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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스페인어 낱말 바루기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의 관용구와 비유 표현 번역

by brasero 2021. 10. 5.

우리말과 스페인어의 비유(속담과 관용구)를 비교하는 이전 글에 사례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왕립학술원이 편찬한 스페인어사전 (DRAE 2014, 23판)에 실린 관용구와 CVC(세르반테스센터 사이트의 속담)과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등재된 관용구와 속담을 대조하며,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을 참조하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관용구와 속담이 많아 주제별로 접근을 하고 있는데, 요즈음은 신체 부위 관련 관용구와 속담을 대조 분석한 결과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두 언어 간 신체 관련 비유나 은유를 대조하거나 비교한 연구는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어 사전에 비유나 관용구가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에 대한 조사는 없습니다. DRAE를 번역한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은 스페인어 관용구를 우리말의 관용구와 비유 표현을 얼마나 잘 반영하여 옮겼는지 조사하는 데 유용합니다.

두 언어를 대조하면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언어간 관용구나 비유의 표현과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 표현은 같지만 의미가 다른 것,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가 동일한 것, 마지막으로 관용구나 정해진 비유 표현이 그 문화에 유일해서 상대방 언어에 상응하는 관용구나 정해진 비유 표현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마지막 유형을 제외하고 앞의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의 번역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손에 떨어지다 caer en la manos de alguien, 귀를 세우다 aguzar las orejas, 어깨에 지다 echar alguien al hombro algo, 등을 돌리다 dar la espalda, 눈을 감다 cerrar alguien el ojo/los ojos 등은 두 언어 간 표현과 의미가 동일합니다. 이 중에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은 cerrar alguien el ojo/los ojos을 "눈을 감다"라는 우리말 관용구로 옮기지 않고 "죽다, 사망하다, 서거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두 언어 간 관용구 표현과 의미가 정밀하게 일치하는데 이렇게 번역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눈을 감다'라고 번역하면 관용구 뜻 대신 문자 의미 그대로 파악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죽다'라는 풀이가 적절하다고 할 수 있지만 비관용구 표현과 함께 관용구, '눈을 감다'를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이빨을 까다 pelar el diente, 어깨가 움츠러들다 encogerse alguien el hombro, 머리가 빠지다 cáersele el pelo, 손을 비비다 frotarse las manos 등은 두 언어 간 표현은 동일하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이를테면 우리말 '머리가 빠지다'는 걱정이 많은 것을 뜻하나 스페인어는 '야단을 맞다'는 뜻으로 동일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문화 차이 때문에 의미가 다릅니다. 이런 관용구는 앞에서 언급한  두 언어 간 표현과 의미가 일치하는 것과 다르게 비유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은 이런 관용구를 오역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관용구를 관용구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지만 의미를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가령, frotarse las manos는 "대만족을 나타내다"라고 번역했지만 '입이 터진 팥 자루 같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다', '입꼬리가 올라가다' 따위의 비유 표현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제 두 언어의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가 동일한 관용구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신체 부위 관용구 중 여기서는 가슴, 심장, 창자, 간장, 속 (배 안이나 위장), 위장의 관용구를 예로 들겠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된다는 뜻의 '가슴이 찔리다'와 잘못한 것 때문에 속이 편하지 않는 뜻의 관용구 '속이 저리다'는 스페인어 관용구로 no tener buen estómago (문자 그대로, 위장이 좋지 않다), 또는  no tener mucho estómago (위장이 크지 않다)라 합니다. 양심은 우리말에서 가슴이나 속의 자극으로 구체화된 반면 스페인어에서는 나쁜 위장과 작은 위장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한편 신중하고 이해심이 많다는 뜻의 '속이 깊다', '속이 넓다, '가슴이 넓다''는 tener alguien un corazón que no le cabe en el pecho (심장이 가슴에 있기에는 너무 크다), tener un corazón de oro (황금 심장을 가지고 있다), ser todo corazón (온몸이 심장이다)라고 합니다. 이 세 관용구는 'ser muy generoso, bien dispuesto o benevolente. 몹시 관대하고 후덕하다'는 뜻입니다. 이해심과 관대한 마음은 우리말에 속과 가슴의 깊이와 넓이에 있지만 스페인어에는 큰 심장과 황금 심장의 작용입니다. 

심한 슬픔은 우리말에 다양한 기관에 해를 끼치는 감정입니다.

  • 가슴이 미어지다. - 마음이 슬픔이나 고통으로 가득 차 견디기 힘들게 되다.
  • 가슴을 아리다. - 몹시 가엾거나 측은하여 마음이 알알하게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 가슴을 찢다. - 슬픔이나 분함 때문에 가슴이 째지는 듯한 고통을 주다.
  • 심장이 터지다.- 슬픔이나 고통으로 견디기 힘드다.
  • 창자를 끊다. - 몹시 애가 타거나 슬프다.
  • 창자가 끊어지다/찢어지다. - 슬픔이나 분노 따위가 너무 커서 참기 어렵다.
  • 간장을 끊다 - (소리 따위가) 몹시 슬프고 애달프다.
  • 간장이 끊어지다 - 슬픔이나 분노 따위가 너무 커서 참기 어렵다.
  • 억장이 무너지다 -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슬픔은 우리말 관용구에서 가슴과 억장(가슴의 속어), 심장, 창자, 간장을 아프게 하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슬픔은 우리처럼 심장을 아프게 하지만 우리와 다르게 alma (영혼, 정신, 넋, 마음)에 해를 끼칩니다. 넋이나 정신이 빠지면 우리말은 정신이 없거나 제정신 아닌 뜻인데 스페인어에서는 슬픔과 고통을 뜻합니다. 

  • arrancársele a alguien el corazón 사람의 심장을 파내버리다/뽑아버리다
  • atrevesar el corazón 심장을 관통하다
  • partírsele/rompérsele el corazón 심장을 찢다/부수다
  • clavarle/clavársele a alguien en el corazón algo 무엇 때문에 사람의 심장을 찌르다
  • arrancársele a alguien el alma 영혼을 파내버리다/뽑아내다
  • clavársele a alguien algo en el alma 무엇 때문에 사람의 영혼을 찌르다
  • partir algo el alma 무엇이 영혼을 쪼개다 
  • romper a alguien el alma  사람의 영혼을 깨트리다

슬픔, 아픔, 양심, 관대함, 이해심 같은 감정과 덕은 한국어에서는 가슴, 속, 심장, 창자, 간장이란 기관이 관장하는 것이지만 스페인어에서는 심장, 위장과 영혼이나 마음의 기능인 점에서 두 언어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말 관용구에서 넋은  이성과 흥, 열, 겁과 같은 감정의 처소이지만 스페인어 관용구처럼 슬픔을 담당하지 않습니다. 

  • 넋이 나가다 - 정신을 잃다.
  • 넋을 올리다 - 흥과 열을 올리다.
  • 넋을 먹다. -겁을 먹다.

이런 스페인 관용구를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 사전은 우리말 관용구를 고려하지 않고 DRAE에 있는 뜻풀이를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tener alguien buen/mucho estómago를 "누가 도덕적인 면에서 별로 마음을 쓰지 않다"라고 뜻을 새겼는데 이는 DRAE의 정의 "ser poco escrupuloso en punto a moralidad"를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녹슨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번역입니다.

네이버의 파파고번역기는 "도덕적인 면에서 비양심적이다"라고 옮겼고 구글번역기도 유사하게 "도덕에 있어서 파렴치하다"라고 문자 그대로 옮겼습니다.

네이버 파파고번역기
구글번역기

두 번역기와 네이버 스페인어사전 (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양심의 가책을 뜻하는 관용구 '가슴이 찔리다' 또는 '속이 저리다'를 두고 문자적인 뜻에 매달리는 번역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tener alguien un corazón que no le cabe en el pecho는  "도량이 넓다", "통이 크다"라는 비유로 옮겼지만 '가슴이 넓다', '속이 깊다/크다' 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거나, 아리거나, 찢긴다는 뜻의 clavarle/clavársele a alguien en el corazón algo는 "슬프게 하다"라고 간단하게 풀이했습니다. DRAE는 단순하게 슬픈 것이 아니라 "Causarle, o sufrir, gran aflicción o sentimiento 아주 큰 고뇌나 슬픔을 야기하거나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설명한 바대로  -가슴이 미어지다, 가슴이 아리다, 가슴을 찢다, 창자가 끊어지다, 간장을 끊다-입니다. 

외국어를 번역한 사전은 외국어 관용구와 비유 표현을 그에 해당하는 우리말 관용구와 비유 표현으로 번역하는 게 적절합니다. 상응하는 관용구나 비유 표현이 우리말에 없을 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사전의 임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사전의 번역은 소설이나 시 번역이나 기타 다른 통번역의 조건과 맥락에 맞게 조절이 될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바탕에 우리말 표현이 적재적소로 다옥하지 않으면 원어의 개념에 상응하는 한국어 개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말의 풍부한 자원을 넉넉하게 쓰지 않은 사전의 정형화된 풀이는 우리말을 메마르게 하거나 '번역투'의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외국어사전- 영한사전, 서한사전, 한서사전, 한영사전, 불한사전 따위 -이 외국어의 낱말과 비유 표현의 개념에 상응하는 우리말의 낱말과 비유 표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시급하고 의미 있는 작업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