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 없다. 무결점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내 탓이오'이란 말은 흔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막상 닥치면 진작 불리하면 반지빠르게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핏대를 세우며 알까지게 빠져나간다. 누가 그런지 우리는 안다. 절대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을 보았다. 그가 하지 않았다는 말에 광신도처럼 유토피아적 집단 자살을 하듯 날뛰는 언론도 보았다.
주위를 돌아보자. 누가 내 탓이라고 하는지. 그저께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가 양심선언을 했다. 할아버지는 학살자였고 가족은 비자금으로 살고 있는 범죄자라 했다. 나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맑은 정신에 폭로했으면 나았을 텐데, 언론은 마약을 했다고 한다. 맨정신에 버티기 어려웠나 보다. 악의 무리들과 기득권은 떵떵거리고 산다. 법은 가지지 못한 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자. 죄를 지은 자들이 내 탓이라고 하지 않아도, 내가 지은 작은 실수, 잘못, 과오에 내 탓이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그들은 나보다 더 큰 죄를 지어도 권력과 금력으로 눌러 정의와 공정을 씨불이고 있는 데도 과연 내 탓이라고 할 정직과 우둔함이 있는가.
하비에르 마리아스 (Javier Marías)는 어떨까. 아니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지은 소설의 인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Mañana en la batalla piensa en mí> (1994)의 주인공 빅토르는 도의적 책임에 어떤 태도를 취할까. 시나리오 작가이자 대필작가, 돌아온 싱글, 빅토르는 만난 지 2주 밖에 안 되는 마르타, 대학교수 유부녀의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을 먹었다. 그녀의 남편이 출장을 간 틈에 그와 재미를 보려고 했지만 일을 시작하다 반나체로 침대에서 토할 것 같다며 그의 팔에 안겨 죽어버렸다. 소설은 어이없고 비현실적 사건으로 인간의 허위를 꼬집고 있다.
소설의 첫머리는 우스꽝스러운 죽음의 종류와 정황에 대해 나열을 한 후 박장대소할 죽음을 언급한다.
Pero esa es una muerte horrible, se dice de algunas muertes; pero esa es una muerte ridícula, se dice también, entre carcajadas. Las carcajadas vienen porque se habla de un enemigo por fin extinto o de alguien remoto, alguien que nos hizo afrenta o que habita en el pasado desde hace mucho, un emperador romano, un tatarabuelo, o bien alguien poderoso en cuya muerte grotesca se ve sólo la justicia aún vital, aún humana, que en el fondo desearíamos para todo el mundo, incluidos nosotros. Cómo me alegro de esa muerte, cómo la lamento, cómo la celebro.
하지만 이것은 끔찍한 죽음이야,라고 어떤 죽음에 대해서 우린 말한다. 그래 이 죽음은 우스꽝스러워,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하기도 한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마침내 적이 사멸했거나, 우리와 관계가 아주 먼 사람이 죽었거나, 우리에게 모욕을 준 사람이나, 과거에 살았던 사람, 로마 황제나 고조할아버지가 죽었거나 권력자의 기괴한 죽음에서 생생한 인간적인 정의가, 이런 정의는 본디 우리를 포함해 모두에게 적용되기를 바라지만, 실현된 것을 보았을 때이다. 그런 죽음에 나는 진정 기뻐하고, 정말 애통해 하고, 아주 흔쾌하게 여긴다. (필자번역)
아래는 문학과 지성사의 번역이다.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죽음이야, 라고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보고 말한다. 또한 '그건' 정말 황당한 죽음이야,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한다. 폭소를 터뜨리는 경우는 마침내 우리의 적이 죽었다고 생각할 때이다. 또한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우리에게 도전한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먼 과거에 속한 사람들, 가령 로마 황제나 고조할아버지, 혹은 죽은 권력자의 괴상망측한 모습 속에서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원하던 정의가 구현되었음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죽음을 기뻐하기도 하고, 유감스럽게 여기기도 하며, 축하하기도 한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문학과 지성사. 2014, 10쪽).
문지사가 '우리에게 도전한' 사람이라고 옮긴 nos hizo afrenta는 '우리에게 모욕을 준' 사람이다. 또한 괴상망측하게 죽은 권력자는, 문지사는 번역하지 않았지만, 정의가 생생하고 인간적으로 (aún vital, aún humana) 실현된 것이다. 이런 정의는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라, 권력자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en el fondo) 우리를 포함한 모두에게 적용되길 바라는 (desearíamos para todo el mundo, incluidos nosotros) 것이다. 잘못을 하면, 저자와 서술자와 독자를 포함해, 대통령이라도, 대통령의 할아버지라도 어느 누구도 정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권력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과오가 있으면 책임과 처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며 정의는 평등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네 탓이나 권력자만 탓하지 않고 내 탓이요, 내 과오요, 내 잘못이요, 이런 나에게 정의의 철퇴를 치라는, 그래서 기꺼이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해괴망측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문지사의 번역본은 옮기지 못했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적과 권력자와 굴욕을 안겨준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과오를 저지른 우리와 자신의 죽음에도 폭소를 아끼지 말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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