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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카밀로 호세 셀라의 소설, 벌집 번역 ¿Cómo andamos de vermú? 베르무트는 얼마나 있지?

by brasero 2023. 9. 28.

198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é Cela, 1916~2002)를 대표하는 소설 벌집 La Colmena≫(1951)은 1942년 겨울  마드리드가 배경이다. 스페인내전이 끝나고 프랑코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마드리드 소시민의 마비된 일상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약 300명에 이르고 도냐 로사(Doña Rosa)가 운영하는 카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래는 카페 여주인 도냐 로사와 매니저 로페스(Lopez)가 술의 재고에 대해 나누는 대화이다. 베르무트와 아니스가 충분히 있는지 확인을 하는 장면이다. 

Doña Rosa, como decimos, llamó al encargado.
- ¡Lopez!
- Voy, señorita.
- ¿Cómo andamos de vermú?
- Bien, por ahora bien.
- ¿Y de anís?
- Así, así. Hay algunos que ya van faltanto.
-¡Pues que beban de otro! Ahora no estoy pare meterme en gastos, no me da la gana. ¡Pues anda con las exgiencias!....

민음사 번역본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참, 앞서 이야기했듯이 여주인이 로페스를 불렀다.
"로페스!"
"예, 사장님!"
"백포도주 맛이 어때?"
"요즈음은 괜찮아요."
"아니스 소주는?"
"괜찮아요, 그렇지만 곧 바닥날 것 같아요."
"될 수 있으면 다른 걸 내놓도록 해! 지금 당장은 살 돈도 마땅치 않고 또 사고 싶지도 않아. 꼭 그것을 달라고 할 때만 내놔!....(벌집. 민음사. 2015. 51쪽)

도냐 로사가 지배인(encargado) 로페스를 불러 '베르무트가 얼마나 있지?(¿Cómo andamos de vermú? 문자 그대로, 베르무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라고 묻자 그는 '지금은 충분히 있다(Bien, por ahora bien. 좋아요, 지금은 좋아요)'고 대답했다.  

민음사는 ¿Cómo andamos de vermú?를 "백포도주 맛이 어때?"라고 오역했다. 동사 andar는 기본 의미가 '걷다', '가다'이지만 여기서는 '운영되다' 또는 '~어떤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아래 RAE 3번 또는 4번 의미).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 RAE andar 1. 걷다 2. 가다 3. 움직이다, 운영되다 4. 상황이 ~어떤 상태이다

베르무트(vermú, vermut)는 '백포도주(vino blanco)'가 아니라  포도주에 향쑥(ajeno)과 같은 약초와 향신료를 가미한 강화 포도주로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왔고 스페인과 프랑스에 흔하다. 베르무트에 진(ginebra)을 섞으면 칵테일(cóctel) 마타니(martini)가 된다. 

엘 빠이스 신문 스페인 베르무트에 대한 기사 2019. 6.25.

아니스(anís)는 아니스(anís 다른 말로 matalahúva, 미나리과 식물로 학명은 Pimpinella anisum)와 다른 재료로 만든 독한 술이다. 

아니스 (사진https://anisengrano.com/nuestro-anis/)
RAE 아니스, 다른 말로, 마딸라우바 (어원 아랍어, 하바트 훌루와 - 달콤한 씨앗)

민음사는 생소한 아니스주를 우리에게 맞춰 '아니스 소주'라고 옮겼다.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우리 문화에 맞게 길들인 시도는 괜찮으나 씁쓰레하고 밍밍하면서 쏘는 듯한 화학주 소주가 산뜻한 아니스 향의 아니스주와 섞인 맛이 나는 번역이다.  

스페인에서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아니스주를 생산하고 있다. 세비야의 까사야(cazalla), 바르셀로나의 아니스 델 모노(Anís del Mono) 등 수없는 종류의 아니스가 있다. 이탈리아의 삼부카(Sambuca)도 아니스로 만든 리큐어이다. 

스페인 똘레도의 아수뚜리아스 아니스주 공장
바르셀로나의 아니스 델 모노

≪벌집≫의 마지막 장에는 세비야의 까사야 데 라 시에라(Cazalla de la Sierra)란 마을에서 만든 아니스주 까사야(cazalla)가 등장한다.

Paco llega, sofocado, con la lengua fuera, al bar de la calle de Narváez. El dueño, Celestino Ortiz, sirve una copita de cazalla al guardia García. 빠꼬는 혀를 내빼고 숨을 헐떡거리며 나르바에스거리에 있는 바에 도착했다. 바의 주인 셀레스띠노 오르띠스는 경찰관 가르시아에게 까사야 아니스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민음사의 번역본은 cazalla를 "카사야 지방에서 생산한 포도주(민음사. 벌집. 2015. 356쪽)"라고 오역했다

*까사야 데 라 시에라의 아니스 엘 끌라벨 Anís El Clavel 공장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