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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학, 미술, 역사

돼지

by brasero 2022. 10. 20.

눈을 떠보니 저기 돼지가 죽어 있었다.

 

 

 

 

-플래시 픽션, 미니 스토리, 초단편소설 - brasero 지음-

최소한의 낱말로 인물과 플롯을 구성하는 글이 플래시 픽션이다. 활자화된 뜻보다 텍스트밖에 의미가 더 중요한 장르이다. 글자 형태를 갖춘 뜻은 빙산의 한 조각일 뿐이다. 일찍이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는 단편소설집 <in our time 저희 시대>(1924)에서 전체 서른한 장의 지면에 열여덟 개의 단편을 발표했다. 그중 4장은 일흔다섯 낱말의 여덟 문장으로 구성된 소설집에 가장 짧은 이야기이다.

Chapter 4. We were in a garden at Mons. Young Buckley came in with his patrol from across the river. The first German I saw climbed up over the garden wall. We waited till he got one leg over and then potted him. He had so much equipment on and looked awfully surprised and fell down into the garden. Then three more came over further down the wall. We shot them. They all came just like that.

4장- 우리는 몽스의 어느 정원에 있었다. 젊은 버클리는 강 건너 갔다가 순찰대와 함께 들어왔다. 내가 본 첫 번째 독일군은 정원 담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한쪽 다리를 올릴 때까지 기다렸다 쏘아 죽였다. 장비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고 굉장히 놀라며 정원 안쪽으로 떨어졌다. 세 명이 더 담을 넘어 내려왔다. 우리는 그들을 쏘았다. 그들 모두 그렇게 왔다.   

'우리'는 몽스 (벨기에의 도시로 일차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최초로 독일군과 전투를 벌였다)에서 독일군을 상대한 군인들이다. '젊은 버클리'는 일인칭 관찰자이자 서술자인 '나'보다 나이가 어린 영국군으로 강 건너 순찰을 다녀왔다. '나'는 awfully, potted (pot - 새나 짐승을 쏘아 죽이다)란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영국군이다. 독일군은 개인이 아니라 익명의 집단이다. 우리는 독일군을 상대할 만큼 강했는지 수가 우세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전쟁에서 일어나는 살육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이야기에 통일성이 없다. 세 조각이 관계없는 듯 연결되어 있다 - 정원에 있는 우리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버클리, 담을 넘어오는 독일군 하나, 셋, 그리고 그들 모두 - 이야기의 부조화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의 긴장과 불안으로 작동이 멈춘 뇌가 만든 비논리의 파편이다. 어차피 전투 상황을 다 전달할 수 없다.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면 된다. 셔트를 누르듯 컷을 그렸다, 에즈라 파운더의 이미지즘 상징주의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보여주고 있다. 다 보이지는 않는다.  나머지 모습은, 수면 아래 잠긴 어마어마한 이야기 빙산은 우리가 들어 올려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올라왔다면, 얼음덩어리, 어떻게 해야 하나. 

이외에도 <in our time 저희 시대>에 실린 이야기의 주제는 일차세계대전과 투우와 뉴스로 그의 '빙산 이론'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혁명, 사랑, 상실, 고통, 인간 소외, 집단 폭력 등을 상징화했다.

'눈을 떠보니 저기 돼지가 죽어 있었다'란 한 문장 플래시 픽션은 독자의 참여로 의미가 완성된다. 누가 눈을 떴는지, 나, 당신, 남자, 여자, 우리, 너희, 당신, 개, 죽은 이 돼지 옆에 있던 다른 돼지인지, 대한민국 국민인지.....어디서, 언제, 뭐 하다가 눈을 떴는지...... 저기는 어디인지, 얼마나 먼지, 도살장인지, 돼지우리 안인지, 우리 밖인지, 실험실인지, 숲 속인지, 해변인지, 미국 의회 의사당인지, 고깃간 옆인지, 서울인지, 대구인지, 강변인지.....돼지는 어떤 돼지인지, 멧돼지인지, 집돼지인지, 암퇘지인지, 저팔계인지, 요크셔인지, 버크셔인지, 두록인지......왜 죽었는지, 고기로 쓸려고 도축되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원하지 않았지만 죽었는지, 반성을 하고 죽었는지, 마지막 죽은 먹고 죽었는지, 왼 발톱은 깎고 죽었는지, 발톱에 낀 진주는 빼고 죽었는지, 발톱에 봉숭아를 들인 돼지인지.....죽을 때 옛날이 쉬익 필름처럼 지나갔는지, 용감하게 죽었는지, 잘 죽었는지, 섭섭하게 죽었는지, 마지못해 죽었는지, 살해된 건지, 칼 맞아 죽었는지, 망치에 찍혔는지, 도망가다 죽었는지, 어쩌면 자살했는지..... 미혼인지, 졸혼인지, 이혼인지, 위자료는 잘 챙겼는지.....죽은 돼지의 배우자는 뭐 하고 있었는지, 된장 맛을 보고 있었는지, 복사를 하고 있었는지, 고독해서 노래방에서 혼자 탬버린을 치고 있었는지..... 과부나 홀아비가 된 배우자는 재혼할 건지, 새끼는 있었는지.....죽을 때 날씨는 좋았는지, 해가 쨍쨍 났는지, 비가 왔는지, 여우비가 왔는지, 먼지잼할 정도로 찔끔 그의 정액 한 방울 만큼 비가 왔는지......죽을 때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는지..... 평소에 돼지는 순했는지, 악했는지, 거만했는지, 더럽지만 얼마나 더러웠는지.....다른 돼지처럼 하늘을 보지 못하는 목뼈 구조를 가졌는지, 속눈썹은 얼마나 길었는지, 개보다 좋은 후각과 돌고래 같은 지능으로 사람 간을 보던 돼지였는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던 돼지였는지......뭐 하던 돼지였는지......친구는 많았는지, 개하고 친했는지, 고양이랑 잘 지냈는지.....어미에게 버림받은 호랑이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모성을 가졌는지......우리에 갇혀 살던 돼지인지, 우리가 창조한 돼지인지, 기레기가 만들어낸 돼지인지, 기자가 추앙하던 돼지인지......너른 들판에 방목되어 도토리도 먹던 돼지였는지.....국민의 돼지였는지, 독단의 돼지인지, 자유로운 돼지인지.....대가리는 까마귀가 차린 고사상에 오를 건지, 껍데기는 어쩔 작정인지, 내장은 순대용인지.....죽은 돼지를 보고 기뻤는지, 슬펐는지, 시원섭섭했는지, 만세라고 외쳤는지, 돼지가 죽자 계엄령이 선포되었는지....... 죽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는지....전쟁터에서 순국했는지.....국립묘지에는 갈 것인지..... 독립운동가처럼 무덤은 없고 위패만 국립묘지에 있을련지.....혹시 내 입에 들어올 돼지인지, 뒷다리는 하몽으로 만들 작정인지, 뱃살이 삽겹인지 오겹인지.....옆에 있던 돼지가 경기를 일으키며 게거품을 물고 눈자위가 허옇게 뒤집어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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