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은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로 연한 누런색 꽃이 피는 식물이고 크고 둥근 열매는 속살이 붉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겉은 파란색의 민주당이지만 속은 붉은 '국민의 힘' (하는 짓이 '국민의 적'이다)인 민주당의 정치인이나 당원이나 지지자를 일컫는 말이다. 아울러 '돼지', '낙지', '소대가리', '빨래 건조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오리발'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 검사에게 지급되던 특수활동비, 받았지만 받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하는 돈을 뜻하는 검찰 내에서 사용하던 은어 내지는 속어였다. '수박', '돼지', '오리발' 등은 식물이나 동물이라는 낱말의 표면 의미, 즉 외연 의미 뒤에 같은 사회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공유한 내연 또는 내포 의미(connotación)가 있다. 이런 내연 의미는 낱말을 포장하고 있는 문자라는 껍질 안에 있는 알맹이같이 숨은 의미로 비유의 일종이다.
스페인어도 당연히 이런 숨은 의미가 있다. 가령, el guapo(외연 의미 - 잘생긴 남자)이지만 스페인정부의 현 대통령 사회노동당(PSOE)의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를 가리키면 '미남'이란 뜻으로 통용되지만 '허세를 부리는 남자(perdonavidas)'라는 부정적인 내연 의미를 함의한다. 이런 내연 의미 덕분에 언어 사용자는 아이러니(반어)와 패러독스(역설)를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편하지 않게 숨은 개념을 전달한다. 이런 내연 의미는 일상어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시에 상징, 알레고리, 은유, 직유처럼 흔하다.
숨은 의미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batalla piensa en mí≫(1994)에 숨은 의미를 예를 들어 본다. 소설은 주인공,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 작가인 빅토르는 세 번째 만난 대학교수 마르타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먹은 다음 그녀의 두 살배기 아들이 잠이 들자 안방에서 사랑을 시작하다 돌연 그녀는 몸이 아파 그의 팔에 안겨 침대에서 죽어버리는 비현실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들을 감시하는 듯한 어린 아들은 조그만 토끼(conejo enano) 인형을 늘 쥐고 있었고 공갈젖꼭지(chupete)를 물고 있었다. 자동차나 칼이나 총 같은 장난감이 아니라 또는 그 흔한 곰 인형(oso de peluche, 테디베어 teddy bear)도 아니고, 사내 아기가 토끼 인형이라니, 의아하다 싶지만 숨은 의미 또는 이중 의미를 알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된다.
어린 아들이 잠이 든 후 사랑을 나누려다 몸이 불편한 마르타 때문에 거사는 중단되었고 빅토르는 침대에 누워 있는 아픈 그녀 옆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저녁 식사 시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런던으로 출장을 간 아이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 두 살 먹은 아이는 이제 막 말문이 트여 떠듬거리며 말을 할 수 있었고 마르타와 아버지는 아이의 토막말과 몸짓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 아이는 신이 나서 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그녀는 바꾸어 주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부엌에 들어간 사이에 빅토르와 아이는 말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토끼 인형을 들고 공갈젖꼭지를 문 아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묘사이다.
Tal vez el padre también le entendía y por eso pedía que se pusiera al teléfono aquel niño que, para mayor dificultad, hablaba todo el rato con un chupete en la boca. Yo le había dicho una vez, mientras Marta se ausentaba unos minutos en la cocina y él y yo nos habíamos quedado solos en el salón que también era comedor, yo sentado a la mesa con la servilleta sobre mi regazo, él en el sofá con un conejo enano en la mano, los dos mirando la televisión encendida, él de frente, yo de reojo: 'Con el chupete no te entiendo'. Y el niño se lo había quitado obedientemente y, sosteniéndolo un momento en la mano con gesto casi elocuente (en la otra el conejo enano), había repetido lo que quiera que hubiera dicho, también sin éxito con la boca libre. (1장 3단락)
아버지도 이런 아이의 말을 이해했을 것이며 입에 늘 쪽쪽이를 물고 어쭙잖게 말하는 아이에게 전화를 바꿔달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한 번 아이에게 말을 붙였는데, 마르타가 잠시 부엌에 가 있는 동안, 거실이자 식당인 그곳에서 아이와 내가 단둘이 남았다. 나는 무릎에 냅킨을 올린 채 식탁 앞에 앉아 있었고 아이는 손에 자그마한 털지갑 장난감을 쥐고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둘은, 아이는 정면으로 나는 곁눈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쪽쪽이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순수히 쪽쪽이를 떼더니 한 손에 쥐고 아주 유창하게 (다른 손에는 자그마한 털지갑 장난감을 잡고 있었다)는 말하고 싶었던 것을 다시 말했지만 걸거적거리는 것이 없는 입에서 나온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필자 번역).
문학과 지성사의 번역본은 conejo를 '토끼 인형'으로 chupete를 '젖병'으로 옮겼다. 역자가 숨은 의미를 파악했는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chupete를 '젖병'으로 옮긴 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젖병은 biberón이지 chupete가 아니다. 두 살배기가 젖병을 물고 있을 수 있지만 chupete는 '쪽쪽이'이지 '젖병'이 아니다. 아래는 문학과 지성사의 번역이다.
아마 아빠도 이런 아이의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입에 항상 젖병을 물고 떠듬떠듬 말하는 아이를 바꿔달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한 번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마르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와 나는 식당이자 동시에 거실로 쓰이는 곳에 단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무릎 위에 냅킨을 올려놓은 채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아이는 손에 조그만 토끼 인형을 들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똑바로 보았고, 나는 곁눈질로 보았다. 나는 "젖병을 물고 있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순순히 입에서 젖병을 떼더니, 잠시 한 손으로 젖병을 들고(다른 손에는 조그만 토끼 인형을 들고 있었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다시 말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2014. 22쪽).
chupete를 '젖병'으로 오역을 했지만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해보자. 두 살배기 아이가 두 손으로 움켜쥐고 먹는 젖병을 작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마르타의 아들은 괴력의 슈퍼보이이다. 원본에 있는 쪽쪽이는 가볍게 한 손에 잡힌다.
필자가 위에서 chupete를 공갈젖꼭지 대신 '쪽쪽이'로, 토끼 인형 conejo를 '털지갑 장난감'으로 옮긴 것은 숨은 의미 때문이다. conejo의 외연 의미는 동물 토끼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내연 비유 의미로 여자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이다. chupete는 동사 'chupar 빨다'가 있듯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입에 물리는 '쪽쪽이'인데, 단순히 아이를 달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섹스에 대한 숨은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해석은 어린아이의 물건에 대한 편견이자 흑심이 가득한 추잡한 억측이라고 할 수 있으나 (주의 깊은) 스페인 원어민은 conejo와 chupete라는 외연 뒤에 숨은 의미를 알고 있다.
섹스는 퇴폐스러운 에로티시즘의 향락일 수 있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정열이지만 동시에 생명을 잉태시키는 행위로 쾌락을 주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이 수반되는 행위다는 게 소설의 주요 메시지이다. 그래서 마리아스의 소설에 성애는 이렇게 종종 죽음과 폭력을 동반한다. 가령 ≪당신의 내일 얼굴 2 춤과 꿈 Tu rostro mañana 2 Baile y sueño≫(2004)에서 영국에 있는 스페인대사관의 주재관인 라파엘 데 라 가르사는 런던의 디스코장에서 영국 정보원에 근무하는 소설의 주인공 하이메(잭) 데사가 접대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업가의 아내와 춤을 추며 수작을 부렸고, 이에 하이메의 상관 투프라가 격분해 화장실에서 가르사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마르타의 두 살배기 아들이 가지고 있는 conejo 토끼 인형과 입에 문 chupete 쪽쪽이는 섹스에 대한 암시로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뭉근하고 짜릿한 섹스를 즐기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빅토르와 마르타를 조롱하고 독자에게 상상력을 자극하여 읽는 재미를 주기 위해 일부러 숨은 의미가 있는 conejo와 chupete를 골라 쓴 것이다.
이런 숨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conejo는 토끼 인형 대신 '털지갑 장난감' 또는 '소꿉놀이 냄비' 따위로 chupete는 공갈젖꼭지 대신 '빨다'라는 의미가 있는 '쪽쪽이'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아니면 '토끼 인형'과 '공갈젖꼭지'로 옮기고 각주에 숨은 의미를 설명을 하면 되겠다. 하지만 각주는 본문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거추장스럽다. 두 낱말의 숨은 의미에 대한 각주는 역자가 과도하게 개입한 것처럼 보여 꼴사나울 수 있다.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도 문제이다. 각주는 이를 테면, "1 conejo는 토끼 인형이지만,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비속어로 여성 성기를 뜻한다. 2 chupete는 chupar '빨다'라는 동사에 파생한 명사로 아이를 달래기 위해 입에 물리는 인공 젖꼭지이다. chupete와 conejo는 내연 의미 'chupar conejo 조개를 빤다'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런 각주를 독자들이 수긍하지 않을 수 있으니, 각주로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대신 번역 텍스트 안에 최대한 원본의 숨은 의도를 표현하는 게 나을 것이다.
독자뿐만 아니라 저자도 이런 숨은 의미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손에 쥔 것은 그야말로 순수한 '토끼 인형'이고 입에 문 것은 '쪽쪽이'일 뿐이라고 시치미를 뗄 수 있다. 숨은 의미나 이중 의미를 저자는 언제든지 부정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비난을 듣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숨은 의미를 읽어 내면 과민 반응을 하는 것이라며 돌을 맞을 수 있다.
삐뚤어진 시각이라고 하더라도 두 낱말에 숨은 의미 또는 의도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사실 conejo는 라틴어 '토끼' 또는 '토끼굴'이란 뜻의 cunicul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토끼가 사는 굴이 여자의 생식기와 유사해서 여자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가 된 것이다. 이 cuniculus에서 여자 성기의 비속어 coño와 여성 성기를 혀나 입으로 애무해 주는 쿤닐링구스 cunninlingus란 단어가 파생했다.*
*여자 성기를 뜻하는 영어 비속어 pussy(어원은 '고양이'를 뜻하는 고대 게르만어 puss)는 고양이 뿐만 아니라 토끼를 부르는 말이다.
이런 conejo와 chupete는 1장 3단락 이후 두 번 더 언급되었고, 1장 마무리에 아래처럼 다시 등장한다
아파서 누워 있는 마르타 곁을 지키고 있던 빅토르는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잠이 들면 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집을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들었던 아이가 잠을 깨 엄마를 찾아 안방문 틈새에 서있는 장면이다.
De pronto se abrió la puerta de la habitación, que había quedado entornada para que Marta pudiera oír al niño si se despertaba y lloraba. 'Nunca se despierta pase lo que pase', había dicho, 'pero así estoy más tranquila.' Y apoyado en el quicio vi al niño con su inseparable conejo enano y con su chupete y con su pijama, que se había despertado sin llorar por ello, quizá intuyendo la condenación de su mundo. Miraba a su madre y me miraba a mí desde la simplicidad de sus sueños no del todo abandonados, sin decir ninguna de sus contadas e incompletas palabras. (1장 6단락)
갑자기 안방 문이 열렸다. 마르타는 아이가 자다가 깨서 우는 소리를 듣기 위해 조금 열어 놓았던 것이다. '잠이 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깨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열어놓으면 안심이 돼요'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조그만 털지갑 장난감을 들고 쪽쪽이를 물고 잠옷을 입은 아이가 문틈에 서있었다. 그녀가 없어도 울지 않고 잠에서 깼던 것인데 그의 세계는 종말을 맞았다는 것을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잠이 덜 깨서 어리벙벙하게 떠듬거리거나 토막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필자 번역).
conejo와 chupete는 이후 9장에 다시 등장한다. 빅토르가 죽은 마르타의 여동생 루이사와 그녀의 조카, 두 살배기 에우헤니오를 맞닥뜨린 장면인데 마르타가 죽던 그날 밤에 안방문 앞에 선 아이에 대한 회상이다.
El había oído varias veces mi nombre como yo había oído el suyo ('Anda, Eugenio, amor mío', le había dicho Marta en algún momento, 'vamos a la cama o si no Víctor se va a enfadar', y no era verdad que yo fuera a enfadarme, pero estaba impacientándome), y me había vuelto a ver tras la interrupción de sus sueños simples, cuando había abierto la puerta entornada del dormitorio y se había apoyado en el quicio con su chupete y con su conejo sin que su madre se diera cuenta, me había puesto la mano en el antebrazo y yo me lo había llevado de allí ocultando el sostén o trofeo que todavía guardo e impidiendo su despedida cuando aún no sabía que sería eso, la condenación de su mundo y la última vez que él habría de verla viva. (9장 2단락)
에우헤니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처럼 내 이름을 여러 번 들었다 ('자, 에우헤니오, 내 사랑, 이제 자러 가야지, 아니면 빅토르 아저씨가 화를 낼 거야'라고 마르타가 말했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고 초조했다). 그는 어리벙벙하게 잠에서 깨서 쪽쪽이를 물고 털지갑 장난감을 들고 어머니가 알아차라지 못했지만 열린 문의 문틈에 서 있었다. 나는 아이의 팔을 잡고서 아직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브래지어 또는 트로피를 감추며 아이를 방에서 데리고 나갔고 어머니가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어머니와 작별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의 세계는 종말을 맞았고 살아 있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게 될 기회였다. (필자 번역)
같은 9장에 마르타가 죽은 밤이 지난 다음 날 언니 집에 방문한 루이사는 언니가 죽은 것을 발견했고 이후에 한 행동이다.
Luisa acostó al niño exhausto en su cuarto -lo único que permanecía intacto, nadie tocó los aviones aunque todos curiosearon al pasar por delante de la puerta abierta-, chupete y conejo como de costumbre, se tomó un calmante también ella.
루이사는 지친 아이를 아이의 방에서 재웠다. 아이 방은 집에서 유일하게 손이 타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열린 방문 앞을 지나면서 모형 비행기를 보고 궁금했지만 건드리지 않았다. 아이는 여느 때처럼 쪽쪽이를 물고 털지갑 장난감을 쥔 채 잠이 들었고 그녀는 안정제를 한 알 먹었다. (필자 번역)
문학과 지성사 번역본은 chupete를 이번에는 '우윳병'으로 오역했고 conejo는 '토끼 인형'으로 옮겼다. '우윳병'의 바른 맞춤법은 '우유병'이다. 한자와 한자의 합성어라서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루이사는 피로에 지친 아이에게 평소와 마찬가지로 우윳병과 토끼 인형을 쥐어 주고는 아이 방에 재웠다.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2014. 365쪽)
conejo와 chuepte, '토끼 인형'과 '공갈젖꼭지'라고 하는 대신 '털지갑 장난감'과 '쪽쪽이'로 옮기면 원본의 숨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섹스를 암시하는 숨은 의미는 마르타의 장례식에도 있다. 신문의 부고와 사망 기사를 보고 마르타의 장례식을 안 빅토르는 묘지에서 마르타의 장례 행렬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Me había puesto gafas oscuras como se ha hecho costumbre en las visitas a los cementerios, no tanto para velar las lágrimas como para ocultar su ausencia, cuando hay ausencia. Vi una lápida ya corrida - el hueco o fosa o abismo a la vista-, como preparada para recibir a un nuevo morador.... (3장)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이 검은 안경을 쓰듯 나도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물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위해 눈물이 나오지 않는 눈을 가리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묘비가 벌써 놓여 있었고,구멍인지 묘혈인지 아니면 심연이 새로운 거주자를 맞이할 준비가 훤하게 돼 있었다....(필자 번역)
'una lápida ya corrida '는 '비석 하나가 벌써 옮겨져 있었다'인데, 동사 correr (분사형 corrida)는 '뛰다', '옮기다'라는 뜻 이외에도 '오르가슴을 느끼며 사정하다', 즉 '싸다'라는 의미가 있고, 이 단어 바로 뒤에 hueco(구멍)이 있다. 비석이 준비되었다는 preparar라는 동사를 쓸 수 있지만 숨은 의미를 위해 correr를 쓴 것이다.
빅토르와 회포를 풀지 못한 마르타는 욕망을 자제하지 못한 대가로 죽은 것인데, 묘혈과 묘비석으로 그녀의 죽음은 불경스럽게도 가중 처벌을 받고 있다. 물론 마르타와 뜻을 이루지 못한 빅토르는 준비된 마르타의 묘비석에서 실패한 사정(corrida)을 상상했을 수도 있다.
이런 숨은 의미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비석이 사정하듯 이미 놓여 있었다', '묘비가 벌써 싸질러져 있었다' 라고 옮기면 돌멩이 세례를 받을지도 모른다.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처럼 옮겼다.
묘지를 찾아올 때 모든 사람이 검은 안경을 쓰듯이 나도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눈물을 가리기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자리를 비우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쓰러진 묘비를 보았다. 구멍인지 무덤인지 아니면 지옥의 심연인지는 몰라도 눈에 훤히 드러나 보였다. 마치 그곳에 새로 거주할 사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117쪽).
묘비는 쓰러져 있었다고 번역했다. 검은 안경은 눈물을 가릴 수도 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은 눈을 가릴 수도 있다. 문지사는 "자리를 비우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라고 했으나 '마르타가 죽고 없을 때 (cuando hay ausencia 부재가 있을 때)' '눈물이 나오지 않는 눈을 가리기 위해서 (para ocultar su ausencia 눈물의 부재를 감추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하룻밤 정사를 위해 만난 마르타이지만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이 나오거나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과 마르타의 타락을 반성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아니면 부도덕한 마르타와 자신에 대한 냉소로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수 있다.
*마르타가 죽고 난 뒤 이야기 줄거리
마르타는 남편이 런던으로 출장을 간 사이에 그녀에 집에 빅토르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먹고 아이가 잠이 들자 로맨스를 즐기려고 했다. 일을 시작하자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아팠고 마침내 그녀는 그의 팔에 안겨 죽어버렸다. 빅토르가 집을 나가려고 하던 참에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로 그녀에게 다른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빅토르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 병원에 가자고 했으나 그녀는 만류했고, 그녀의 남편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통화하지 못했다 - 아이게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집을 빠져나왔다. 신문의 부고 기사를 읽고 마르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멀리서 그녀의 식구와 친구들을 보았다. 이후 빅토르는 친구 소개로 왕립학술원의 회원인 마르타의 아버지와 함께 국왕을 접견하고 왕의 연설문을 대필하게 된다.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마르타의 아버지 댁에 머물던 중 그녀의 아버지와 마르타의 여동생 루이사와 마르타의 남편 홀아비 데안과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이후 루이사에게 언니 마르타의 죽음에 대한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았다. 마지막 장은 처제 루이사로부터 아내 마르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안 데안은 빅토르를 집으로 초대해 대화를 나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데안은 런던에 출장을 간 것이 아니라 애인 에바의 임신중절수술을 하기 위해 갔다고 말했다. 임신은 사실 데안을 잡아두기 위해 애인이 꾸며낸 거짓이었으며, 속임수를 쓴 에바에게 화가 난 데안은 그녀와 저녁 식사를 한 후 술에 취해 탑승한 이층 버스 안에서 그녀의 목을 졸랐다. 버스가 갑자기 멈춘 사이에 겁에 질린 그녀는 버스를 빠져나와 도로 위를 질주하다 택시에 치어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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