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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베르타 이슬라 오역 - 토마스의 빼어난 외국어 능력과 꼰대주의

by brasero 2023. 9. 24.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1951~2022)의 소설 ≪베르따 이슬라 Berta Isla≫(2017)는 영국 정보원(MI6)에 근무하는 남편 또마스 네빈손(Tomás Nevinson)과*(주1, 더보기)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재회하는 그의 아내 베르따 이슬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 또마스를 만나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들과 딸을 두었다. 그는 직업 상 집을 늘 비워야 했고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의 부재가 잦고 길어져 갔다. 마침내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 그가 영국으로 복귀한 후 12년 동안 소식이 깜깜했다. 영국 정부는 그의 사망을 공식 인정하여 그녀는 유족 연금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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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 글의 제목에 Berta는 '베르타'로, Tomás는 '토마스'로 표기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스페인어 발음 그대로 '베르따'와 '또마스'로  적었다. Nevinson은 영국인의 성으로 '네빈슨'이지만 스페인어 발음 '네빈손'으로 옮겼다

베르따는 그가 죽었다고 여겼지만 동시에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또마스의 아버지, 잭 네빈손이 죽기 전에 아들은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남편을 기다리는 베르따에게 (그녀는 그가 돌아오기를 진정 기다렸는지 그녀만 알고 있지만, 또마스가 정말로 죽어도 별 탈 없이 무덤덤하게 잘 살아갈 여자란 느낌이 든다) 이른 봄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일요일의 이른 아침,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눌러쓴 그가 대문을 두드렸다. 유령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12년 만에 돌아온 남편을, 오디세우스를  맞이한 페넬로페처럼 포옹을 하지 않고, 흔한 영화나 소설처럼 입을 맞추거나 손도 한 번도 잡지 않은 채  소설은 그의 귀환 후 1년 6개월 뒤 서사를 이어가며 마무리된다. 

페넬로페에게 돌아온 오디세우스 (부제,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핀투리키오 그림(Bernardino di Betto Pinturicchio) 1508, 1509 - 런던, 영국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London, UK 전시실 60번) 124cmX146cm 프레스코기법.- 베를 짜며 구혼자를 물리치고 남편 오데세우스의 귀환을 맞이하는 페넬로페

남편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그녀는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고, 전직 정보원으로 얘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거나 그럴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살을 맞대고 사랑하며 살아왔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장(la página en blanco p. 541) 같은 상태이거나 어렴풋이 보이는 안개나 어둠에 갇힌 것 같았다. 그를 알면 뭐 하나, 모르는 게  약이듯 모르는 게 행복이다. 그런 모르는 남편은 그녀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편이 아닌 공기 같은 존재이다. 숨은 쉬고 살아야 하니까.

베르따는 또마스가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이도 저도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을 때는 완전하게 확신하며 사는 것은 따분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의심과 불확실성이 고개를 들었다. 확신은 사실과 상상이 다르지 않을 그런 지점에 있는데 그러면 지겨울 것이다. 내 남편이 확실하다면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은 들지만 상상이 없는 삶은 권태로울 것이 뻔하다. 사실과 다른 남편일지라도, 모르는 낯선 남편이라도, 그녀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남편이 되려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삶에 활력을 주는 것이다. 

소설을 읽은 인상을 두서 없이 썼지만, 이 글에서는 또마스의 다재다능한 외국어 재능과 - 이런 언어 능력 때문에 그는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보원으로 발탁된다 (사실 그와 잠자리를 했던 서점 여직원이 피살되었다는 영국 정보원의 음모에 빠져 어쩔 수 없이 정보원이 된다) - 그의 아버지 잭 네빈손의 미천한 스페인어 구사 능력에 관련된 구절의 번역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소설의 1부 3장에 또마스의 우수한 외국어 능력과 그의 아버지 잭 네빈손(Jack Nevinson)의 부족한 스페인어 능력에 대한 얘기가 있다.* (주2, 더보기) 또마스의 아버지는 영국인이고 어머니는 스페인 사람이다. 또마스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자랐고, 집에서는 주로 스페인어를 사용했고, 아주 어릴 때부터 여름 방학은 영국에서 늘 보냈기 때문에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등하게 쓰는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자이다. 또한 또마스는 어떤 말이든 발음과 억양과 악센트까지 정확하게 모방을 하고 다양한 속어와 비속어까지 알고 있는 언어능력이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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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2.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최근 소설에는 '장'을 구분하는 숫자가 없다. '부'는 로마 숫자로 구분한다. 장을 구분하는 번호가  없는 까닭은 본 블로그의 다른 글에 게시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마드리드의 영국대사관과 영국문화원에서 일하는데 스페인에서 또마스의 어머니를 만나 마드리드에 정착하고 살고 있다. 아버지의 스페인어는 구어보다 문어 능력이 우수하다. 문법과 통사에 해박하고 어휘력이 방대하나 케케묵고 책에서만 쓰는 낱말이나 관용구이다. 스페인 말을 할 때는 강한 영어 발음이나 말투가 묻어 나와 우스꽝스럽다.

아래는 아버지와 또마스의 외국어 능력을 비교한 장면이다

Quizá esa inseguridad oral en el país de adopción contribuía a que Tom viese a veces a su padre con incongruente paternalismo, como si sus grandes dotes para el aprendizaje de otras lenguas y la imitación de hablas nuevas lo indujeran a creer que podría desenvolverse mucho mejor en el mundo —también abarcarlo, o sacarle provecho— de lo que lo haría nunca Jack Nevinson, hombre poco autoritario y resolutivo en familia, suponía que bastante más fuera de ella. (Berta Isla. Debolsillo. 2017. p. 21).

출판사 소미미디어의 번역본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베르타 이슬라. 소미미디어. 2023. 남진희 옮김

아래는 필자의 번역이다.

정착한 나라의 말에 어눌한 아버지 때문에 아마 톰은 어울리지 않게 아들인 자신이 꼰대 역할을 해야 하는 아버지라고 가끔 여겼고, 외국어 학습과 새로운 말을 모방하는 데 빼어난 재능이 있는 톰이, 집 밖에서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가정에서는 권위나 단호함을 조금 내려놓은아버지 잭 네빈손은 절대 이루지 못할, 세상을 훨씬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 세상을 포획하고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 믿게 되었다.

소미미디어의 번역과 사뭇 다른데,  소미미디어의 오역을 논하기 전에 잠시 원본 텍스트의 어휘와 의미를 알아본다.

아버지의 '이런 불안정한 구어 능력(esa inseguridad oral)' 때문에 또마스는 아버지가 paternalismo를 incongruente하게 이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paternalismo는 '온정주의' 또는 '가부장주의'로 옮길 수 있는데,  집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가령 정치, 노사, 등에서 가부장 같은 권위를 가지고 사랑과 원조를 하는 것을 뜻하는데 대개 이런 행위를 경멸하는 뜻으로 쓴다. 설명을 하자면, 직장에서 사원들이 알아서 잘할 수 있지만 어떤 상사들은 가부장처럼 도와주려는 온정을 베풀 때가 있는데, 이를 경멸하는 말이다. 이런 상사의 도움을 하급 사원이 고맙고 편하게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상사의 행위는 paternalismo라고 비난을 들을 수 있다. 혼자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독립심이나 의식이 강한 사원은 이런 paternalismo를 '꼰대주의'라고 낮잡아 볼 것이다. 또는 식구가 아닌 어디 몸이 불편하지 않은 여자가 차를 타거나 건물을 출입할 때 남자가 문을 열어주면 그 남자는  paternalismo(가부장주의, 꼰대주의) 또는 machismo(남성우월주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또마스보다 외국어 능력이 나아 아들을 도와주면 경멸스럽지만 가부장주의가 그나마  바르게 수행될 수 있다. 하지만  스페인어 능력이 뛰어난 또마스가 스페인어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를 도왔을 것이고, 그러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가부장주의 또는 낮잡는 말 꼰대주의 대신 아래에서 위로 incongruente '비논리적', '어울리지 않은' '부합되지 않는' 꼰대주의나 가증스러운 가부장주의를 이행한 것이다. 이런 개념의 incongruente paternalismo를 위에서 톰은 아버지를 "어울리지 않게 아들인 자신이 꼰대 역할을 해야 하는 아버지라고"라고 번역했다. 

Tom viese a veces a su padre con incongruente paternalismo를 물론 다양한 형태로 옮길 수 있다.

  • 톰은 아버지가 가부장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 톰은 아버지가 가부장주의를 수행하는 데 모순이 있다고 여겼다.
  • 톰은 아버지에게는 가부장주의가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 톰은 아버지를 아들을 보호하는 꼰대가 되기에는 어색한 아버지라고 여겼다.
  • 톰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꼰대처럼 굴기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게 꼰대 노릇을 해야 하는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이런 톰의 탁월한 외국어 능력 덕분에 아버지보다(아버지는 결코 하지 못할) 세상사를 훨씬 더 잘 대처하고(desenvolverse mucho mejor en el mundo) 세상을 포획하고(abarcarlo 에워싸다, 안다, 덮다, 짊어지다) 세상에서 최대한 이윤을 취할(sacarle provecho)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집 밖에서 무척 권위적이고 단호했지만 가정에서는 그렇게 권위적이거나 단호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또마스(톰)은 아버지보다 빼어난 언어 재능 덕분에 구눌하게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아버지를 돕기도 하며, 직장에서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집에서는 권위나 결단을 조금 내려놓는 편인 아버지보다 세상살이를 더 잘하고 최대한 이익을 얻는, 아버지가 아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주는 꼰대가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에게  어울지 않는 꼰대 역할을 가끔 했다'는 말이다.

출판사 소미미디어의 번역본을 보기 쉽게 다시 인용하며 오역을 논의한다. 

베르타 이슬라. 소미미디어. 2023. 남진희 옮김

소미미디어의 "톰은 가끔 아버지를 가족이라고 하긴 조금 모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Tom viese a veces a su padre con incongruente paternalismo를 옮긴 것으로, 톰이 어긋난 가부장주의를 이행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지 않았으나, 여러 가능한 번역 중에 하나로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번역, 톰의 뛰어난 외국어 능력 덕분에 "밖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에서도 특히나, 권위적이지도 않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 잭 네빈슨보다도 - 잭 역시 톰과 똑같은 능력을 지녔고 이를 이용해 상당히 덕을 보고 있었다 - 훨씬 더 좋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명백한 오역이다.

오역을 자세하게 뜯어본다.

첫째, 아버지 잭 네빈손은 "밖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에서도 특히나, 권위적이지도 않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옮겼다. 이는 Jack Nevinson, hombre poco autoritario y resolutivo en familia, suponía que bastante más fuera de ella을 번역한 것인데, 아버지는 en familia '집에서', poco '약간', autoritario y resolutivo '권위적이고 단호하고', fuera de ella '집 밖에서는', bastante más '훨씬 더 권위적이고 단호한' 것으로 생각되는 hombre '남자(사람)'이다.

resolutivo를 소미미디어는 엣센스 스페인어사전처럼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했지만, 일 처리를 단호하고 유능하게 한다는 뜻도 있다. 즉 아버지는 밖에서는, 가령 직장에서는 아주 권위가 있고 단호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그 권위와 단호함을 약간 내려놓는 사람이다.  소미미디어의 번역처럼 밖이나 집이나 똑같이 권위적이지도 않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엣센스 스페인어사전 resolutivo

둘째, podría desenvolverse mucho mejor en el mundo —también abarcarlo, o sacarle provecho— de lo que lo haría nunca Jack Nevinson를 소미미디어는 톰이 "아버지 잭 네비슨보다도- 잭 역시 톰과 똑같은 능력을 지녔고 이를 이용해 상당히 덕을 보고 있었다 - 훨씬 더 좋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옮겼다.  이음줄 사이에 내용은 잠시 두고, 구절의 큰 얼개를 보면. 아버지보다 톰이 podría desenvolverse mucho mejor en el mundo de lo que lo haría nunca Jack Nevinson 훨씬 더 잘 세상을(en el mundo) 헤쳐나갈 수 있다(desenvolverse)는 말이다. desenvolverse는 "더 좋은 지위를 누리다"이지만 '대처하다', '헤쳐 나가다'란 뜻이기도 하다.  'mejor que + 명사' 구문이 아니라 mejor de lo que라는 문장 비교급이고, de lo que 뒤에 lo haría nunca Jack Nevinson '잭 네빈손이 결코 하지 못할'은 소미미디어는 번역하지 않았다.

엣센스 스페인어사전 desenvolverse

문제는 también abarcarlo, o sacarle provecho의 번역이다. 소미미디어는 "잭 역시 톰과 똑같은 능력을 지녔고 이를 이용해 상당히 덕을 보고 있었다"라고 오역했다. también(역시)는 '잭은 톰과 같이'라는 뜻이 아니라, desenvolverse mucho mejor en el mundo(세상을  아주  잘 헤쳐 나간다) 구절을 확장한 것으로, también abarcarlo, o sacarle provecho(역시 세상을 잘 포용하고 세상을 이용해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

소미미디어는 동사 abarcarlo의 직접목적어 lo와 sacarle의 간접목적어 le를 '능력'으로 오역했지만, 사실 abarcar(에워싸다, 포용하다, 사냥감을 둘러싸다)의 직접목적어 lo는 el mundo를 가리키고, sacarle provecho에서 sacar(뽑다, 얻다)의 간접목적어 le는 el mundo이고 provecho(이득)은 직접목적어이다. 톰은 세상살이를 아버지보다 잘할 것이고 세상을 잘 다스려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말이다.

구문 분석 설명

세상을 사는 법은 대개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역으로 언어 능력이 뛰어난 아들이 아버지보다 세상길을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니, 거꾸로 된, 논리가 맞지 않는(incongruente) 가부장주의인 것이다. 위 구절 논제의 핵심은 아버지보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아들이 아버지가 절대로 하지 못할, 아버지보다 세상을 더 잘 꾸려 나가 더 큰 이익을 얻을 것에 있다. 이는 대개 아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주는 아버지의 가부장주의 대신 불합리하게 거꾸로 아들이 아버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던 말이다. 물론 이런 가부장주의는 경멸스러운 꼰대주의인 것이다.

이 구절 바로 뒤에 또마스의 어머니에 대한 단락이 이어진다.

Esa mirada de superioridad prematura no se la permitía con su madre, Mercedes, mujer cariñosa pero muy vigilante, a la que además había debido respetar y padecer como profesora en un par de cursos del Británico, de cuyo claustro formaba parte.

또마스는 아버지에 대한 조숙한 우월감에 찬 시선으로 어머니를 대할 수  없었다. 어머니 메르세데스는 사근사근하고 아주 활발했고....(필자 번역) 

소미미디어는 esa mirada de superioridad prematura no se la permitía con su madre, Mercedes를, 아래에 보다시피, "어머니 메르세데스는 덜떨어진 인간들을 향한 묘한 우월감에 젖은 그의 시선을 용납하지 않았다"라고 오역했다.

베르타 이슬라. 소미미디어. 2023. 남진희 옮김

esa mirada de superioridad prematuras는 앞 단락에서 언급한 '아버지보다 나은 또마스의 조숙한 우월감에 찬 시선'을 뜻한다. 아버지보다 외국어에 유창하고 험한 세상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조숙한 또마스가 가진 우월적인 관점이 이다. 

소미미디어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토마스를 의미하는 prematura를 상상의 나래를 펼쳐 "덜떨어진 인간들"이라고 창작을 했고 '우월감'인 superioridad는 "묘한 우월감"으로 원본에 없는 뜻으로 바꾸어버렸다. 

원본을 보지 않고 번역본만 읽으면 또마스는 '덜떨어진 인간들을 향해 묘한 우월감'을 가진 사람이고 이 우월적인 시선을 어머니는 허용하지 않았다고 오해하게 된다. 오역이 인물의 성격을 다르게 규정해 버렸다. 또마스는 덜떨어진 인간들을 경멸하거나 우월성을  느끼는 오만한 청소년이 아니다. 그저 아버지보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서 그보다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다는 우월성이 있을 뿐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우세감으로 어머니를 대할 수 없다. 그녀는 스페인 사람이고 또마스가 다니는 학교의 영어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오역을 알아보았다.

1. ...podría desenvolverse mucho mejor en el mundo —también abarcarlo, o sacarle provecho— de lo que lo haría nunca Jack Nevinso  - 잭 역시 톰과 똑같은 능력을 지녔고 이를 이용해 상당히 덕을 보고 있었다 - 훨씬 더 좋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아버지보다 세상을 훨씬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 세상을 포획하고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2. Jack Nevinson, hombre poco autoritario y resolutivo en familia, suponía que bastante más fuera de ella 밖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에서도 특히나, 권위적이지도 않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 잭 네빈손  집 밖에서는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가정에서는 권위나 단호함을 조금 내려놓은 아버지 잭 네빈손

3. Esa mirada de superioridad prematura no se la permitía con su madre, Mercedes 어머니 메르세데스는 덜떨어진 인간들을 향한 묘한 우월감에 젖은 그의 시선을 용납하지 않았다. 또마스는 아버지에 대한 조숙한 우월감에 찬 시선으로 어머니를 대할 수 없었다.

재치 있고 부드럽게 그럴듯하게 읽히는 번역이 늘 좋은 번역이 아니다. 원본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입에 감기는 번역은 당장 먹기에는 좋지만 건강에 해롭다.  

오역은 책임은 우선 번역자에게 있다. 출판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판사는 역자에게 오독과 오역의 책임을 전적으로 전가하고 싶을 법도 하다. 도착어 번역본의 오탈자나 맞춤법이나 표현을 검토하는 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번역물을 출발어 원본과 대조해 보는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원본과 다르게 번역에 빠지거나 빠뜨리거나 보태거나 빼거나 바꾼 것 따위를 바로 잡거나, 옮긴이와 출판사와 머리를 맞대보는 제삼자의 눈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여유나 시간이나 자본이 없다고, 출판사나 역자는 항변할 것 같다. 그러면 할 수 없다. 역자의 역량과 양심을 믿어야 한다. 그래도 오역이 보이면, 그래, 그래, 오역도 번역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고깟 오역이 원본을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을 테니,라는 희망과 믿음의 깃발을 펄럭거리며. 텍스트 위로, 펄럭럭 펄러럭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