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z는 '빛'이고 a la luz de는 '~에 비춰보면', '~을 고려하면'이란 뜻의 관용구이다. 영어의 in the light of에 해당하는 이 관용구는 판단의 근거인 '~의 관점에서', '~을 기준으로'이란 의미이다.
- Este procedimiento debe ser evaluado a la luz de la experiencia a efectos de implementar mejoras en el nivel de participación. 이 과정은 참석률을 향상하기 위해서 경험에 비춰 평가되어야만 한다.
이런 뜻의 a la luz de를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는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batalla piensa en mí ≫(1994)에 여러 번 사용했다.
소설의 5장은 주인공인 시나리오 작가 빅토르가 스페인 국왕의 연설문을 대필하기 위해 마르타의 아버지 테예스 씨와 함께 국왕을 접견하는 장면이다. 왕은 연설문에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정의와 입헌군주제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후, 밤에 잠을 자다 깨 텔레비전에서 본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물 팔스타프(Falstaff)가 주인공인 영화 ≪한밤의 차임벨≫(1966)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영국의 웨일즈 왕자인 할 왕자가 타락한 뚱보 기사인 팔스타프와 친구처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다 아버지 헨리 4세가 죽고 왕위를 계승하여 헨리 5세가 되자 새 사람이 되었다며 팔스타프를 추방해 버리는 배신을 다룬 코미디이다. 시나리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 1부≫, ≪헨리 4세 2부≫, ≪리처드 2세≫,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저본으로 작성되었으며 미국인 오슨 웰스(Orson Welles, 1915~1985)가 팔스타프 역을 하며 감독한 작품이다. 스페인의 아빌라 성벽 등 유명한 곳이 영국의 배경으로 사용된 스페인과 스위스 합작 영화이다.
소설 속에 빅토르를 만나고 있는 스페인 국왕은 영화 속에 헨리 4세가 놀고먹는 음탕한 난질꾼 아들을 걱정하면서 충고를 해주는 장면을 이야기 하고 있다.
'Dios sabe por qué atajos y retorcidos caminos llegué a la corona; cómo la conseguí, que Él me perdone', le dice justo antes de expirar. Sus manos están manchadas de sangre y no lo ha olvidado, quizá fue pobre y sin duda conspirador o asesino, aunque haga años que la dignidad del cargo lo haya hecho dignificarse y haya aparentado borrarlo todo superficialmente, al igual que el príncipe deja de ser disoluto cuando se convierte en rey, como si nuestras acciones y personalidad las determinara en parte la percepción que de nosotros se tiene, como si llegáramos a creernos que somos otros de los que creíamos ser porque el azar y el descabezado paso del tiempo van variando nuestra circunstancia externa y nuestros ropajes. O son los atajos y los retorcidos caminos de nuestro esfuerzo los que nos varían y acabamos creyendo que es el destino, acabamos viendo toda nuestra vida a la luz de lo último o de lo más reciente, como si el pasado hubiera sido sólo preparativos y lo fuéramos comprendiendo a medida que se nos aleja, y lo comprendiéramos del todo al término.
숨이 멎기 전에 헨리 4세는 '내가 왕관을 쓰기까지 어떤 지름길과 두름길를 걸었는지 하느님은 아시지, 내가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 알고 계시지, 하느님, 저를 용서하시길'라고 말했어. 그의 손은 피가 묻어 있었고 이를 잊지 않았는데, 그는 아주 딱한 처지였지만 음모와 살인을 저지르며 왕위에 올랐을 것이며 위엄 있는 왕위를 누린 세월이 그를 존엄하게 만들어버렸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방탕한 생활을 청산했듯 과거의 잘못을 겉으로나마 그럴듯하게 지워버렸어. 우리의 행동과 성격은 사람들이 우리를 인식하는 것에 부분적으로 결정이 되는 것처럼 말이네. 이것은 부지불식간 흐르는 시간과 우연이 우리가 사는 환경과 우리의 외양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과거에 우리와 다르다고 믿는 것 같아. 어쩌면 우리가 애써 지나간 지름길과 두름길이 우리를 바꾸었고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우리는 가장 최근의 삶이나 최후의 삶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거야. 과거는 현재의 삶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며 과거와 멀어질수록 과거를 잘 이해하게 되고 과거가 끝이나면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야. (필자 번역)
살육과 흉계로 왕이 된 헨리 4세는 왕이란 존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과거를 지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가장 최근 또는 최후의 인생(lo último o de lo más reciente)을 기준으로(a la luz de) 우리의 현재 인생을 판단한다(viendo toda nuestra vida)는 말이다.
문학과 지성사는 다음과 같이 옮겼다.
'내가 어떤 지름길과 우회로를 통해 이 왕관을 쓰게 되었는지 하느님은 알고 계신다. 내가 어떻게 이 왕관을 손에 넣었는지를 말이다. 하느님, 저를 용서해주소서!' 그의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런 사실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어. 가난했었지만, 음모와 살인을 통해 왕위에 오른 것 같았어.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왕이라는 존엄한 지위가 그를 영광스럽게 만들었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워버리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왕자가 왕관을 쓰자 방탕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말이네. 우리의 행동과 인격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무작정 흐르는 시간이 우리의 외부 상황과 우리의 의복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니면, 우리를 바꾸고 결국 그런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지름길이나 우회로를 통해 얻으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몰라. 우리는 가장 최근의 인생이 밝고 화사하면, 과거는 그런 인생을 누리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고 여겨. 그리고 과거가 멀어질수록 마치 그런 생각이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지.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02쪽)
문지사는 a la luz de를 '~을 기준으로', '~에 비추어'라는 관용구를 문자 그대로 '밝고 화사하면'이라고 오역했다 ."가장 최근의 인생이 밝고 화사하면 (a la luz de lo último o de lo más reciente) 과거는 그런 인생을 누리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고 여겨 (como si el pasado hubiera sido sólo preparativos)"라고 옮겼다.
8장에 빅토르는 마르타의 가족과 - 마르타의 아버지 테예스 씨, 그녀의 형부, 홀아비가 된 데안, 그녀의 여동생 루이사 - 점심을 먹고 난 뒤 헤어져 루이사를 미행하는 장면이다. 루이사는 올케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상점을 방문하는데, 여러 거리를 지나다가 빅토르는 그의 전처 셀리아일 수 있는 빅토리아라는 창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아래는 8장의 첫단락으로 빅토르가 루이사에게 사건의 전말을 고백하기 전에 어둠 속에 비밀스러운 존재가 된 자신과 과거는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스페인 국왕이 했던 말(5장)을 떠올리고 있다.
Y añadió: 'O son los atajos y los retorcidos caminos de nuestro esfuerzo los que nos varían y acabamos creyendo que es el destino, acabamos viendo toda nuestra vida a la luz de lo último o de lo más reciente, como si el pasado hubiera sido sólo preparativos y lo fuéramos comprendiendo a medida que se nos aleja, y lo comprendiéramos del todo al término'. Pero también es cierto que a medida que pasa el tiempo y nos hacemos viejos es menos lo que se oculta y más lo que recuperamos de lo que fue una vez suprimido, y es sólo por la fatiga y la pérdida de la memoria o la vecindad de ese término, la clandestinidad y el secreto y la sombra exigen una memoria infalible, recordar quién sabe qué y quién no sabe, en qué hay que disimular ante cada uno, quién está enterado de cada revés y cada envenenado paso, de cada error y esfuerzo y escrúpulo y la negra espalda del tiempo.
국왕은 덧붙였다.'어쩌면 우리가 애써 지나간 지름길과 두름길이 우리를 바꾸었고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우리는 가장 최근의 삶이나 최후의 삶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거야. 과거는 현재의 삶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며 과거와 멀어질수록 과거를 잘 이해하게 되고 과거가 끝이 나면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덜 감추게 되고 옛날에 말하지 않았던 것을 털어놓지. 피곤하거나 기억이 사라졌거나 우리의 삶이 종말에 가까워졌기 때문일 수 있고, 은밀함과 비밀과 어둠은 무오류의 기억이 필요하지. 누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각자에게 무엇을 숨겨야 하는 것인지, 누가 독약이 묻은 길과 뒤안길을 아는지, 누가 우리가 저지른 오류와 우리가 했던 노력과 우리가 느꼈던 양심의 가책과 시간의 검은 등을 아는지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번역)
5장에서 한 국왕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에 문지사는 아래처럼 오역을 반복했다.
'유일무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의 행동과 인격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무작정 흐르는 시간이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의복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니면 아니면 우리를 바꾸고 결국 그런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지름길이나 우회로를 통해 얻으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몰라. 우리는 가장 최근의 인생이 밝고 화사하면, 과거는 그런 인생을 누리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고 여겨. 그리고 과거가 멀어질수록 마치 그런 생각이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지.'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음에 따라, 우리는 덜 숨기게 되고, 과거에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게 된다. 그것은 기억을 상실하거나 피로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의 삶이 종지부를 찍을 날이 가까워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밀과 어두움이란 확실한 기억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누가 무엇을 모르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 누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면서, 우리의 실수와 노력과 양심의 가책과 시간의 어두움 등을 알고 있는지 기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96~7쪽).
또한 문지사는 la negra espalda del tiempo를 '시간의 어두운 등'이 아니라 '시간의 어두움 등'이란 오타 같은 오역을 했다.
9장은 루이사를 미행하던 빅토르가 집에서 나오는 그녀와 맞닥뜨리고 그녀에게 언니 마르타의 죽음에 대해 털어놓는 장면이다. 아래는 그녀와 마주친 빅토르의 머릿속에 지나가는 생각이다. 점심 식사 동안에 마르타와의 관계를 비밀로 한 빅토르는 마르타의 가족과 소외된 이방인이었지만 루이사와 마주쳐 비밀을 털어놓을 그는 더 이상 가족의 칩입자가 아닌 것이다.
Ahora yo era un elegido de su hermana mayor, Luisa no tenía por qué saber que había sido plato de segunda o tercera mesa: alguien con quien Marta había compartido en contacto tan íntimo sus últimas horas que no podía suponerse que fueran a serlo pero lo habían sido, y ese momento postrero la definía para siempre en parte, acabamos viendo toda nuestra vida a la luz de lo último o de lo más reciente, cree la madre que hubo de ser madre y la solterona célibe, el asesino asesino y la víctima víctima, y la adúltera adúltera si sabe que muere en medio de su adulterio y si esa palabra no ha caído también en desuso. Marta no lo supo, pero yo sí y yo soy el que cuenta, el que está contando y el que permitirá que otros hablen, 'cuantos hablan de mí no me conocen, y al hablar me calumnian'.
이제 나는 그녀의 언니가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루이사는 내가 언니의 두 번째나 세 번째 남자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에 친밀하게 몸을 부대낀 사람이었고, 물론 그녀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이 마지막 순간이 부분적으로 그녀를 항상 결정하듯, 우리는 가장 최근이나 최후 인생의 관점에서 우리 인생을 바라본다. 어머니는 어머니로, 노처녀는 노처녀로, 살인자는 살인자로, 희생자는 희생자가 되도록 태어났고, 간통을 하다 죽는 것을 알았다면 간음녀는 간음녀가 되도록 태어난 것으로 여긴다. 간음녀란 말이 아직도 사어가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마르타는 이것을 몰랐으나 나는 알고 있었고, 이제 나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이야기를 할 것이고 누가 말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고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필자 번역).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날 빅토르는 이제 마르타와 자신의 관계를 루이사에게 말할 것이다. 우리의 현재 인생은 먼 과거 보다 가장 최근의 과거가 결정한다고 했다.
문지사는 이번에는 a la luz de를 '기준으로'으로 바르게 옮겼다. 5장과 8장에서 오역한 역자와 9장에서 바르게 번역한 역자가 같은 사람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허깨비의 소행인가.
이제 나는 그녀의 언니가 선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루이사는 내가 자기 언니의 두번째나 세번째 애인 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마르타와 마지막으로 은밀한 접촉을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마르타는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으며, 그 마지막 순간은 부분적으로나마 그녀를 영원히 규정지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마지막 사건이나 최근의 사건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머니가 된 사람을 보면 어머니의 운명을, 노처녀가 된 사람은 노처녀의 운명을, 살인자가 된 사람은 살인자의 운명을, 희생자가 된 사람은 희생자의 운명을, 간부(姦婦)가 부정을 저지르다가 죽게 되면 간부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르타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고, 이제 나는 그런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나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 그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3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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