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스페인 소설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 갈대와 진흙 줄거리

by brasero 2019. 3. 13.

센테 블라스코 이바녜스(Vicente Blasco Ibáñez)의 소설 <갈대와 진흙 Cañas y barro>는 엘팔마르(El Palmar)가 중심 무대이다. 소설에서 '갈대와 진흙의 섬'이라고 한 엘팔마르는 스페인 동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발렌시아 자치주의 발렌시아시, 남동쪽에 있는 알부페라(Albufera)라는 석호(바다자리호수) 마을이다1902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졸라류의 자연주의 소설이지만 모더니즘의 상징도 풍부하다. 소설은 1978년 스페인 국영 RTVE에서 6부작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98세대' 작가나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감상에 호소하는 후기낭만주의적 경향과 시대에 떨어진 자연주의에 천착하는 이유로 쓸데없는 오해를 받았거나 작품성이 폄하되었지만, 사실 1902년 같은 해에 출간된 우나무노의 <사랑괴 교육>, 바로하의 <완벽한 길>, 바예 인클의 <가을 소나타>와 견주어 <갈대와 진흙>이 못 하다는 평은 황당하기만 하다. 취향에 따라 값어치가 다르다는 관점이 아니다.    

말한 대로 <갈대와 진흙>은 발렌시아의 알부페라 석호 마을 엘팔마르가 배경이고, 팔로마(Paloma), 토노(Tono), 토네트(Tonet) 삼대가 겪는 가족의 갈등 전통과 진보, 성실과 나태의 대립과 토네트와 넬레타(Neleta) 의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이자 당대 사회에 만연한 국가 권력의 남용과 시골의 후진성 따위를 비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주인공 토네트가 성장하며 겪는 변화를 추적한 성장소설(교양소설, 빌둥스로만 Bildungsroman)로 읽을 수도 있다. 

알부페라 석호의 일 세대 팔로마는 고기잡이를 천직으로 여기며 호수가 내어주는 음식에 만족하고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전통을 지키는 자부심이 강한 노인이다 엘팔마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뱃사공인 그는 농사는 자본에 구속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비난하며 알부페라의 고기잡이와 새를 사냥하며 사는 자유로운 삶과 영혼을 대표한다. 가난하지만 올곧고, 곧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혼자 있어도 활기찬 늙은이이다. 

이 세대 토노(Tono)는 고기잡이로는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농사를 지을 땅을 마련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죽어라고 일만 하는 전형적인 성실하고 정직한 아버지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여자가 하는 음식이나 빨래 등의 궂은일을 하다 아버지의 뜻대로 엘팔마르 동네 처녀와 결혼한다. 토노는 엘살레르의 부잣집 마나님의 소작농이 되기도 하고 가을걷이가 되면 삯 추수꾼이며 농사일이 없을 때는 아버지를 도와 고기잡이도 하는 다정한 남편이기도 했다. 몸이 약한 아내 로사와의 사이에 아들 토네트를 얻는다. 팔로마는 손자 토네트가 호수의 진정한 아들로서 아들 토노처럼 부르주아에 코가 꿰인 농부가 아니라 알부페라의 전통과 호수의 자유로운 기상을 이어갈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들이 성장하고 병약한 아내를 위하여 입양한 딸 보르도까지 식구가 늘고 아들 토네트의 여자 친구 발렌시아 시장에 장어를 내다 파는 어머니의 무남독녀 넬레타와 떠돌이 주정뱅이 상고나라의 아들 상고네레타에게도 가끔씩 밥을 먹이는 착한 아버지 토노는 엘살레르의 부잣집 마님이 준 물이 가득한 호숫가 언저리 땅을 흙으로 메워 논으로 만드는 간척에 매진한다. 자기 땅이 생겨 농사를 지으면 아들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생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어린 토네토는 할아버지를 따라 삿대로 배를 밀어가며 통그물, 깃그물, 거랭이, 어살을 치고 걷으며 장어, 숭어, 농어 따위를 잡고 가끔 밤이면 횃불을 밝혀 찌르개로 고기를 잡는 토림도 배우고 어떤 때는 아버지와 고아원에서 데려온 여동생 보르다의 간척 일도 도운다. 하지만 곧 지겨워진다. 친구 넬레타와 상고나라 (상고나라는 그의 아버지 상고나라와 같은 이름을 쓴다) 어울려 놀고 엘살레르의 데에사 숲에 가 꼬물거리는 토끼 새끼도 잡고 하는 둥 노는 게 더 좋다. 하루는 땔감을 구하러 데에사 숲에 셋이 갔다 상고나라는 가버리고 길을 잃은 토네트와 넬레타는 숲 속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줄기가 뒤틀린 소나무가 유령 같고 모기가 앵앵거리고 박쥐가 퍼득거리고 염소 떼를 돌보던 목동 염소젖을 먹여 키워주고 친구가 된 목동이 군에 갔다 돌아오니,반갑다고 사랑한다고 포옹을 한다고 둘둘감아 죄여 피멍이 들고 뼈를 으스뜨러 죽인 전설 속의 뱀 산차가 나타날 것 같고 밤꾀꼬리가 지저귀고 멀리 푸르스름한 알부페라 석호가 보이는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숲에서 신랑각시가 된 것처럼 넬레타를 꼭 안고 밤을 보낸 적도 있다.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삶을 동경하며 “관처럼 생긴 배”를 타고 평생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하는 알부페라 생활을 경멸하기 시작한 토네토는 어느덧 열아홉 살이 다 되어 바라카 집이 즐비한 마을에 유일한 이층 집인 마을 최초의 장삿집, 카냐멜이 주인인 주막에 출입을 하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의 아기 예수 축일 1227 일이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고 추수 때가 되면 석호 주변의 마을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도시나 외국 이야기를 들으며 호수 마을의 삶에 염증을 느낀다. 일을 하지 않고 도락에 빠진 토네트를 아버지 토노는 주막으로 찾아가 때려가며 타이른다. 화가 난 토네트는 발렌시아로 가 군에 입대를 하고 쿠바로 파견되어 쿠바전쟁이 끝날 때까지 육 년 동안 군인이 된다. 여자 친구 넬레타에게 사랑의 고백도 기약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난 것이다.

 

토네트가 떠난 뒤 빈궁한 장어장수 어머니를 여읜 엘팔마르에서 가장 예쁜 넬레타는 이모와 함께 생활하며 가끔씩 토노의 바라카에 들러 토네토의 소식을 묻는다. 편지에는 별다른 사랑의 약속이 없는 것에 마음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때 넬레타는 돈 많은 카냐멜의 주막에서 일을 한다. 젊고 싹싹한 아가씨 넬레타에게 아버지 뻘이 넘는 카냐멜은 엉너리를 치며 눈독을 들인다.

 

토네토에게 후일을 약속받지 못한 넬레타가 정든 임을 이별하고 한별곡 을 지으며 기약 없이 홀로 임을 기다리는 애절한 조선 시대의 여인이 되기에는 삶이 천근만근이고, 조선과 스페인은 너무 다르다. 마을 사람들의 예측과 걱정 대로 카냐멜과 결혼을 해 주막의 여주인 자리를 꿰찬 그녀는 나날이 무람없이 더 예뻐지고 명랑해진다. 사랑은 개뿔도 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자식이 생겨 카냐멜의 유산을 받으면 걱정을 들겠지만, 애는 생기지 않는다. 쿠바에서 제대를 하고 돌아온 쿠바노 라는 별명의 토네트는 아버지와 보르도의 간척 공사를 돕다가 권태로워 하고 옛 버릇이 도져 한량이 된다. 첫사랑 넬레타의 주막에서 우리는 남매 같은 관계 라고 하며 카냐멜의 눈을 속이며 살짝 사랑을 나눈다. 동네 소문이 자자하다. 아버지는 이런 토네트에게 충고한다. 팔로마 집안은 가난하고 손에 못에 박히도록 일만 하지만 결혼한 여자와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어떤 죄도 범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주님에게 간다, 라고 충고를 하며 네가 그런 죄를 저지르면 머리에 총알을 박고 죽어야 한다 고 경고한다. 근엄하게 삼가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 와중에 엘팔마르에 오늘날까지 관습이 내려오는 중세 때부터 해오던 호수의 고기잡이 터의 추첨, 레돌린(redolin, 발렌시아어)에서 토네트는 몫이 좋은 세키오타 중 최고 자리에 당첨된다.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는데 그물 등의 어구가 필요해 돈을 버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주막의 카냐멜과 동업을 맺는다. 수확의 절반을 주는 대가로 줄 그물과 인부에 드는 비용을 지원받는다. 고기 잡이이 필요한 도구를 사기 위하여 카타로하로 마중 나와 넬레타를 만나 엘팔마르 돌아오는 배에서 둘은 사랑을 나눈다. 어릴 적 데에사 숲에서 들은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 황혼이 깔린 갈대 섬 옆 선상에서.

 

고기잡이 일을 해야 할 때가 왔다. 토네트는 요지부동이다. 어장은 할아버지 팔로마가 나가고 토네토는 주막에서 카냐멜의 후원으로 술을 마시고 데에사로 사냥도 가고 넬레타와 눈을 맞추며 주막의 주인처럼 생활한다. 동네 사람들은 넬레타와 토네트가 내연의 관계로 카냐멜의 재산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토네토의 방종, 넬레타와의 사음, 이웃의 의심으로 카냐멜은 토네트와 친구 관계와 동업을 파기하고 술집 출입을 금한다.

 

웃고 즐길 장소를 잃어버린 토네트는 다시 아버지의 논 만들기 일을 도운다. 그런데 지병이 있던 넬레타의 남편 카냐멜은 관절염과 수종 등의 병으로 발렌시아의 루사파 집에서 사망한다. 넬레타가 재혼을 하거나 남자관계를 맺으면 재산의 절반을 몰수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토네트와 사랑을 나누던 넬레타는 재산의 반으로 만족하고 참사랑을 하는 토네트와 결혼을 하면 해피엔딩인데  우리의 넬레타는 탐욕으로 똘똘 뭉친 여전사이다. 토네트의 결혼 청을 거부하고 아이를 밴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코르셋으로 배를 조이며 지낸다. 오히려 조이고 조여서 사산하길 빌면서. 아이를 몰래 나았다. 발렌시아시 교회 앞에 버리기로 했다. 넬레타의 완강함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이고 탐욕을 버리도록 설득할 정신적 여력이 그에게 없고 그렇다고 그녀를 물질로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넬레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찌질이로 전락했다. 배 아파 낳은 제 새끼를 쳐다보기도 싫다고 던져 준 핏덩어리를 배에 싣고 삿대를 젓는다.

어서 발렌시아로 가야 한다. 강보에 싸인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호수에는 마침 산마틴 축일을 맞아 새 사냥을 나온 사냥꾼들을 태운 배들로 혼잡하다. 들통이 날 것 같다. 위험을 감지한 토네트는 다급하게 갈대섬 근처로 가, 빽빽거리는 아기를 훌쩍 던져버린다. 죄책감 때문에 술에 젖어 산다. 넬레타가 밉다. 자기 자신이 밉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고 용서받지 못할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자기 혈족을 죽인 살인자, 천륜을 거스런 죄를 지은 것이다. 넬레타와 침대에 누워도 손끝도 대기 싫다.

할아버지가 새 사냥꾼을 위하여 뱃사공 및 길잡이가 될 것을 부탁한다. 배를 탄다. 사냥개에게 총에 맞아떨어진 새를 물어오길 시킨다. 찾지 못하고 온다. 다그친다. 낑낑거리고 가더니 한참 만에 뭔가를 물고 온다. 찌그러지고 눈구멍에 휑하고 거머리와 구더기가 파먹은 시커먼 덩어리, 아기의 주검이다. 팔로마 할아버지와 사냥꾼도 보았다. 눈이 뒤집힌 토네트가 삿대로 개 대갈통을 후려친다. 개가 물속으로 사라진다. 팔로마는 사냥꾼에게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다짐을 받는다.

 

토네트는 엽총 부리를 가슴에 댄다. 울부짖으며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 탕! 두 발의 총성이 알부페라 호수에 울린다. 팔로마가 넬레타의 주점에 찾아간다. 사건을 전말을 알고 있는 팔로마의 눈길에 그녀는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도 토네트가 걱정이 되어 어디 있는지 묻는다. 팔로마가 말한다. “토네트는.” 그녀의 얼굴은 눈물이 홍수를 이룬다. "울어라 나쁜 년아, 울어” "울어라 개 같은 년, 울어”  (원본은 발렌시아어다 Plòra, gosa, plòra).

 

아들의 주검을 수거한 아버지 토노는 딸 보르다와 함께 물을 메워 얻은 땅에 묻는다.

 

*넬레타는 토네트를 파멸로 이끄는 팜파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소설이 쓰인 20세기 초라는 시대와 환경결정론에 토대를 둔 자연주의 문학관을 고려하면 넬레타는 그런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넬레타가 주막집 주인과 사랑도 없는 결혼을 했을까. 무능한 토네트를 욕해야 하지 않은가. 블라스코 이바녜스는 여성혐오자가 아니다. 그의 다른 소설, 가령 <오렌지나무 사이에서>, <여자의 천국>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