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파초 gazpacho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안달루시아 가스파초 gazpacho andaluz'이고 다른 하나는 중부 카스티야에서 유래한 '라 만차 가스파초 gazpacho manchego'이다. 전자는 토마토가 들어가는 붉은색의 냉 수프(sopa)로 주요리 이전에 먹고, 후자는 고기와 무효모 빵 등으로 만든 뜨뜻한 찌개 또는 조림(guisa)으로 주요리로 먹는다.
차이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안달루시아의 가스파초는 역시 차게 먹는 냉수프 살모레호 salmorejo와 비슷하다. 가스파초는 토마토, 마늘, 빵으로 만든 뻑뻑한 살모레호와 달리,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이 정의했듯, "토마토, 피망(pimiento)*, 마늘, 올리브유, 식초, 소금으로 만든 냉수프"이다. 사전 정의와 달리 오이나 양파를 첨가하기도 하고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잘게 썬 삶은 달걀이나 하몬을 고명으로 올려 먹거나 또는 호두와 같은 견과와 함께 먹기도 한다.
*스페인에서 피망과 파프리카를 구분하지 않는다.
라 만차의 가스파초 gazpacho(s) manchego(s)는 다른 말로 galianos라고 하는데, "목동들이 무효모 빵과 사냥으로 잡은 다양한 동물의 뼈를 바른 고기로 끓인 찌개 (guiso)"이다. 오늘날은 주로 토끼, 메추리, 닭을 무효모 빵과 함께 요리한다.
라 만차 가스파초는 17세기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의 조리장이었던 마르티네스 모티뇨(Martínez Motiño)가 지은 ≪일반 음식, 케이크, 과자, 카스텔라 빵과 저장 음식 요리 기법 Arte de cozina, pasteleria, vizcoheria, y conserveria≫(1611)의 '자고새 수프**(sopa de perdizes)' 조리법을 소개하며 언급했다.
**수프(sopa)는 흔히 알고 있는 고기나 채소를 삶은 국물이 아니라 코바루이바스(Covarrubias)가 최초의 서서사전인 <카스테야노와 에스파뇰라의 보물>(1611)에서 정의한 대로 빵이 들어가는 국물이 있는 요리를 뜻한다.
- "(27면) 자고새를 구운 다음 뼈를 발라 살코기를 잘게 썰어둔다. 손으로 자른 흰 빵으로 수프를 끓이고 위에 자고새 고기를 넣어 끓인다. 국물을 마실 수 있다.
- (27면 뒷면) la olla, y échale vn poco de buen azeite y vinagre, que esté bien agrio, y pimienta, y vn poco de sal, y échalo por encima de la sopa, y de la carne, y ponla a calentar, y síruela caliente. Esta sopa es sopa de gazpacho caliente. Esta misma sopa podrás hazer de conejos, beneficiándola como la de las perdizes. 수프와 고기 위에 좋은 올리브유와 식초를 조금 뿌리면 제법 신맛이 나는데, 후추와 소금도 조금 뿌려 뜨거워질 때까지 끓인다. 뜨거울 때 내놓는다. 이 수프는 뜨거운 가스파초 수프이다. 자고새과 마찬가지로 토끼고기로 이 수프를 요리할 수 있다 (강조는 필자).
이 가스파초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15) 속편에 섬의 수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산초가 갈구했던 음식이다. 식단을 통제하는 의사 때문에 매일 허기가 도는 산초는 통치를 그만두고 고향에 가서 농사일을 하며 가스파초를 포식하고 싶다고 했다.
- Mejor se me entiende a mí de arar y cavar, podar y ensarmentar las viñas, que de dar leyes ni de defender provincias ni reinos. Bien se está San Pedro en Roma: quiero decir que bien se está cada uno usando el oficio para que fue nacido. Mejor me está a mí una hoz en la mano que un cetro de gobernador, más quiero hartarme de gazpachos que estar sujeto a la miseria de un médico impertinente que me mate de hambre... 나는 법을 반포하고 왕국이나 지역을 지키는 것보다 땅을 일구고 포도나무를 베고 가지를 자르는 일을 더 잘 알고 있고요. 성 베드로는 로마에서 편한 것처럼 우리는 타고난 대로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령의 홀보다는 손에 낫 한 자루를 쥐는 게 어울리고, 나를 굶겨 죽이려고 하는 뻔뻔스러운 의사에게 가엾게 매달리는 것보다 가스파초를 물리도록 먹고 싶소이다 (돈키호테, 속편 53장, 강조는 필자).
산초가 수령직을 내려놓고 집에 가 질리도록 먹고 싶다는 가스파초는 안달루시아의 냉수프 가스파초가 아니라 고기와 빵으로 조리한 뜨뜻한 라 만차 가스파초이다.
세르반테스 인터넷센터(CVC, Centro Virtual Cervantes)가 프란시스코 리코(Francisco Rico) 교수의 주도 아래 탑재한 <돈키호테>에는 산초가 그리워하는 gazpachos에 대한 주석이 있다. "무효모 빵과 사냥해서 잡은 동물의 고기를 볶고 포도주나 육수와 함께 프라이팬에 끓이는 따뜻한 수프인데, 여기에 간이나 양념을 추가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주석에 대한 추가 주해는 "라 만차 가스파초는 목동의 수프 중 하나로 고기가 풍부한 뜨거운 음식이다. 다른 말로 gazpachos galianos이다" 라고 해서 안달루시아의 냉수프 가스파초가 아닌 것을 분명히 했다.
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의 전신인 <아우토리다데스 서서사전>(1734)은 가스파초를 "작은 빵, 올리브유, 식초, 마늘과 다른 재료로 만든 일종의 수프나 찌개 (menestra - menestra는 여러 가지가 섞인 guiso이다)"이라고 뜻을 새겼고 "추수꾼과 시골 사람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다"라고 했다. 어원은 코바루비아스에 따르면 이탈리아 토스카나어 guazzo와 guazzeto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가스파초가 사용된 문장을 예를 들기 위해서 돈키호테 2권 53장의 산초가 한 말을 - Mejor me está a mí una hoz en la mano que un cetro de gobernador, más quiero hartarme de gazpachos que estar sujeto a la miseria de un médico impertinente que me mate de hambre- 인용했다 (아래 녹색 줄).
산초가 스페인 중부 라 만차의 농부 출신임을 감안하면 남부 지역의 안달루시아에서 해 먹는 냉수프 가스파초보다는 고기가 들어간 평소에 먹던 따근한 라 만차 가스파초를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안달루시아의 가스파초의 주재료 토마토는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이베리아반도에 도입이 되었으나 <돈키호테>가 쓰여지고 있던 17세기 초반은 스페인 전지역에 널리 재배되지 않았고 소비도 광범위하게 되던 시기가 아니었다. 1734년에 발간된 <아우토리다데스 서서사전>의 'gazpacho'는 토마토가 재료인 안달루시아 가스파초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안달루시아 가스파초는 17세기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있었다 하더라고 라 만차의 대중이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었을 수 있다.
■라 만차 가스파초 조리법 Cocina franciscana
■라 만차 가스파초의 재료, 무효모 빵인 토르타(torta) 조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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