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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스페인 소설 번역본에 숨어 있는 번역 오류 - 음식

by brasero 2020. 8. 14.

소설 번역본에 드러나지 않는 번역 오류가 있다. 번역본에 있는 사물의 이름과 감정, 정서, 사상 등의 정신적인 것의 이름이 오역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가령 놀이공원의 '범퍼카(autos de choque)'가 '차량 수리'로 오역이 되어 있어도 이것이 '차량 수리'라 아니라는 것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차량 수리'가 글의 문맥에 벗어나지 않으면 의심조차 생기지 않는다.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원본의 육체를 탐하는 사랑을 번역본이 진실한 사랑으로 바꾸어 놓아, 명백한 오역임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랑이라고 여긴다. 어쩌면 진실한 사랑이 글의 흐름에 조금은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도 그것이 원작의 뜻일 것이라고 여기며 번역이 오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원본을 찾아보면 '차량 수리'는 '범퍼카'이고 진실한 사랑은 몸만 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했다는 느낌에 속이 끓어오른다. 하지만 흥분이 조금 가시면 왜 그런 오역을 했을까 궁리하게 된다.

이 글은 원본을 대조해 보고 밝혀진 번역본에 드러나지 않는 음식 번역의 오류 몇 가지를 살펴본다.  여러가지 소설에 있는 오류이다. 번역을 먼저 제시하고 아래에 원본이 있다. 

1.​ 식탁 위에 여섯 마리 고등어는 프라이팬으로 옮겨질 시간만을 기다렸다. "로베르토는 튀긴 고등어를 좋아한단다."

Encima de la mesa, media docena de chicharros espera la hora de la sartén. - A Roberto le gustan mucho los chicharros fritos.

chicharro= jurel (전갱이)를 고등어(caballa)로 착각했다.

전갱이 chicharro = jurel

2. ...데안은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음식을 주문하고 첫번째 음식을 먹고 두번째 음식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그는 혓바닥 요리를 먹으면서 포도주를 마셨다).

...y que Deán no había podido dejar sin mencionar más tiempo, había esperado a pedir, y a tomar el primer plato, y a que nos hubieran traído el segundo (comía lenguado y bebía vino)

lenguado(혀가자미)를 소 혓바닥(lengua)으로 착각했다. 

혀가자미 lenguado

3. 여기 아가씨에겐 콩소메와 가자미구이하고 새 가슴살로 만든 비예로이를 주고, 나는 콩소메하고 식초와 올리브유를 친 송어찜 요리를 부탁해요.

La señorita, consomé; lenguado al horno y pechuga villeroy. Yo voy a tomar consomé y lubina hervida, con aceite y vinagre.

농어 lubina
송어 trucha

lubina(농어)를 송어(trucha)로 착각했다. hervida는 물에 삶는 것이지 '찌는(al vapor)' 요리가 아니다. 그러면 '송어찜 요리'가 아니라 '삶은 농어 요리'이어야 한다. lenguado는 정확하게 혀가자미이다. 가자미는 gallo이다. 

가자미 gallo

4. 테예스 씨는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십자로 걸쳐놓았다(그가 먹은 것은 석쇠에 구운 생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Téllez dejó en cruz sobre el plato sus cubiertos de pescado (mero a la plancha, había comido hasta entonces con ganas)

mero는 메로라는 생선이다. (카탈루냐어의 네로 황제, nero에서 유래한 스페인어이다. 네로처럼 성격이 포악한 생선이라 생긴 이름이다). 바다에서는 메로, 땅에서는 양고기(Del mar, el mero; de la tierra, el cordero)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생선이다. a la plancha는 철판구이이다. 석쇠구이는 a la parrilla이다. mero a la plancha(메로 철판구이)가 '석쇠에 구운 생선'으로 둔갑했다. 번역자가 이상한 마법을 썼다. 

메로 mero (사진 엘파이스)

5. 아침마다 하녀가 델피나를 깨웠고, 델피나는 침대에 누운 채 아침밥을 먹었다. 소시지 오믈렛, 순대, 으깬 감자, 올리브기름에 튀긴 빵, 뜨거운 우유 일 리터. 아침 식사치고는 엄청난 양이었다. 

Por las mañanas la despertaba la camarera y le servía en la cama un desayuno copioso: tortilla de chorizo, embutidos, puré de patatastostadas con aceite y un litro de leche caliente. 

tortilla de chorizo를 '소시지 오믈렛'으로 옮긴 것은 완전한 오역은 아니다. 하지만 오믈렛은 "고기나 야채 따위를 잘게 썰어 볶은 것을 지진 달걀로 싼 요리"이기 때문에 달걀이 소시지를 감싸고 있거나 달걀 따로 소시지 따로 놓인 음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totilla de chorizo는 tortilla de patata con chorizo(초리소 소시지가 들어 간 감자 토르티야)의 줄임말이다. 초리소 소시지 감자 토르티야는 아래 사진 같은 모양이다. 감자와 달걀이 잘 섞인 토르티야에 초리소 소시지가 첨가된 요리이다.  그러면 '소시지 오믈렛'이기보다는 '초리소 소시지 감자 토르티야'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초리소가 들어간 토르티야 데 파타타

embutido는 '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순대는 사실 삶은 음식이고 embutido는 미리 삶은 것이 아니라 삶거나, 찌거나, 지지거나, 볶거나 조리를 해야 하는 모든 종류의 소시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어떤 소시지는 훈제 등의 처리가 되어 조리를 하지 않고 먹는 것도 있다). embutido에는 chorizo, longaniza, salami, fuet, salchicha 등 종류가 다양하다. embutido는 순대가 아니라 소시지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puré de patatas는 '으깬(machacada) 감자'가 맞지만 으깬 감자 요리는 보통 '감자 퓌레(purée)'라고 한다.

tostada는 구워서 버터나 꿀을 바른 토스트이다. tostadas con aciete는 올리브유를 뿌린 토스트인데 올리브유에 튀긴 빵으로 오역을 한 것이다. 이 오역은 굳이 원본을 보지 않아도 오역이란 느낌이 온다. 아침 식사의 토스트는 올리브유에 튀긴 것이 아니라 토스트기에 굽거나 말거나 한 식빵(pan de molde)에 버터나 잼이나 꿀이나 올리브유나 간 토마토를 올려 먹기 때문이다. (식빵이 없으면 긴 빵을 잘라 대신한다).

올리브유를 친 토스트

올리브유에 튀겨 낸 빵은 토리하(torrija), 부뉴엘로 등 무수히 많다.  토리하는 우유나 포도주에 적신 빵을 달걀과 밀가루를 입혀 올리브유에 튀긴 스페인식 프렌치토스트이다. 부활절(Semana Santa) 등의 명절 때 후식이나 간식으로 먹는 전통 음식이다.

토리하 torrija

 6. 술집에서 운전사들에게 맥주와 소다수를 섞은 포도주를 대접했다. 운전사들은 원하기만 하면 속을 채운 올리브 열매, 식초에 절인 멸치, 후추를 뿌리고 약한 불에 구운 감자식초에 절인 정어리 등도 맛볼 수 있었다.

Allí se servía cerveza y vino con sifón a los mecánicos y, si éstos querían, también olivas rellenas, boquerones en vinagre, patatas estofadas con pimentón, sardinas en escabeche, etcétera. 

Patatas estofadas con pimentón'을 '후추를 뿌리고 약한 불에 구운 감자'로 옮긴 것은 오역이다. pimentón은 홍피망 가루이지 pimienta 후추가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피망과 파프리카를 구분하지 않는다). estofado는 약한 불에 굽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두르고 약한 불로 음식 고유의 국물이 증발되지 않게 지진 요리이다. 우리의 찌개나 찜 정도의 음식이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원어를 차용하면 된다. 그러면 홍피망을 친 감자 에스토파도 또는 홍피망을 두른 파타타 에스토파다라고 하면 된다. 

왼쪽 홍피망 가루, 오른쪽 후추

boquerones en vinagre를 '식초에 절인 멸치'라 했고 sardinas en escabeche도 '식초에 절인 정어리'라 했다. 전자의 vinagre는 식초이고 후자의 escabeche도 식초인 셈인데 사실 두 단어는 동의어가 아니다. 식초에 절인 멸치에서 식초 vinagre는 단순한 식초이고, 식초에 절인 정어리의 식초는 escabeche 에스카베체이다.  escabeche 에스카베체는 식초에 올리브기름, 월계수 잎, 포도주, 후추 등을 가미한 소스이다. 고추장과 초고추장이 다르고 된장과 쌈장이 다르듯 vinagre와 escabeche는 다르다. '식초에 절인 정어리' 대신 '정어리 에스카베체' 원어 그대로 옮기는 게 낫다.

번역 소설에 나오는 음식, 원본과 달라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실제 음식을 보거나 먹게 되면 필요 없는 오해나 편견을 조장한다. 가령 스페인의 소시지는 우리나라의 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식초에 절인 것과 에스카베체는 다르고, 아침에 먹는 올리브유를 뿌린 토스트는 기름에 튀긴 토스트가 아니다.  후추를 뿌려 감자를 굽거나 구운 감자에 후추를 뿌린 것은 홍피망 가루를 넣어 요리한 감자 에스토파도가 아니다. 또한 철판구이와 석쇠구이는 다르고 찜과 삶은 요리도 다르다. 고등어와 전갱이는 다르고, 혀가자미와 가자미가 다르고, 송어와 농어는 다르고, 메로는 메로이지 그냥 생선이 아니다.

지금까지 원본은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음식이 소설에 오역된 사례를 알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