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이름이 없는 외국 음식을 번역할 때 대개 두 가지 전략을 쓴다. 한국화하든지 외국 음식의 이름을 차용하면 된다. 한국화의 예를 들어 보자. 스페인에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성분이 있는 tila라는 차가 있다. 유럽에 가로수로 많이 쓰는 tilo 피나무(린덴나무)의 꽃으로 만든 허브차이다. 이것을 '유자차'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한국화 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차가 신경을 안정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등장했다면 차라리 감기나 목병이 있어 마시는 유자차 대신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녹차가 나을 듯 싶다. 아니면 독자에겐 생소하지만 '피나무꽃 차' 또는 '린덴나무 꽃 차'라고 하든지 원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틸라차'라고 하면 된다. 유자차는 어쩌면 역자가 제대로 사실을 알아 보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본 번역일 수 있다.


어떤 음식은 원어 차용과 한국 이미지를 혼합하여 번역 할 때도 있다. '아니스 소주'가 좋은 예이다. 아니스 anís는 미나리과의 식물로 향미료로 쓰인다. 이 아니스로 만든 알코올 도수가 40도에 달하는 독한 리큐르 아니스가 있다. 이 리큐르를 한국의 '소주'라는 명칭을 붙여서 '아니스 소주'로 옮기는 경우가 있다. 한국 독자에게 낯설지 않아 친화력은 있으나 독특한 향기의 아니스가 '소주'와 어울리지 않는다. 차리리 '아니스주' 아니면 '리큐르 아니스'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원본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 ¡Lopez!
- Voy, señorita.
- ¿Cómo andamos de vermú?
- Bien, por ahora bien.
- ¿Y de anís?
- Así, así. Hay algunos que ya van faltando.
위의 대화를 옮긴 다음과 같이 번역 두 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로페스!" "예, 사장님" "백포도주 맛은 어떤가?" "요즘은 괜찮습니다." "아니스 소주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곧 바닥이 날 것 같습니다." |
"로페스!" "예, 사장님" "베르무트 얼마나 남았어?" "충분해요, 당분간 괜찮습니다." "아니스는?" "고만고만해요. 어떤 아니스 종류는 곧 바닥이 날 겁니다." |
로페스는 카페의 지배인이고 señorita는 카페 여주인이다. 주인이 로페스를 불러 술의 재고가 어떤지 나누는 대화이다. 베르무트(vermú)와 아니스술의 재고를 물었다(베르무트는 포도주와 약쑥 등을 섞어 만든 식사 전에 입맛을 돋구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왼쪽 번역은 베르무트를 '백포도주'로 아니스는 '아니스 소주'로 한국화했고 'andamos de'를 '맛은 어떤가'로 오역했다. 백포도주는 독자의 생소함을 줄일 수 있지만, 백포도주는 vino blanco (white wine) 이지 vermú이 아니다. 외국 음식의 한국화가 좋은 번역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백포도주'와 '맛은 어떤가'는 원본을 보지 않으면 오역이라는 것을 알기가 어렵다.
'오야(olla)'를 예로 들어보자. 오야는 오야라는 냄비나 솥 같은 조리 도구에 고기, 콩, 채소를 장시간 물에 삶은 완숙으로 '코시도(cocido)'란 음식이다. 가령 돈키호테 1권 1장 첫머리에 돈키호테가 평소에 먹는 음식으로 'una olla de algo más vaca que carnero'가 있다. olla는 cocido이기 때문에 원어를 차용해 '양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많은 코시도' 또는 '양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많은 오야'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오야나 코시도가 거북하거나 낯설다면 '양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많은 완숙'으로 순화할 수 있다. 아니면 '완숙' 대신 '요리'라는 우리말로 외국 음식을 두루뭉술하게 길들이는 번역도 있을 것이다.
음식 번역은 이런 문학 작품에서도 중요하지만 사전의 번역은 더 중요하다. 누구든지 참조하는 것이 사전이기 때문이다. 몇 중요한 스페인 음식을 엣센스 스페인어 사전은 어떻게 옮겼는지 살펴본다.
- paella 파에야 / [요리] 빠에야, 빠엘랴 (스페인의 Valencia 지방의 특색 있는 요리로, 마른 쌀, 고기, 생선, 해산물, 야채 등을 넣고 찐 밥)
- cocido 코시도/ [요리] 꼬시도 (고기, 절인 돼지고기 및 야채를 넣은 요리; 전골, 냄비 요리)
- olla 오야 / 오야 (고기, 절인 돼지고기, 야채, 이집트콩 및 감자로 만든 끓인 음식; 스페인에서는 전에는 하루 식사의 주요 요리였음), 스튜
- puchero 푸체로 / 탕 요리, 전골 요리
- pote 포테 / 뽀따헤 (스페인의 갈리시아와 아스뚜리아스 지방에서 Castilla의 고기와 야채를 끓인 요리와 비슷한 요리)
- potaje 포타헤 / 냄비 수프, 냄비 요리
- salmorejo 살모레호 / 살모레호 (빵, 달걀, 토마토, 피망, 마늘, 소금 및 물로 만들어진 냉(冷)수프 gazpacho의 일종; 모두 잘게 다짐)
- gazpacho 가스파초 / [요리] 가스빠초 (빵 조각, 올리브유, 식초, 소금, 마늘, 양파 및 다른 첨가물로 만든 냉 수프)
- migas 미가스 / (복수) (물과 소금에 적셔 기름에 튀기고 마늘 같은 것을 넣어) 톡톡 쏘개 만든 빵
- callos 카요스 / (복수) [요리] 까요스 (소, 송아지 혹은 양의 곱창 전골; 스페인의 일부 지방에서는 술안주로 많이 먹음)
- bocadillo 보카디요 / 샌드위치
- tortilla española 토르티야 에스파뇰라 / 미등재
- churro 추로 / 추로 (기름으로 튀긴 가느다란 과자; 도넛의 일종이나 모양이 가지각색임)
- buñuelo 부뉴엘로 / [요리] 튀김 과자, 크로켓
- croqueta 크로켓 / [요리] 크로켓 (서양 요리의 하나, 고기를 다져 기름에 볶고, 쪄서 으깬 감자와 섞어서 둥글게 만들어 빵가루를 묻혀서 기름에 튀긴 음식)
- albóndiga 알본디가, 고기 완자, 생선 완자 / [요리] 알본디가 (잘게 다진 쇠고기나 생선 단자와 빵, 휘저은 달걀 및 양념을 강판에 갈아 묶어 함께 요리하거나 튀겨 먹는 것)
- carajillo 카라히요 / 뜨거운 커피에 강한 알코올 음료를 첨가해서 만든 음료, 브랜디가 들어 있는 커피
- torta 토르타, 납작빵, 케이크, 멕시코 보카디요 / 케이크, 파이
- horchata 오르차타 / (음료) 오르차따 (사초의 뿌리나 다른 과실로 만든 음료)
- fabada 파바다 / [요리] 파바다 (강낭콩, 소시지 및 선지 순대를 넣은 스페인 아스뚜리아스의 대표적인 짙은 수프)
- chorizo 초리소 소시지 / 돼지 순대, 돼지 소시지
- longaniza 롱가니사 소시지 / [요리] 롱가니사 (잘게 저며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채운 가늘고 긴 창자인 순대의 일종)
- salchicha 살치자 소시지 / (돼지고기) 소시지, 순대 (가는 창자에 소금, 고추 및 다른 양념으로 양념한 잘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것)
- jamón de York = jamón york 삶은 하몬 / 훈제한 햄
사선 뒤에 엣센스 스페인어 사전의 뜻매김과 설명이다. 파란색 글씨는 정보의 오류이다. 일일히 오류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겠지만 파에야와 삶은 하몬 둘만 보자. 파에야는 잘 알다시피 새우 따위의 해물이 들어가는 해물 파에야가 있다. 발렌시아 전통 파에야에는 위 설명처럼 찐 밥이 아니라, 닭고기, 토끼고기, 채소를 올리브유를 두른 파에야라는 둥근 철판에 볶다가 쌀을 첨가하고 난 뒤 물이나 육수로 삶은 요리이다. 대구나 장어 같은 생선이 아주 옛날에 파에야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요즈음도 발렌시아주의 일부에서는 생선이 들어간 파에야 가 있지만 전형적인 파에야는 아니다.
하몬 데 요크는 영국의 요크 지방이 원조로 하몬을 훈제한 것이 아니라 대구 뒷다리를 물에 삶아 소시지처럼 만든 음식이다.
다른 문화권 음식의 정확한 또는 유사한 우리말 대응어가 없으면 원어를 차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번역이다. 차용어로 옮기고 음식에 대한 설명은 정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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