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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에 관용구 번역 - quedarse en el sitio 현장에서 죽다

by brasero 2023. 7. 26.

quedarse en el sitio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그 자리에 머물다'이다. 하지만 동사 quedarse는 '머물다'가  아니라 여기서는 '죽다'란 뜻이다. 주로 사고가 나거나 어떤 행위가 진행되고 상태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다'는 뜻으로 '죽다'란 의미이다. RAE(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는 quedarse en el sitio를 '현장에서 즉사하다', '어떤 행위를 하다 그 자리에서 죽다'라고 정의했다.

RAE 그 자리에서 죽다

이 관용구를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는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batalla piensa en mí ≫에서 사용했다. 

소설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 작가인 주인공 빅토르는 마르타라는 대학교수 유부녀와 로맨스를 즐기려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게 그녀가 몸이 아파 침대에서 죽어버린 황당한 사건을 통해서 쾌락 만능 사회, 생명을 구하지 못한 도덕적 자책, 비밀을 유지하는 고통, 삶과 죽음의 우연성 등을 그리고 있다. 

소설 10장의 첫단락은 주인공 빅토르가 동료인 대필 작가 루이베리스와 함께 경마장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빅토르는 루이베리스에게 마르타와 있었던 일, 어떻게 해서 그녀가 죽었는지 사건을 전말을 말해준다. 9장에서 빅토르는 이미 마르타의 여동생 루이사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런 루이사를 만나는 데 도움을 준 친구 루이베리스에게 보답으로 숨기고 있던 사실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Se lo conté distraídamente y también con aspaviento para que lo apreciara, se lo conté en dos patadas, a Ruibérriz no podía contarle un encantamiento. 'No jodas', decía de vez en cuando, '¿la tía se te quedó en el sitio?' Sí, para él era eso y no podía ser otra cosa, la tía se me había quedado en el sitio. 'Y encima no llegaste a mojar, hay que joderse', dijo un poco divertido por mi mala pata. Y era verdad que no había mojado, y quizá era mala pata. '¿Y era hija de Téllez Orati? No jodas', dijo también, recuerdo.

나는 그가 내가 하는 이야기에 고마움을 느끼도록 정신없이 손짓을 하며 떠뜰썩하게 말했고 속사포를 쏘듯 빠르게 말했는데 루이베리스에게 내가 그녀에게 홀렸다는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장난하는 거 아니지, 그 여자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 그는 가끔 말했다. 그랬다. 그에게는 다른 것보다 그게 중요했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넌 담그지도 못했지, 정말 재수가 옴 붙었군' 나의 불운에 조금 재미있어 하며 그는 말했다. 내가 담그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은 불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테예스 오라티의 딸이라고? 정말이지' 라고 그가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필자 번역)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가 내 이야기를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호들갑스럽게 제스처를 취해가면서 말했다,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떠들어댔다. 그러나 루이베리스에게 내가 뭔가에 홀렸다느니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정말이야? 여자도 그럴 생각이었어?" 그는 여러 차례 이렇게 물었다. 그랬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즉 여자도 섹스를 하고 싶었으냐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적시질 못했단 말이야? 정말 재수 되게 없었군." 그는 내 불행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적시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정말 운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 그 여자가 테예스 오라티 씨의 딸이었단 말이지? 진짜 웃기는군 이라고도 말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388쪽)

문지사는 루이베리스의 말  'la tía se te quedó en el sitio?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를 "여자도 그럴 생각이었어?" 즉 섹스를 할 생각이 있어냐?는 뜻으로 옮겼다. 두  번째 친구의 말에 대한 빅토르의 생각에 대한 서사, la tía se me había quedado en el sitio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명시적로  "여자도 섹스를 하고 싶었으냐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라고 옮겼다.

'현장에서 즉사하다 quedarse en el sitio'란 관용구 대신 문지사는 '섹스를 하고 싶다'라고 했는데, 글의 흐름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번역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원본의 논리는 Sí, para él era eso y no podía ser otra cosa, la tía se me había quedado en el sitio. 'Y encima no llegaste a mojar 그래, 루이베리스에게는 다른 것보다 그것이(섹스)가 중요했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넌 적시지도 못했어'에서 보듯 루이베리스에겐 섹스가 중요했지만,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y encima 게다가, 넌 담그지도 못한' 것이다.  

Collins 서영사전, quedarse en el sitio, die on the spot 그 자리에서 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