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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번역 - plaza del gua 구슬치기 광장

by brasero 2023. 2. 10.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RAE)은 gua를 두 가지 뜻으로 정의했다. 하나는 아이들의 구슬(canica) 치기 놀이 또는 구슬치기 놀이를 하는 구멍(hoyo)이고, 다른 하나는 콜롬비아, 페루 등에서 쓰는 감탄사로 무서움이나 경탄을 뜻하는 '으악', '꺅', '앗', '깩', '악', '끽', '와','우아'이다.

그러면 plaza del gua는 '구슬치기 광장'/ '구슬치기 구멍 광장' 아니면 '으악 광장' 또는 '깩 광장'이다. 사실 이 광장은 마드리드시의 그란비아(Gran Vía) 도로 북쪽에 있는 추에카(Chueca) 지역의 페드로 세롤로 광장(plaza de Pedro Zerolo)의 별명이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의 쿠데타군이 그란비아(Gran Vía)에 있는 전화국을 표적으로 발사한 대포알이 사정거리를 지나 이 광장에 떨어져 수없는 탄혈을 남겼기 때문에 plaza del gua라는 웃지 못할 별칭을 얻었다. 포탄이 파헤친 광장의 구덩이를 아이들이 하는 구슬치기 구멍 gua에 빗댄 것이다. 

페드로 세롤로 광장

이 plaza del gua는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naña en la batalla piensa en mí>(1994)에 등장한다. 소설의 6장은 (원본은 장을 구분하는 숫자가 없다) 주인공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 작가인 빅토르가 죽은 마르타의 아버지 후안 테예스 씨와 마르타의 남편과 여동생 루이사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마르타는 2주 전에 만난 빅토르를 남편이 출장 간 틈에 그녀의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고 로맨스를 즐기려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반나체 상태로 침대에서 죽어버렸다. 죽음을 빅토르는 마르타의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잠이 든 그녀의 어린 아들을 위해 음식을 챙겨주고 그녀의 전화응답기 테이프와 그녀 남편의 연락처가 적혀 있는 쪽지와 아들이 보지 못하게 급하게 숨겼던 브래지어를 가지고 집을 나왔다. 신문의 부고기사를 보고 그녀의 장례식에 가 조의를 표했다. 한편 빅토르는 친구의 소개로 스페인 왕립학술원 회원인 마르타의 아버지와 함께 국왕을 접견하고 왕의 연설문을 대필하는 일을 맡았다. 마르타 아버지의 집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다가 마르타의 가족과 외식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마르타의 식구는 빅토르가 그녀의 죽음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식사를 마친 후 후식을 먹을 참에 돌연 날씨가 급변해서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진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비를 피해 식당 입구로 몰려들었고 그 모습은 스페인 내전 때 포탄을 피해 우왕좌왕 몸을 피하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En aquel momento el maítre se volvió hacia la ventana justo antes de que sonara un trueno - como si lo hubiera presentido - y empezó a llover ávidamente igual que un mes o más antes, o no igual, esta vez con más furia y prisa, como si la lluvia tuviera que aprovechar su duración tan breve o fuera una incursión aérea combatida por artillería. En el plazo de medio minuto vimos amontonarse gente de la calle a la puerta del restaurante, vimos correr a mujeres y hombres y niños para protegerse de lo que venía del cielo, siempre como los hombres y mujeres y niños de los años treinta en esta misma ciudad entonces sitiada, que corrían buscando refugio para protegerse también de lo que venía del cielo y de los cañonazos que venían de las afueras, del cerro de los Ángeles o del de Garabitas, los llamados obuses que hacían su parábola y caían sobre la Telefónica o en la plaza de al lado cuando fallaba la puntería, llamada por eso 'plaza del gua' con inverosímil humor fatídico, o en el enorme café Negresco que quedó destrozado y sembrado de muertos mientras al día siguiente la gente impertérrita y a la vez resignada iba a tomar su malta al café vecino, La Granja del Henar en la calle de Alcalá frente a la desembocadura de la Gran Vía, sabiendo que allí podía suceder lo mismo......

문학과 지성사 번역본은 다음과 같이 옮겼다.

그 순간 수석 웨이터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로 그때 천둥소리가 울렸다. 마치 그가 천둥이 칠 것을 예감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한 달 전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한 달 전보다 훨씬 더 세차게 쏟아졌다. 마치 허용된 짧은 순간을 십분 활용하려는 것처럼, 혹은 포병대가 공중 사격을 퍼붓는 것처럼, 보다 빠르고 세찬 빗줄기가 내리쳤다. 30초도 안 되어 식당 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마구 뛰고 있었다. 1930년대에 군인들에게 포위된 이 도시의 하늘에서 마구 쏟아지던 포탄을 피해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과 똑같았다. 당시에 앙헬레스가라비타스 언덕에서 군인들은 박격포탄을 쏘아댔고, 그 포탄들은 전화교환국 위에 떨어졌으며, 조준이 정확하지 않은 포탄들은 인근 광장에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그 광장을 '으악 광장'이라고 불렀다. 또한 네그레스코 카페에도 떨어져서 그 카페는 완전히 부서졌고 온통 시체들로 뒤덮였다. 그래도 겁 없는 사람들은 다음 날 근처 카페로 가서 맥아분유를 주문했다. 그란비아 입구 맞은편에 있는 알칼라 거리의 '그랑하 에나르' 식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26-227면).

아래는 위 번역과 차이이다.

그 순간 으뜸 웨이터가 돌아서서 창을 쳐다보았다. 그가 예견이라도 한 듯 천둥이 울리더니, 한 달 전 혹은 그 이전처럼 세차게 빗줄기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아니 이번에는 짧은 시간을 한껏 이용하려는 듯 포병대가 공중에 포격을 작열하듯 한 달 전보다 더 드세고 쏜살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30초도 안 되어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식당 문 앞으로 몰려들었고 1930년대에 포위되어 있던 이 도시의 하늘에서 마구 쏟아지던 포탄을 맞지 않으려고 뛰어다녔던 사람들처럼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은 하늘에서 들어붓는 빗줄기를 피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곡사포는 변두리에서, 로스 앙헬레스나 가라비타스 구릉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전화국을 때리거나 빗맞은 포탄은 옆에 있는 광장에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어날 법하지 않은 불길한 일이 벌어지는 이 광장을 '구슬치기 구멍 광장'이란 익살스러운 별명으로 불렀다. 거대한 네그레스코 카페도 완전히 부서졌고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이튿날 무서움이 없는 사람들은 역부득하게 인근 카페로 맥아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란비아 들머리 맞은편에 있는 알칼라 거리의 '그랑하 에나르' 식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지사는 plaza del gua를 '으악 광장'으로 옮겨 포탄의 위협을 잘 표현했으나 포탄 구덩이를 구슬치기 구멍으로 비유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그의 소설 <당신의 내일 얼굴 1. 열과 창 Tu rostro mañana I Fiebre y lanza> 에서 plaza del gua에 대한 사실을 반복 언급했다. 

....y el asedio a Madrid con los bombardeos facciosos desfiguradores y los cañonazos rebeldes que venían desde las afueras y cerros, los llamados obuses que hacían su parábola y caían sobre la Telefónica o en la plaza de al lado cuando fallaba la puntería, llamada por eso 'plaza del gua' con inverosímil humor fatídico, casi tres años de la vida de ambos, de todos, siendo sitiados y corriendo por las calles y plazas de cambiantes nombres con las manos sobre los sombreros y gorras y boinas y las faldas al vuelo y las medias rotas o simplemente sin medias, buscando las aceras no enfiladas por los cañones para caminar o correr por ellas hasta alcanzar una boca de metro o algún refugio. (2002, 164쪽) 

마드리드가 포위되었을 때 반란군이 전화국 건물(la Telefónica)을 폭격하기 위한 변두리와 언덕에서 발사한 곡사포(obuses)가 목표에서 벗어나 옆 광장에 떨어지는 바람에 '구슬치기 구멍 광장(plaza del gua)'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호세 마리아(Gironella José María)는 스페인 내전을 생생하게 그린 증언 소설 <수백만의 사망자들 Un millón de muertos>(1961)에 마드리드시의 plaza del gua라는 광장에 대해 설명하며 "이 구덩이들은 파시스트의 폭탄이 광장에 남긴 것인데 그 동네에서 아이들이 놀려고 팠던 구멍과 이름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los hoyos que los proyectiles 'fascistas' hacian en ella eran idénticos a los que cavaban los niños del barrio el juego de ese nombre"라고 했다. 

호세 마리아, 수백만의 사망자들 - RAE CDH 스페인어역사말뭉치 검색

페드로 코랄(Pedro Corral)은 <피를 흘린 이웃들- 1936~1939년 내전과 영웅, 평민과 희생자의 마드리드 역사 Vecinos de sangre: Historias de héroes, villanos y víctimas en el Madrid de la Guerra Civil. 1936-1939>(2022)란 책에서 현재의 페드로 세롤로 광장(Plaza de Pedro Zerolo)이 구슬치기 (구멍) 광장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프랑코군의 폭격 때문이다고 했다. 

Pedro Corral의 책

일간지 라 라손(La Razón)은 위 책의 내용을 소개했다. 페드로 세롤로광장 (페드로 세롤로 광장의 옛 명칭은 바스케스 데 메야 광장 Plaza de Vázquez de Mella이다)이 '구슬치기 구멍 광장'이 된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의 포병대가 공화군 포병대의 관측소가 있던 전화국의 탑을 포격했던 포탄이 광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라 라손 신문의 페드로 세롤로 광장 - 구슬치기 구멍 광장 이유 2022. 6. 12
그란비아의 전화국과 구슬치기 구멍 광장(페드로 세롤로 광장)의 위치- 구글 지도
그라비타스 구릉의 프랑코 국민군 진지에서 본 희미한 전화국 건물 (붉은 원) - 사진 espacio.fundaciontelefonica.com
폭격 받는 전화국 건물 - 사진 espacio.fundaciontelefonica.com

문지사는 '으악 광장'의 비유를 '냉소적(cínico)'이다고 했지만 사실 con inverosímil humor fatídico '거짓말 같은 불길한 유머'의 일환으로 별명을 붙였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조짐이 좋지 않고(fatídico) 포탄이 파헤친 구덩이는 믿을 수 없고 더욱이 구슬치기 구멍일 수 없는데도(inverosímil) 우스개(humor)로 '구슬치기 구멍 광장'으로 불렀다는 말이다. 이런 익살로 절망에 빠진 처지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페드로 세롤로 광장 - 구슬치기 구멍 광장 - 사진 중앙 위에 솟은 건물은 그란비아의 전화국

'박격포'라고 번역한 obuses(단수 obús)는 '곡사포'이고 박격포는 mortero이다. 박격포는 곡사포보다 사거리가 짧고 보병부대의 화기다.

포병대의 포격을 맞아 시체가 즐비했지만 다음 날 '용감하고 동시에 체념한 사람들은 la gente impertérrita y a la vez resignada' 즉 무서움이 없는 사람들은 역부득하게(달리 변통할 도리가 없어 resignada)  맥아 커피(malta)를 마시러(tomar) 인근 카페로 갈 수밖에 없었다. malta(맥아)는 싹이 나온 보리를 말린 것이고 맥아를 볶아 우려낸 물은 내전 중 귀한 커피 대용으로 마셨다. '맥아 커피'는 진짜 커피가 아니기 때문에 '맥아차' 또는 '보리차'로 옮길 수도 있겠다. 아니면 보리와 홉같이 맥주 원료로 쓰이던 맥아로 만든 무알코올 음료수일 수 있다. 

이스마엘 디아스 유베로(Ismael Díaz Yubero)는 내전과 전쟁 후 음식 부족을 논한 <허기와 음식, 내전에서 배급 장부까지 El hambre y la gastronomía. De la guerra civil a la cartilla de racionamiento>(2003)에서 커피가 부족해서 대신 맥아차나 치코리(achicoria)차를 마셨다고 했다. 

유베로, 커피 대신 맥아와 치코리

내전에 얽힌 두 형제의 갈등을 그린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길잡이(멘토)였던 후안 베넷(Juan Benet, 1927~1993)의 소설 <사울 대 사무엘 Saúl ante Samuel>(1980)에도 맥아(malta) 커피가 등장한다. 

  • Todos los días a primera hora de la mañana - mientras le es servido un tazón de malta - una joven acude a arreglar el cuarto. Después de comer - casi siempre a solas- es una porción de aguardiente que constituye su único extra; a medida que se prolonga su internamiento - acaso porque la calidad del licor mengua con los rigores de la guerra.... 매일 이른 아침에 - 맥아차를 가져다 주고 - 젊은 여자가 방을 정리하기 위해 온다. 점심을 먹고 난 후 - 늘 혼자 - 독한 증류주 아구아르디엔트를 조금 마시는 것이 유일하게 특출 난 것이다. 입주가 길어지자 - 어쩌면 가혹한 전쟁으로 술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전 후 1940년대 마비된 스페인 사회를 그린 카밀로 호세 셀라의 소설 <벌집 La colmena>(1951)에도 맥아 커피가 등장한다. 5장 도냐 로사의 카페에 들어온 마르틴이 담배 한 갑을 사고 난 뒤 가짜 커피, 맥아 커피를 투덜거리는 장면이 있다. 

  • De vuelta a su mesa se limpió los zapatos y se gastó un duro en una cajetilla de noventa.- Esta bazofia, que se la beba la dueña, ¿se entera?, esto es una malta repugnante. 탁자로 돌아와서 구두를 닦고 90센트 짜리 담배를 한 갑 사는 데 일 두로를 썼다. 이런 시궁물처럼 구역질이 나오는 맥아 커피는 여사장님이나 마시지 그래요, 알아 듣겠죠? 

malta를 RAE는 (1)맥주를 제조하는 데 쓰는 인위적으로 싹을 틔우고 볶은 보리, 즉 볶은 맥아, (2)달이는/끓이는 (cocimiento) 볶은 보리, (3) (쿠바, 도미니카) 볶은 보리로 만든 무발효 음료수라고 정의했다. 맥아분유가 아니다. 

RAE malta
페드로 세롤로 광장

이 장은 식사 장면이기 때문에 여러 음식이 언급된다. 마르타의 남편 데안은 혀가자미 요리를 먹었다.

... y que Deán no había podido dejar sin mencionar más tiempo, había esperado a pedir, y a tomar el primer plato, y a que nos hubieran traído el segundo (comía lenguado y bebía vino). 데안은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음식을 주문하고 첫번째 음식을 먹고 두번째 음식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그는 혓바닥 요리를 먹으면서 포도주를 마셨다)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2014, 216면)

lenguado는 '우설(소혓바닥 lengua)'이 아니라 '혀가자미' 요리이다. 데안의 음식은 혓바닥 요리가 아니라 혀가자미라는 것은 적포도주(vino tinto) 대신 생선과 궁합이 맞는 백포도주(vino blanco)를 마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위 단락 뒤에 데안이 마신 백포도주가 언급된다.

Deán bebió de su vino blanco y se llenó de nuevo el vaso, siempre con el codo apoyado en la mesa y la frente en la mano. 데안은 백포도주를 다 마시고 다시 잔을 채웠다. 여전히 팔꿈치를 탁자에 괴고 이마에 손은 치우지 않았다. (필자 번역).

혀가자미
lenguado a la plancha 철판구이 혀가자미(사진 bonviveur.es)

Téllez dejó en cruz sobre el plato sus cubiertos de pescado (mero a la plancha, había comido hasta entonces con ganas); Luisa se llevó la servilleta a los labios y allí la sostuvo durante unos segundos como si con ella contuviera las lágrimas -más que lo que la boca despide, vómito o palabras- antes de devolverla a sus muslos manchada de su carmín y saliva y del jugo de su solomillo sanguinolento (no irlandés a buen seguro) 테예스 씨는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십자로 걸쳐놓았다(그가 먹은 것은 석쇠에 구운 생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루이사는 냅킨을 집어 입술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냅킨으로 - 입에서 나오는 토사물이나 말 같은 것보다도 - 눈물을 닦으려는 것처럼 잠시 들고 있었다. 그녀는 립스틱과 침, 그리고 이상한 스테이크(분명한 것은 아일랜드식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기즙으로 더러워진 냅킨을 무릎에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2014, 216~217면)

'석쇠에 구운 생선'이라고 옮긴 mero a la plancha는 '메로 철판구이'이다. mero는 아무 생선이 아니라 농엇과의 '메로'이고 a la plancha는 철판이나 프라이팬 구이이다. 석쇠구이는 a la parrilla이다. 루이사가 먹은 solomillo sanguinolento는 '이상한 스테이크'가 아니라 피가 있는 살짝 익힌 등심(영어 sirloin)이다. 그녀의 냅킨에는 립스틱과 침과 피가 나오는 등심구이 즙이 묻은 것이지 '이상한 스테이크' 즙이 아니다.

생선 석쇠구이 - 사진https://www.directoalpaladar.com

...en cuanto el maítre le vio hacer este gesto se acercó solícito y lo llamó 'donjuán':– ¿No le ha gustado el mero, donjuán? -le dijo. 그런 모습을 보자 수석 웨이터가 정중하게 다가와 그를 '후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생선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후안 선생님?"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2014, 226면)

'생선'이라고 옮긴 el mero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메로' 생선이다.

점심으로 마르타의 아버지 테예스는 메로를 먹었고, 오쟁이를 질 뻔했고 홀아비가 된 그녀의 남편 데안은 혀가자미를 먹었다. 마르타의 여동생 루이사는 핏물이 흥건한 등심을 먹었고 이에 빅토르는 마르타와 함께 저녁 식사로 먹었던 아일랜드식 등심을 떠올렸고 아울러 내전의 희생자를 기억했다. 마르타의 식구 두 남자는 생선을 먹었고 두 여자는 등심을 먹는 것으로 대조를 이룬다. 

원본과 번역본 텍스트의 대등성은 형태와 (문체, 보편 어휘, 사어, 고어, 빈도수가 낮은 어휘, 문장과 문단 구조 등) 내용에 동질성이 있다는 뜻이다. 원본의 정보를 덜거나 더하거나 다른 개념으로 바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은 텍스트의 대등성을 위한 것만 아니라 독자 반응의 대등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번역본이 원본과 다르지 않는 대등한 텍스트가 되어야만 원본의 독자처럼 번역본의 독자도 대등하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