했는데, "머리와 가슴이 올리브 열매색이고 멱과 눈테(anillo ocular)가 노란색인 스페인에 흔한 참새목의 조류"라고 묘사했다.

회색머리멧새 암컷과 새끼, 성조(어른 새)의 눈테와 멱이 노란색이다(사진 SEO). 멧새는 바닥 또는 1m 이하의 높이에 둥지를 튼다. 알과 새끼는 쉽게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스페인의 텃새 노랑멧새(escribano cerillo, 학명 Emberiza citrinella)를 ave tonta(바보 새)라고 한다.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hortelano를 '촉새'로 오역하거나, '회색머리멧새'라고 정확하게 번역하는 대신 '멧새'로 두루뭉술하게 옮겼다. 영한사전이나 불한사전의 오역과 부정확함과 다르지 않다. 사전은 사전끼리 서로 베껴쓰는 관행 때문이다.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 hortelano 오역

escribano hortelano는 등재하지 않고, 대신 오픈사전의 영어 번역 ortolan bunting만 있다.

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의  escribano hortelano 우리말 뜻풀이 없음

멧새과의 조류, 촉새는 escribano enmascarado(학명 Emberiza spodocephala)라고 하는데, 배와 가슴은 밝은 색이고  머리와 얼굴이 녹회색이라서 얼굴에 '탈을 쓴 enmascarado' 것 같은 '멧새 escribano'라고 한다(영어로 black-faced bunting 검은얼굴멧새). 알타이산맥 서부에서 오호츠크해 연안, 사할린, 중국 북동부, 몽골, 만주, 북한 등에서 번식하고, 네팔, 베트남, 타이완, 태국 등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개체도 있으나 주로 봄과 가을에 지나가는 나그네새이다. 

스페인에 없어 관찰할 수 없으나 2023년 2월에서 3월까지 발렌시아주 시야(Silla)라는 마을의 습지에서 길 잃은 새로 탐조된 적이 있다. 

촉새 수컷, 화색머리멧새처럼 노란 눈테가 없다. 사진 ebird
촉새 수컷, 사진 위키백과

회색머리멧새는 유럽, 지중해 연안, 중남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몽골 서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아프리카 중북부에서 월동한다. 스페인에서는 4월에서 9월까지 머무는 여름 철새로 겨울이면 아프리카로 이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길잃은 새(미조)로 관찰된 적이 있다.

나무나 관목 숲이나 과수원이나 밭(huerto)이 인접한 들판에 서식한다. 5월 경에 암컷이 바닥에 마른풀 등을 이용해 둥지를 치고, 3~6개 알을 낳고 11~12일 품는다. 포란 기간 동안에 암컷에게 수컷이 먹이를 구해 준다. 

회색머리멧새의 알, 사진 위키백과 - 알에 잉크를 흘린 자국 같은 검은 무늬가 있다. 스페인어로 멧새과의 멧새 모두 escribano(멧새 이외에도 서사, 공증인이란 뜻)라고 한 까닭이다.
회색머리멧새, 사진, oiseaux.net, Geoffroy Cha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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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머리멧새 bruant ortolan, 사진, 울음소리, 영상 - Oiseau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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