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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후안 마르세의 소설 번역 - autos de choque 범퍼카

by brasero 2023. 9. 10.

후안 마르세(Juan Marsé, 1933~2020)의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 Últimas tardes con Teresa≫(1966)는 1950년대 후반 바르셀로나가 배경인 소설이다. 들치기이자 도둑인 주인공 마놀로(Manolo)와 까딸루냐 부르주아 여대생 떼레사(Teresa)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신분 상승을 바라는 하층 계급의 마놀로(소설에 삐호아빠르떼  Pijoaprte란 별명으로 불린다)는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 있는 바르셀로나 북서부 지역인 까르멜로 언덕(Monte Carmelo)의 빈민촌에 산다. 소설 1부 2장에는 구체적으로 그의 주거 환경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형의 판잣집에 얹혀사는데, 집에는 형수와 조카 넷이 있다. 집은 원래 정비공인 형의 장인이 손수 지었고, 도로 위쪽에는 창고가 하나 있는데 이곳은 자전거수리소로 변했다. 이어지는 구절은 장인이 형에게 정비일을 가르쳐 주었고 딸과 형이 결혼하는 것을 보고 죽었고 형과 형수가 사귀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El viejo murió después de ver casada a su hija, una rolliza malagueña de mirada cálida y sumisa, y después de haberle enseñado el oficio a su yerno, natural de Ronda, que había conocido a la muchacha trabajando en unos autos de choque durante la Fiesta Mayor de Gracia.

노인은 따뜻하고 고분고분한 눈길의 통통한 말라가 출신의 딸이 혼인을 하고 사위에게 일을 가르쳐준 후 세상을 하직했다. 론다가 고향인 사위는 그라시아 축제가 열리는 동안 범퍼카장에서 일을 하다가 소녀였던 형수를 만났다. 

창작과 비평사는 아래처럼 옮겼다.

노인은 따스하고 순종적인 눈빛의 통통한 딸이 결혼하는 것을 본 후, 그리고 론다 출신 사위에게 일을 가르쳐준 후 세상을 떠났다. 자동차 정비일을 했던 사위는 그라시아 대축제 때 그녀를 만났다.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창작과 비평사. 2016. 43쪽)

창비사는 형이 형수를 만난 계기, 축제 때 몇 범퍼카에서 일을 하다가 trabajando en unos autos de choque는 번역하지 않았다. 불명확하고 애매하면 생략한다는 번역 전략에 따라, 생략을 해도 이야기 흐름에 별 문제가 되지 않으니, 옮기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trabajando en unos autos de choque를 "자동차 정비일을 했던"으로 오역한 것일 수 있다. 

범퍼카 autos de choque 대신 RAE(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에는 coches de choque(문자 그대로 뜻은 '충돌하는 차들')로 등재되어 있다.

RAE 범퍼카 coches de choque

콜린스 서영사전은 auto de choque를 bumper car와 dodgem[도점](영국 영어)으로 옮겼다.

콜린스 서영사전 auto de choque

이 소설을 최초로 옮긴 장원출판사도 trabajando en unos autos de choque를 "자동차를 고치는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오역했다. 

그는 뜨거우면서도 복종적인 눈을 가진 땅달보 딸이 결혼하는 것을 보았고, 사위에게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 준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은, 자동차를 고치는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는 그를 대축제 때 처음 만났다. (여대생과 좀도둑. 장원. 1993. 38쪽)

창비사는 장원의 번역을 참조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몇 대의 범퍼카들은 unos autos de choque' 그라시아 축제가 열리는 '동안 duante'에 운영된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축제 기간에 형은 범퍼카들을 관리하거나 정비하는 일을 하다가, 범퍼카를 타러 왔든지 구경온 소녀(muchacha)였던 형수를 처음 만난 것이다. 

1950년대 말에 스페인에 범퍼카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1950년대 스페인의 축제 때 범퍼카는 흔한 놀이 기구였다. 가령, 발렌시아주 아래에 있는 무르시아주의 북동부에 있는 주민수 3만 5천 정도의 옐까(Yelca) 마을 박물관에는 아래와 같은 사진이 있다. 사진은 1953년 마을의 9월 축제 때 찍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옐까박물관의 범퍼카 사진 1953년

우리나라에 범퍼카는 나무위키에 따르면 1979년 에버랜드 즉 자연농원 시절에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물산 홈페이지는 에버랜드를 소개하며 1980년의 범퍼카 사진을 싣고 있다 (사진이 1980년에 촬영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에버랜드의 범퍼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