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pan을 주식으로 하는 스페인에 가장 잘 알려진 쌀 요리는 파에야 paella이다. 파에야는 둥근 파에야 철판에 올리브유를 둘러 고기를 볶고 채소를 넣고 난 뒤 생쌀을 넣고 물이나 육수를 부어 쌀을 요리하여 국물이 없는 마른 밥이 되는 아로스 세코 arroz seco 음식 중 하나이다. 파에야 이외에도 스페인에는 수많은 쌀 요리가 있다. 쌀 요리는 요리된 쌀, 즉 밥의 물기 상태에 따라 음식 이름이 정해지거나 요리 도구, 요리 방법, 요리 재료, 요리가 만들어지는 지역 등에 따라 명명된다.
요리된 쌀의 물기 여부에 따라 쌀 요리는 세 가지 - 아로스 세코, 아로스 멜로소, 아로스 칼도소- 로 구분한다. 아로스 세코 arroz seco는 위에서 언급한 파에야처럼 밥에 물기가 없는 음식이다. 정확하게 우리의 된밥은 아니지만 유사하다. 아로스 멜로소 arroz meloso (meloso는 부드럽다, 감미롭다는 뜻)는 국물이 조금 있어 걸쭉하다. 아로스 칼도소 arroz caldoso는 우리의 국밥처럼 국물이 흥건한 쌀 요리이다.
잠깐, 아로스 세코 arroz seco는 오해하기 쉽다. 아래는 엣센스 스페인어사전에 파에야 단어 풀이와 설명이다.
파에야를 발렌시아 지방의 요리이고 "마른 쌀"과 다른 재료를 넣고 만든 "찐 밥"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아래 한림원 스페인어사전 (RAE)의 뜻풀이를 직역한 것인데 plato de arroz seco의 arroz seco는 '국물이 없는 마른 밥'이란 뜻인데 글자 그대로 "마른 쌀"이라고 오역했다. 그리고 "고기, 생선, 해산물, 야채 등을 넣고 찐 밥"이라고 했는데, 파에야는 찐 밥 (arroz al vapor)이 아니다. RAE의 풀이를 제대로 번역하면 "고기, 생선, 해물, 콩 따위의 재료로 만든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 특산 음식으로 국물이 없는 마른 밥"이다. 오늘날 파에야에는 보통 생선이 들어가지 않지만 RAE는 발렌시아주 해안 지역에서 생선을 파에야의 재료로 사용하고, 벼농사의 곡창 지대인 알부페라 호수 주변의 마을에서는 아주 옛날에 석호에서 잡은 장어를 파에야에 넣기도 했다. 물론 요즈음은 장어로 '장어탕, 아이 이 페브레 all i pebre'를 해 먹고 파에야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RAE는 이런 사실을 반영하기 위하여 생선을 파에야의 재료에 포함시킨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로스 세코 arroz seco, 즉 국물이 없는 마른 밥으로는 파에야 이외에 유명한 음식은 아로스 네그로 arroz negro*가 있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검은 밥'이지만 시꺼먼 오징어 먹물로 요리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주로 발렌시아주 또는 카탈루냐주에 흔한 음식이다.
* arroz negro는 검은 쌀을 뜻하기도 해서 이 쌀로 지은 검은색의 밥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오징어 먹물과 다른 재료로 만든 검은 밥이다.
아로스 칼도소 arroz caldoso (caldoso는 국물, 육수를 뜻하는 caldo의 형용사)는 우리의 국밥과 유사하다. 사실 한국의 국밥은 따로 조리한 밥을 찌개나 국에 말아 먹는 음식이다. 예, 돼지국밥, 소고기국밥, 따로국밥. 쌀을 국물과 함께 요리하면 국밥이 아니라 삼계탕, 야채죽, 팥죽, 호박죽처럼 탕 혹은 죽이 된다. 스페인 국밥이라 할 수 있는 아로스 칼도소 arroz caldoso는 밥을 따로 하지 않고 우리의 탕이나 죽처럼 국물이 되는 재료와 함께 요리한다. 밥의 식감은 삼계탕이나 죽같이 부드럽지 않고 설익은 듯 단단하다.
수많은 아로스 칼도소 arroz caldoso가 있다. 국물을 내고 쌀과 함께 요리하는 재료를 전치사 con 또는 de 뒤에 첨가하면 된다. 아래는 몇 가지 예이다.
- arroz caldoso de pescado 생선 국밥
- arroz caldoso con pollo 닭고기 국밥
- arroz caldoso de marisco 해물 국밥
- arroz caldoso con gambas 감바스 새우 국밥
- arroz caldoso de verduras 채소 국밥
- arroz caldoso con langostines 랑고스틴 새우 국밥
- arroz caldoso de setas 버섯 국밥
- arroz caldoso con calamares 오징어 국밥
- arroz caldoso de bogavante 바닷가재 국밥
- arroz caldoso con conejo 토끼 국밥
아로스 멜로소 arroz meloso는 진밥 또는 걸쭉한 밥이라 할 수 있는데 이탈리아의 리소토 risotto와 유사하다. 물론 아로스 멜로소가 리소토보다 더 걸쭉하다는 견해가 있다. 아무튼 아로스 멜로소는 아로스 칼도스 (국밥)보다 국물이 적다. 이름은 아로스 칼도소처럼 국물을 내며 쌀과 함께 조리하는 재료에 따라 명명한다. 아래는 아로스 멜로소의 예이다.
- arroz meloso con setas 아로스 멜로소 콘 세타스 - 버섯 진밥
- arroz meloso de verduras 아로스 멜로소 데 베르두라스 - 채소 진밥
- arroz meloso con espárragos y queso de cabra 아스파라거스와 염소 치즈 진밥
- arroz meloso con sepia 아로스 멜로소 콘 세피아 - 세피아 오징어 진밥 arroz cremoso de setas y queso parmesano 버섯과 파르마 치즈 진밥 (치즈가 들어가면 meloso란 말 대신 cremoso라 할 수 있고 그러면 이탈리아의 리소토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요리 도구에 따른 쌀 요리를 알아본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오븐 밥, 아로스 알 오르노 arroz al horno (발렌시아어 arròs al forn)이다. 발렌시아주에서는 파에야만큼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다. 황토색 질그릇에 돼지고기, 토마토, 감자, 마늘, 병아리콩, 소시지, 쌀 등을 담아 오븐에 익힌 음식이다.
아로스 아 반다 arroz a banda는 요리 방법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a banda는 발렌시아어 또는 카탈루냐어로 '따로'라는 뜻인데 생선 육수 (fumet 발렌시아어)로 밥을 지어 먹고 남은 육수에 감자와 생선이나 해물 따위를 따로 조리해서 먹는다. 요즈음은 육수만 따로 만들고 해물과 쌀을 철판에 같이 요리한다. 해물 파에야와 비슷하지만 홍합 등 다양한 해산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발렌시아주의 알리칸테와 무르시아주와 카탈루냐주와 발레아레스섬에서 흔한 음식이다.
*아로스 아 반다 조리법 - 알리칸테 항구의 다르세나 식당 Restaurante Darsena
잡어 morralla, 새우 껍질과 노랴 고추 등으로 생선 육수를 만들고 파에야 철판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오징어와 새우를 쌀과 함께 볶다가 육수를 부어 조리한다. 아로스 아 반다는 파에야처럼 마른 밥, 아로스 세코 arroz seco이다.
아로스 델 세뇨레트 arròs del seynoret (스페인어로 arroz del señoret / arroz del señorito)는 아로스 아 반다와 아주 유사한데, senyoret은 스페인어 señorito에 해당하는 발렌시아어이다. 새우 등의 해산물을 도련님 señorito 세뇨리또 (señorito는 남자를 높이는 경칭 señor의 축소사)가 먹기 좋게 미리 껍질을 까고 요리한 것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아로스 비우도 arroz viudo는 육류나 해산물, 생선이 들어가지 않고 쌀과 채소만으로 만든 파에야이다. 비우도 viudo는 홀아비란 뜻이지만 음식 이름에 사용되면 육류가 없는 요리란 의미이다. 무르시아주에서 주로 흔한 음식이고 발렌시아에는 채소 파에야, 파에야 데 베르두라스 paella de verduras 라고 한다.
사모라식 밥 arroz a la zamorana 아로스 아 라 사모라나는 부르고스 옆에 있는 Zamora 사모라 지역의 쌀 요리로, 돼지 귀, 족발, 소시지 따위를 넣고 고기나 채소 육수에 조리한 밥이다.
해삼 밥 arroz con espardeñas 아로스 콘 에스파르네냐스는 카탈루냐주 남부 타라고나 지역과 발렌시아주 북부 카스테욘에서 해 먹는 해삼 pepino de mar (바다 오이, 영어 sea cucumber)과 해물로 만드는 쌀 요리이다.
요리된 쌀, 즉 밥의 물기 상태와 상관없이, arroz (밥,쌀) 뒤에 전치사 con을 붙인 이름의 쌀 요리도 부지기수이다. 대표적인 것이 '닭고기밥 arroz con pollo 아로스 콘 포요' 쌀을 닭고기 함께 국물이 있도록 요리하지 않고 먹기 좋게 조리한 밥이다. 이외에도 '바닷가재밥 arroz con bogavante 아로스 콘 보가반테'는 caldoso란 국물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 이름으로, 국물이 없는 바닷가재 밥요리이다. 바닷가재 진밥 arroz meloso con bogavante 아로스 멜로소 콘 보가반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arroz 뒤에 '~라는 방식으로'를 뜻하는 전치사 a를 붙인 이름의 쌀 요리도 있다. arroz a la cubana 아로스 아 라 쿠바나, 쿠바식 밥으로 토마토와 바나나와 함께 요리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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