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구와 속담은 일상어로 자주 쓰이고 문학 작품에도 흔히 사용된다. 소설에 쓰인 관용구와 속담을 역자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번역이 어떨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외국 문학의 번역자라면 해당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인데, 능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능통해야 하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대개 문자 의미와 관용구와 속담 등의 비유 의미를 구분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특정 낱말과 관용구와 속담은 물론이고 암시 의미, 내연의 뜻(connotación)까지 알고 있고 이를 번역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 표현인 관용구와 속담은 '이마에 나 관용구입니다' 또는 '나 속담입니다'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있지 않다. 가령 우리말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 그대로 시력이 나쁘거나, 눈이 아프거나, 눈을 가려 잘 보이지 않다는 뜻이지만 이성을 잃거나 오만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관용구이기도 하다. 이 관용구 뜻을 모르는 외국인이 '눈에 뵈는 게 없다'를 문자 의미로만 알고 사용한다면 웃지 못할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스페인어의 관용구와 속담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에 쓰인 관용구, 속담, 숨은 의미의 오역은 좁게는 오역을 한 맥락에서 부분적 오해를 이끌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오역이 인물의 성격, 행위, 플롯, 주제, 시점, 의도 등의 작품 전체를 왜곡하는 데 기여한다면 작품 질에 치명상을 입힌다.
이 글에서는 관용구나 속담을 역자가 인식하지 못하고 -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본 글을 쓰는 블로그 필자의 '가정'이다. 역자에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이상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관용구나 속담을 역자가 인식을 했지만 의도적으로 관용구나 속담으로 번역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럴 가능성이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 번역을 한 사례를 살펴 본다. 아래는 세 개의 다른 소설의 예이다.
1. ¡Hasta la siega del pepino! 까마귀 대가리 희거든 봅시다
Hasta la siega del pepino의 문자 의미는 '오이를 수확할 때까지!'이지만 (hasta 까지, siega 수확, pepino 오이) 비유 의미로 절대 다시는 보지 말자는 뜻으로 '까마귀 대가리 희거든 봅시다'라고 옮길 수 있다. 오이는 수확(cosecha)을 하지만 벼를 수확하듯 낫으로 줄기 밑동을 잘라 siega(수확) 하지 않고 줄기에서 오이를 따는 recolección(수확)을 한다. 오이를 siega 수확하는 일은 더물거나 불가능한 일이니 '오이를 siega수확할 때 가서 보자'는 말은 다시 만나지 말자는 뜻이다. 이런 불가능한 일은 hasta que las ranas críen pelo (개구리가 털이 날 때까지), cuando las gallinas tengan dientes (닭 이빨이 날 때까지)라는 비유한다. 우리말로는 '까마귀가 학이 되면', '거북이에게 털이 나면', '염소가 물똥을 누면',' 간장이 쉬고 소금이 곰팡나면', '과부집에 바깥양반이 있으면', '여든에 이가 나면'이란 비유가 있다.
이 관용구가 사용된 소설 속의 문맥은 아래와 같다.
A lo que respondía el ministro al día siguiente con expresiones como <<ir con la hora pegada al culo>>(por ir justo de tiempo), <<ir de pijo sacado>> (por estar abrumado de trabajo), <<ir echando o cagando leches>> (por ir a toda velocidad), <<sanjoderse cayó en lunes>> (con lo que se invita a tener paciencia), <<bajarse las bragas a pedos>> (de dudoso sentido), etcétera; y se despedía diciendo <<¡hasta la siega del pepino!>>, o cosa parecida.
위 단락을 민음사 번역본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산업성 장관은 그 다음날 아래와 같은 표현이 가득한 답장을 보내왔다. ‘똥구멍에 시간을 달고(풀어 설명하면, 시간에 쫒겨)’, ‘똥 덩어리에 걸려(풀어 설명하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유유를 흘리거나 싸질러 가며(풀어 설명하면, 최고 속도로 달려)’, ‘자지에 퍼질러 앉아(풀어 설명하면, 참아 달라고 부탁하는 바)’, ‘방귀에 팬티가 흘러내려(풀어 설명하면, 의심스러운 의미로)’ 등등.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항상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오이를 수확할 때까지 안녕히.” 등등.
바르셀로나가 만국박람회를 개최할 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마드리드에 대표를 파견했다. 대표가 정부의 산업성 장관에게 박람회 유치 의향을 피력하며 만나기를 바란다는 서한을 부쳤고 이에 대한 장관의 답장이다. 요지는 장관이 바빠서 대표를 만날 시간이 없으니 다시는 보지 말자는 좀 웃기는 답장을 했다. 장관의 비유 표현은 << >>부호 안에 있고 뒤의 괄호는 비유 표현을 풀이한 말이다.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자. 엉덩이(culo)에 시간(hora)이 박히면(pegado)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고, 음경(pijo)을 내 놓은 채(sacado) 돌아다니면, 볼일 보고 동대문을 열어 놓은 것처럼, 너무 일이 많아 정신이 없는 것이고, 우유(leche)를 쏟으면(echando) 그만큼 빨리빨리 서두르는 것이고, 3월 19일에 오는 산호세(San José) 성일이 월요일(lunes)이란 말은 날짜는 정해져 있지만 해마다 요일이 바뀌니 무슨 요일에 대표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고, 방귀(pedo)에 팬티(bragas)가 내려갔다(bajarse)는 것을 불가능한 일을 뜻하므로 대표가 요청한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이고, 작별 인사로 'Hasta la siega del pepino'라는 말은 괄호로 뜻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절대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므로 '토끼 머리에 뿔 날 때까지 안녕히'라는 관용구로 옮길 수 있다.
2. Quien tuvo retuvo 일색은 세월이 가도 일색, 노장은 죽지 않는다
Quien tuvo retuvo는 El que tuvo, retuvo와 같은 뜻의 속담으로 문자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지한다'란 뜻이다. 전혀 속담이나 관용구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실 '미인은 세월이 가도 여전히 미인'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에 대응하는 속담이나 관용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늙어도 기생'이라는 속담을 응용해 '늙어도 미인' 이란 표현이나, 뛰어난 미인을 뜻하는 일색(一色),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낱말을 이용하여 '일색은 세월이 가도 일색', '경국지색은 만고불후(만고불변)'이라든지, 아니면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미인은 변하지 않는다는 '일색은 만고강산이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듯, '한번 미인은 영원한 미인'이라고 해도 된다. 요점은 Quien tuvo retuvo의 속담을 이해하면 한국어에 상응하는 관용구나 속담이 없어도 가능한 말을 조합하여 얼마든지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 심지어 잘 만들면 우리말 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인은 주로 여자를 말하는 것이지만 미남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또한 미적 가치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특질로 속담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그래서 욍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 DRAE는 아래에 보다시피 'quien tuvo, retuvo'를 옛날에 가지고 있던 미, 우아함(매력, 재능), 늠름함, 돈 따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인뿐만 아니라 여러 특질에 적용할 수 있는 비유인데 축구선수, 가수, 투우사 등의 다양한 전문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한다. 아래 헤드라인이 좋은 보기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에 관한 기사이다.
이 속담은 다음과 같이 소설의 한 장면에 등장한다.
La Jeringa era la sobrina del Cardenal; muchachita seria, de quince años, pálida, silenciosa, reservada, de ojos garzos y cabellos de un rubio sucio, sin luz. Hablaba poco y a trompicones, observaba las cosas con recelo, como si fuera corta de vista, y siempre iba sola. Según el Cardenal, había heredado la naturaleza torpe y aturdida de su madre. Pero estos ojos de ceniza y este pelo que hoy mostraba una extraña sequedad serena e inanimada, como de cardo, habían sido luminosos y por lo visto era verdad, como decía su tío, que quien tuvo retuvo, porque últimamente Manolo no hacía más que mirar aquel rostro sin saber qué le atraía en él, hasta que un día, mientras ella le vendaba la mano, descubrió de pronto lo mucho que se parecía (y de qué extraña, inquietante manera) a Teresa Serrat. Y lo curioso para él era que, conociendo a Hortensia desde mucho antes, no hubiese hecho esta observación a la inversa: es decir, que lo lógico habría sido que Teresa le recordara a la sobrina del Cardenal. ¿Por qué no había sido así? (Juan Marsé. Últimas tardes con Teresa)
소설을 최초로 옮긴 장원 출판사의 번역본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주사기는 주교의 여조카였다. 새침떼기에 창백하고 말이 없고 가시 돋힌 말을 하기 일쑤였다. 시력이 나쁜 듯 사물을 볼 때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그리고 항상 혼자 다녔다. 주교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그녀 어머니가 가진 굼뜨고 어벙벙한 성격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잿빛 눈과, 마치 엉겅퀴처럼 고요하고 생기없는 건조함을 드러내는 머리칼은 정말로 사람의 주의를 끄는 무엇이 있었다. 그녀의 삼촌이 말한 것처럼 일단 그녀는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최근 들어 마놀로는 무엇이 그녀에게 매료되는지도 모르면서 넋을 잃고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자신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동안 그녀가 테레사 세라뜨와 아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고 불안스러운 방식으로. 그리고 그는 오르덴시아를 안지가 오래됐는데, 테레사를 처음 봤을 때 왜 그녀가 오르덴시아와 닮았다는 것을 몰랐을까 의아하게 느껴졌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테레사가 주교의 조카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위 번역본 뒤에 나온 창작과 비평사의 번역본 아래와 같이 옮겼다.
주사기는 추기경의 조카였다. 열다섯살인 그녀는 진지하고 창백하고 조용하면서 내성적이었고, 푸른 눈과 윤기 없는 건조한 금발을 가진 아이였다. 말수가 적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였다. 그녀는 근시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사물을 관찰했고 늘 혼자 다녔다. 추기경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굼뜨고 덜렁대는 성격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잿빛 눈과 엉겅퀴처럼 묘하게 차분하면서도 푸석거리는 머리칼은 요즘 들어 그녀의 삼촌이 말한 대로 정말 빛나면서 생기를 띠어갔다. 그녀에게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최근 마놀로는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매료되어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곤 했다. 어느날 그녀가 자신의 손에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는 갑자기 그녀가 떼레사 쎄라 뜨와 (묘하면서도 기분 나쁘게) 무척 많이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마놀로가 의아하게 여긴 것은 오래전부터 오르뗀시아를 알았는데, 왜 그 반대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바꿔 말하면, 떼레사를 만났을 때 추기경의 조카를 당연히 떠올렸어야 하지 않았으냐는 말이다. 왜 그러지 못했을까?
어설픈 좌파 여대생 테레사를 사랑하는 주인공, 오토바이 도둑, 마놀로가 추기경이라고 하는 장물아비의 여조카 오르텐시아(별명 주사기)를 생각하는 장면이다. 두 번역은 quien tuvo retuvo를 속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이목을 끈다는 뜻으로 '걸음을 멈추게 한다'라고 문자 의미를 옮겼다. 바르게 번역하면 '그녀의 아름다움은 녹슬지 않았다', '세월이 예쁜 그녀의 얼굴에 주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 '한번 일색은 평생 일색'과 같이 옮길 수 있다. 머리칼이 윤이 나며 아름답게 보인 까닭은 그녀의 삼촌이 말한 것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세월이 가도 만고불변하기 때문이다.
3. no ver alguien la hora de algo 마음이 굴뚝 같다, 생각이 꿀떡 같다
no ver alguien la hora de algo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누가 어떤 것을 할 시간을 보지 못한다'이다. 하지만 아래 왕립학술원 스페인어 사전(RAE)이 설명한 것처럼 무엇을 이루거나 할 순간이 한시바삐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조하는 관용구이다.
no ver alguien la hora de algo는 한국의 서한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가령 엣센스(네이버) 스페인어 사전에는 뜻풀이가 없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 관용구는 무엇을 간절히 하고 싶거나 원하다는 뜻인 '마음이 굴뚝 같다'와 무엇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뜻인, '생각이 꿀떡 같다'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스페인 학습자를 위한 국립국어원 한국어 스페인어 학습사전은, 관용구 '마음이 굴뚝 같다'를 'parecer una chimenea el corazón'라고 글자 그대로 옮겨 한국어의 발상을 알려 주고 'desear mucho(심하게 바라다)'란 의미라고 설명을 첨부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꿀떡 같다'도 'parecer como un teok dulce un pensameinto'라고 글자 그대로 한국어의 발상을 알려 주고 의미는 'que tiene una fuerte voluntad de realizar algo(무엇을 실현시키고 싶은 의지가 매우 강하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하지만 no ver alguien la hora de algo가 두 관용구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자명하다.
관용구 no ver alguien la hora de algo는 소설에 다음과 같이 쓰였다.
Algunos amantes se estarían tal vez despidiendo, no ven la hora de volver a solas cada uno a su lecho, el uno abusado y el otro intacto, pero todavía se entretienen dándose besos con la puerta abierta -es él quien se va, o ella - mientras él o ella esperan el ascensor que llevaba ya quieto una hora sin que lo llamara nadie, desde que volvieron de una discoteca los inquilinos más noctámbulos...
문학과 지성사 번역본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몇몇 연인들은 아마도 서로 작별을 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 침대로 돌아갈 시간을 잊었을 것이며, 두 사람의 침대 중에서 하나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밤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디스코텍에서 돌아온 뒤에 한 시간 넘게 꼼짝하지 않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문 앞에서 키스를 하며 마지막 즐거움을 만끽한 다음 헤어졌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no ven la hora de을 문자 그대로 '시간을 잊었을 것이며'라고 번역했다 (글자 그대로 '시간을 보지 못하다'이지만 '보다'를 '잊다'로 의역했다). 하지만 이 관용구는 '마음이 굴뚝 같다'란 뜻이다. 섹스를 마치고 각자 침대로 한시바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는 말이다. 두 연인(amantes)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가는 사람이 남자나 여자 중 하나일 것이며, 어느 한쪽 집의 침대에서 살을 섞은 후 각자 집에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며 현관문을 열어 놓은 채 키스를 하며 즐기든지 아니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entretenerse는 '즐기다'와 '꾸물거리다'라는 뜻이 있다.
관용구를 관용구로 옮기며 새로 번역을 하면 아래와 같다.
(1) 어떤 연인들은 어쩌면 작별을 고하고 있을 것인데, 한쪽은 엉망으로 허트러지고 다른 쪽은 멀쩡한 그런 각자의 침대로 홀로 한시바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는 사람이 남자이거나 여자일 것이며, 야행성인 건물 주민이 디스코텍에서 돌아와 사용한 다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한 시간 채 그대로 멈추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현관문을 열어 둔 채 키스를 하며 꾸물거리고 있다.
(2) 어떤 연인들은 아마 작별을 하고 있을 것인데, 한쪽 침대는 허트러졌고 다른 쪽은 손도 대지 않은 그런 각자의 침대로 혼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지만, 떠나는 사람이 남자이거나 아니면 여자일 것이며, 아직도 현관문을 열어 놓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키스를 즐기고 있다. 엘레베이터는 야행성인 건물 주민이 디스코텍에서 돌아와 사용한 후부터 한 시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장면 이후에 이 연인이 다시 등장하는데, 원본은 아래와 같이 육체만 탐하는 연인이란 것을 분명히 언급한다. 하지만 번역본은 진실한 사랑을 하는 연인으로 바꾸어버렸다.
... ni me acerque espantado y corriendo hasta el hospital de La Luz para zarandear a la enfermera que duerme sentada con las piernas cruzadas que ahora ya le entreabrió el descuido, no seré yo quien la saque de su efímero y avaricioso sueño, ni quien haga olvidar de golpe y antes de tiempo cuanto lleva memorizado esta noche el apesadumbrado estudiante con gafas, ni quien interrumpa la despedida de los amantes saciados que se demoran a la puerta del que se queda a la vez que ansían ya separarse, quizá en este mismo piso; porque nadie debe saber ni sabrá todavía que Marta Téllez ha muerto....
문학과 지성사 번역본은 다음과 같이 옮겼다.
.... 놀란 모습으로 그녀를 안고 '라루스'병원으로 뛰어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잠자던 간호사를 깨워야 할 사람도 아니야. 물론 그렇게 하면 간호사들도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벌리고 선잠에서 깨어날 테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또한 시험 걱정에서 오늘 밤 모든 것을 외우려는 안경 낀 학생을 갑자기 놀라게 해서 그가 외운 것을 시험 시간이 되기 전에 모두 잊어버리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헤어지게 싫어 현관 앞에서 키스를 반복하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연인들을 방해할 생각도 없어. 왜냐하면 그 누구도 마르타 테예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지금 알아서도 안 되고, 앞으로도 알면 안 되기 때문이야.
앞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며 키스로 작별을 하고 있던 연인은 이번에는 la despedida de los amantes saciados que se demoran a la puerta del que se queda a la vez que ansían ya separarse라는 구절로 다시 등장했다. 번역본은 "헤어지게 싫어 현관 앞에서 키스를 반복하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연인들"이라고 했지만 바르게 옮기면 '헤어지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문에서 꾸물거리며 작별하고 있는 물려 버린 연인들'이다 (ansían ya separarse 빨리 헤어지고 싶어 조바심이 나는, se demoran a la puerta 문 앞에서 지체하다, amantes saciados 싫증난 /포식한 연인들). 원문에 한시바삐 헤어지고 싶은 '육체파' 연인을 역자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선남선녀로 바꾸어버렸다. 악마를 천사로 바꾼 격이다.
주인공 남자, 시나리오를 쓰는 대필 작가인 빅토르가 유부녀 대학 교수, 마르타 테예스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병이 있었는지 일을 시작하자마자 반쯤 옷을 벗은 채 침대에서 그의 품에 안겨 죽어버렸다. 숨이 넘어가기 전에 그녀를 안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빅토르와 마르타와의 관계는 섹스를 마치고 어서 헤어지기를 갈망하는 식상한 여느 연인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소설의 재미이자 풍자이다. 이 연인들은 이 후 소설에 두 번 정도 더 언급된다.
문학 번역에서 관용구나 속담과 같은 비유 표현의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점을 세가지 사례로 알아보았다. 관용구나 속담을 이해하지 못하면 원하지 않게 원본을 곡해하는 번역을 하게 된다. 더구나 이런 오역은 원본과 대조를 하지 않으면 쉽게 드러나지 않고, 의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수정되지 않은 채 진실이 되어 활자 생명을 이어간다. 우린 가끔 이런 말을 한다. 그 소설 좀 어려운 데가 있어, 좀 심오해. 그럴까. 번역된 문학이 어렵거나 심오한 것은 원작의 깊이나 넓이 때문일 수 있지만 가끔 번역이 이런 원작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해 어려움이 심해지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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