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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번역 - jugar a las chapas 병뚜껑 축구 놀이를 하다

by brasero 2023. 2. 5.

jugar a las chapas는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RAE)의 chapas 뜻풀이에 따르면 '동전 던지기 놀이를 하다'(17) 또는 '병뚜껑 놀이를 하다'(18)이다.

RAE chapa

동전 던지기 놀이는 두 개의 동전을 던져 두 동전이 앞면 또는 뒷면이 동시에 나오는 확률에 돈을 거는 놀이이다. 주로  바나 카페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하거나 부활절이나 지방 축제일에 하는 놀이로 던지는 동전을 chapas라고 한다. 

병뚜껑 놀이는 병뚜껑(chapa)으로 하는 어린이의 놀이로 여러 가지가 있다. 바닥에 길을 그려 놓고 병뚜껑을 손으로 튕겨 목표에 도달하는 경주(carrera de chapas)와 작은 축구판 위에 병뚜껑을 튕겨 작은 공을 치는 축구 놀이(fútbol chapas) 등이 있다. 

병뚜껑 경주 carrera de chapas

이런 병뚜껑 놀이는 1980년까지 아이들이 골목이나 집에서 즐겨했던 놀이로 요즈음은 우리나라의 1960-1970년대 어린이가 하던  땅따먹기나 비석치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병뚜껑 축구는 오늘날 당구대 같은 축구판에서 하는 놀이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스페인 국영 텔레비전 방송의 <Cuéntame cómo pasó 무슨 일이진 제게 말하세요>(11부 12회)란 연속극에 어른이 식탁 위에서 하는 병뚜껑 축구 놀이

연속극에서 병뚜껑 축구놀이

이런 병뚜껑 축구(jugar a las chapas)는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naña en la batalla piensa en mí>(1994)에 등장한다.

소설의 7장은 (원본은 장을 구분하는 아라비아 또는 로마 숫자가 없다) 주인공인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작가인 빅토르가 마드리드시의 카스테야냐 대로 주변에서 길거리 매춘부 빅토리아를 자동차에 태우고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녀가 혹시 별거 중인 그의 아내 셀리아가 - 그녀는 33살인 그보다 11년 어리다 - 아닌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을 암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장이다. 

카스테야나 거리에서 태운 창녀와 주변을 배회하며 빅토르는 사람과 사물의 명칭을 기억해 낸다. 이름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 그 사람이나 물건을 아는 것이라고 하며 이름에 서려 있는 과거를 소환하고 있다. 당연히 작가는 유년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거리와 가게와 사람을 불러내고 있다.    

Conduje en silencio por la Castellana* bien conocida, algunos lugares siguen en su sitio, no muchos, el Castellana Hilton** ya no se llama así pero para mí es el Hilton, el cartel muy visible de House of Ming***, un lugar y un nombre prohibidos y misteriosos durante la infancia, y luego Chamartín, el estadio del Real Madrid**** que también trae a la memoria nombres que no se han borrado ni se borrarán ya nunca, alineaciones enteras que aún me sé de corrido, y a veces los rostros que conocí en los cromos y trasladé a las chapas a las que jugaba a diario con uno de mis hermanos: Molowny, Lesmes, Rial y Kopa, el gordo Puskas, Velázquez, Santisteban y Zárraga, jugadores cuyas caras no reconocería ahora si tuviera oportunidad de verlas, sus apellidos persisten y Velázquez fue un genio.

문학과 지성사 번역본은 아래처럼 옮겼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가 잘 알고 있는 카스테야나 거리로 차를 몰았다. 몇몇 장소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었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았다. '카스테야나 힐튼'은 더 이상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지만, 내게는 아직도 '힐튼'이었다. 또한 어린 시절에는 금지된 장소이자 금지된 이름이어서 미스터리하게 보였던 '하우스 오브 밍'과  차마르틴 호텔,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 역시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새겨져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종종 그림카드에 그려져 있었고나는 매일 우리 형들과 동전 던지기를 해서 그 카드를 따먹는 놀이를 하곤 했다. 몰로우니, 레스메스, 리알 이 코파, '뚱보' 푸스카스, 벨라스케스, 산티스테반, 사라가 ········ 이 선수들의 얼굴을 지금 본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들의 이름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축구 천재였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76면).

붉은색은 문지사 번역과 필자 번역의 차이이다.

나는 잘 알고 있는 카스테야나 거리로 아무 말 없이 차를 몰았다. 어떤 곳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곳은 많지 않다. 카스테야나 힐튼호텔은 더 이상 힐튼이라 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힐튼이고, 하우스 오브 밍, 어린 시절 금지된 장소이자 금지된 이름인 신비스러운 곳, 간판이 눈에 띈다. 다음에 차마르틴, 레알 마드리드 축구단의 경기장, 역시 지워지지 않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선수들의 이름이 떠올라 아직도 생생하게 줄줄이 기억이 난다그 얼굴은 때론 딱지에 새겨져 있었고 병뚜껑에 얼굴을 옮겨 붙여 형들과 날마다 축구 놀이를 하곤 했다. 몰로우니, 레스메스, 리알, 코파, 뚱보 푸스카스, 벨라스케스, 산티스테반, 사라가, 지금 그들을  다시 본다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이 이름은 내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축구 천재였다.

*Paseo de la Castellana 카스테야나 거리는 마드리드시 중심부 차마르틴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6.3km의 대로이다. ** Hilton은 카스테야나 거리에 있던 힐튼호텔이다. 1953년에 문을 열어 1973년에 인터콘티넨탈호텔로 바뀌었다. ***House of Ming은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카스테야나거리에 있던 중국음식점으로 유명 인사들이 들리곤 했다. ****el estadio del Real Madrid. 레알 마드리드 축구단의 전용 경기장으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경기장(Estadio Santiago Bernabéu, 1947년 12월 개장)이다. 현 경기장은 옛날 차마르틴경기장(Estadio de Chamartín, 1924~1946) 옆에 새로 지었다. 구 경기장을 사용하면서 1944년부터 새 경기장을 짓기 시작해 1947년 12월에 개장을 했고 명칭은 새 차마르틴경기장(Nuevo Estadio Chamartín)이었다. 1955년 1월부터 현재의 이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부르기로 했다.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4세가 되기 전에는 차마르틴경기장이었다. 그가 말을 배울 때 차마르틴경기장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새 이름으로 변경된 후에도 얼마 동안 여전히 차마르틴경기장이라고 불렀다. 

카스테야냐거리 49번지 옛 힐튼호텔, 현재 인터콘티넨탈호텔
Hosue of Ming 중국음식점 1960년대
카스테야나 거리 중국식당 House of Ming 자리, 현재 인도 식당
1946년까지 사용한 차마르틴 축구경기장 (사진 AS 스포츠신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축구경기장 - 왼쪽에 카스테야나 가로수 거리 (사진 AS 스포츠 신문)

chapas는 동전 던지기 놀이가 아니라 병뚜껑 축구 놀이이다. 축구 선수의 얼굴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딱지(cromo)에 새겨져 있었고 병뚜껑 축구 경기를 하는 병뚜껑 안쪽에 얼굴을 오려다 붙이곤 했다 (아래 사진 참조). 

병뚜껑(chapa) 안쪽에 축구선수 얼굴 (사진 Diaro Sur)

문지사의 '차마르틴 호텔'은 '차마르틴 경기장'이라고 불렀던 레알 마드리드 축구단 경기장이다. alineaciones enteras que aún me sé de corrido(리스트 전부를 아직도 de corrido 유려하게 기억하고 있다)를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옮긴 것 같고, '그림카드'라고 한 cormos는 '딱지'라고 할 수 있고, '동전 던지기를 해서 그 카드를 따먹는 놀이'라는 las chapas a las que jugaba는 선수들의 얼굴을 붙인 병뚜껑으로 축구 놀이를 한 것이다. '리알 이 코파'라고 옮긴 Rial y Kopa는 한 선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 프로축구단의 공격수 엑토르 리알 Héctor Rial(1928 -1991, 아르헨티나 출신)과 공격수 레이몽 코파 Raymond Kopa(1931 - 2017, 프랑스 출신) 두 선수의 성이다. 

이 jugar a las chapas는 소설의 8장 첫머리에 다시 등장한다.

Es cansado moverse en la sombra y espiar sin ser visto o procurando no ser descubierto, como es cansado guardar un secreto o tener un misterio, qué fatiga la clandestinidad y la permanente conciencia de que no todos nuestros allegados pueden saber lo mismo, a un amigo se le oculta una cosa y a otro otra distinta de la que el primero está al tanto, se inventan para una mujer historias complejas que luego hay que rememorar para siempre en detalle como si se hubieran vivido, a riesgo de delatarse más tarde, y a otra mujer más nueva se le cuenta la verdad de todo excepto aquellas cosas inocuas que nos dan vergüenza de nosotros mismos: que somos capaces de pasarnos horas viendo en la televisión partidos de fútbol o degradantes concursos, que leemos tebeos siendo ya adultos o nos echaríamos al suelo a jugar a las chapas si tuviéramos con quién hacerlo, que nos pierden las timbas.....

문학과 지성사 번역본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애쓰면서 몰래 지켜보는 것은 마치 비밀이나 미스터리를 남몰래 간직하는 것처럼 지겨운 일이다. 우리의 친한 친구들조차 알지 못하게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정말로 따분한 일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한 친구에게 어떤 사실을 숨겨야 하고, 다른 친구에게는 다른 사실을 숨겨야 한다. 여자 친구에게 복잡한 얘기를 꾸며대면, 그 이야기를 자신이 경험했던 것처럼 세세히 기억하고 있어야 나중에 탈이 없다. 한편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기면,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만 우리 자신이 창피하게 생각할 것들은 제외한다. 가령 텔레비전에서 축구경기나 엉터리 퀴즈 게임을 보면서 몇 시간씩 즐겁게 보낸다거나, 어른이 되어서도 만화책을 읽거나,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바닥에 누워 동전을 던져 앞면인지 뒷면인지 알아맞히면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노름에서 속임수를 쓰기 좋아한다거나...(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294-295면).

붉은색은 두 번역의 차이이다.

음지에서 움직이는 것, 남의 눈에 띄지 않거나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엿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비밀이나 미스터리를 간직하는 것은 정말 피곤하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알지 못하게 의식하면서 계속 비밀을 간직하는 것은 정말 우리를 지치게 한다. 한 친구에게는 어떤 사실을 숨겨야 하고 다른 친구에게는 앞에서 말한 그 친구가 전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을 숨겨야 하고, 한 여자에게는 이야기를 복잡하게 꾸미며 나중에 들통나는 뒤탈이 생기기 않기 위해 생생하게 기억을 해야 하고, 새로 사귄 여자에게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무해하지만 창피스럽다고 여기는 것들을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가령  텔레비전 축구 경기나 격이 떨어지는 퀴즈 쇼를 보며 몇 시간을 즐기거나, 어른이지만 여전히 만화책을 보거나,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바닥에 누워 병뚜껑 놀이를 하는 것이나, 노름에서 돈을 잃었거나..... (필자 번역)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어른이 되어 병뚜껑 놀이를 하는 것은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 여자 친구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jugar a las chapas를 동전 던지기 놀이 대신 '병뚜껑 축구'로 옮기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가설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지은 <야성과 감성, 축구에 대한 글 Salvajes y sentimentales: Letras de fútbol>(2007, Debosillo)**란 책이 대답이 되겠다. 축구를 좋아했던 작가의 축구에 대한 글을 모은 책이다. 파울 인겐다이(Paul Ingendaay)는 서문에서 하비에르 마리아스 가족은 모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유년 시절 마리아스의 형 페르난도***는 병뚜껑 축구 놀이(jugar a las chapas)를 하기 위해 거즈 그물을 붙인 나무 골대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아래 인용문 참조). 

하베에르 마리아스 <야성과 감성- 축국에 대한 글> 서문 jugar a las chapas

**<야성과 감성, 축구에 대한 글 Salvajes y sentimentales: Letras de fútbol>은 원래 2000년 출판사 아길라르 Aguilar에서 최초로 발간했다. 

야성과 감성 - 아길라르 출판사 2000

***페르난도는 마리아스의 바로 위 형이다. 하비에르는 5형제 중 4남으로 맏형 훌리아닌 (하비에르가 태어나기 전  3세 때 병사), 둘째  미겔, 세째 페르난도가 있고 아래에는 동생 알바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