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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하비에르 마리아스 소설 번역 - la hora de comer 점심 식사 시간

by brasero 2023. 8. 2.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batalla piensa en mí≫(1994)는 남자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부녀가 사랑을 즐기려다 반나체 상태로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죽어버리는 비현실적인 얘기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 작가(negro)인 주인공 빅토르는 유부녀 대학교수 마르타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녀의 아들이 잠이 들자 안방 침대에서 거사를 시작했는데 돌연 그녀가 아프다며 일을 멈추었다.

어디가 아픈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녀는 구역질이 난다고 했고 빅토르는 우울하거나 후회스럽거나 두려워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 있으면 나아질 수 있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래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의사를 불러줄까, 출장 간 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그냥 옆에 있어 달라고 잡아달라고, 그러면 된다고 했다. 그녀를 뒤에서 꼭 껴앉아 주었는데 그녀는 뜨겁게 단 가마에 눈이 녹듯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그녀가 죽을 것을 빅토르는 몰랐고 마르타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지 못한 채 급사해버렸다.

생명을 구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빅토르는 갑작스럽고 황당한 죽음을 회상하면서 변명 같은 이유를 떠올렸다.

Todo fue muy rápido y no dio tiempo a nada. No a llamar a un médico (pero a qué médico a las tres de la madrugada, los médicos ni siquiera a la hora de comer van ya a las casas), ni a avisar a un vecino (pero a qué vecino, yo no los conocía, no estaba en mi casa ni había estado nunca en aquella casa en la que era un invitado y ahora un intruso, ni siquiera en aquella calle, pocas veces en el barrio, mucho antes), ni a llamar al marido (pero cómo podía llamar yo al marido, y además estaba de viaje, y ni siquiera sabía su nombre completo), ni a despertar al niño (y para qué iba a despertar al niño, con lo que había costado que se durmiera), ni tampoco a intentar auxiliarla yo mismo...(1장 2단락)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가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의사를 부를 수 없었고(새벽 세시에 의사가 부를 수 없었고, 의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퇴근해 버리는데), 이웃에게 알릴 수도 없었으며(아무도 모르는데 어떤 이웃에게 알린단 말인가, 내 집이 아니고 그 집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초대를 받았고 이제는 칩입자가 되어버렸고, 이 동네에 아주 오래전에 어쩌다 한 번 온 적이 있어 거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남편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었고(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전화를 한단 말인가, 심지어 출장 중이었고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데), 아이를 깨울 수도 없었고(아이를 왜 깨워야 하는가, 애를 먹이며 겨우 잠이 들었는데), 나 또한 그녀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고...(필자 번역)

새벽 3시에 의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터무니없지만, 오후 2시나 3시, la hora de comer '점심시간'이면 퇴근해 버리는 의사들에게 12시간이 지난 새벽 3시에 연락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찍 퇴근하는 의사에게 마르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며 불성실하고 게으른 의사를 은근하게 나무라는 풍자를 선사한다.

스페인의 개인 진료의는 응급실이 있는 종합병원과 다르게 정해진 근무 시간이 없고 편한 시간에 문을 연다. 의사에 따라 오전 진료만(오전 9시부터 오후 2~3시까지) 하거나, 오후 진료만(점심 식사 후 오후 4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거나, 종일 진료를 (점심 시간은 오후 2~3시부터 4~5시까지) 하는 것처럼 다양하다. 빅토르가 핑계를 댄 점심시간이면 퇴근해 버리는 의사는 오전 진료만 하는 의사이다.

아래는 문학과 지성사의 번역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어떤 조치도 취할 시간이 없었다. 의사를 부를 수도 없었고(새벽 3시에 어떤 의사를 부른단 말인가? 의사들은 저녁 식사 시간만 되어도 퇴근해버리는 사람들인데). 이웃 사람에게 알릴 수도 없었으며(어떤 이웃에게 알린단 말일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내 집에 있는 것도 아닌 데다 그 집에 머물렀던 적도 없었다. 초대받아 와서는 칩입자 신세가 되었는데). 남편을 부를 수도 없었고(내가 무슨 용기로 남편을 부른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출장 중이었으며, 나는 그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이를 깨울 수도 없었으며(무엇 때문에 아이를 깨운단 말인가? 재우는 데 그토록 힘들었는데). 나 또한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내일 전쟁터에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13쪽).

문지사는 la hora de comer '점심시간'을 '저녁 식사 시간'으로 옮겼다. 저녁 식사 시간이면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의 종사자도 일과가 끝나는데, 그러면 점심 식사 시간이면 퇴근해서 연락하기 어려운 의사들의 무책임성이나 몰지각성을 비난하던 원본의 풍자를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점심시간에 조기 퇴근해 마르타의 죽음에 책임을 조금 전가하고 싶은 원본과 다르게 문지사 번역본은 의사들을 저녁 시간에 퇴근시켜 조금이나마 책임을 면제해주었다.

원본의 '먹다'라는 뜻의 동사 comer가 들어간 la hora de comer는 여기서는 '점심 식사 시간'인데 '저녁 식사 시간'으로 오역한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RAE(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는 comer의 뜻을 8번 '점심 식사를 하다(tomar la comida')와 9번 '저녁 식사를 하다(tomar la cena)'라고 정의했다.

RAE comer 8. 점식을 먹다 9. 저녁을 먹다

이런 사전 정의는 hora de comer로 점심인지 저녁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실 comer는 기본 의미가 '음식(alimento)을 먹다'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오후 2~3시에 점심 식사를 먹다'란 뜻이고 일부 중남미에서는 '저녁 식사를 먹다'를 뜻한다.

  • comer (명사 comida): 스페인- 점심 식사 (오후 2~3시) / 일부 중남미 국가(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페루,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 저녁 식사

정오 12시나 1시경에 점심을 먹는 우리를 포함한 세계 여러 곳과 달리 스페인에서는 점심 식사(la comida)를 오후 2시~ 3시에 시작한다. 물론 더 늦은 4시에 먹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관광지가 아닌 스페인 식당에서는 오후 1시 30분 전에는 점심 식사(그날의 정해진 메뉴나 다른 정식의 점심)를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메뉴나 정식 점심 대신 간단한 보카디요를 먹을 수 있다.

한편, 일부 중남미에서 점심 식사는 comer/comida가 아니라 almorzar/almuerzo이다 (아래 RAE 1번 정의). 

RAE almuerzo 1. (중남미 및 세계 보편) 정오나 이른 오후에 먹는 식사 2. 아침에 먹는 음식(스페인의 오전 간식) 3, 점심 식사하는 행위

하지만 almorzar/almuerzo는 스페인에서는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 전, 11시경에서 12시사이에 먹는 오전 간식 또는 점심 전 간식을 뜻한다. 아니면 아침을 거르고 오전 11시경에 먹는 '아점' (영어 brunch, elevenes) 이다.  물론 아침을  먹지 않고 11시 경에 먹는 almuerzo는 영어의 푸짐하고 넉넉한 brunch에 비길 수 없을 때가 있다.

  • almorzar: 스페인 - 점심 전 간식을 먹다, 오전 간식을 먹다, 아점을 먹다  / 일부 중남미(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페루,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점심 식사를 하다

스페인 식당의 almuerzo 오전 간식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에 대한 스페인과 중남미 용법을 정리한다. 

 

아침 식사, 오전 간식, 점심 식사♧

  • desayuno: 아침 식사 (동사 desayunar = [des 깨다 + ayunar 금식을 하다] = 금식을 깨다 = 아침을 먹다, 영어, breakfast -금식(fast)을 깨는(break) 음식 = breakfast 아침 식사), 스페인과 중남미 동일
  • almuerzo (동사 almorzar): 스페인 - 오전 간식, 점심 전 간식, 아점 (오전 11~12시) / 일부 중남미 국가 및 세계 대부분 국가- 점심 식사 (12~2시)
  • comida (동사 comer): 스페인- 점심 식사 (오후 2~3시) / 일부 중남미 국가(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페루,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 저녁 식사

같은 소설의 마지막인 11장에 빅토르가 마르타의 남편 홀아비 데안 집에 방문하기 위해 시간 약속을 정하는 장면에 comer가 다시 등장한다. 빅토르가 먼저 말하고 데안이 대답한다. 

- Ya. ¿A qué hora? Yo tengo un rato libre a última hora de la mañana, también después de comer, otro rato.
- Imposible - contestó él -, yo tengo trabajo todo el día. Mejor pásate por mi casa sobre las once de la noche, el niño ya estará acostado a esa hora.

“그래요, 몇 시가 좋습니까?  아침 늦게 잠시 시간이 있고, 점심 식사 에도 조금 짬이 있습니다."
“안 되오.” 데안이 대답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일이 있어요. 밤 11시경에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좋겠소. 그 시간이면 아이는 이미 잠을 자고 있을 것입니다.”(필자 번역)

 아래는 문지사의 번역이다.

“좋아요, 몇 시에 만날까요?”  늦은 아침에도 잠시 시간이 있고, 저녁 식사 에도 약간 시간이 있습니다."
“안 되오.” 그가 대답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일이 있어요. 밤 11시경에 당신이 우리 아파트로 와주면 좋겠소. 그 시간이면 아이는 이미 잠을 자고 있을 것이오.”(문학과 지성사. 2014. 426쪽)

빅토르가 데안의 집에 갈 약속 시간을 잡으면서 내일 아침 늦게 또는 después de comer '점심 식사 이후'에 가능하다고 했다.  빅토르는 밤보다는 낮에 데안을 만나고 싶어서 늦은 아침이나 점심을 먹고 난 뒤 겨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데안은 내일 하루 종일 일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하며 대신 밤 11시경에 빅토르가 데안의 집으로 오기를 원했다.  después de comer가 '저녁 식사 후'라면 데안은 내일 종일 일이 있다는 말이 필요 없고, '그러면 잘 됐네요, 11시경에 우리 집으로 오세요'라고 대답하는 게 자연스럽다. 문지사는 comer를 일부 중남미에서 뜻하는 '저녁 식사'로 착각을 한 것 같다. 

일부 중남미와 다르게 스페인에서 저녁 식사는 cena라 한다. 아래 RAE의 정의처럼 cena는 하루 중 가장 나중에 먹는 식사이다. cena는 중남미에서 그렇지만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일부 중남미에서는 cena는 '특별한 저녁 식사', '식당에서 저녁 만찬 또는 새벽 미사를 마치고 먹는 것'이라는 뜻이다. 

RAE cena 여성명사 1. 하루 마지막 식사. 해지고 난 뒤나 밤에 먹는다. 2. 저녁 식사를 하는 행위 3.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한 모임

스페인와 중남미의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차이점♧

  • comer (명사 comida): 스페인- 점심 식사 (오후 2~3시) / 일부 중남미 국가(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페루,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 저녁 식사
  • cenar (명사 cena): 스페인 - 저녁 식사 (밤 9~10시에 시작) / 일부 중남미(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페루,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특별한 저녁 식사, 일상 저녁 식사는 comida이다.

스페인에서는 저녁 식사 cena를 밤 9~10시에 먹는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저녁 식사 전까지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오후 간식(merienda)를 먹는다. 물론 안 먹는 사람도 있다.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들은 미니 보카디요, 과일, 보요 빵 등을 먹고 성인들은 집이나 카페나 바에서 커피나 맥주 또는 포도주나 베르무트에 타파스를 먹는다. 

  •  merendar (명사 merienda): 스페인 - 오후 간식 (오후 5시경)

마지막으로, 같은 소설의 4장에 빅토르가 친구 루이베리스에게 마르타의 아버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에서 루이베리스와 헤어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는 장면이다.

No faltaba ya mucho para la hora de comer, en que nos separaríamos, cuando aún se siente el día como mañana. 우리가 헤어질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아침 같은 날이었다.(필자 번역)

문학과 지성사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la hora de comer를 이번에는 '점심시간'(2014. 158쪽)으로 번역했다. 위에서 '저녁 식사 시간'으로 오역한 것과 다른데, 이유는 빅토르와 루이베리스가 헤어질 때를 점심 식사 시간(la hora de comer)으로 파악한 것은 다음 단락에 almuerzo(점심 식사)란 단어로 시간을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No faltaba ya mucho para la hora de comer, en que nos separaríamos, cuando aún se siente el día como mañana; fuera llovía, lo veíamos por las cristaleras grandes y en la gente que entraba empapada por la puerta giratoria, enredándose con sus paraguas aún mal cerrados. Caía la lluvia como cae tantas veces en la despejada Madrid, uniforme y cansinamente y sin viento que la sobresalte, como si supiera que va a durar días y no tuviera furia ni prisa....

우리가 헤어질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아침 같은 시간이었다. 비가 흩날리고 있었고 큰 유리 창문 밖으로 내다보니 우산이 잘못 접혀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흠뻑 젖은 채 회전문으로 들어왔다. 맑은 마드리드 하늘에서 가끔 비가 내리듯 비는 일정하게 피곤하게  바람에 날리지 않고  며칠 내내 내릴 테니 화내지 말고 서두르지도 말라는 것처럼 내리고 있었다...(필자 번역)

우리가 헤어질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아침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큰 창문으로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회전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흠뻑 젖은 채 잘못 접힌 우산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내리고 있는 비는, 마드리드의 맑은 하늘에서 가끔씩 내리는 비처럼 바람에 흩뜨려지지 않고 지루하게 한결같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며칠간 계속해서 내릴 것이니 서두르지도 말고 화도 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학과 지성사. 2014. 158-9쪽)

Ruibérriz se echó un puñado de peladillas a la garganta y miró con aprensión su abrigo de nazi: se le mojaría, un fastidio. Se disculpó y fue al lavabo, tardó más de la cuenta y cuando regresó pensé que tal vez se había metido una raya para hacer frente a la lluvia y al estropicio previsto de su prenda de cuero, también al almuerzo que le aguardara, en el que se ventilaría sin duda algún asunto importante, no hay nada en lo que él intervenga que para él no lo sea.

루이베리스는 드라제 아몬드사탕을 한 움큼 입에 던져 넣더니 나치식 외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젖을 텐데, 시퉁한 표정을 지었다. 내게 미안하다며 화장실로 가더니 필요 이상으로 오래 있다 돌아왔는데 아마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고, 가죽코트가 망가질 것이 근심이 되어 스노 흡입한 것 같았다. 코카인은 점심 식사 동안에 중요한 의제에 관한 - 그가 참여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 토의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필자 번역)

*스노/스노우(snow) 마약 코카인의 은어, 속어이다. 원문의 raya는 은어로 코로 흡입할 수 있는 양의 준비된 코카인 cocaína를 뜻한다. 

루이베리스는 견과를 한 움큼 먹고 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치 스타일의 자기 외투를 바라보았다. 외투가 젖을 것 같아 못마땅한 듯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화장실로 갔고, 내 생각보다 그곳에서 오래 지체했다. 그가 돌아오자, 나는 아마도 그가 비와 용감하게 맞서 싸우면서 가죽코트가 비에 젖을 것을 대비해 마약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중요한 문제를 토론할 점심 식사를 대비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가 개입된 것 중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4. 159~160쪽)

소설의 배경은 마드리드이기 때문에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점식 식사 시간을 la hora de comer라고 표현했다. 그러면 두 번째 단락의 '점심 식사'를 중남미의 점심 식사인 almuerzo가 아닌 스페인 용법의 comida를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마리아스는 아일랜드의 종교와 언어와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상하고자 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즈≫ 등을 지은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처럼 스페인을 탈피하고 싶은 마리아스는 스페인 문화를 거부할 때가 있다. 스페인의 관습에 맞는 comida 대신 almuerzo를 쓴 것은 중남미의 문화보다는 세계 어디든지 정오 경이면 먹는 보편적인 점심 식사란 의미의 almuerzo를 쓴 것이다. 적포도주를 소설 ≪올소울즈 Todas las almas≫(1989)에서 스페인어 어법 대로  vino tinto(암적색 포도, tinto는물들이다'란 뜻의  동사 teñir에서 파생한 낱말이다)라 하지 않고 영어 red wine과 같은 발상의 vino rojo(붉은색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almuerzo와 comida (almorzar과 comer) 두 단어를 특별하게 사용한다. 스페인 문화를 벗어던지고 싶은 그는 스페인 전통의 늦은 점심을 almuerzo와 comida를 혼용하고, 스페인이 아닌 외국에서 점심 식사는 almuerzo를 선호한다.

  • ≪올소울즈 Todas las almas≫(1989). 마리아스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번역과 스페인문학을 가르친 경험에 기반해 지은 소설로 영국이 배경이다. 점심 식사는 almuerzo이다. "Y durante todo este almuerzo en el restaurante que iba llenándose(사람들로 점점 채워지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내내)". 주인공의 애인, 여교수가 아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가서 관람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는 장면
  • ≪당신의 내일 얼굴 1 열과 창 Tu rostro mañana 1 Fiebre y lanza≫(2002). 주인공 하이메 데사가 영국 옥스퍼드 휠러 교수의 집에서 점심식사 "Wheeler me lo había anunciado aquel domingo de Oxford, en su jardín o durante el almuerzo (휠러는 옥스퍼드에서 그 일요일에, 그의 정원에서 또는 점심을 먹으면서 내게 말했다)".
  • ≪새하얀 마음 Corazón tan blanco≫(1992). 주인공 후안의 이모 테레사, 아버지 란스의 두 번째 부인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마드리드에서 권총 자살을 하기 전에 식구들과 점심(almuerzo)을 먹고 있었다. (소설 1장, 소설 14장에 아버지의 친구 비야로보스 교수가 자살 사건을 후안과 그의 아내 루이사에게 말하며 마드리드라고 특정했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옥스퍼드 시리즈에 해당하는 ≪올소울즈 Todas las almas≫와 ≪당신의 내일 얼굴 1 열과 창 Tu rostro mañana 1 Fiebre y lanza≫은 배경이 영국이고, 영국의 점심은 스페인의 comida 점심처럼 오후 늦게 먹지 않기 때문에  almuerzo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새하얀 마음 Corazón tan blanco≫에서 권총 자살을 하기 전 점심을 먹던 장소는 마드리드 스페인이지만 comida가 아니라 almuerzo로 표현했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1994)는 배경이 마드리드이지만 점심 식사는 almuerzo/almorzar와 comida/comer 두 표현을 혼용했다.

  • .... los médicos ni siquiera a la hora de comer van ya a las casas  (1장) 의사가 퇴근해버리는 점심 식사 시간
  • No faltaba ya mucho para la hora de comer, en que nos separaríamos... (4장) 빅토르와 루이베리스와 헤어질 점심 식사 시간
  • ... también al almuerzo que le aguardara (4장) 루이베리스가 먹을 점심 식사 (스페인의 '오전 간식'이 아니고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먹는 보편적인 '점심 식사' 란 뜻이다)
  • Yo tengo un rato libre a última hora de la mañana, también después de comer, otro rato. (11장) 빅토르와 데안이 만날 시간을 정할 때 점심 식사 시간 이후

문지사는 1장과 11장의 comer를 '저녁 식사'로 옮겼고, 4장의 comer는 '점심 식사'로 번역했다. almuerzo는 점심 식사로 옮겼다.

식사에 대한 스페인과 중남미의 어법 차이와 마리아스의 어법을 간파하지 못하면 마리아스 소설에 comer, almuerzo가 점심 식사인지 저녁 식사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