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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유럽 중남미 대중 음악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나는 건달 나는 신사

by brasero 2025. 3. 14.

내란 세력의 평정은 요원하고, 검찰과 법원은 윤을 탈주시키고, 탄핵 심판은 다음 주라는데, 기득권의 광란, 권력을 향유하는 작태에 토가 나와 마른지 오래이다. 게다가 스페인 중남부 지중해의 날씨는 여느 해와 달라 끄느름한지 열흘이 지나간다. 2월에도 화창한 봄 날씨였던 옛날은 어딜 가고 3월 중순인데 하루 반짝 해가 나왔다가 오늘은 다시 사이클론 '콘라드' 때문에 구름이 끼고 무어인의 춤처럼 이리저리 비를 뿌린다.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무슨 저주가 내린 듯 컴컴하고 울적하다. 하지만 이 어둠도 언젠가 빛을 낼 때가 있으리라. 어둠은 밝음의 다른 이름이니까. 현재의 어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 아니라, 사실 밝음에서 빛나고 있는 어둠이리라.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서 어둠은 밝음이 이해하지 못한 밝음 속에 빛난다 a darkness shining in brightness which brightness could not comprehend 라고 스티븐이 말했듯.

제임스 조이이스 James Joyce(1882~1941)의 소설 <율리시스 Ulysses>(1922)를 읽고 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생각만 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읽는데, 이번에는 우리말로 옮기며 읽고 있다. 번역을 하며 읽으면 더디지만 꼼꼼하게 읽고 원본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읽었던 영어본은 제자가 빌려갔고, 돌려 달라고 하니, 황당하게 잃어버렸다고 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분실한 것으로 하자는 그 녀석의 발칙한 간계에 놀랐지만 그랬구나 하고 모르는 척했다. 잃어버렸으면 같은 책을 사서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을 할까 망설였지만 말하지 않았다. 연구실에 찾아온 그에게 조이스와 이 소설의 애정을 열변했고 넋을 잃은 채 경청한 후 어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청하는 바람에 빌려주었던 것이다. 김수영의 시집 민음사의 <거대한 뿌리>는 조금 다른 경로로 내 손에서 없어졌다. 영문학 석사과정 입학 시험을 준비하던 대학 후배가 집에 묵고 간 뒤 사라진 걸 알았다. 가고 난 뒤 한참 뒤에 없어진 걸 알았다. 두 책과의 이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새 주인의 사랑을 받으면 되고, 예이츠의 밤나무, 그 거대한 뿌리를 김수영은 읽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듯 그들도 밤나무만큼 튼튼하게 자랐을 것이니, 됐다. 책을 탈취한 자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자,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으나, 춤추는 사람과 춤을 구분할 수 없다는 예이츠의 시어처럼 둘을 떼어내 구분할 수 없다고 하자. 작금의 <율리시스> 영어본은 펭귄 출판사본이다. 기포드 Gifford의 주석서, 존 헌트 John Hunt의 해설이 있는 인터넷 사이트, 발베르데 Valverde와 또르또사 Tortosa의 스페인어 번역본 <Ulises>, 김종건 교수의 한국어 번역본(이종일 전 세종대 교수의 번역본은 구하지 못했다. 두 번역본을 비교하는 것도 <율리시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등을 참조해 떠듬떠듬 읽고 있다. 10장, 여러 신분의 다양한 더블린 시민들이  저마다의 장소에서 하는 행동과 머릿속 생각, 내적 독백이 있는 19개의 이야기가 있고, 호머의 오디세이에 비추면 배회하는 바위들 Wondering Rocks에 해당한다. 10장의 구조는 미국의 전 더스 패서스 John Dos Passos(1896~1970)가 <맨해튼 트랜스퍼 Manhattan Transfer>(1925)로, 스페인의 소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까밀로 호세 셀라 Camilo José Cela(1916~2002)가 <La Colmena 벌집>(1951)으로 모방한 것이다.

<율리시스>를 훌리오의 노래와 함께 읽었다. 이 노래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 1943년 생, 올해 82세) 한창 때 1977년, 33살 때 불렀다.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난 건달이자 신사'라고 옮겨진다. truhán은 양심도 없는 철면피 sinvergüenza이기도 하고 건들거리는 불량배이기도 하다. 훌리오 자신을 비틀어 노래한다. 뻔뻔스럽지만 señor 신사라고 한다. 훌리오는 하루 지난 쿰쿰하고 시큼한 샐러드를 먹고 고함치는 것 같은 라파엘과 다르고, 높은 음자리를 뽑아 올리는 안달루시아의 가스빠초 gazpacho 같은 시원하고 단단한 맛이 좋은 까밀로 세스또와 다르다. 훌리오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쌉쓰름한 액체 초콜릿에 적신 겉바안촉 추로 churro를 깨무는 정감 있는 감칠맛이 난다. 이에 더해, 이 노래에는 커피에 럼주를 섞은 뭉근하고 살짝 쏘는 까라히요 carajllo 향과 맛도 난다.

건달이라고 하니, 몰염치한 것들 이라고 하니, 뻔뻔한 검찰과 검찰 정권의 하수인들, 계엄의 부역자들, 뻣뻣한 권력의 기생충 국무위원들, 막무가내 정권을 창출하는데 일등공신인 기레기들과 정치인들이 겹쳐 보인다. 안 그렇고 싶지만, 술을 좋아한 몽상가란 노랫말을 들으니 자꾸 겹쳐 떠오른다. 돼지와 그의 일당들, 쥐, 개, 늑대, 두꺼비, 이리, 명태, 오징어, 가오리, 도루묵, 문어,꼴뚜기, 건포도와 이들을 옹호한 기레기 따위가 대책 없이 떠오른다. 이런 길짐승과 물고기가 날뛰는 금수강산의 자연들은 신사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실에 새삼 다시 놀라면서 한편 위안도 된다.

Confieso que a veces soy cuerdo y a veces loco
털어놓을게요, 전 때론 멀쩡하다 때론 미칩니다
y amo así la vida y tomo de todo un poco
이렇게 인생을 사랑하죠, 조금씩 모두 합니다
Me gustan las mujeres, me gusta el vino
전 여자를 좋아하고 술(포도주)을 좋아해요
y si tengo que olvidarlas, bebo y olvido
그들을 잊어야 한다면 술을 마시고 잊어버리죠

Mujeres en mi vida hubo que me quisieron
내 인생에서 나를 사랑한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pero he de confesar que otras también me hirieron
하지만 나를 아프게 한 여자들도 있었어요
Pero de cada momento que yo he vivido
그러나 내 삶의 순간 순간에
saqué sin perjudicar el mejor partido
아무 탈 없이 잘 이용했습니다

Y es que yo
전 말이죠
amo la vida y amo el amor
인생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해요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전 건달이고 전 신사입니다
algo bohemio y soñador
난 보헤미안이고 몽상가이죠

Y es que yo
전 말이죠
amo la vida y amo el amor
인생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해요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전 건달이고 신사이죠
y casi fiel en el amor
사랑에 충실한 편이죠

Confieso que a veces soy cuerdo y a veces loco
털어놓을게요, 전 때론 멀쩡하다 때론 미칩니다
y amo así la vida y tomo de todo un poco
이렇게 인생을 사랑하죠, 조금씩 모두 합니다
Me gustan las mujeres, me gusta el vino
전 여자를 좋아하고 술(포도주)을 좋아해요
y si tengo que olvidarlas, bebo y olvido
그들을 잊어야 한다면 술을 마시고 잊어버리죠

Me gustan las mujeres, me gusta el vino
전 여자를 좋아하고 술(포도주)을 좋아해요
y si tengo que olvidarlas, bebo y olvido
그들을 잊어야 한다면 술을 마시고 잊어버리죠

Y es que yo
전 말이죠
amo la vida y amo el amor
인생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해요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전 몰염치이고 전 신사입니다
algo bohemio y soñador
난 보헤미안이고 몽상가예요

Y es que yo
전 말이죠
amo la vida y amo el amor
인생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해요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전 건달이고 신사이죠
y casi fiel en el amor
사랑에 충실한 편이죠
Y es que yo

전 말이죠
amo la vida y amo el amor
인생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해요
Soy un truhán, soy un señor,
전 건달이고 전 신사입니다
algo bohemio y soñador
난 보헤미안이고 몽상가이죠

Y es que yo…
전 말이죠...

☞1977년 RTVE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