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의 생물 뜻풀이를 읽고 나면 어떤 생물인지 머릿속에 그림이 대략 그려지지만 그 생물의 우리말 이름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그러면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을 찾아본다. 엣스는 DRAE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고 당연히 우리말 생물 명칭이 있을 것이다. 아니, 당연하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다. 가령, 참새목의 조류, buitrón을 '공중에서 흔들거리면서 지저귀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새'로, DRAE의 뜻풀이 일부를 번역해놓고, 우리말 이름 '개개비사촌'은 없다.* (더보기)
*DRAE buitrón
"남성 명사. 크기가 10 cm인 유럽의 새, 유럽의 가장 작은 새 중의 하나이고, 공중에 흔들거리며 울고, 검은 얼룩이 있는 갈색이고 목과 배는 흰색이고 꼬리는 짧고 둥글다." 엣센스 스페인어사전처럼 "유럽에서 가장 작은 새"가 아니라 "가장 작은 새 중의 하나"이다.
엣스 뜻풀이의 또 다른 문제는 종종 옳지 않아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른 명칭 대신 엉뚱한 이름으로 오역하거나(예, 갯과의 늑대와 여우를 닮은 자칼 chacal을 고양잇과의 '재규어'로 오역, 쏙독새 chotacabras를 '소쩍새'로 오역, 야생 고양이인 들고양이 gato montés를 '살쾡이'로 오역,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조팝나물 vellosilla를 낙엽성 떨기나무인 '조팝나무'로 오역, 젖버섯 níscalo를 '송이버섯'으로 오역, 흉부에 해골 무늬가 있는 나방인 탈박각시 calavera를 '박쥐나방과의 나비'로 오역), 우리말 이름이 있지만 스페인어 발음으로 옮겨놓거나(예, 갈치 sable를 '사블레'로 오역, 멀구슬나무 cinamomo를 '시나모모'로 오역), 생물의 종 명칭 대신 상위 분류명(속, 과, 목, 강, 문)이나 상위 개념으로 두루뭉술하게 뜻풀이를 한다(예, 청둥오리 azulón을 '오리의 일종'으로, 산형과 식물로 향신료로 쓰는 '캐러웨이' alcaravea를 '미나리과의 식물'로 번역, 구두동물 acantocéfalo를 '선충류동물' 또는 '원충류동물'로 번역).
alma perdida도 엣스의 이런 뜻풀이 관례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페루의 새(산속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며, 그 지저귀는 소리는 가엾은 비명 소리와 비슷하며, 밤과 새벽녘에 들린다."
새의 정체를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지만 한국어 명칭이 없다.
아시다시피, 엣스의 이 뜻풀이는 DRAE의 뜻풀이를 번역한 것이다.
'페루의 조류로 산속 한적한 곳에 서식하며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밤이나 새벽에 들린다'라고 했다. 울음소리가, 아니 지저귀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lastimeros(애석한, 처량한, 한탄조의) chillidos(외침, 비명)이라서 perdida(절망에 빠진) alma(영혼)이란 이름을 얻었나 보다.
새의 형태나 먹이나 번식에 대한 얘기가 없어 우리말 이름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고, 게다가 DRAE는, 신비주의를 선호하는지, 생물의 학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영혼이 외치는 소리를 내는 새라고 했으니 우선 울음소리를 들어보자. 새소리를 모아 놓은 xeno-canto, 링크에 접속한다.
https://xeno-canto.org/species/Nyctibius-griseus
첫 번째 녹음 - 우~아 아 아 아 ㄲ ...... 우 ~ 아 아 아 ㄲ ........, 한탄하는 듯 애를 끓이는 소리이다.
이버드(eBird)에서 들어보자.
https://ebird.org/species/compot1
울음소리의 주인은 '포투쏙독새'이다.
alma perdida(절망에 빠진 영혼)이란 새를 포투쏙독새로 판명한 것은 구글 도서검색 덕택이다. 검색어 alma perdida로 찾은 여러 결과 중 에콰도르에 있는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Machalilla의 안내서(1998)에 alma perdida와 학명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Revista de Santiago≫(1872-1873)의 444쪽에는 'alma perdida'는chotacabras(쏙독새)라고 적혀 있다.
쏙독새는 여름 밤에 쏙쏙 하며 우는 새이다. 우리나라에 쏙독새는 여름철새로 인도와 스리랑카에 서식하는 Caprimulgus indicus 종이다. 몸 전체가 회색, 갈색, 검은색으로 얼룩덜룩해서 나무에 앉아 있으면 나뭇가지 같고 바닥에 있으면 낙엽이나 바위 같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위장술이 뛰어난 쏙독새는 곤충을 주식으로 한다.
https://ebird.org/species/grynig2
스페인에는 Caprimulgus ruficollis 종의 쏙독새가 있다. 여름철새이자 텃새처럼 서식하는 쏙독새인데 우리나라 쏙독새와 다르게 목이 붉다. 쏙독새는 스페인어로 chotacabras라고 한다. 해어스름 때 민가의 외양간으로 와 염소들(cabras)의 젖을 빠는(chotar) 새라는 속설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어리숙한 목동들은 이런 쏙독새에게 속아 넘어갈 것 같아서 다른 말로 engañapastores(목동들을 속이는 새)라고 한다.
포투쏙독새는 한국과 스페인의 쏙독새처럼 곤충을 먹이로 하지만 입 주위에 빳빳한 털이 없는 등의 다른 특징 때문에 쏙독새목과 독립한 포투쏙독새목으로 분류한다.
alma perdida라는 비유적 의미로 불리는 포투쏙독새는 페루에만 서식하는 토착종이 아니라 니카라과, 파나마,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수리남, 페루,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북부 등에 서식한다.
학명이 Nyctibius griseus인 포투쏙독새는 보편적으로 urutaú, pájaro fantasma, potoo라고 한다. 사실 나라마다 이름이 다양하다. 콜롬비아에서는 pájaro bruja(문자 그대로 뜻, 마녀 새), 페루는 ayaymama, 에콰도르는 punta estaca, 볼리비아는 guajojó,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는 kakuy 또는 cacuy라고 한다.
cacuy는 urutaú와 함께 DRAE에 등재된 단어이다.
포투쏙독새 (영어 명칭 common potoo)는 길이가 34~38cm로 몸 전체가 황갈색, 흰색, 검은색, 회색이라서 나뭇가지처럼 위장을 한다. 암수 이형성이 없어 암수가 유사하고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커다란 검은 눈은 작은 노란 테가 있다. 아니면 노란 홍채가 크게 보일 때가 있다. 눈꺼풀이 두세 개이고 항상 열려 있어 눈을 감고 있을 때도 볼 수 있다. 눈꺼풀 상단과 하단은 따로 움직일 수 있어 원하는 대로 시계를 확보할 수 있다.
▶포투쏙독새 marco ferreira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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