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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에 관용구 번역 - no ver la hora de 마음이 꿀떡같다

by brasero 2023. 7. 23.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batalla piensa en mí ≫(1994)는 여자가 사랑을 나누다 침대에서 남자의 팔에 안겨 죽는 비현실적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대학교수 유부녀 마르따는 집에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 작가인 주인공 빅또르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고 그녀의 어린 아들이 잠들자 옷을 벗기며 거사를 시작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는 몸이 아팠고 죽는 줄도 모르고 그의 팔에 안겨 죽어버린다. 그녀의 남편 데안은 런던에 출장을 가고 없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집을 빠져나온 빅또르는 신문 부고를 보고 마르따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친구 소개로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스페인 국왕을 접견하고 왕의 연설문을 대필하게 된다. 마르따의 아버지 집에서 원고를 작성하는 중에 그녀의 아버지와 홀아비가 된 그녀의 남편 데안과 그녀의 여동생 루이사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각자 헤어졌지만 루이사에게 관심이 생긴 빅또르는 그녀를 미행하다 그녀의 어린 조카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서 나오는 그녀와 맞닥뜨렸고 결국 언니 마르따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는다. 루이사는 이를  형부 데안에게 알렸고 그는 빅또르를 집에 초대해 아내의 죽음에 대해 설명을 듣고 본인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데안은 런런에 출장을 간 것이 아니라 애인 에바의 임신중절수술을 하기 위해 갔다. 하지만 에바는 데안을 잡아두기 위해 임신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화를 삭이며 데안은 에바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둘은 이층 버스에 올랐는데, 술에 취한 데안은 성을 참지 못하고 왈깍 그녀의 목을 조른다. 겁에 질린 그녀는 갑자기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도로 위를 질주하며 도망을 치다 택시에 받쳐 죽어버린다. 결국 데안도 빅또르나 마르따처럼 쾌락에 충실한 행위로 죽음을 야기한 인물이다. 

소설의 마지막인 11장은  빅또르와 데안이 데안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인데, 데안이 애인 에바와의 관계를 빅또르에게 털어놓는다.* (주 1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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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원본 소설은 장을 구분하는 숫자가 없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대부분은 장을 구분하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는데('장'을 묶는  큰 단위의 '부'는 로마 숫자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본 블로그의 다른 글에 올릴 것이다. 

간호원인 에바를 맥줏집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데안은 '정해진 일상에 도전하는 국지전(escaramuzas contra rutina diaria)'을 펼치듯 그녀의 집에서 몸을 섞는 향락에 빠져들었다. 습관이 되어버린 육체의 탐닉을 마친 후 한시바삐 그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no ve la hore de volver a casa) 때도 있었지만 금방 다시 그녀의 집에 들러 갈증을 해소하는 만남을 지속했다는 장면이다.  

Así que uno acaba demasiadas veces en la casa de ella y las despedidas se hacen cada vez más largas, son la reiteración y la clandestinidad lo que carga las cosas de significado, no ningún gesto ni ninguna palabra, es la carne la que da confianza y entonces los hábitos se confunden con los derechos, se los llama adquiridos, ridículo, uno no ve la hora de volver a casa y al mismo tiempo regresa a los pocos días allí de donde quiso irse y lo retuvieron más de la cuenta con caricias y besos y protestas de amor y lamentaciones, supongo que gusta y alegra saberse querido ('En los ojos ya pintada la cara del otro: permanezco demasiado tiempo a tu lado, te canso').

그렇게 결국 너무 자주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고 매번 작별이 길어졌오. 사랑스러운 몸짓이나 말이 아니라 은밀함과 반복적인 만남이 우리 관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육체는 우리에게 과도한 신뢰를 주게 되어  습관을 권리와 혼동을 하는데,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는 그 권리를 획득했다고 하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그녀의 집에 다시 가 껴앉고 입맞춤을 하고 사랑을 헤아려 달라는 볼멘 간청과 한탄을 듣게 되오. 아마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기꺼워하고 그 사실을 즐기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의 눈에 벌써 상대방의 얼굴이 들어 있다. 나는 당신 곁에 너무 오래 있었어, 당신이 지겨워졌어'). (필자 번역).

데안이 애인 에바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지속한 이유를 설명했다. 쾌락에 젖어버린 몸뚱이를 자제하지 못하고 그녀의 집에서 밀회를 지속했다는 것인데, 배설을 끝낸 다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굴뚝같다고(uno no ve la hora de volver a casa) 했지만 언제 그랬냐 하며 며칠  후 다시 그녀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했다.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래서 점점 더 자주 그 여자의 집에서 하루를 끝맺게 되고 작별 인사가 갈수록 길어지게 되면서, 그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어떤 제스처나 말이 아니라 반복과 비밀이오. 육체관계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믿음을 주고, 그러면 습관과 권리를 혼동하게 되오. 사람들은 '획득된 권리'라고 부르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우리는 집을 떠나고자 염원하며 집으로 돌아갈 간을 보지 않지만, 며칠만 지나면 바로 우리가 떠나고자 했고, 애무하고 키스하고 사랑을 호소하고 흐느끼면서 우리를 붙잡었던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오. 나는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한 사람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의 눈이 새겨져 있어. 난 당신 곁에 너무 오래 머물렀고, 그래서 당신이 지겨운 거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440~441쪽). 

no ver la hora de는, 위 문학과 지성사가 오역했듯, 문자 그대로 '~할 시간을 보지 않다'는 뜻이지만, 아래 RAE가 정의했듯, 어떤 일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조하는 관용구이다. 즉 '마음(생각)이 꿀떡같다' 또는 '마음이 굴뚝같다'란 의미이다. 이 관용구는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RAE no ver la hora de 뜻풀이 - 어떤 일을 하거나 시행된 것을 확인하는 때가 오기를 바라는 욕망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의 'no ver~' 관용구 여덟 개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 8개 no ver~ 관용구

자세히 보면 문지사는 "떠나고자 염원하며"란 표현으로 촌각을 지체할 수 없이 어서 그녀의 집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비추었지만 바로 이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보지 않지만"이란 군더기로 빨리 떠나고 싶은 긴급한 마음을 상쇄해 버렸다. 관용구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표현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문지사의 "우리는 집을 떠나고자 염원하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보지 않지만"란 구절을 다시 읽으면, 관용구의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아니, '마음이 굴뚝같다, 꿀떡같다'는 표현을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떠날 것을 염원하면 ('염원한다'는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하다'는 뜻이다) 번역은 그나마 적절한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보지 않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문지사의 위 오역은 1장에 연인들이 섹스를 마친 후 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장면에 no ven la hora de를 "시간을 잊었을 것이며"라고 옮긴 오역과 사뭇 결이 다른 오역이다.

Algunos amantes se estarían tal vez despidiendo, no ven la hora de volver a solas cada uno a su lecho, el uno abusado y el otro intacto, pero todavía se entretienen dándose besos con la puerta abierta -es él quien se va, o ella - mientras él o ella esperan el ascensor que llevaba ya quieto una hora sin que lo llamara nadie, desde que volvieron de una discoteca los inquilinos más noctámbulos...

몇몇 연인들은 아마도 서로 작별을 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 침대로 돌아갈 시간을 잊었을 것이며, 두 사람의 침대 중에서 하나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밤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디스코텍에서 돌아온 뒤에 한 시간 넘게 꼼짝하지 않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문 앞에서 키스를 하며 마지막 즐거움을 만끽한 다음 헤어졌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32쪽)

"돌아갈 시간을 잊었을" 것이라는 번역이 이 연인들을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진실로 사랑하며 육체관계를 즐기는 선남선녀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정사를 마쳤으니 얼른 각자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관용구의 의미로 읽으면 연인들은 육정을 탐하는 가짜 사랑을 하는 남녀일 여지가 있다.**(주 2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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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2. 물론 잠자리를 한 다음 각자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사랑은 진실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한다는 사랑의 원형에 비추어 보면(이런 원형이 있어야만 사랑이 고귀해지는가), 얼른 나 자신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사랑을 빙자한 쾌락을 즐긴 가짜 사랑일 수 있다. 그러면 악마를 천사로 둔갑시키듯 오역은 인물의 성격을 뒤바꿔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amante는 혼외 관계를 맺은 사람 즉 정부(lover), 첩, 샛서방, 작은마누라, 불륜남, 불륜녀란 보편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위 단락의 남녀가 진정한 사랑을 하는'연인'인지, 성적 욕구만 해소하는 남녀인지, 아니면 몸만 사용하다 진짜 사랑이 생긴 사이인지, 역으로 정말 사랑했지만 육체만 밝히는 사이로 변해가는 연인인지, 아니면 육욕을 즐기지만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이인지, 반대로 몸 섞기를 추악하게 여기며 정신적 사랑만 하는 플라토닉 러브를 하는 사이인 사람이 관계를 맺은 것인지, 관계를 하고 싶지만 자존심이 상해 먼저 요구하지 못하는 섹스 리스 사랑을 하는 사이인 사람이 관계를 맺은 것인지,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도 괜찮다고 합의한 열린 관계(pareja abierta, relaciones abiertas)를 하는 사이인지, 육체를 혐오하지만 혼인을 해서 초기에는 잠자리를 했지만 이제는 관계를 하지 않지만 언제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혼인 외의 사람과의 정사를 생각하거나 거사를 위해 상대를 찾고 있거나, 이미 찾은 사람이거나, 내일 그 섹스 파트너를 만날 사람인지, 벌써 그 혼외 상대와 관계를 맺은 사람인지, 등등 한 마디로 이 세상에 가능한  모든 사랑을 뜻하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 

구절을 다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어떤 연인들은 어쩌면 작별을 고하고 있을 것인데, 한쪽은 엉망으로 흐트러지고 다른 쪽은 멀쩡한 그런 각자의 침대로 홀로 한시바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가는 사람이 남자이거나 여자일 것이며, 야행성인 건물 주민이 디스코텍에서 돌아와 사용한 다음 아무도 쓰지 않아 이미 한 시간째 멈추선 승강기를 기다리며, 현관문을 열어 둔 채 께지럭께지럭 입맞춤을 즐기고 있다.

일을 마쳤으니 각자 집으로 곧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한시가 급하지만 승강기를 기다리며 현관문을 열어 놓고 키스를 하며 꾸물거리고 있다. se entretienen, 동사 entretenerse는 '즐기다'와 '시간을 지체하다'는 뜻이 있다. 마리아스의 소설에는 한 가지 상황에 두 측면을 보여주는 이중어법이 흔하다. A이면서 동시에 B라는 태도를 취하는 낱말이 많아 실제로 인물이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지 확신을 할 수 없다. 두 연인이 어서 헤어지고 싶지만 키스를 진정 즐겼는지, 아니면 한시바삐 집에 가고 싶지만  빨리 오지 않은 승강기를 기다리며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없고 냄새가 나는 전혀  즐겁지 않은 키스를 꾹 참고 하고 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멀리 있는 승강기는 언젠가는 올 테니 지겹더라도, 입에 꾸린내가 나도, 조금 인내하며, 이왕 버린 몸, 키스나 즐기면서 꾸물거릴 수도 있다. 번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가능한 의미를 모두 담아내야 할 것이다. 

이 연인들이 소설의 주인공, 빅또르와 그의 로맨스 상대 마르따처럼 불륜 사이인지 아니면 진실한 사랑을 하는 관계인지 알 수는 없으나 행사를 마친 뒤 헤어지기를 안타까워하기보다 얼른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주 3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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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3. 진실한 사랑이 뭘까. 결혼을 전제로 한 사랑인가? 또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 벌써 헤어져야 하지만 다른 이유로 같이 사는 사이라면 사랑의 진실이란 게 있는가? 불륜에는 진실한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불륜과 진실한 사랑은 터무니없는 구분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장면 이후 이 연인들은 세 번 더 등장한다. 아래는 위 인용문과 같은 단락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renegados los besos de los amantes al cabo de unos meses o semanas más que traerán consigo, sin que se anuncie, la noche de la clausura - el adiós aliviado y agrio-...

몇 주나 몇 달 관계를 지속한 연인들은, 어느 날 밤, 어떤 예고도 없이 배신의 키스를 하며 종말을 맞이할 것인데, 씁쓸하지만 안심이 되는 작별을 할 것이다. (필자 번역)

잠자리를 하고 난 뒤 어서 각자 집으로 가고 싶은 연인들은 결국 몇 주나 몇 달 만에 헤어졌다. 그것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느 날 밤에  막을 내리는데, 쓰라리지만(agrio) 한편 마음이 놓인다(aliviado)고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한숨을 돌리는 이별이다. 시원섭섭한 기분, 아쉽지만 그다지 아쉽지 않고 시원하지만 흔쾌히 시원하지 않은 그런 느낌 말이다.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와 같이 번역했다.

연인들의 키스는 몇 달 아니 몇 주가 지나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지막 밤이 찾아와 가볍고 쓰라린 작별 인사를 하면서 종말을 맞을 것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1장 33쪽)

aliviado를 '가볍다'라고 옮겼다.  신중하지 않은 가벼운 결정으로 쓰라린 결별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괴롭지만 한편 한시름을 더는 작별이란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몸을 나누는 달콤한 만남을 지속하며 즐겼지만, 그 욕망을 끊어내려고 수없이 노력했고, 어렵사리 마침내 마음이 아프지만 헤어졌다. 쓴 이별이지만 육체에 매였던 자신을 단절할 수 있어 안도감이 든 것이다.  

2장에 이 연인들이 다시 언급된다. 아래는 마르따가 빅또르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 뒤 당황한 그는 자신이 그녀를 죽인 사람으로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죽음을 알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 장면이다.

... ni quien interrumpa la despedida de los amantes saciados que se demoran a la puerta del que se queda a la vez que ansían ya separarse, quizá en este mismo piso; porque nadie debe saber ni sabrá todavía que Marta Téllez ha muerto, tampoco llamaré anónimamente a la policía....

어서 헤어지기를 갈망하며 문 앞에서 꾸물거리며 작별을 하고 있는 식상한 연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며, 아마 이 연인들은 같은 건물에 사는지도 모른다. 지금 누구도 마르따 떼예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되고 미래에도 알면 안 되기 때문인데, 경찰에게 익명으로 전화를 하지 않을 것이고...(필자 번역).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처럼 옮겼다.

...헤어지기 싫어 현관 앞에서 키스를 반복하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연인들을 방해할 생각도 없어. 왜냐하면 그 누구도 마르타 테예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지금 알아서도 안 되고, 앞으로도 알면 안 되기 때문이야. 나는 익명으로 경찰서에 전화하지도 않을 것이고....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장 57쪽)

연인들은 ansían ya separarse '어서 헤어지를 열망하는' 사이인데 문지사는 '헤어지기 싫어'하는 연인이라고 반대로 번역했고, la despedida de los amantes saciado'물려버린 연인들의 작별'이지만 문지사는 '작별을 아쉬워하는 연인들'이라고 해서 정말 애틋하게 사랑하는 연인으로 바꾸어버렸다. 성욕을 넉넉히 채워 신물이 나고 각자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은 연인들이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입맞춤을 하며 우무럭거리고 있는 것을 역자는 순애보의 사랑을 하는 관계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문지사는 이 연인들은 같은 건물에 살고 있을 수 있다는 'quizá en este mismo piso'를 생략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연인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등장한다.

마르따가 죽은 뒤  빅또르는 집을 빠져나오려고 마음이 다급했는데 전화가 울렸고 당황한 그는 받지 않았다. 그녀의 다른 애인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자 자동응답기에 그 애인은 메시지를 남겼다. 남편이 없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가 저세상으로 가버린 것을 모르는 애인은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고자세로 나무라며 화를 냈다. 빅또르는 마르따에게 자신 이외에 잠자리를 같이 할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망과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o tal vez soy injusto y he sido tan sólo el segundo en la lista, pobre Marta, el que podría haber desplazado al primero tan imperativo si la noche hubiera sido en verdad inaugural, la primera de tantas otras que nos habrían llevado a entretenernos ante mi puerta con los saturadores besos de los amantes al despedirse, la primera de tantas otras que ya no aguardan en el futuro sino que sestearán para siempre en mi conciencia incansable, mi conciencia que atiende a lo que ocurre y a lo que no ocurre, a los hechos y a lo malogrado, a lo irreversible y a lo incumplido, a lo elegido y a lo descartado, a lo que retorna y a lo que se pierde, como si todo fuera lo mismo: el error, el esfuerzo, el escrúpulo, la negra espalda del tiempo.

… 아마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몰라, 나는 마르따의 리스트에 두 번째 남자였어, 가엾은 마르따, 오늘밤 정말 초야를 잘 치렀다면 나는 위압적인 그 애인을 대신할 수 있었을 것이며, 작별을 하며 물려버린 입맞춤을 하는 연인들처  우리도 내 문 앞에서  께지럭께지럭 즐길 수많은 밤을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미래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내 의식에서 잠들 그런 수많은 밤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내 의식은 발생과 미발생, 성공과 실패, 불가역과 미완수, 선택과 파기, 귀환과 유실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받아들이지, 과오와 노력과 양심의 가책과 시간의 검은 이 서로 다르지 않듯 말이야. (필자 번역)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 나는 마르타 당신이 두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정말 오늘 나와 첫날밤을 보내려고 했다면, 나는 강압적인 첫번째 애인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 첫날밤은 현관 앞에서 우리가 안녕이라고 말하면서 욕망의 키스를 하염없이 즐기게 만들 수많은 밤의 시작이 되었을 것이며, 잠들 줄 모르는 내 의식에서 영원히 잠들 수많은 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거야. 그런 내 의식은 일어날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 내 사랑의 성공과 실패,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것과 깨어진 약속, 선택된 것과 거부된 것, 기억할 수 있는 것과 잃어버린 것을 모두 똑같은 것처럼 생각할 거야. 실수와 노력, 양심의 가책과 시간의 어두 이 모두 똑같듯이 말이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장 78~79쪽)

losaturadores beso(물려버린 입맞춤)은 행사를 치르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은 연인, 그러다가 얼마 후 헤어진 연인들의 식상한 키스인데, 문지사는 '욕망의 키스'라고 옮겼다.  침대 위의 마르따가 죽지 않고 빅또르와 합궁을 했더라도 그들은 이런 싫증난  키스를 교환하면서 승강기를 기다리며 작별을 꾸물거리는 쾌락 만능 육체파 연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원문의 의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la negra espalda del tiempo '시간의 검은 등' 또는 '시간의 어두 등'을 문지사는 '시간의 어두 등'이라고 오타가 분명한 오역을 했다.**** (주 4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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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 '시간의 검은 등(negra espalda del tiempo)'은 다른 말로 '시간의 뒷면, 시간의 검은 등(el revés del tiempo, su negra espalda)인데,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1611)의 12장에 밀라노의 공작 프러스페로가 딸 미란다에게 과거를 회상해 보라고 하며 말한 'In the dark backward and abysm of time(시간의 검은 뒷면과 심연)'을 마리아스가 번역한 말이다.  '시간의 검은 등(negra espalda del tiempo)'마리아스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번역과 스페인 문학을 가르친 경험으로 지은 소설 ≪올소울즈 Todas las almas≫(1989)에서 최초로 사용했다('올소울즈'는 옥스퍼드대학교에 속한 한 대학의 명칭이다). 이후  '시간의 검은 등(negra espalda del tiempo)란 표현은 ≪올소울즈 Todas las almas≫의 창작 과정을 설명한 소설 ≪시간의 검은 등 Negra espalda del tiempo(1998)의 제목이고,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la batalla piensa en mí≫(1994)에서 죽은 마르따의 환영에 시달리는 빅또르의 기억을 환기하며 경구처럼 반복했다. 소설 ≪당신의 내일 얼굴 2 춤과 꿈 Tu rostro mañana 2 Baile y sueño≫(2004)에서 '시간의  검은 등'은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29세에 요절한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의 불행하고 어둠에 싸인 삶과 죽음을 상징한다. 소설 ≪베르따 이슬라 Berta Isla≫(2017)에서 '시간의 검은 등'은 십 년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아 사망 판정을 받은 영국정보원에 근무하는 베르따의 남편 또마스 네빈슨과 베르따의 삶과 죽음을 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