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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시

나그네 -안토니오 마차도 El viajero - Antonio Machado

by brasero 2019. 10. 17.

안토니오 마차도 (레안드로 오로스 Leandro Oroz 그림)

나그네

어두운 거실에 그는 우리와 함께 있다
사랑하는 아우
어느 맑은 날 유년의 꿈을 안고
먼 나라로 떠난 그를 보았다.

오늘 벌써 관자놀이 머리는 은색이고
초췌한 이마 위의 머리도 희끗하다.
근심에 젖은 차가운 그의 눈길에
늘 자리를 비운 영혼이 으른거린다.

오래되고 울적한 공원에
가을 잎사귀가 떨어진다.
축축한 유리창 너머 오후는
거울 속 깊이 어린다.

아우의 얼굴이 부드럽게 빛난다.
꽃 핀 환멸은 저무는 오후에
황금빛으로 물들었는가?
새해 마다 새로운 삶을 열망하는가?

잃어버린 청춘을 슬퍼하는가?
불쌍한 암늑대는 죽었고 멀리 있다.
결코 살아본 적이 없는 하얀 청춘을
문앞에서 노래불러야 하기에 두려운가?

꿈을 이루지 못한 대지의
황금빛 태양에 미소짓는가?
바람에 부풀린 빛나는 흰 돛으로
웅성이는 바다를 건너는 그의 배를 보는가?

아우는 보았다
굴러가는 노란 가을 잎사귀를.
향기나는 유칼립투스 나뭇가지와
다시 하얀 장미를 틔우는 장미덤불을.....

아쉽고 믿을 수 없어 괴롭지만
한 떨기 눈물은 얼어붙고
그래도 남자라는 위선이
창백한 아우의 얼굴에 새겨진다.

근엄한 초상화는 여전히 벽에서 빛나고
우리는 말을 늘어 놓는다.
침울한 집에 시계가 똑딱
우리는 모두 입을 닫는다.

El viajero

Está en la sala familiar, sombría,
y entre nosotros, el querido hermano
que en el sueño infantil de un claro día
vimos partir hacia un país lejano.

Hoy tiene ya las sienes plateadas,
un gris mechón sobre la angosta frente,
y la fría inquietud de sus miradas
revela un alma casi toda ausente.

Deshójanse las copas otoñales
del parque mustio y viejo.
La tarde, tras los húmedos cristales,
se pinta, y en el fondo del espejo.

El rostro del hermano se ilumina
suavemente. ¿Floridos desengaños
dorados por la tarde que declina?
¿Ansias de vida nueva en nuevos años?

¿Lamentará la juventud perdida?
Lejos quedó -la pobre loba- muerta.
¿La blanca juventud nunca vivida
teme, que ha de cantar ante su puerta?

¿Sonríe al sol de oro
de la tierra de un sueño no encontrada;
y ve su nave hender el mar sonoro,
de viento y luz la blanca vela hinchada?

Él ha visto las hojas otoñales,
amarillas, rodar, las olorosas
ramas del eucalipto, los rosales
que enseñan otra vez sus blancas rosas

Y este dolor que añora o desconfía
el temblor de una lágrima reprime,
y un resto de viril hipocresía
en el semblante pálido se imprime.

Serio retrato en la pared clarea
todavía. Nosotros divagamos.
En la tristeza del hogar golpea
el tictac del reloj. Todos callamos.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1875-1939)의 시집 <고독, 회랑, 다른 시 Soledades, Galerías, Otros poemas, SGOP>(1907)에 가장 먼저 실린 시다. 1907년 <아테네오 Ateneo> 4호와 <르네상스 Renacimiento> 3월호에 발표된 시이다.

전체 9연으로 된 시 <나그네>는 1연에 오랫동안 먼 나라에 있던 형제가 돌아왔고 (마차도의 종조부와 남동생 호아낀은 과테말라에 산 적이 있다), 2연-8연까지 그의 외모, 유년기 회상, 실망, 실패한 청춘, 고난, 가을 풍경 등 여러 기억이 신비스럽게 묘사되고, 마지막 9연은 다시 1연의 방으로 돌아온 구조로 되어 있다. 은유나 상징이 조금 어렵지만, 전체 상황을 쉽게 이해하자면, 거실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형제자매 중 하나가 세상을 경험하고 인생을 위하여 외국에 가 살다가, 오랜 부재 끝에 돌아왔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 그를 보니 많이 늙었고, 이루지 못한 꿈을 감춘 얼굴을 하고 있고, 밖에 가을 낙엽은 구르고, 자연은 그렇게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얀 청춘'이 아쉽고, 먼 나라에 삶을 믿고 허송세월을 한 것이 회한이 들지만 애써 기개를 비쭉거리고, 다시 식구들은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는 동안, 괘종시계가 똑딱거리며 가고, 다시 모두 침묵에 빠져든다.

대상을 관조하는 사색가 마차도의 앵티미즘으로 내적 성찰이 돋보이는 시인데, 폴 베를렌처럼 인상주의적 외부 풍경이 시인 내면의 풍경으로 투영된 수작이다. 특히 빛과 어둠으로 수시로 변하는 외부 묘사로 의미가 극대화되고 있다. 맑은 날, 은색 관자놀이 머리, 꽃 핀 환멸, 황금빛 태양, 하얀 장미, 하얀 돛, 노란색 낙엽 따위의 밝은 이미지가 어두운 거실, 울적한 공원, 축축한 유리창, 먼 나라, 지는 오후, 죽은 암늑대, 눈물, 위선 등의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와 섞여 마음에 색을 입히고 있다. 

모더니즘의 흔적이 보인다. '울적한 공원', '가을' 은 베를렌의 상징주의적 모더니즘의 소재이다. '시계가 똑딱'은 시간의 덧없음을 포착한 것이다. '유년의 꿈' '살아 본적이 없는 하얀 청춘', '잃어버린 청춘', 은 마차도 자신의 청춘을 회상하는 것일 수 있지만, 이런 인간의 시간이 '오후', '황혼', '다시 장미를 틔우는 장미덤불' '가을 잎사귀''라는 자연의 시간, 그 섭리 앞에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거울'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어하는 현재의 반면교사이다. '불쌍한 암늑대'는 죽어 멀리 있다. 무얼 상징할까? 로마 건국 신화의 카피톨리노 늑대라면, 멸망한 로마 제국이고, 이는 19세기말 미서전쟁의 패배, 식민지를 잃은 스페인의 추락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낙엽, 나무, 바다, 바람처럼 자연의 일부인 늑대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