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에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보바리 부인 Madame Bovary≫(1857)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레오폴드 알라스 끌라린(Leopoldo Alas Clarín, 1852~1901)의 ≪판관 부인 라 레헨따 La Regenta≫(1884~1885)가 있다. 소설은 스페인 북부 아스뚜리아스주의 도시 베뚜스따(Vetusta)를 배경으로 왕정복고 시대 귀족계급과 성직자의 위선과 사회 계급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고 의사 보바리의 부인 엠마처럼 판관 부인, 아나 오소레스(Ana Ozores)의 권태와 일탈과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 1권 1장은 임시 종지기 비스마르크(Bismarck)가 성바실리카성당의 종루에서 종을 치는 장면과 함게 베뚜스따를 묘사한 구절이 있다. 베뚜스따는 상상의 도시이지만 스페인 아스뚜리아스(Asturias)주의 주도 오비에도(Oviedo)를 본뜬 것이고 성바실리카성당은 오비에도 중심부에 있는 오비에도산살바도르대성전(Santa Iglesia Basílica Catedral Metropolitana de San Salvador de Oviedo)이다.

합승 마차의 보조 마부였던 종기지 비스마르크는 종을 치며 눈을 지그시 감았고, 그의 친구 복사(服事, 미사를 보조하는 10대 소년) 셀레도니오는 종소리를 듣는다
....por encima de Vetusta a la sierra vecina y a los extensos campos, que brillaban a los lejos, verdes todos, con cien matices. [종소리는] 베뚜스따 위를 거쳐 수백 가지 빛과 어우러진 초록빛으로 저 멀리 빛나던 근처의 산과 드넓은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베뚜스따는 오비에도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자락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벌판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구체적인 지리를 묘사하고 있다.
Aquel verde esplendoroso con tornasoles dorados y de plata, se apagaba en la sierra, como si cubierta su falda y su cumbre la sombra de una nube invisible, y un tinte rojizo aparecía entre las calvicies de la vegetación, menos vigorosa y variada que en el valle. La sierra estaba al Noroeste y por el Sur que dejaba libre a la vista se alejaba el horizonte, señalado por siluetas de montañas desvanecidas en la niebla que deslumbraba como polvareda luminosa. Al Norte se adivinaba el mar detrás del arco perfecto del horizonte, bajo un cielo despejado, que surcaban como naves, ligeras nubecillas de un dorado pálido. Un jirón de la más leve parecía la luna, apagada, flotando entre ellas en azul blanquecino.
황금빛과 은빛과 어우러져 번쩍이는 그 눈부신 초록빛은 산에서 희미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은 구름의 그림자가 산자락과 산마루를 휘감아 버린 듯했다. 벌거숭이 땅을 벌겋게 드러낸 산은 계곡보다 나무와 풀이 다양하지 않고 무성하지도 않았다. 북서쪽으로 산이 엎드려 있고, 남쪽으로 시야가 확 트인 지평선이 뻗어져 있는데, 보얀 흙먼지처럼 빛나는 안개 속에 묻힌 산 그림자 때문에 지평선은 뚜렷하게 두드러졌다. 북쪽으로, 말간 하늘 아래 완벽한 아치 모양의 풍경 너머, 바다가 있었고, 하늘에는 엷은 금빛을 띤 가벼운 구름 이 떼를 지은 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가느다른 조각 하나가 파란 하늘의 구름 사이로 빛바랜 달처럼 둥둥 떠나니고 있었다.
푸른빛은 산에서 누그러졌고, 산은 초목이 무성하지 않은 언뜻언뜻 땅이 드러난 곳이 있고, 도시의 북서쪽으로는 산이 뻗어있고 남쪽은 지평선을 이룬 벌판이 있고 멀리 안개에 가린 산 그림자 때문에 지평선이 또렷하게 보인다. 북쪽으로는 아치를 그린 풍경 너머 바다가 있고 하늘에는 구름이 바다의 배처럼 흘러가고 있고, 떨어져 나온 구름 하나는 달처럼 지나가고 있다.
위 귀절을 창작과 비평사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tornasoles dorados y de plata에서 tornasol을 창비사는 해바라기(girasol, 아래 RAE 1번)로 번역했다. 하지만 tornasol은 부드럽게 변하는 색이나 빛이나 반사(RAE 2번)이기 때문에 초록빛은 '황금빛과 은빛으로 물든 해바라기들'과 어우러진다는 창비사의 번역 대신 '황금빛과 은빛과 어우러져 번쩍이는 초록빛'으로 옮길 수 있다.

도시의 북서쪽에는 산이 있지만, 남쪽에는 확 트인 수평선이 있다고 했다. 북서쪽에는 산이 있고 남쪽에는 갑자기 수평선이 있고 그 수평선 끝에는 안개에 가린 산이 있다고 했다. 북쪽은 아치 모양의 수평선 뒤에 바다가 있다고 했다. 즉 수평선이 있는 호수나 바다나 강 너머 바다가 또 있다고 옮겼다. 앞 단락에서 분명히 베뚜스따는 산과 벌판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라고 했는데 앞뒤가 맞지 않다. 위 단락에서는 '지평선'과 '풍경'인 horizonte를 '수평선'으로 오역했기 때문에 베뚜스따의 북서쪽은 산이고, 남과 북은 수평선이 뻗어 있는 바다나 광대한 강이나 호수가 있는 지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비에도의 북서쪽으로 나랑꼬산(monte Naranco)이 뻗어 있다. 남쪽으로 수평선 대신 벌판의 지평선이, 지금은 주거지로 변했지만, 19세기에 뻗어져 있었을 것이고, 남쪽 멀리 엘 아라모 산맥(Sierra del Aramo)이 보인다. 엘 아라모는 오비에도시에서 20km 떨어져 있으니 그 산자락 앞까지는 지평선을 이룬다. 산맥에서 최고봉은 가모니떼이로(Gamoniteiro) 산(1,791m)이다.


창비사의 번역에 의하면 오비에도 북쪽에는 수평선이 있는 바다나 호수가 있고 그 너머에 바다가 다시 있다고 했으나, 사실 북쪽 약 30km 거리에 북대서양이 있다. 북대서양 해안에는 바다의 수평선을 볼 수 있는 아빌레스(Avilés)와 히혼(Gijón)이란 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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