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르세(Juan Marsé 1933~2020)의 장편 소설 <테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 Últimas Tardes Con Teresa >(1966)의 전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다. 소설이 시작되는 첫장으로 주인공 마놀로가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부잣집 가든 파티에 갔고 마놀로의 외모를 그렸다.
En el metal rutilante de la carrocería, sobre un espejismo de luces deslizantes, se reflejó su rostro melancólico y adusto, de mirada grave, de piel cetrina ….
창작과 비평사의 번역판은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는 우수에 젖은 듯한 암울한 자기 얼굴을 신기루 같은 불빛들이 미끄러지며 광채를 발하는 차체에 비춰보았다. 눈빛은 진지했고 피부는 창백했다...(테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한은경 옮김. 창작과 비평사. 2016: 22)
rostro melancólico y adusto을 '우수에 젖은 듯한 암울한 얼굴'로 옮겼다. melancólico는 '우수에 젖은' 것이고 adusto는 '암울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melancólico는 멜랑콜리한, 우수에 젖은, 우울한, 암울한, 음울한 뜻이니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형용사 adusto는 어떤가. 암울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몇 사전에 adusto의 정의를 보자.
한림원 스페인어사전(RAE)은 adusto를 1. quemado, tostado, ardiente (탄, 구워진, 작열하는) 2. poco tratable, huraño, malhumorado(뚱한, 시무룩한, 사람을 싫어하는, 언짢은) 3. seco, severo, desabrido (건조한, 엄한, 밋밋한, 황량한) paisaje adusto, prosa adusta (황량한 풍경, 건조한 산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워드 레퍼런스(Word reference) 스페인어사전은 1. Serio o severo en su aspecto o carácter: (모습이나 성격이 엄하거나 심각한) 2. seco, árido (건조한, 메마른)으로 정의하고 있다.
옥스퍼드 스페인어사전은 1. [persona] Que es excesivamente rígido, áspero y desapacible en el trato. (사람이 심하게 엄격하고 불쾌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언짢은)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 'adusto=암울한'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유는 첫째, 엣센스 스페인어사전(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의 정의에 원인이 있는 듯하다. 이 사전은 아래에 보다시피 다의어 adusto를 작열하는, 엄한, 엄격한, 쓸쓸한, 무미건조한, 기분이 나쁜, 언짢은, 사람을 싫어하는, 비사교적인 것으 풀이하며 동시에 '암울한', '우울한' '쓸쓸한' 하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RAE의 풀이 (seco, desabrido - 풍경이나 문체가 건조한, 황량한, 밋밋한)를 번역하다 보니 '무미건조한' 뜻만으로 부족해서 '암울한', '우울한', '쓸쓸한'을 추가한 듯 하다.
둘째, <여대생과 좀도둑>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처음 옮긴 장원출판사의 아래와 같은 번역 때문이다.
범퍼에 비치는 흩어져 가는 차들의 불빛 그의 우수에 젖은 듯하고, 음울해 보이고, 무거운 눈빛에 레몬 빛깔을 띠고 있는 얼굴이 비쳐졌다 (여대생과 좀도둑. 황병하 옮김. 장원. 1993:18).
장원출판사는 adusto를 기분이나 분위기 따위가 음침하고 우울하다는 뜻의 '음울한'으로 옮겼다. 이를 창작과 비평사는 절망적이고 침울하다는 '암울한'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melancólico는 '음울한', '암울한', '침울한', '우울한', '처량한', '울적한', '침통한'이고 adusto는 '시무룩한', '언짢은', '불쾌한', '뚱한', '무뚝뚝한', '기분이 나쁜', '찌무룩한', '심통스러운', '비사교적인', '엄한', '엄격한', '건조한', '메마른' 등의 뜻이다.
그러면 '우수에 젖은 암울한' 얼굴이 아니라 '우수에 젖고 뚱한', '우울하고 시무룩한', '암울하고 무뚝뚝한', '음울하고 엄한', '우수에 빠지고 불쾌한', '침통하고 언짢은', 슬프고 건조한', '우수에 젖고 무뚝뚝한' 따위의 얼굴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수에 빠지고 우울한 얼굴이 아니고 슬프지만 굳은, 엄한, 기분이 나쁜 얼굴인 것이다.
하층민 신분에 오토바이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마놀로가 우울하고 암울하지만 이런 처지에 대한 불만이든, 파티에 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불만이든, 부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심사가 뚱하거나 불쾌한 것이거나 파티에서 곧 대할 부자들에게 표정 관리를 해야하는 엄한 얼굴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가능한 해석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piel cetrina는 어떤가. 피부가 '창백한' 것인가. cetrina는 cidro (감귤나무)을 의미하는 라틴어 citrus에서 파생한 citrinus (레몬색)에서 유래한 낱말이다. 녹황색이란 뜻이다. <여대생과 좀도둑>은 레몬 빛깔이라 했다. 더구나 '창백하지' 않다는 것은 다음의 대화가 증명한다. 위 묘사 이후 마놀로가 마루하라는 가정부를 만나 나누는 대화이다.
—¿Vives aquí, Maruja?—Cerca. En Vía Augusta.—Estás muy morena.—No tanto como tú...—Realmente, es que yo soy así. Tú estás bronceada de ir a la playa. Yo no he ido más que tres veces este año....
“마루하, 너 여기에 사니? ” “부근 아우구스타 거리에 살아.” “ 너[마루하] 아주 가무잡잡하네". "너[마놀로]만큼은 아니야.” 사실 난 원래 이래, 너야 해변에서 태웠겠지. 난 올해 세 번밖에 못 갔어.”
<여대생과 좀도둑>은 "피부가 아주 검은 편이구나 (1993:24)"이라고 옮겼다.
certina는 푸른 듯 누렇거나, 갈색이거나, 레몬색이다. 원본에 있는 그대로 옮기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인물 묘사는 인물의 성격을 규정하고 나아가 사건의 발생과 주제 발전에 기여한다. 다 계획이 있어 그렇게 묘사하는 것인데 번역이 이를 변경할 권리가 있는지.
'문학 > 스페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의 지방 행정 단위- 자치 주 comunidad autónoma, 도 provincia (0) | 2020.05.31 |
---|---|
후안 마르세의 몰역사 모더니즘 - 일본은 이차대전의 희생자 (0) | 2019.10.19 |
비속어, 금기어를 번역하기가 난처하다고요? (0) | 2019.06.14 |
야경꾼과 쇠막대기 sereno y chuzo (0) | 2019.04.03 |
발렌시아 알보라야 Alboraya Valencia,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 농가 La Barraca 배경 (1) | 2019.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