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RAE)는 facha의 뜻을 '(1) [낮잡는 말. 구어] 파시스트 (2) [낮잡는 말. 구어] 반동주의 정치 이념의'으로 정의했다.
파시즘(fascismo)을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개 극우주의, 국수주의, 권위주의, 군국주의 색채를 띄고 전체주의 독재를 하며 반대파를 강압하며 국가나 민족이나 사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사상이다. 20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파시즘은 반아나키즘(반무정부주의), 반민주주의, 반다원주의, 반자유주의, 반사회주의, 반마르크스주의 성향이 있었다. 사회주의자였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와의 결속과 투쟁의 결과로 1921년에 설립한 국가 파시스트당은 반동보수주의에 반대했지만 국수주의 성향의 민족주의와 국가생디칼리슴(극우 성향의 생디칼리슴- 생디칼리슴은 좌익 무정부주의 노동조합 지상주의)과 제국주의를 펼쳤다.이탈리아 파시즘은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과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팔랑헤주의(falangismo)와 일본의 군국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소설 <당신의 내일 얼굴 1 열과 창 Tu rostro mañana 1 Fiebre y lanza>(2002)에서 파시스트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아래는 소설의 8장에 주인공 잭 데사(Jack Deza)가 영국의 휠러 교수의 소개로 투프라(Tupra)를 알게된 부페 파티에서 영국 스페인 대사관의 주재관, 라파엘 데 라 가르사(Rafael de la Garza)를 만난 장면의 일부인데, 가르사가 스페인의 파시스타 작가를 존경한다는 말에 데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Tampoco resultaba ya fácil definir qué era fascista se está convirtiendo en un calificativo anticuado y a menudo impropio o por fuerza impreciso, aunque yo suelo emplearlo en un sentido coloquial y probablemente analógico, y en ese sentido y con ese uso sé bien lo que significa y sé que no me equivoco. Pero había recurrido a él ante De la Garza más que nada para fastidiarlo y por poner en su sitio a los escritores fascistas pésimos que él tanto admiraba, el tipo no me había gustado desde el primer instante, he visto a muchos así desde la infancia y no se extinguen, sólo se maquillan y adaptan: son clasistas y engreídos y muy simpáticos, son risueños y hasta formalmente cariñosos, son ambiciosos y semifalsos (sí, no son falsos del todo), procuran parecer exquisitos y a la vez fingirse campechanos y aun barriobajeros (mala la imitación, no dan el pego, su íntima aversión hacia lo que imitan los desenmascara rápido), de ahí que prodiguen los tacos creyendo que eso los hace llanos y que les gana confianzas remisas, de ahí que combinen su acartonado refinamiento con modales algo castrenses y léxico carcelario, la mili les venía de perlas para completar el cuadro, y el efecto que a la postre producen es de gañanes perfumados. 파시스트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 단어는 케케묵은 수식어가 되었고 자주 부적절하게 또는 대개 부정확하게 사용되고 있어, 물론 나는 구어적이고 아마 비유적인 뜻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이런 뜻의 파시스타는 난 잘 알고 있고 혼동하지 않아, 하지만 데 라 가르사의 성질을 돋우기 위해서, 그가 그토록 존경하는 파시스트 작가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서 파시스타란 말을 사용했지. 데 라 가르사는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거든. 난 어릴 때부터 이런 파시스타를 자주 보았는데 절대 사라지지 않고, 얼굴을 바꾸고 적응을 하지. 파시스타들은 속물이고 우쭐거리고 또 아주 상냥하고, 서글서글하고 정이 넘치기까지 하지, 야망이 있고 반쯤은 거짓이지 (그래, 전부 거짓은 아니다), 아주 훌륭해 보이고 동시에 소박하고 심지어 하층민인 것처럼 가장하지 (모방도 형편없어, 우린 속지 않지, 혐오스러워 하며 모방하는 것이 금방 드러나), 그래서 험한 아무 말을 쏟아내어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을 믿게끔 하고 주저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군사 용어와 교도소 은어로 치장한 뻣뻣한 멋을 내고, 군복무 경험은 파시스타의 글을 멋있게 만들어버리고 결국 싸구려 향수같은 여운을 남기거든."
프랑코 독재 시절에 문학 검열관이었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벌집 La Colmena>를 지은 카밀로 호세 셀라를 염두한 구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파시스트의 경멸어 fach의 번역어는 뭘까. 네이버 스페인어사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경멸'이란 뜻만 새기고 번역어를 제시하지 않았다.
스페인어의 경멸어 facha는 우리말 경멸어로 '파쇼'라 할 수 있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은 '파쇼'를 낮잡는 말로 분류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파쇼'를 파시스트를 경멸하는 뜻으로 썼다. 박정희 독재를 끌어내리기 위해 '파쇼 타도'를 외치고 전두환 군사 파쇼 정권에 맞선 민주주의 역사가 있다. 오늘날은 불행하게도 검레기(검찰청 기자)를 비롯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저버린 기레기와 공정과 상식과 법을 무시하는 사법 카르텔(검사와 법관과 변호사의 상부상조)이 전권을 휘두르고 일부 무식한 국회의원이 목에 힘을 주는 독재와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파쇼'는 로대 로마 권력자의 상징인 나무를 묶은 권표인 라틴어 파스키스 fascis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 파쇼 facio이다. facio는 '묶음'이란 뜻으로 대중의 결합이나 권력의 결속을 의미한다.
facha는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1951~2022)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naña en la batalla piensa en mí>(1994)에 등장한다. 소설 4장은 주인공 대필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빅토르는 친구 루이베리스(Ruibérriz)에게 마르타의 아버지 후안 테예스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마르타는 빅토르와 로맨스를 즐기려다 그의 팔에 안겨 침대에서 죽은 여자이다. 부탁을 받은 한 달이 지난 뒤 루이베리스는 빅토르가 왕립학술원의 회원인 테예스 씨를 만나도록 주선을 했다. 테예스 씨와 함께 빅토르는 국왕을 접견하고 왕의 연설문을 대필하게 된다.
루이베리스는 빅토르에게 왕의 연설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el Único no andaba contento con sus últimos discursos, al parecer nunca lo ha estado mucho, es muy quisquilloso con eso, y él y los suyos han probado ya de todo, funcionarios, académicos, catedráticos, notarios, columnistas fachas y columnistas rosados, columnistas calumnistas, poetas untuosos y poetas místicos, novelistas caligráficos y novelistas castizos, dramaturgos huraños y dramaturgos cursis, todos españolísimos, y no han quedado nunca muy satisfechos con nadie....
문학과 지성사는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는 자기 연설문을 한 번도 만족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는 그 문제로 지금 몹시 신경을 쓰고 있어.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이미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다군. 관리들이나 학자들, 교수들이나 변호사들, 좌익 칼럼니스트들이나 비판적 칼럼니스트들, 달콤한 말을 구사하는 시인들이나 신비주의 성향의 시인들, 유려한 글로 유명한 소설가들이나 전통적 성향의 소설가들, 비사교적인 극작가들이나 통속적인 극작가들, 이들 모두가 끔찍할 정도로 스페인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그 누구의 글에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거야. (문학과 지성사.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2014, 162면).
el Único(유일무이)는 스페인의 국왕으로 작가가 이 소설에서 부친 별칭이다. 물론 현재 국왕인 펠리페(Felipe) 6세의 부친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를 암시하고 있다. 카를로스는 프랑코와 협약에 따라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한 후 왕위에 올라 입헌군주제의 민주정부를 수립해 칭송을 받았다. 이후 부패와 탈선으로 여론이 악화되어 2014년 아들에게 왕좌를 물려주었다. 이런 태왕은 여전히 일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고 특히 내전에서 프랑코의 국민군 편을 계승한 중도우파의 국민당(Partido Popular)과 시민당(Ciudadanos)과 극우 정당 복스(Vox) 등의 우익(derecha)은 입헌군주제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좌익 칼럼니스트'라고 옮긴 columnistas fachas는 '파쇼 칼럼니스트' 또는 '우빨 칼럼니스트'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우익 칼럼니스트' 혹은 '우파 칼럼니스트'는 경멸어가 아니다.
물론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 적색 파시즘 또는 공산주의 파시즘도 있기 때문에 columnistas fachas를 '좌익 칼럼니스트'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스페인의 facha는 좌빨이 아니고 우빨 또는 파쇼가 아닌가.
우익을 낮잡는 스페인어에는 carca도 있다. carca는 이사벨 2세의 왕위 계승과 정책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에 대항한 카를로스 5세를 옹호하는 반자유주의, 반의회주의, 전통주의를 신봉했던 '카를리스타(carlista)'를 낮잡는 말 carcunda의 줄임말이다.
경멸어는 아니지만 inmovilista(반변화주의자)와 reaccionario(반동주의자, 수구파)는 우파이다.
경멸어 '우빨'의 반대말은 'rojo(빨갱이)' 또는 'progre(좌빨)'*이다. 현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는 좌익이다. 내전 중 프랑코에 맞서 공화군의 편에 섰던 좌익을 계승한 중도 좌파의 사회노동당(PSOE)과 공산주의를 포함한 극좌주의 사상의 진보정당 포데모스(Podemos)는 지방 분권을 옹호하고 일부는 공화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progre(복수형 progres)는 progresista(진보주의자)의 줄임말로 종종 경멸의 의미로 쓴다. 우리말의 '좌빨' 정도의 뜻으로 에스파냐에서 1970년대부터 쓰기 시작했다. RAE는 progre를 경멸어 대신 '구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아래는 progre(좌빨)와 facha(우빨, 파쇼)에 대한 엘 파이스 신문의 칼럼 ¿A quién insultas llamándole progre? (좌빨이라고 부르며 누구를 욕하는 걸까?)의 일부이다.
https://elpais.com/elpais/2019/05/03/ideas/1556896981_757699.html
우익과 좌익에 대한 낱말 정리를 하면 아래와 같다.
- la derecha 우익 - carcunda 카를리스타의 경멸어, carca - carcunda의 줄임말, inmovilista, reacionario -보수주의, 전통주의, 국수주의, 국가주의, 에스파뇰주의, fascista 파시스타, facha 파시스타의 경멸어 파쇼, 나치즘, 파시즘, 팔랑헤주의
- la izquierda 좌익 - progresista 진보주의자, progre 진보주의자의 경멸어 좌빨, rojo 빨갱이, fascistas de izquierda 좌익 파시스타
문학과 지성사의 번역에서 생략된 columnistas rosados는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옮기면 '분홍색 칼럼니스트'인데, 연예계 칼럼니스트를 뜻한다. 유명인사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이나 험담 (영어, 가십 gossip)을 칼럼으로 쓰는 언론인이다.
유명한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 가십성 소식을 다루는 매체나 매체의 구역은 corazón 또는 rosa라고 한다. RAE는 낱말 rosa의 12번에 "유명인사의 사생활이나 사랑에 대한 일을 다루는 매체"라고 정의했다. 이 의미는 네이버 스페인어사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아래는 엘 파이스 신문의 연예계 뉴스 섹션이다.
연설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달하며(quisquilloso) 시인, 소설가, 극작가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학자와 대학교수를 비롯한 우빨 칼럼니스트와 연계계 칼럼니스트와 중상모략을 하는 칼럼니스트 columnistas fachas y columnistas rosados, columnistas calumnistas까지, 모두 에스파냐의 전통을 중시하는 에스파뇰주의자에게 의뢰를 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연예계 칼럼니스트 columnistas rosados에게 글을 맡기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골계이다.
columnistas calumnistas는 ´비판적인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누명을 씌우는, 중상모략을 하는 칼럼니스트'이다. 꼴룸니스따스 깔룸니스따스, 비슷한 소리가 반복되는 언어 유희로 진지한 가운데 익살을 부렸다.
RAE는 동사 calumniar를 '(1) 말과 행위에 거짓과 악의로 책임을 지우거나 부정직한 의도가 있다고 하다 -> 중상하다, 모략하다, 모함하다, 구함하다, 거짓으로 책임을 전가하다 (2) [법률] 무고하다(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으로 꾸며 고소나 고발을 하다, 거짓으로 죄를 씌우다, 거짓으로 혐의를 씌우다'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나 증거 없이 뒤집어 씌운다는 의미이다.
정치를 모르는 연예계 칼럼니스트와 왕에 대해 좋은 말만 하는 우빨 칼럼니스트보다 입헌군주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좌빨 칼럼니스트에게 글을 맡겼거나, 남에게 잘못을 덮어 씌우며 중상모략을 하는 사람(calumnistas)보다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칼럼니스트에게 맡겼더라면 국민의 뇌리에 박힐 왕의 개성을 살린 훌륭한 연설문을 작성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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