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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음식 유럽 음식/스페인 음식

파에야 원조, 발렌시아 파에야 paella valenciana와 소시지

by brasero 2021. 1. 25.

작년 8월에 스페인의 국민 요리사 카를로스 아르기냐노 Karlos Arguiñano (1948~)가 아래 사진처럼 붉은색 초리소 chorizo 소시지가 들어간 파에야를 만들어 트윗으로 공개한 후 이베리아 반도는 '그게 무슨 파에야'라는 비난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초리소 소시지 이외에도 닭고기, 새우, 홍합과 야채를 사용한 이 파에야는 발렌시아 전통 파에야가 아니라 '파에야 믹스타 paella mixta'라고 카를로스가 분명히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성토는 잦아들지 않았다. 

파에야 믹스타 - 까를로스의 트윗

육류와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파에야*인데 무슨 호들갑일까 싶은데 스페인의 일간지 아베세 ABC가 기사화할 정도로 손가락질이 난무했다. 아래에 보다시피 아베세는 파이스 바스코 출신의 카를로스가 파에야에 초리소를 추가해서 비판의 수렁에 빠졌다고 했다. 

*스페인어 파에야 paella는 둥근 철판과 음식 파에야를 뜻하는 발렌시아어 파에야 paella에서 유래했는데, 우스개 소리로 paella는 "pa (para의 축약형)와 그녀를 뜻하는 ella가 합성된 낱말이라고 한다. 그러면 파에야는 원래 그녀를 위해 남친이나 남편이 만드는 사랑이 가득 담긴 낭만적인 음식이다.

ABC 2020.8.8 기사 헤드라인

맹비난의 원인은 파에야에 초리소를 사용한 잘못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대표 요리사 카를로스가 스페인의 얼굴인 발렌시아에 뿌리가 있는 파에야를 제대로 요리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스페인 전통 음식을 알기 쉽게 요리하여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지도 높은 셰프가 만든 초리소와 해물이 섞인 '파에야 믹스트'가 유서 깊은 파에야 조리법에 대역죄를 지은 꼴이었다.

초리소 소시지

발렌시아 주의회 의장, 엔릭 모레라는 "이건 파에야 발렌시아나가 아니라, 다른 재료를 넣은 쌀요리입니다. 우리 발렌시아의 조리법에 초리소가 들어가지 않습니다"라고 비판했다.  파에야 발렌시아나가 아니라 '파에야 믹스타'라고 했지만 아랑곳없다.

엔릭 모레라의 트윗

돼지고기에 마늘과 붉은 파프리카/피망 가루를 섞어 만든 초리소 소시지를 넣으면 전통 파에야의 이단이 되는 것일까, 전통에 먹칠을 하는 것일까. 전통은 계승하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고 더욱이 전통은 창조되기도 하지 않은가. 아무튼 소시지가 원조, 파에야 발렌시아나 paella valenciana의 재료에 포함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스페인어 위키백과는 '가족이 즐겨먹는 음식 cuchipanda' 파에야에는 발렌시아 파에야 이외에 해물 파에야 paella marinera와 닭고기와 해물이 들어가는 파에야 믹스타 paella mixta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통 발렌시아 파에야의 재료는 10가지이라고 못 박고 있다. 

스페인어 위키백과의 전통 파에야 재료 10가지

열 가지 재료는 물 agua, 올리브유 aceite de oliva, 둥근 쌀 arroz redondo, 사프란 azafrán, 토끼고기 conejo, 크고 흰 강낭콩 garrofón, 콩깍지 있는 강낭콩 ferraura, 닭고기 pollo, 소금 sal, 토마토 tomate이다. 사프란은 파에야에 노란색을 내는 사프란이란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색소이고, ferraura는 (발렌시아어이고 스페인어로 judía verde) 콩깍지가 그대로 있는 강낭콩이다. 이  필수 재료에 마늘 ajo, 아티초크 alcachofa, 오리  pato, 붉은 피망/파프리카 가루 pimentón, 달팽이 caracol, 로즈메리 romero가 추가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재료들은 발렌시아 주정부의 농림부에서 정한 것이다.

ferraura 콩깍지 강낭콩

물론 요즈음은 물 대신 완제품 육수 caldo를 사용하기도 하고, 발렌시아시 남쪽에 있는 벼농사의 곡창지대인 알부페라 Albufera 담수호 부근 마을에서는 옛날에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장어 anguila를 넣기도 하고, 수에카와 쿠예라 등의 해안 도시에서는 요즈음도 생선을 넣은 파에야가 있다. 심지어 육류가 귀했던 그 시절에는 쥐고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발렌시아의 유명 소설가 블라스코 이바녜스 Blasco Ibáñez의 소설 ≪갈대와 진흙 Cañas y barro≫(1902)에는 알부페라 호수의 섬 마을이었던 엘팔마르 El Plamar의 주민들은 아래처럼 쥐고기 파에야를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본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Las mujeres enumeraban las excelencias de la rata en el arroz de la paella; muchos la habían comido sin saberlo, asombrándose con el sabor de una carne desconocida." 마을 여자들은 쌀로 만든 파에야에 쥐고기가 아주 맛이 좋다고 말을 늘어 놓았다. 모르는 고기의 맛에 놀라면서 쥐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생선이 파에야의 재료라는 사실을 반영하여 스페인 한림원 스페인어사전(RAE)은 파에야를 아래와 같이 "1. 고기, 생선, 콩류 등이 들어가는 '국물이 없는 쌀 요리 plato de arroz seco'로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역의 특산 음식"이라고 풀이했다. 파에야에는 오리고기, 닭고기, 토끼고기를 비롯해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발렌시아 일부 지방에서는 바다 생선을 사용하는 것을 아우르기 위해 이렇게 정의한 것이다. 

RAE의 파에야 풀이

이 사전은 소시지를 파에야의 재료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위 RAE 풀이에 'carne 고기'에 소시지가 포함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carne는 소시지를 제외한 육류를 뜻한다. 소시지는 embutidos고 한다. 

한편 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위 RAE의 풀이를 번역해서 파에야에 뜻을 매겼다.  

생선이 있는 파에야는 스페인 사람들이 보통 먹는 파에야가 아니지만 RAE의 풀이에 따른 진술이다. 하지만 파에야를 "찐 밥"으로 설명한 것은 옳지 않다. 찐 밥은 arroz al vapor이지 paella가 아니다.  바르게 설명하자면, 둥근 파에야 철판에 고기와 채소를 올리브유에 볶은 후 쌀과 물 또는 육수를 추가해서 익힌 발렌시아 지역의 특산 음식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아무튼 한림원 스페인어 사전 RAE와 위키백과는 전통 발렌시아 파에야에 소시지가 들어간다는 설명은 없다. 하지만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주장이 있다. 다름 아닌 엘 파이스 신문의 음식 칼럼, 엘코미디스타에서 전통 발렌시아 파에야에 소시지가 사용된 사례가 있다고 했다.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513년의 '발렌시아식 쌀요리 arroz a la valenciana'의 재료는 육류, 생선, 콩, 쌀이라고 했다. 아래 인용구는 1513년에 출판된 알론소 데 에레라가 지은 ≪농업 현황 Agricultura General≫을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마르티 이 모라1818년에 증보한 책의 내용이다. 오늘날 '파에야'란 말 대신 '발렌시아식 쌀요리'의 재료라고 했다. 

"... pues con cualquier cosa que lo guisen sea de carne, pescado o legumbres solas es sin duda bocado sabroso. Nada  […] En todas partes han querido imitarlos y para esto lo suelen dejar a medio cocer llamándolo equivocadamente arroz a la valenciana, persuadidos de que los granos cocidos quedan enteros y separados en los guisos valencianos”. 

1770년의 ≪런던에서 제노아까지 From London to Genoa에 따르면 1760년 10월 8일 이탈리아의 삽화가 기세뻬 바레띠가 마드리드를 여행하면서 먹었던 '발렌시아식 쌀요리 arroz valencià' 에는 돼지 족발, 우족, 삼겹살, 살치사 소시지, 돼지피 소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요리는 오늘날 파에야가 아니라 초리소 소시지가 들어간 '오븐 밥' 즉 아로스 알 오르노 arroz al horno 또는 아로스 콘 코스트라 arroz con costra 였다.

아로스 알 오르노

1859년 언론인이자 작가이자 사진사였던 파수쿠알 페레스 로드리게스 (발렌시아 태생, 1804-1868)가 지은 ≪발렌시아 사람들이 그린 발렌시아 Los valencianos pintados por si mismos≫에는  돼지 등심, 돼지 갈비, 초리소 소시지, 장어, 토마토가 파에야의 재료로 사용된다고 했다. 오늘날 파에야가 아니라 '발렌시아 파에야 조상 paella primitiva valenciana'의 재료라고 했다.

“Hase pretendido por algunos desnaturalizar la paella primitiva valenciana, socolor de mejorarla así es que la han recargado de artículos, sabrosos y suculentos, sí; pero que la convierten en un guisado ó comida cualquiera, destruyendo su originalidad. Lo que estereotipa ó mas bien fotografía la paella valenciana, separándola del resto de las combinaciones culinarias, es lo siguiente: patos, pollos ó gallinas, mas bien los primeros; lomo de cerdo, costillas, chorizos, anguilas, tomates y arroz. En algunas ocasiones no falta quien añade cuatro ó cinco docenas de caracoles grandes , con lo cual queda cerrado el catálogo sacramental de la paella valenciana. Todo lo demás son corruptelas e intrusiones”.

1870년 이사벨 베파도 데 미에르 (1832-1913)가 지은 여행서1870, 1871, 1872년 멕시코에서 유럽 기행문≫에 의하면 발렌시아시의 엘시드 호텔에 머물면서 먹었던 파에야에는 쌀, 사프란, 닭고기, 장어, 아티초크 이외에도 초리소 소시지가 있었다고 했다.

 “Es costumbre servirlo a la mesa en la misma cacerola en que se guisa. A este guiso le llaman paella y se compone de arroz con azafrán, pollo, chorizos, anguila, y alcachofas; estaba bueno, pero en cada lugar, se encuentra alguna diferencia en su condimento”.

1858년에 출판된 최초의 파에야 조리법에는 소시지를 명시하고 있다 - 마리아노 무뇨스 Mariano Muñoz가 지은 ≪프랑스와 스페인 요리학교의 현대 음식 La cocina moderna, según la esculea francesa y española≫.

파에야 철판이 데워지면 올리브유나 돼지기름을 두르고 피망을 볶고 나서 육류 –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 등심, 살치차 소시지- 가 노랗게 익으면 마늘 두세 쪽을 둥글게 얇게 썰어 넣고, 토마토, 파슬리, 껍질을 벗긴 피망, 소금, 사프란, 약간의 후추와 향신료 클라보를 넣고 잘 볶다가 아티초크와 강낭콩 또는 콩깍지 강낭콩, 물이나 육수를 붓고, 쌀을 넣고, 피망을 더 넣어도 되고 장어나 바다 달팽이를 추가할 수 있다. 쌀이 익을 때까지 물을 추가하면서 요리하면 된다.”

1879년 2월 1일 잡지 시골 El Campo에 실린 펠리페-베니시오 나바로 이 레이그(1840-1881)의 글은 파에야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열거했다.

  • 채소 - 아티초크, 완두콩, 강낭콩, 콩깍지 강낭콩... alcachofas, guisantes, habas tiernas, judías verdes, de la Granja, de córfa, tabelles, de careta, secas, cardillos, pencas, coliflor, bróculi, setas.db
  • 육류 - 양고기, 염소고기, 소고기, 돼지갈비, 토끼, 산토끼, 늪 쥐 cordero, carnero u oveja, cabrito, macho, ternera, vaca, lomo, costillas de cerdo, conejo, liebre, rata de marjal
  • 가금류 - 닭고기, 암탉, 수탉, 거위, 오리, 아나데 오리, 알부페라 조류, 자고새, 도요새, 메추리, 사냥한 모든 종류의 조류, 비둘기 pollo, gallina, gallo, pavipollo, pato, ánade, pájaros de la Albufera, perdices, chochas, codornices, toda clase de aves de caza, palominos.
  • 생선 - 장어, 농어, 조기, 민대구, 민물 게, 붕어, 참치 anguilas, rábalo, reig, merluza, cangrejos de río, tenca, atún fresco
  • 조개 - 바다 달팽이, 바지락... caracoles moros y mejor los llamados vaquetes o jonetes; almejas.
  • 또 소시지를 넣을 수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음 También hay quien pone embutido, pero no resulta y hace ordinario.

파에야에 재료로 사용 가능한 채소 종류와 여러가지 육류, 가금류, 생선, 해물을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소시지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허용하고 있다. 19세기에 쥐고기를 실제로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료는 발렌시아 전통 파에야에 소시지가 포함된다는 증거이다. 이런 사실은 스페인어 위키백과에 일부러 누락하고 대신 소시지가 배제된 10가지 필수 재료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엘파이스 신문의 주장이다. 사실 이 열 가지 재료는 1995년부터 발렌시아주의 수에카시에서 개최되는 '세계 파에야 요리 대회'를 위해 발렌시아 요리사협회와 주정부가 표준으로 제정한 것이다. 엘파이스 신문의 조사로 전통 발렌시아 파에야에 '소시지 무용론'은 최근에 만든 전통임을 확인했다. 전통은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다는 좋은 보기이다. 

발렌시아 원조 파에야에는 소시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엘파이스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추가 사료를 발굴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전통은 아무래도 좋다, 전통은 변하고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니 소시지를 파에야 넣은 것이 원조이든 말든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소시지와 해물이 들어간 파에야는 카를로스가 트윗으로 밝힌 바처럼 '파에야 믹스타'이기 때문에 전통 발렌시아 파에야와 종류가 다른 파에야인 것이다.

아래 영상은 수발렌시아 말바로사 해변의 '전통 발렌시아 파에야' 조리법이다.

*발렌시아 말바로사 해변 '까사 까르멜라 Casa Carmela' 식당의 파에야 조리법

1. 우선 크고 둥근 파에야 철판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닭고기, 토끼고기, 오리를 넣고 소금을 약간 뿌려 고기를 완전히 익히지 않고 약간 볶는다. 미리 볶는 것을 소페이르(sofeír)라고 한다. 오렌지나무 장작(leña de naranjo)을 사용한다.

2. 콩류를 넣는다. 콩깍지 강낭콩 (judías verdes, 발렌시아어 ferraura)과 가로폰 garrofón이라는 큰 흰 강낭콩과 달팽이를 넣는다. 발렌시아 파에야에 달팽이가 빠지면 안 된다. 

3. 강판에 간 triturado 토마토를 투입한다. 한소끔 끓은 후 물을 추가한다. 물 대신에 완제품 육수 caldo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물이다. Agua, no caldo.

4. 아티초크*와 사프란 투입

*아티초크-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엉겅퀴와 비슷하나 줄기는 높이가 1.5미터 정도이며, 잎은 깃 모양으로 깊게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꽃은 자주색이고 서양 요리의 재료로 쓴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남유럽에 많이 분포한다.(Cynara scolymus) (표준국어대사전)

아티초크

5. 생쌀 (세척하지 않고, 아로스 봄바 bomba 대신 세니아 senía 품종을 사용)을 넣는다. 쌀의 두 배 정도의 물을 추가한다. 쌀을 휘젓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중요하다.

6. 강불에 7-8분 끓이다가 중불에 18분 익힌다.

7. 누룽지를 만드는 게 중요, 누룽지, 발렌시아어로 소카라엣 socarraet, 태우지 않은 누룽지~ tostado y no quemado  굽는 것이지 태우지 말라.

8. 7-8분 약불에 익힘. 파에야는 뚜껑 tapa를 덮지 않고 요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