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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학, 미술, 역사

율리시스, 피닉스공원 암살 Phoenix Park Assassinations

by brasero 2025. 6. 26.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5장, 블룸은 펜팔을 하는 여자 마사의 편지를 우체국에서 받아 컴블랜드가에서 편지를 읽고 나서  뒷문으로 만성성당 All Hallows에 들어와 신도회가 열리고 제병을 영(領)하는 성체성사 communion가 실시되는 것을 보았다.

제병 영어 host, 라틴어, 스페인어 hostia, 사진 www.holyart.es

성찬식을 마치자 블룸은 펜팔을 하는 여자 마사가 편지에서 묵주기도 후 어느 일요일에 그를 만나기를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동시에 이 성당에서 아침마다 미사를 마치고 성찬식을 했던 아일랜드 독립투쟁 단체인 무적혁명단 the invincibles의 캐리 Carey를 떠올렸다.

That fellow that turned queen’s evidence on the invincibles he used to receive the, Carey was his name, the communion every morning. This very church. Peter Carey, yes. No, Peter Claver I am thinking of. Denis Carey. And just imagine that. Wife and six children at home. And plotting that murder all the time. Those crawthumpers, now that’s a good name for them, there’s always something shiftylooking about them. They’re not straight men of business either.

무적혁명단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그 사람은 그것을 받곤 했지, 그의 이름은 캐리, 매일 아침 성찬식을 했어. 바로 이 성당에서. 피터 캐리, 맞아. 아니야, 나는 피터 클레이버를 생각하고 있어. 데니스 캐리. 생각해 봐. 집에 아내와 여섯 명의 아이들. 늘 살인을 계획했어. 이런 독신자들, 이름이 잘 어울려, 이들은 뭔가 늘 꿍꿍이가 있어. 이 사람들은 확실한 사업가도 아니냐. (필자 옮김)

캐리는 피닉스공원 암살의 주모자 제임스 캐리 James Carey(1845-1883)이다. 피닉스공원 암살 또는 무적혁명단 암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일환으로 1882년 5월 6일 토요일 늦은 오후 더블린의 피닉스공원 Phoenix Park에서 아일랜드의 총독 chief secretary, 영국인 프레드릭 카벤디시 Frederick Cavendish 부총독 under-secretary, 아일랜드 사람, 토마스 버크 Thomas Burke(우리나라의 매국노 이완용 같은 인물)가 칼로 살해된 사건이다. 조이스가 이 사건의 주모자 제임스 캐리를 모를 리 없지만 블룸은 헝가리계 유태인 혈통으로 아일랜드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방인임을 부각하기 위해 블룸이 바른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의도적 오류를 설정했다. 피터 캐리는 제임스 캐리의 동생이고, 피터 클레이버는 남미 콜롬비아의 까르따헤나에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에게 세례를 하며 선교를 한  17세기 스페인의 가톨릭교 예수회의 사제이다. 데니스 캐리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 제임스 캐리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블룸을 강조하기 위해 조이스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

사진 The Irish Times, Wed Jan 12 2022 -

사건 이후 제임스 캐리는 검거되어 명예롭게 행동하기 보다는 암살 가담자 동료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고 turned queen’s evidence 그 때문에 5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제임스 캐리는 독실한 가톨릭교 신자였고 자식과 아내가 있었다. 그와 같은 독신자 crawthumpers가 예수의 몸, 성체, 제병을 수령하는 성찬식을 경건하고 열성적으로 하면서 피를 부르는 살인을 계획하고 암살을 주도한 것은 모순(아이러니)이자 역설(패러독스)이다. 이런 사람의 표정은 늘 속임수를 쓰는 교활한 always something shiftylooking 데가 있고 장사를 해도 정직하고 성실한 장사꾼이 아닐 것이고 생각한 것이다. 

제임스 캐리, 누가 그렸는지 모름, 사진 Wikimedia Commons

제임스 캐리가 동료를 밀고한 것은 아내과 여섯 명의 자식(주 1 더보기)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더블린의 시의회의원으로 시장 후보로 거론되었고 아일랜드 공화국 형제단(IRB)의 단원이었고 무적혁명단을 설립한 정의롭고 충실한 가톨릭 신자가 신의를 저버린 것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와 독립을 원하는 아일랜드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조이스는 이런 당시의 정치와 종교과 배신을 블룸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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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런던타임스 London Times에 실린 제임스 캐리의 아내 인터뷰 기사(1883년 2월 20일)에 따르면 자식은 일곱 명이고 막내는 2개월 아기였다고 했다. John Hunt에서 재인용. 

물론 제임스 캐리의 밀고에는 다른 공범자가 자백할 것이라는 범죄자의 딜레마를 이용한 수사관 존 말론 John Mallon의 계략이 있었다고 하지만 조국과 민족의 이익을 위해 거사를 집행한 주모자가 명예를 버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배신의 대가로 그는 정부의 비호 아래 아일랜드인의 조롱과 무시와 비난과 위협을 피해 식구들을 데리고 새 삶을 찾아 떠났다. 가족을 동반한 그는 수염을 밀어버리고 다른 변장을 하지 않은 채, 아내의 결혼 전 성인 Power로 신원을 세탁해서, 영국령인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1883년 7월 29일에 케이프타운에서 나탈 Natal로 가는 선박에 승선했다. 이전 선박 여행에서 안면을 튼 벽돌공이자 아일랜드 공화주의자인 패트릭 오도넬 Patrick O'Donnell이 제임스 캐리의 정체를 알았고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사살했다. 그는 김종건이 주석에서 언급했듯 "암살사건 후에 발각되어 교수형"을 당해 죽지 않았다.

김종건 <율리시스> 2016, 715쪽 어문학사

그의 장례를 집행할 신부가 없었고 아일랜드는 그의 모형을 불태우며 환호했다. 그의 자식 일부는 모친과 함께 영국으로 갔고 그의 세 아들은 영국 육군과 해군과 프랑스 육군에 입대했다. 제임스 캐리를 죽인 패트릭 오도넬은 영국으로 소환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1883년 12월 17일 교수형으로 세상을 버렸다.

▶제임스 캐리는 남아프리카에서 사살되었다는 기사 - 아일랜드 타임스 신문 The Irish Times, 2022. 1. 22. - 다섯 명의 무적혁명단은 그 결과 처형당했고, 지도자 제임스 캐리는 밀고자였고 남아프리카에 새 인생을 시작하려다 사살되었다. 염소 껍데기 Skin-the-Goat, 도주 마차를 운전했던 자는 16년 형을 살았고 1890년도에 석방되었다.

아일랜드 타임스, 2022, 1. 22 기사

▶제임스 캐리는 패트릭 오도넬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 아일랜드 인명사전 Dicitionary of Irish Biography - 7월 29일 케이프타운에서 나탈로 가는 멜로스 Merlos라는 배에 승선했고, 그가 사용했던 Power란 이름은 악명 높은 캐리임을 다 알게 되었다. 패트릭 오도넬, 이전 항해에서 친구가 된 페니언의 지지자(아일랜드 공화주의자)는 그와 함께 승선했고 1883년 7월 29일 배에서 캐리를 사살했다. 

아일랜드 인명사전, James Carey, www.dib.ie

▶뉴욕 타임스 1883. 7. 31. 제임스 캘리 총격 사망 보도 

출국 금지륻 당해 망명도 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위대한 검찰독재정권의 설립자이시자 민족 부흥과 국가 증진 충정에서 고심 끝에 일으킨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은 공익을 먼저 생각했던 제임스 캐리와 비교할 수 없고, 사익을 위해 내란을 일으킨 것과 따르던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배신했다는 점에서 캐리보다 천 배나 더 졸렬하고 비겁하다. 제임스 캐리에게는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기에 배신에 일말의 동정을 얻을 수 있었지만 영광스러운 윤석열과 김건희께서는 찬란한 댕댕이만 수두룩해서 누가 배반의 짐을 덜어주고 회한의 눈물을 닦아주려나. 배반했다는 양심이나 눈물이나 회한이란 게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특검이 제임스 캐리에게 먹혔던 경찰 말론이 사용했던 공범의 딜레마 수사 기법이든 무엇이든 다 동원해서 내란 세력들과 권력을 등에 업은 위법과 탈법을 소소하게 밝혀내길 바란다. 

≪율리시스≫에 무적혁명단의 암살사건은 5장뿐만 아니라 7장, 12장, 16장에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7장의 사례를 소개하고, 12장 조 브래디의 교수형과 사후 발기(교수형을 당한 그가 숨이 끊어진 후 음경의 발기), 16장 마부 휴게소와 피닉스공원 암살 사건은 각각 다른 글로 알아본다.

7장에  신문의 편집장, 마일즈 크로프트 Myles Crawfort가 스티븐에게 기자 갤러허가 미국의 신문에 이 사건의 관련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서 유명하게 되었고 펜의 힘을 보여준 유례없는 저널리즘의 성과를 올렸다고 칭찬을 하는 장면이 있다.  

That was in eightyone, sixth of May, time of the invincibles, murder in the Phoenix park, before you were born, I suppose. 81년이었어, 5월 6일, 무적혁명단의 시기, 피닉스공원의 암살, 네가 태어나기 전이지, 아마. 

마일즈가 사건이 일어난 1882년을 1881년으로 착각했다. 아니면 조이스의 오류일 수 있지만 중대한 사건의 년도를 오해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면 오류는 의도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이 사건을 미국신문에 알린 것은 저널리즘의 위대한 본보기라고 했지만 진작 사실이 맞지 않다는 것에서 기자의 자격도 없는 허세를 비판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레기를 보라. 사실을 취재하지 않고 받아쓰기와 추리와 억지와 관심법을 쓰며 오염된 자판을 두들기는 박쥐 같은 기자,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에게 사실을 바로 알리고 심층취재로 사건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공익을 앞세우기보다 자신과 언론사의 이익에 따라 재단한 기사를 밥 먹듯 쥐약을 먹은 듯 무감각하게 죄의식 없이 권력에 취해 쓰레기를 양산하는 기레기들을 조이스는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스티븐은 1882년에 태어났으니 마일즈는 이 사건이 정확하게 1881년에 발생한 것이라고 사실을 오인하고 있다. 마일즈는 말을 이었다.

Tim Kelly, or Kavanagh I mean. Joe Brady and the rest of them. Where Skin-the-Goat drove the car. Whole route, see? 팀 켈리 또는 카바나 말이야. 조 브래디와 나머지 사람들. 염소 껍데기가 마차를 몰았던 곳. 전체 노정, 알겠어?

9명의 가담자 중 일부를 말했는데, 팀 켈리는 20세로 교수형을 당했고, 카바나는 사건현장을 벗어나는 마차 마부로 제임스 캐리처럼 동료에게 불리한 진술로 배신을 한 자이고, 조 브래디는 총독 카빈디시를 찌른 자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특히 조 브래디는 제임스 캐리의 친구이고 제임스 캐리 아들의 대부이기도 했다. 염소 껍데기는 현장을 벗어나는 마차의 노정을 혼란시키는 마차를 몰았던 마부의 별명으로 본명은 제임스 피츠해리스 James Fitzharris이다.

위 마일즈의 말에 오머든 버크 씨가 말하기를, 염소 껍데기는 피츠해리스이지. 그는 마부 휴게소를 버트 다리 아래에 있다고 그래요. 홀러헌이 제게 말했어요. 당신 홀러헌을 아세요?

—Skin-the-Goat, Mr O’Madden Burke said. Fitzharris. He has that cabman’s shelter, they say, down there at Butt bridge. Holohan told me. You know Holohan?

피츠해리스가 염소 껍데기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그의 염소가 말의 목사리에 있는 짚을('목사리'는 말의 목에 두르는 장구로 옛날에는 짚으로 만들었다.) 자꾸  빼먹는 바람에  죽여 가죽을 벗겨 무릎을 덮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염소를 죽여 가죽을 팔아 술값을 했다는 데서 '염소를 벗겨라'라는 의미의 'Skin the goat' 염소 껍데기'가 되었다. 사실 법정에서 그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이륜마차 jaunting car와 말 목사리

붉은색 화살표, 말의 목사리(collar) 사진 commons.wikimedia.
짚으로 만든 말 목사리, 사진 www.agriculturalmuseums.org

염소 껍데기는 마부 휴게소의 주인이라고 했고, 소설의 16장에 블룸과 스티븐이 이 마부 휴게소에 들려 얘기를 나눈다. 그러나 사실 제임스 피츠해리스 James Fitzharris, 염소 껍데기는 마부 휴게소를 소유한 적이 없다. 

피닉스공원의 암살 사건은 보통,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The Phoenx Park Murders(직역, 피닉스공원 살인)로 알려져 있으나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나 민족주의자 시점으로는 The Phoenx Park Assassinations(직역, 피닉스공원 암살)이라고 한다. murder는 사적이고 범죄라는 뜻이 있는 반면 assissination는 공적이고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아일랜드에 자치권 Home Rule를 확보하려던 아일랜드 정치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 Charles Stewart Parnell과 영국의 수상 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 William Ewart Gladstone 간의 협상이 잠시 난항을 겪었다. 

피닉스공원 암살 사건의 현장- 십자가 표시 , 사진 www.irishmirro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