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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학, 미술, 역사

율리시스, 성체배령 - 신도는 '달갑지 않은 위안' 제병

by brasero 2025. 6. 29.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 5장, 만성성당 All Hallowes에서 블룸이 목격하고 생각한 성체성사의 마지막 얘기이다. 그는 펜팔을 하는 여자 마사의 편지를 읽고 성당으로 들어와 15분을 보냈는데 가장 먼저 본 것은 신도회가 열리고 있었고 신도들이 신부로부터 성체를 배령하는 성체성사였다.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신도들에게 신부는 일일이 지나가며 성체 a communion (제병)를 입에 넣어 준다. 성체. 육체. 시체 Corprus. Body. Corpse.란 생각과 식인종 cannibals를 떠올렸다.

성체가 위에서 녹기를 기다리는 신도를 보며 가톨릭교의 성체란 유대교의 무효모 빵인 마차 mazzoth와 제단에 6단으로 2줄 12개를 유향과 함께 올리는 제단 빵 shewbread인 셈이고, 동시에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막대사탕 lollipop이나 싸구려 아이스크림 hokypoky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제병이 예수의 몸이라고 하는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는 순전히 믿음에 달려 있다고 하며 성모출현의 기적이 일어났던, 가톨릭교의 순례지인 프랑스의 루르드 Lourdes의 병을 치유하는 '망각의 물 waters of oblivion', 아일랜드의 노크 Knock 등을 떠올렸다. 이런 기적이 거짓이 아니듯 제병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육체와 피라는 성변화도 거짓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랑스 루르드 성모 출현 동굴과 성당

조이스는 대서양 건너 1513년 멕시코의 멕시코시타 떼뻬약산에서 발현한 과달루뻬 성모는 언급하지 않았고, 1917년에 포르투갈 시골 아이들에게 출현한 파티마 Fátima 성모를 알았을 것 같으나 소설에 추가하지 않았다. 스페인에도 성모가 출현했다는 곳이 있는데, 북부 깐따브리아주 산 세바스띠안 San Sebastián 주위의 산골 마을 가라반달 Garabandal인데, 네 소녀들에게 1961-1965년까지 성모가 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루르드, 노크, 파티마, 과달루뻬처럼 교단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조이스 사후에 일어난 일이다.  

믿음, 맹신 Blind faith를 생각하다 블룸은 사제의 레이스 의복의 뒤에 새겨진 '유태인의 왕, 나사렛 예수'란 뜻의 라틴어 약자 I.N.R.I.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은 Iron nails ran in '쇠못이 뚫고 지나갔다'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인류의 구세주 예수'의 라틴어 약자 I.H.S. (Iesus Hominum Salvator)는 'I have sinned. 난 죄를 지었어.' 또는 'I have suffered.  난 고통을 겪었어.'일 것이라고 아내에게 설명한 것을 기억했다. 

둥근 과자 모양은 제병 a communion,성배 chalice, 사진 www.elcolombiano.com

이후 펜팔을 하는 여자, 마사가 블룸을 만나고 싶다는 편지 내용과 이 성당에서 성체성사를 하며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하나인 1882년 피닉스공원 암살 사건을 계획한 주모자인 독실한 신자 제임스 캐리 James Carey를 생각했다. 블룸은 주모자의 이름을 올바르게 떠올리지 못했지만 캐리가 사건 후에 검거되어 동료들을 배신한 것에서 충실한 가톨릭교의 신자에서 독립투사로, 이 독립투사가 결국 배신자가 되어버린 모순을 곱씹어보았다.

이제 성체배령의 마지막 단락이다.

The priest was rinsing out the chalice: then he tossed off the dregs smartly. Wine. Makes it more aristocratic than for example if he drank what they are used to Guinness’s porter or some temperance beverage Wheatley’s Dublin hop bitters or Cantrell and Cochrane’s ginger ale (aromatic). Doesn’t give them any of it: shew wine: only the other. Cold comfort. Pious fraud but quite right: otherwise they’d have one old booser worse than another coming along, cadging for a drink. Queer the whole atmosphere of the. Quite right. Perfectly right that is.

신부는 성배를 부셨고 뒤집어 찌꺼기를 말끔하게 닦아냈다. 포도주. 기네스 흑맥주나 휘틀리주점의 더블린 홉주나 캔트렐 앤드 코크런의 진저에일(유향)과 같이 평소 마시던 무알코올 음료보다 더 귀족적으로 보이지. 신도들에게는 마시라고 주지 않아. 성체 포도주를 주지 않고 제병만 주지. 즐겁지 않은 위안. 신성한 속임수이지만 꽤나 옳은 일이야. 그러지 않으면 술고래 영감이 한 잔 더 달며 애걸복걸 뒤따를 것이다. 그러면 분위기는 이상하게 되어 버려. 바른 결정이지. 완전히 옳은 일이야. (필자 옮김)

기네스 흑맥주 porter, 사진 www.cnbc.com

신도들에게 제병 a communion을 입에 넣어주고 나서  신부는 성배에 담긴 포도주를 마시고 천으로 깨끗하게 닦는 모습을 보고 왜 굳이 포도주이어야만 할까라고 반문한다.  있어 보이니까. 우아해 보이니까. 귀족처럼 보이니까. 서민들이 늘 마시는 기네스 흑맥주, 홉주, 진저에일은 예수의 피가 될 수 없음이 서운한 듯하다. 게다가 신자에게는 포도주를 주지 않는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하지만 아일랜드 가톨릭교는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에서 신도는 제병만 영하고 신부는 제병과 포도주를 마신다. 

신자는 성체 포도주 shew wine을 마시지 않고, 오직 다른 것 only the other 즉 제병 a communion만을 먹는데, 그러면 재미가 없는, 즐겁지 않은, 달갑지 않은 위안 cold comfort일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준다. 매마른 입에 약간의 알코올은 몸을 데우는 위안을 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포도주를 주다 보면 더 달라고 조르는 술꾼이 나타날 수 있고 그러면 엄숙한 성체성사가 웃을 수도 없는 별쭝난 해프닝으로 흘러갈 수 있으니 안 주는 게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SoCo라고 하는 미국의 위스키 1874년부터 제조된 Southern Comfort, 이 술은 갑작스런 위안 sudden comfort를 준다.

성체배령의 마지막 단락은 ≪율리시스≫가 자주 그렇듯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 가령 진지함과 희극성은 함께 있고, 신성함과 신성모독이 서로 배척하지 않아 반대편이 있어 빛이 난다. 독이 곧 약이 되듯, 똥이 세탁을 하듯, 죽음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죽음이 있듯, 웃음 속에 울음이 있고, 비극이 희극이듯 희극이 비극이듯, 남자가 여자이고 여자가 남자이듯, 애가 어른이고 어른이 애 같듯, 고생이 낙이고 낙이 고생이듯, 술이 물이고 물이 술이듯, 사랑은 미움이고 미움은 사랑이듯, 부먹이 찍먹이고 찍먹이 부먹이듯, 행복이 불행이고 불행이 행복이듯, 싱거운  그 사람 얼마나 짰는지 짠 그 사람 얼마나 싱거웠는지, 고양이가 개 같고 개가 고양이 같고, 서울대 법대 출신 정의가 시골 꼬마의 정의보다 못하고, 산골 노점상 할머니 나물이 중국산 수입이고, 천재가 바보이고 바보가 천재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