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도입부를 기억해 보면 벼가 누렇게 익은 광활한 논들, 곤충을 잡는 시골 아이들, 경운기를 타고 가는 송강호(박두만 역)가 떠오를 것이다. 박두만은 도랑 콘크리트 덮개 아래에 유기된 여자 시체를 보기 위해 가는데 곤충을 잡던 조무래기들이 경운기가 나타나니 무작정 따라나선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 얻어걸릴 수 있다는 막연한 동경이 있는 아이들이다. 송강호는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고 난 뒤 상의 안쪽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 줄 듯 한 시늉을 하다가, 웬걸,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팔을 내밀며 아주 찰진 주먹감자를 날린다.
'주먹감자'는 스페인어로 un corte de manga 또는 un corte de mangas이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소매(들)을 자르기'이지만, 아래 DRAE(스페인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이 설명하고 있듯 '주먹감자'이다.
"반대편 손으로 한 쪽 팔을 때리면서 그 팔을 접어 올리는, 가끔 들어올리는 손의 중지를 뻗기도 하는 외설스럽고 모욕적인 행위" dar un corte de mangas, hacer un corte de mangas란 형태로 씀.
반대편 손으로 팔을 치면서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중심 동작이고, 들어 올리는 팔의 가운뎃손가락을 펼치는 것은 부수적인 행위이다.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corte de manga(s)를 '주먹감자'라고 하는 대신 DRAE의 정의를 번역했다. "[속어] (집게손가락과 약손가락 사이에 가운뎃손가락을 펼치면서) 손으로 만든 외설적이고 경멸하는 의미의 몸짓, 동시에 팔을 들어 그 팔에 다른 손으로 두들김"이라고 뜻을 새겼다.
https://as.com/futbol/2007/03/14/mas_futbol/1173857212_850215.html
hacer un corte de mangas는 에두아르도 멘도사(Eduardo Mendoza)의 소설 ≪사볼따 사건의 진실 La verdad sobre el caso Savolta≫(1975)에 등장한다.
La hembra que se había echado sobre Perico, desoyendo los consejos de la primera, se levantó las faldas.
¡Mira qué perniles, chacho!
El pobre Perico se desmaya.
Ya les hemos dicho que no van a sacar un céntimo de nosotros insistí.
Nos hicieron un corte de mangas y se fueron balanceando burlonamente sus rubicundos traseros. Perico se quitó las gafas y se enjugó el sudor que perlaba su frente.
뻬리꼬에게 질척거리던 여자가 동료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치마를 들어 올렸다.
"허벅지가 미끈하지!"
가엾은 뻬리꼬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우리에게 땡전 한 푼 나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요"라고 나는 부득부득 우겼다.
그러자 그 여자들은 우리에게 주먹감자를 날리고 불그스름한 엉덩이를 조롱하는 듯 흔들며 가버렸다. 뻬리꼬는 안경을 벗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냈다.
뻬리꼬(Perico)는 소설의 주인공,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나(하비에르 미란다)의 동료이다. 미란다가 사볼따 회사의 사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카바레에서 공연을 하는 집시 여자 마리아 꼬랄을 만나기 위해 뻬리꼬와 함께 홍등가(el Barrio Chino)에 있는 카바레에서 몸을 파는 여자(노류장화) 두 명을 상대하고 있는 장면이다.
매춘부 둘이 뻬리꼬와 미란다를 보고 한 건 올릴 것을 바라지만 미란다가 거절을 하자 두 갈보는 별 볼 일 없으니 신경을 쓰지 말자고 하는데, 뻬리꼬에게 엉겨 붙은 창녀가 갑자기 치마를 들쳐 올린다. 이에 미란다는 돈을 쓸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화가 난 두 노류장화가 한 손으로 다른 팔을 치는 주먹감자 욕을 하고 가버린 상황이다.
Nos hicieron un corte de mangas을 민음사의 번역본은 "알아듣기 힘든 욕설을 내뱉고는" (사볼타 사건의 진실, 2010, 258쪽)이라고 번역했다. hacer un corte de mangas는 '알아듣기 힘든 욕설'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엿 먹어라' 하는 팔과 손으로 하는 주먹감자 욕설이다.
아래는 FC 바르셀로나의 브라질 축구 선수 지오바니(Giovanni)가 득점을 한 후 레알 마드리드 응원객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리는 모습이다. 1997년 11월 1일에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3-2로 이겼다. 지오바니의 골로 팽팽했던 무승부를 뒤집고 바르셀로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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