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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스페인어 낱말 바루기

스페인의 'breva 브레바 무화과'는 한국의 '굴러온 호박'

by brasero 2021. 10. 9.

스페인에도 우리처럼 무화과 higuera 나무가 있고 가을이면 슈퍼나 시장에 무화과 higo가 있습니다. 하지만 늦은 봄이나 이른 여름에 무화과가 보이는데 사실은 'higo, 이고 무화과'가 아니라 'breva, 브레바 무화과'입니다. (냉장 시설 덕분에 계절에 상관없이 두 종류의 무화과를 사시사철 구매할 수 있습니다.)

브레바 무화과와 이고 무화과

봄에 싹이 나와 여름을 나고 9월이나 10월에 수확하는 '이고 무화과'보다 껍질이 얇고 더 큰 '브레바 무화과'는 겨울을 지나 봄에 나와 오월에 익어 여름에 수확하는 무화과입니다. 이렇게 두 번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가 있지만 어떤 무화과나무에 무화과는 가을에 성장을 멈춰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왕성하게 자라 결실을 맺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하지도 못한 무화과 열매가 떡하니 달리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브레바 무화과 breva'는 "노력하지 않고 찾아온 이득이나 뜻밖의 이익 (provecho logrado sin sacrificio, ventaja inesperada)"을 뜻합니다.

아래  breva 낱말 풀이 5번 7번의 뜻이 이런 뜻밖의 이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 DRAE 2014, 23판). 1. 여성명사. 이고 무화과보다 큰 한 해의 첫 무화과 - 브레바 무화과 2. 여성명사, 조생 도토리 3. 여성명사. 잎담배 4. 여성명사. 여송연 5. 희생 없이 얻은 이득 6. 이득이 많고 일이 적은 일이나 사업 7. 뜻밖의 이익.

6번 풀이는 일은 조금하고 돈이 되는 직업이나 사업인데 우리말로 '이윤이 많은 꿀직업, 꽃보직, 꿀사업'입니다. 모두 예상밖에 혜택을 가져다주는 브레바 무화과에서 유래한 의미입니다. 

이런 의외의 수확은 우리말 관용구로 '굴러온 호박', 선반에서 떨어진 떡',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이라 합니다. 아니면 속담 '참새 그물에 기러기 걸린다'라고 합니다.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은 5번과 7번을 DRAE가 풀이한 그대로 "(희생 없이) 얻은 이득, 기대하지 않은 이익"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런 개념을 의미하는 우리말 관용구가 있는데 풀이말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breva와 higo에서 유래한 단어와 관용구가 있습니다.

1. más blando/blanda que una breva- 글자 그대로 브레바 무화과보다 부드럽다 -> 설득을 당해 누그러지다, 고개를 숙이다('기세가 꺾이어 누그러지다'라는 뜻의 관용구)

2. ablandabrevas - 글자 그대로 부드러워진 브레바 무화과들, 브레브 무화과가 철 이르게 물렁해지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서 유래한 낱말로 persona de poco valor 가치가 없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을 뜻하는 양성명사. 우리말의 빠진 괴머리*, 다 퍼먹은 김칫독 같은 사람, 말 뼈다귀 같은 사람, 밥지랄만 하는 사람 또는 쭈그렁 밤송이**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괴머리는 물레의 가로대 왼쪽에 놓은 받침 나무로 여기에 괴머리 기둥을 박고 가락고동을 끼운다. **쭈그렁 밤송이는 시원찮거나 보잘것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명사입니다.

3. no caerá esa brava-글자 그대로 브레바 무화과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뜻,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관용구. 우리 속담에 노력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을 빗대는 속담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연시] (입 안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바란다]"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면 '감나무 밑에 누워있는다고 홍시가 떨어질까'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지각없는 것을 나무라는 '냉수 먹고 속 차려라'라고 옮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원어가 비유 표현이기 때문에 같은 값이면 우리말도 비유로 옮기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은 "안됐군!, 자만은 그만하시지, 기우는 그만하시지"라고 번역했습니다. 

옥스퍼드 서영사전은 "chance would be a fine thing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옮겼습니다. 

4. de higos a brevas -'이고 무화과'가 나오는 가을에서 브레바 무화과가 나오는 이듬해 초여름까지는 긴 세월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muy de tarde en tarde), 즉 우리말 속담으로 '가물에 콩 나듯', '가물에 씨 나듯'입니다. 

5. estar hecho un higo, estar hecha un higo-글자 그대로 '이고 무화과'가 되었다. 몹시 쭈그러져 있다 (estar muy arrugado)는 뜻입니다. 무화과 껍질에 주름이 있어 유래한 관용구입니다. 우리는 쭈그렁박에 비유해서 '쭈그렁박이 되었다' 또는 '쭈그렁이가 되다'라고 합니다.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언사전은 "(천 등이) 구김살투성이이다"라고 옮겼습니다. 

6. higo는 남성명사로 '이고 무화과'이지만, 아래 DRAE의 2번과 3번 풀이에 보다시피, 비유적으로 2. 항문 (ano) 주위에 무화과 무늬같이 주름이 진 돌출부이자 3. 보잘것없는 것을 뜻합니다. 이고 무화과가 왜 가치가 없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는지는 조사를 더 해보아야 할 과제입니다.

보잘것없는 것은 우리말로 쥐좃, 쥐뿔, 개똥, 개코, 코딱지, 졸때기, 움뚝가지, 비지떡, 굴퉁이, 거지발싸개 따위에 비유합니다. 

  • No me importa un higo. 내겐 코딱지 만큼도 중요하지 않아.

7. 마지막으로 DRAE는 뜻을 등재하지 않았지만 higo는 속어로 여자의 성기를 뜻합니다. 아래 콜린스 Collins 서영사전은 3번에 이 의미를 풀이하고 있습니다. 

무화과- 브레바 무화과, 이고 무화과-에 관련된 비유가 우리말보다 많은 이유는 무화과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스페인에서 더 많이 소비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에 무화과가 들어가는 비유 표현은 단 하나 '과일 망신은 무화과[모과]가 시킨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