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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후안 마르세의 소설 번역 - cala 작은 해변

by brasero 2023. 9. 11.

후안 마르세(Juan Marsé, 1933~2020)의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 Últimas tardes con Teresa≫(1966)는 바로셀로나의 부유한 좌익 여대생 떼레사와 하층 무산계급의 도둑이자 들치기인 마놀로의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아울러 1950년대 후반 스페인 좌파 대학생들의 계급 차별 철폐, 노동운동, 민주화 시위의 무효용성을 지적하며 이를 지지했던 객관적 사실주의 문학의 허위를 깨뜨린 작품이다. 

떼레사가 마놀로와 사귀게 된 계기에는 몇 가지 사건들이 연루되어 있다. 우선, 떼레사는 그녀의 남자 친구, 좌파 대학생의 영웅 루이스와 육체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다. 그녀는 해변 별장에 부모님이 없는 틈에 루이스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려고 했지만 굳건한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된 이성적인 그는 행사를 치르지 않고 그녀를 떠나버린다. 떼레사는 그녀의 집 하녀 마루하가 마놀로와 잠자리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의 관계를 부러워했다. 그런 떼레사는 루이스의 성적 무능함을 마놀로와 견주어 보며 실망한다. 

떼레사와 루이스가 첫날밤을 보내기로 한 그날 낮에 떼레사와 루이스는 마루하를 초대해 보트를 타고 해수욕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떼레사와 루이스는 어색하고 불안했는데 마루하가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두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그날 떼레사는 마루하에게 유행이 지났지만 새 것인 바지와 샌들을 선물했는데, 이 샌들을 신은 마루하가 떼레사와 루이스가 기다리는 보트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오는 계단을 급하게 내려오다 샌들이 무엇에 걸려 굴러 떨어져 버렸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그녀는 부끄러운 듯 괜찮다고 일어섰고 그렇게 셋은 해안을 따라 배를 탔고 수영도 하며 오후를 보냈다.

이튿날 사고의 후유증으로 마루하는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나날이 건강이 나빠지는 마루하를 위해 떼레사는 마놀로를 찾아와  그녀의 입원 사실을 통보했고 병원에 온 마놀로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마루하를 보고 분노에 휩싸였다. 이후 병문을 찾아오던 마놀로는 떼레사와 점점 가까워져서 심지어 해수욕도 같이 가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마루하를 생각하며 자제해야 한다는 떼레사이지만 마놀로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든다.

'작은 해변 cala'를 도입하기 위해 여대생 떼레사와 그녀의 남친 루이스, 그녀 집의 가정부 마루하와 마루하와 몸을 섞은 주인공 마놀로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했다. 

위에서 언급한, 마루하가 선착장으로 오는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그날 떼레사와 루이스와 함께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난 뒤 수영을 했던 곳은 cala였다. 

Ella por su parte (eso es verdad, lo recuerdo muy bien, muy bien) insistía en que no se había hecho daño y en que ya podían emprender la marcha. De modo que embarcaron los tres y navegaron bordeando la costa durante casi una hora, se bañaron en una pequeña y desierta cala y comieron fruta fresca que Maruja había tenido el acierto (complaciente criatura) de traer para ellos. Tendidos en la arena, mientras comían, Teresa y Luis estuvieron prácticamente encima de la criada, preguntándole por Manolo....

마루하는 다치지 않았으니 어서 배를 출발하자고 고집을 부렸다(이것은 잘 기억하고 있는데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셋은 해안을 따라 한 시간 가량 배를 타고  인적이 드문 자그마한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마루하(친절한 하녀)가 그들을 위해 때마침 가져온 신선한 과일을 먹었다. 모래밭에 누워 과일을 먹으며 떼레사와 루이스는 만사를 제쳐놓고 마루하에게 관심을 집중하며 마놀로에 관하여 물어보며...(소설 2부 2장) 

창작과 비평사는 아래처럼 옮겼다.

그런데 마루하는 아프지 않으니 빨리 출발하자고 졸라댔다. (정말 정확히 기억하는데 이건 사실이다.) 그래서 세사람은 보트에 올라타고서 거의 한시간 동안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들은 작고 인적이 없는 강어귀에서 수영을 했고, 마루하(만족스러운 하녀)가 그들을 위해 준비한 신선한 과일을 먹었다. 모래사장에 누워 과일을 먹는 동안 떼레사와 루이스는 하녀를 가지고 놀았는데, 마놀로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창작과 비평사. 2016. 169쪽)

창비사는 cala를 '강어귀'로 오역했다. 이 '강어귀'는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의 오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주 1 더보기) 

네이버 스페인어사전 cala 오역 - 작은 강어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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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1. 이 소설을 최초로 옮긴 장원출판사는 cala를 '해협'으로 번역했다.

마루하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출발할 수 있다고 고집을 피웠다. 기억하는데, 정말로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셋은 배에 올라탔고, 거의 한 시간 동안 해변을 따라 항해를 했다. 그들은 작고 텅빈 해협에서 수영을 했고, 마루하가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가져온 신선한 과일을 먹었다. 그렇게 빈틈이 없는 여자, 과일을 먹으면서 모래사장에 기대 있던 루이스와 테레사는 마놀로에 대한 질문을 하느라 마루하를 볶아댔다 (여대생과 좀도둑. 장원. 1993. 163쪽)

cala를 RAE(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은 'ensenada pequeña'라고 정의했다.

RAE cala

ensenada는 아래 2번에서 풀이했듯 '땅으로 들어온 바다의 일부(parte de mar que entra en la tierra)' 즉 '만'으로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강어귀'가 아니다. ('강어귀'는 다른 말로 '하구 ' 또는 '강구'라 한다).

RAE ensenada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ensenada를 '강어귀'로 오역했다. cala를 '강어귀'로 오역했으니 ensenada도 '강어귀'로 오역한 것이다.

옥스퍼드 서영사전은 cala를 1. 해안이나 호수 가장자리에 작은 만(bay)인 inlet 2. 바다의 작은 만( bay 또는 inlet)인 cove라고 정의했다. cala는 해수이든 담수이든 육지로 들어온 물이 만든 작은 지형이다. 

옥스퍼드 서영사전 cala
스페인 지중해의 다양한 작은 해변 cala - 마요르까의 Cala Torta, 알리깐떼의 Cala del Moraig, 마요르까의 Cala Varques, 발렌시아 하베아의 Cala el Pom, 발렌시아의 11개 calas (구글 이미지 검색)

cala는 소설의 2부 10장에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떼레사와 마놀로가 해수욕을 했던 작은 해변이다. 그들은 가라프(Garraf)라는 이름의 작은 해변에 있었고, 이를 마놀로가 회상하고 있다.

... fue durante otra improvisada tarde de playa (una pequeña cala de Garraf, con merendero y parking, él y ella tumbados junto al esqueleto de una barca abandonada cuyas costillas roídas apuntaban al cielo) ....

.... 어느 날 오후 계획도 없이 불쑥 해변에 갔을 때였다. (작은 해변 가라프였는데, 매점과 주차장이 있고, 그와 그녀는 낡은 늑재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버려진 배의 뼈대 옆에 누워 있었다)....

창작과 비평사는 아래처럼 옮겼다.

충동적으로 해변에 갔던 지난번 오후에도 그랬다. (휴게실과 주차장만 있는 가라프의 작은 강어귀, 두사람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 있는 버려진 배 옆에 누워 있었다.)(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창작과 비평사. 2016. 354쪽)**(주 2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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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2. 장원출판사는 가라프를 생략했지만 cala를 '해변'으로 옮겼다.

그날은 또 한 차례 충동적으로 해변을 갔던 날의 오후였다. 마놀로와 테레사는 썩은 널빤지들의 끝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버려진 배 옆에 드러누워 있었다. (여대생과 좀도둑. 장원. 1993. 357쪽)

이번에도 창비사는 cala를 '강어귀'로 오역했다. 작은 해변 가라프는 까딸루냐주의 유명한 해변 도시 시체스(Sitges) 북쪽 20km에 있는(자동차로 20분 거리) 해변으로 다른 cala에 비해  바다가 육지로 휘어들어온 굴곡이 심하지 않다. 그래서 cala 대신 playa del Garraf (까딸루냐어로 platja del Garraf 가라프 해변, 가라프 해수욕장)로 알려져 있다. 

구글지도 가라프 해변

사전의 오역이 번역 오류를 낳는 씁쓸한 사례이다. 엣센스 스페인어사전(엣스)을 이용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 엣스의 뜻풀이를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RAE를 참조하든지 인터넷의 다른 옥스퍼드, 콜린스, 캠브리지 서영사전 등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래도 엣스가 네이버 스페인어사전(네스)의 모태가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왜냐하면 네스의 단어 풀이는 위키낱말사전(서영사전)과 Word Reference사전(서서사전, 서영사전, 서불사전)과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 RAE와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낱말의 뜻을 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스와 위키낱말사전의 cala - 작은 강어귀(오역), cove(작은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