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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소설 갈대와 진흙 Cañas y barro 번역 1장 - 비센떼 블라스꼬 이바녜스 Vicente Blasco Ibáñez

by brasero 2021. 9. 10.

비센떼 블라스꼬 이바녜스 Vicente Blasco Ibáñez (1867~1928)의 소설 <갈대와 진흙 Cañas y barro>(1902)은 스페인 동중부 지중해의 도시 발렌시아(Valencia)의 남쪽 10km 지점에 있는 석호 알부페라의 남동 끝의 엘 빨마르 (El Palmar) 마을이 배경이다. 드넓은 담수호는 오리, 제비갈매기, 쇠물닭 등의 여러 새들의 안식처이자 장어, 붕어, 숭어 따위의 물고기 서식지이고 호수 주변에는 광활한 논들이 뻗어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쌀은 발렌시아에서 유래한 파에야의 원료이다. 

<갈대와 진흙>은 환경결정론을 따르는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자연주의 소설의 대가 프랑스의 졸라와 다르게 블라스꼬는 영혼 없는 객관주의를 맹신하지 않고 주관과 인상을 가미한 리얼리즘을 펼쳤다. 가령 소설의 여주인공 넬레따가 남편 까냐멜이 죽은 다음 사랑하는 남자 또네뜨의 결혼 청을 거부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시킨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갈등과 스스로의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연주의와 다르다. 

소설, 갈대와 진흙 표지, 바라까 집과 삿대를 젓는 거룻배

주인공은 '갈대와 진흙'의 섬, 엘 빨마르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또네뜨와 그의 여자 친구, 넬레따이다. 유년기를 함께 보내며 마을에서 가장 잘 생긴 총각과 처녀로 자란 두 사람은 운명인지 됨됨이 탓인지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한다. 또네뜨의 아버지, 논을 얻기 위해 매진하는 또노와 고기잡이 전통을 고수하는 할아버지 빨로마의 상이한 가치관이 20세기 초 스페인 시골 사람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넬레따가 결혼한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주막 주인 까냐멜은 탐욕과 부패의 상징이고, 또네뜨의 친구 떠돌이 상고네라와 마을 성당의 미겔 신부는 황금만능주의와 가톨릭의 교권주의를 꼬집고 있다.

소설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네뜨와 넬레따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한다.

1장은 총론으로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며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줄거리 구조상 7장에 주점 주인 까냐멜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편선을 타고 루사파로 가는 장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엘 빨마르에서 출발한 배가 알부페라 호수를 건너 엘 살레르로 가는 길이다. 

2장은 또네뜨의 조부 빨로마와 아버지 또노에 대한 이야기로, 논농사를 짓는 또노와 어로의 전통을 고수하는 빨로마 간의 갈등이 주된 이야기이다. 빨로마의 성격이 기술되고, 아들 또노의 결혼과 손자 또네뜨의 출생과 양녀 라보르다의 입양을 그리고 있다.

3장, 또네뜨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네뜨는 놀기 좋아하고 일을 싫어하는 아이이고 친구 상고네라와 이웃집 장어장수 여자의 딸 넬레따의 막역지우이다. 세 아이들은 땔나무를 하러 갔다 데에사 숲에서 길을 잃어 또네뜨와 넬레따가 하룻밤을 지냈고 그 후 둘은 사귀는 사이가 되다. 이후 또네뜨는 까냐멜 주점과 호수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음주와 노름을 하며 빈둥거린다. 아버지에게 호된 꾸지람을 당해 또네뜨는 입대를 해 쿠바전쟁에 참여했고 와중에 넬레따는 주점 주인 까냐멜의 아내가 된다. 또네뜨가 제대해 고향 엘 빨마르로 돌아온다.

4장, 7월 알부페라 호수에 고기잡이 터를 추첨하는 '레돌린'이 열려 또네뜨가 가장 좋은 자리 '세끼오따'에 당첨이 되고 까냐멜과 동업을 하게 된다.

5장, 고기잡이 준비로 그물을 짜기 위한 실을 구매해서 돌아오던 길에 또네뜨와 넬레따가 처음으로  알부페라 호수의 배에서 운우(雨)의 정을 나눈다.

6장, 겨울이 되어 고기잡이가 시작되었지만 또네뜨는 까냐멜 주점을 제집처럼 드나들거나 사냥을 다니며 게으름을 부린다. 넬레따와 정분이 난 것이 아닌지 까냐멜의 옛 처제의 감시가 심해졌고 또네뜨와 넬레따는 동네 사람의 눈을 피해 호수 주변 마을에서 밀회를 즐긴다. 크리스마스 축일에 동네 청년들은 또네뜨와 넬레따가 배를 맞추는 사이라는 노랫말로 까냐멜 주점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내 넬레따의 부정을 짐작한 까냐멜은 또네뜨와 동업을 파기하고 주점 출입을 금한다.

7장, 까냐멜 주점에서 놀고 먹을 수 없는 또네뜨는 아버지를 도와 호수 메우기를 시작했으니 곧 무료해져 상고네라와 어울려 다시 빈들거린다. 주막을 찾아갔지만 넬레따의 싸늘한 반응으로 다시 아버지 일을 도운다. 와중에 까냐멜이 지병으로 사망한다.

8장, 주막에 다시 등장한 또네뜨는 넬레따와 결혼을 원하지만 재혼을 하면 유산 절반을 잃게 되는 탐욕으로 그녀는 결혼 제의를 거부한다. 임신을 한 넬레따는 코르셋을 단단히 동여매어 부른 배를 감추고 아이는 나아 버릴 계획을 한다. 알부페라 호수에 사냥철이 되어 외부 사냥꾼들로 혼잡하다.

9장, 몰래 나은 아이를 유기하기 위해 발렌시아로 배를 저어 가다 또네뜨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핏덩이를 사냥꾼들의 눈과 귀가 두려워 갈밭으로 던져버린다. 이 후 아이의 사체가 발각된다.

10장, 죄책감에 빠진 또네뜨가 배에서 엽총 자살을 하고 아버지 또노가 주검을 거두어 호수를 메꾸어 만든 땅에 묻는 것으로 비극이 완결된다. 

저작권이 소멸된 소설의 스페인어 원본은 위키 소스에서 공개하고 있어 필요하면 아래 링크에 접속하여 원본과 비교할 수 있다.

https://es.wikisource.org/wiki/Ca%C3%B1as_y_barro/I

1장

매일 오후 우편선은 나팔을 뚜뚜 울리며 엘 빨마르에 도착을 알렸다.

깡마른 체격에 키가 작고 한쪽 귓바퀴가 잘려나간 뱃사공은 집집마다 다니며 발렌시아에서 할 심부름을 받았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활짝 터인 거리에 이르자 수로 옆에 늘어선 바라까 집을 향해 배의 도착을 알리며 나팔을 다시 불었다. 얼추 발가숭이 아이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구름 떼 마냥 뱃사공을 뒤따랐다. 갈대와 진흙의 섬에서 자란 아이들은 하루에 네 번 알부페라 호수1에서 잡은 최고의 물고기를 석호 건너 발렌시아시로 가져가고 신비하고 환상에 싸인 도시에서 수만 가지 물건을 싣고 오는 뱃사공이 존경스러웠다.

바라까 집 - TVE 캡처

엘 빨마르2에서 가장 먼저 생긴 영업장인 까냐멜 주막에서 추수꾼들이 어깨에 봇짐을 지고 뭍으로 돌아갈 배를 타기 위해 무리 지어 나왔다. 베네치아의 거리처럼 바라까 집이 늘어서 있고 장어를 가두어 두는 어장이 즐비한 수로 가장자리에는 여자들이 와글거렸다.

양철판처럼 번쩍거리는 고요한 물에 우편선은 꼼짝하지 않고 정박해 있었고 커다란 관 같은 배에 승객과 짐이 가득하게 실려 갑판이 거의 수면에 닿을 만큼 잠겼다. 색 바랜 천조각을 덧대 깁은 시꺼먼 삼각돛을 단 배는 한때 국가가 허가한 정기여객선이라는 표시로 스페인 국기가 휘날렸다.

배 주위에 악취가 코를 찔렀다. 장어 소쿠리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찬 괴지지한 승객들에서 나는 냄새였다. 끈적거리는 장어 껍질과 진흙에서 자란 물고기의 비늘내와 구저분한 발과 때에 젖은 옷의 자릿내가 섞여 구역질이 나오는 오취가 물컥거렸고 오랫동안 옷자락이 스친 배의 좌석은 가마반지르했다.

승객들 대부분은 알부페라 호수의 동남쪽 끝에 있는 바다와 접한 엘 뻬레요 마을3에서 온 추수꾼들이었다. 그들은 뱃사공에게 빨리 출발하자고 고함을 쳤다. 벌써 만원입니다! 더 탈 자리가 없어요!

그렇게 소리쳤지만 귓바퀴가 잘려 나가 형체도 없는 귀를 가진 작달막한 뱃사공은 못 들은 척 승객을 향해 고개를 한번 돌아보고는 여자들이 물가에서 건네주는 바구니며 자루를 굼지럭굼지럭 배에 실었다. 짐이 들어오면 승객들은 안쪽으로 밀착하거나 자리를 옮기면서 씨우적거리며 불평을 터뜨렸다. 엘 빨마르에서 배에 오른 사람들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승객들이 내뱉는 욕설을 복음서의 자비심을 떠올리며 심평 좋게 받아들이며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조그만 참으세요! 천당에는 빈자리가 많은데!

짐을 가득 실은 배가 가라앉았으나 항해에 익숙한 뱃사공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빈자리가 없었다. 갑판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하나는 돛대를 잡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뱃머리 장식 상처럼 이물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뱃사공은 게걸거리는 승객들에 아랑곳없이 다시 나팔을 불었다. 제기랄! 도둑놈 같군, 더 태워야 하나! 비스듬히 내리쬐는 구월 땡볕에 등이 굽히면서 오후 내내 이렇게 기다려만 한단 말인가.

갑자기 모두 조용해졌다. 수로 둔치에 두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남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모포를 휘감은 그는 눈을 번쩍이며 후들후들 떠는 허연 유령 같았다. 물은 여름 오후의 열기로 절절 끓는 것 같았고 배에 탄 승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옆에 있는 몸뚱이에 닿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 덜덜거리는 남자는 오한으로 이빨을 딱딱거렸다. 그에게는 온세상이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었다. 꿈적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부축을 하고 있던 두 여자가 입정 사납게 말을 내뱉었다. 자리를 양보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일꾼이고 아픈 사람입니다. 벼 추수를 하다 열병, 염병할 알부페라의 삼일학에 걸려 루사파4의 친척집에서 치료를 하러 갑니다. 모두 하느님의 신자이잖아요? 자비를 베푸세요! 양보를 좀 하세요!

열증으로 후덜거리는 귀신같은 남자는 오한으로 훌쩍거리며 메아리처럼 되뇌었다.  "양보 좀 합시더! 양보 좀 합시더!”5

이기적인 사람들을 밀치며 겨우 배에 올랐으나 자리가 없어 승객들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가 바닥에 누웠다. 개흙 투성이인 더러운 신발 앞에 얼굴을 박고 역겨움을 견뎌야만 했다. 까짓것,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다. 우편선은 식량을 나르기도 하고, 병원 역할도 하고, 때론 묘지이기도 한 것처럼 만능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환자를 발렌시아 루사파의 변두리로 실어 날랐다. 약이 부족한 엘 빨마르의 주민들은 루사파에서 골방을 얻어 삼일학을 치료하곤 했다. 배 한 척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죽으면 관은 우편선의 좌석 아래에 두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은 이 슬픈 상자를 발로 차면서 웃고 떠들었다.

환자가 눈에 보이지 않자 불만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귀도 없는 저 사공이 원하는 게 뭐냐? 더 태울 심사인가? 인접한 수로 둔치에 있는 까냐멜 주점의 문이 열리며 한 쌍의 남녀가 나오자 승객들은 일제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빠꼬! 빠꼬 까냐멜!” 모두 고함을 쳤다.

주막 주인장은 복부 수종으로 부은 육중한 몸을 이끌며 걸음을 뗄 때마다 아이처럼 한숨을 지으며 아내 넬레따의 부축을 받으며 깡총거렸다. 작은 넬레따는 흐트러진 빨간 머리칼을 나부끼며 비로드 마냥 부드러운 푸른 눈을 생글거리고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까냐멜! 늘 병치레에 궁상맞은 표정이었고 그의 아내는 주점 스탠드 뒤에서 엘 빨마르와 알부페라를 주무르는 여왕으로 나날이 더 예뻐지는 사랑스러운 여자이었다. 까냐멜은 돈이 넘쳤고 편하게 사는 덕분에 병이 걸렸다. 한마디로 부자병이었다. 배가 불뚝했고 불그스럼한 얼굴에 둥그렇게 조그마한 코는 볼살에 덮혔고 출렁이는 기름진 살갗은 눈을 삼켜버렸다. 모두 아프더라도 까냐멜처럼 부자가 되고 싶었다! 허리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벼를 베며 먹고 산다면 병이 날 새도 없을 텐데.

까냐멜은 들릴 듯 말 듯 끙끙거리며 넬레따의 손을 잡고 가까스로 배 안에 발을 디뎠고 그의 병을 놀리는 승객들에게 툴툴거렸다. 괜한 병이 아닌 것을 까냐멜은 알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부자에게 베푸는 극진한 배려로 내어준 자리에 앉았고 넬레따는 예쁘고 발랄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남자들의 농지거리를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넬레따는 남편을 도와주며 커다란 양산을 펼쳤고 세 시간이 못 되는 뱃길이지만 장만한 음식 광주리를 옆에 놓고 뱃사공에게 남편 빠꼬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루사파의 별채에 잠시 있을 겁니다. 훌륭한 의사들이 남편을 보러 올 것이에요, 가엾은 서방님은 많이 아프거든요. 배가 출발하려고 움찔거리자 묵 마냥 떨고 있는 흐물거리는 남편을 어루만지며 순진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넬레따에 머물다 까냐멜에게 떨어진 심술궂은 승객들의 모순적인 눈길과 비웃음에 아랑곳없이 그는 양산 아래 웅크리고 한숨 섞인 신음을 내쉬었다.

뱃사공이 긴 상앗대를 둔치에 대고 밀자 배가 수로의 수면 위를 미끄러져 갔다. 친구들에게 남편을 잘 보살펴 달라고 늘 묘한 웃음을 흘리며 부탁을 하는 넬레따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배가 나아갔다.

둔치의 가막 덤불 사이로 닭들이 배를 쫓아 달렸다. 뱃머리에 한 무리의 야생 오리들이 퍼드득 날개를 터는 바람에 동네 바라까 집들이 거꾸로 비친 수면이 일그러져 버렸다. 양쪽 끝에 십자가가 서 있는 수면과 같은 높이의 짚 지붕을 한 활어장 안에는 신의 가호 아래 장어가 노닐고 있었고 시꺼먼 거룻배가 정박해 있었다.

1900년대 초기 엘 빨마르 물길의 장어 활어장

수로를 빠져나온 우편선은 구릿빛 벼로 덮인 질척한 진흙 논 사이를 미끄러져 나아갔다. 물속에 발을 디디고 추수꾼들이 낫질을 했고 멧마당 탈곡장으로 보낼 볏단을 곤돌라처럼 좁고 검은 거룻배에 실었다. 수로가 이어진 것 같은 물이 가득한 논 가운데 여기저기 진흙 더미가 있었고 그 위에는 굴뚝이 있는 작은 하얀 집 같은 것이 있었다. 이것은 필요에 따라 논에 물을 대거나 물을 빼는 농기계이었다.

높은 둔덕 때문에 수로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도로'에 볏단을 실은 돛단배가 다녔다. 선체는 늘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고요한 오후에 거대한 삼각돛은 땅 위에 허깨비가 걷는 것처럼 푸른 논 위를 미끄러져 다녔다.

논을 바라보며 승객들은 모두 전문가가 되어 수확에 대해 제가끔 의견을 말했고 짠물이 들어간 논에는 벼가 죽었다고 애석해했다.

잠잠한 수로, 황금빛 차가 우러난 것 같은 누르스름한 수면에 배가 미끄러져 나아갔다. 용골이 스치고 지나가면 수로 바닥에서 자란 물풀은 줄기를 눕혔다. 정적과 반짝이는 수면이 소리를 키웠다. 말소리가 끊어지면 바닥에 누운 환자의 신음 소리와 까냐멜이 턱을 가슴에 묻고 웅절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멀리 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삿대가 축축 내리 꽂히고 돛대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굽은 뱃길에서 부딪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뱃사공의 외침이 고요한 배에 울려 퍼졌다.

귀가 잘려나간 선장은 삿대를 버리고 오후 미풍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승객들의 무릎 위로 배의 이끝에서 저끝으로 뛰어 나니며 돛을 펼쳤다.

호수로 들어왔다. 조심해서 배를 몰아야 하는 갈대숲과 섬이 있는 알부페라의 수역이었다. 수평선이 넓어졌다. 한쪽으로 어두운 색의 소나무가 물결치는 데에사 숲이 알부페라 호수와 바다를 갈라 놓고 있었다. 얼추 원시 밀림같이 멀리 뻗은 숲에 사나운 황소가 풀을 뜯고 있었고 그늘에는 거대한 파충류가 살고 있었다. 뱀을 본 사람은 없었지만 저녁 술자리에서는 두려움에 떨면서 얘기하곤 했다. 반대편에는 펀펀한 논들이 소야나와 수에까 마을 뒤 산과 함께 지평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트인 호수 앞을 갈대 숲과 섬들이 가리고 있었다. 배의 이물이 갈대섬과 섬 사이 수중 식물을 헤치면 수로 쪽으로 튀어나온 갈대에 돛이 스쳤다. 수면까지 자란 거무스레하고 끈적끈적한 촉수 같은 수초에 삿대가 엉길 때가 있었고 거무칙칙한 물풀 속에는 어떤 진흙 생물이 바글거리는지 보려고 승객들은 헛된 눈길을 던졌다. 승객 모두는 여기에 거꾸러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황소는 떼를 지어 골풀이 무성한 물가와 데에사 숲의 웅덩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황소 몇 마리는 옆에 있는 섬으로 헤엄을 쳐 건너갔다. 배까지 차는 개펄 구덩이에 무거운 발을 철버덕거리며 갈대숲 사이에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크고 더러운 등 딱지가 앉은 커다란 뿔을 단 황소는 주둥이에 늘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황소들은 그들 사이로 지나가는 짐을 가득 실은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머리를 흔들자 굵은 모기떼가 구름같이 흩어졌다 다시 주름진 목덜미에 앉았다.

조금 떨어진 두 물길 사이 좁은 진흙 톱 만한 둔치에 한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엘 빨마르 주민들은 다 아는 사람이었다.

"상고네라! 초빼이 상고네라” 모두 외쳤다.

모자를 흔들면서 사람들은 아침나절은 어디서 취하도록 마셨는지 거기에서 밤을 날 것인지 상고네라에게 고래고래 물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더니 고함과 웃음소리가 나자 일어나 가볍게 빙글 한 바퀴 돌고 업신거리는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등을 탁탁 치더니 덥석 쭈그려 앉아버렸다.

서서 상고네라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그의 기이한 모습을 보고 신이 나서 벙글거렸다. 데에사 숲에서 꺾은 꽃을 모자 높이 깃털 장식처럼 꽂았고 가슴과 허리에 물가 갈대숲에서 자라는 매꽃 한 움큼을 둘러 꽂았다.

모두 그를 입에 올렸다. 상고네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호수 마을에 상고네라에 비길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처럼 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고 일을 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하며 하루 종일 공짜 술을 찾아다녔다. 엘 뻬레요에서 취하고 잠은 엘 빨마르에서 잤고, 엘 빨마르에서 마시면 엘 살레르에서 아침을 맞았고 육지 마을에 축제가 있으면 시야 또는 까따로하에 가 대접해줄 알부페라 호수 주변에 논농사를 짓는 인심 좋은 농부를 찾아갔다. 거나하게 취해 도끼날같이 좁은 논두렁을 밟고 가슴까지 오는 물을 헤치며 수로의 물막이를 건너고 배를 타지 않고는 들어가기 꺼리는 움직이는 진구렁을 건너는 상고네라가 주검이 되어 물길 바닥에 박히지 않은 것은 기적이었다. 알부페라 석호는 그의 집이었다. 호수의 자손이라는 본능이 위험에서 그를 구해 주었고 진짜배기 장어처럼 퀴퀴한 진흙내가 났고 끈적거리는 몸으로 동냥 술을 얻어걸리기 위하여 까냐멜의 주막에 들린 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까냐멜은 투덜거렸다. 상고네라! 겁도 없는 철면피! 까냐멜은 상고네라의 주막 출입을 수만 번 막았다. 승객들은 이상한 차림을 하고 있는 떠돌이 상고네라를 보고 껄껄거렸다. 그는 굶주린 배에 포도주가 발효하기 시작하면 원시인처럼 꽃으로 몸을 감싸고 화관을 동여맸다.

배는 호수를 통과하고 있었다. 항구의 방파제와 비슷한 두 개의 갈대숲 사이로 들어서자 청백색으로 반들거리는 광대한 수면이 펼쳐졌다. 진정한 알부페라 호수인 녹수였다. 도시에서 온 사냥꾼의 표적인 새들의 은신처인 작은 갈대섬들이 멀리 띄엄띄엄 있었다. 슬몃슬몃 논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데에사 숲의 감탕 밭 물가를 따라 배는 항해했다.

진흙 둔치로 막힌 작은 웅덩이에 건장한 근육의 남자가 배에서 큰 바구니의 흙을 물에 쏟아붓고 있었다. 승객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또노, 빨로마 노인의 아들이자 꾸바노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또네뜨의 아버지였다. 승객들은 또네뜨를 입에 올리며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웅절거리기만 하는 까냐멜을 짓궂게 노려보았다.

알부페라 호수 마을에 또노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은 없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인 그의 아버지 빨로마처럼 고기를 잡지 않았고 자기 땅과 논을 가지겠다는 집념이 대단한 남자였다. 거대한 목표에 진저리를 치며 식구들이 어쩌다 도와줄 때가 있었지만 대개 혼자 물을 메웠다. 멀리서 가지고 온 흙으로 깊은 물을 채우고 있었다. 부잣집 마님이 물바다 땅을 처치하기 곤란해서 또노에게 양도한 것이었다.

수년이 걸리는 일이었고 혼자서 어쩌면 평생 매달려야 하는 일이었다. 빨로마 노인은 이런 아들을 웃음거리로 깔보았다. 또네뜨가 가끔 거들었지만 며칠 지나면 피곤하다고 가버리곤 했다. 또노는 믿음을 가지고 물 메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줍음을 잘 타지만 또노처럼 억세게 일하는 수양딸 라보르다가 유일하게 도왔다. 라보르다는 고인이 된 그의 아내가 고아원에서 데리고 온 가엾은 아이였다.

병이 나면 안 돼요! 쉬엄쉬엄 일을 하세요! 자기 논에서 벼를 수확할 날이 멀지 않았어! 냉소적인 인사말에 굳세고 부지런한 또노는 고개도 한번 들지 않았고 배는 멀어져 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관처럼 작은 거룻배에 빨로마 노인이 어살처럼 늘어선 말뚝에 이튿날 거둘 그물을 걸고 있었다.

배에서 노인의 나이가 아흔 살인지 백수에 가까운지 왕배야덕배야 열을 올렸다. 알부페라 석호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않아도 본 것은 정말 많아! 지역에서 알아주는 마당발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 주민들은 빨로마가 호수에 사냥을 온 쁘림 장군을 친구처럼 오만하게 대했고 고관 부인과 심지어 왕비도 거만하게 영접했다고 엄벙거렸다. 으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알고 영광의 찬사에 싫증이 난 노인은 그물을 들여다보며 두개골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뻣뻣한 귀까지 검은 모자를 내려 쓰고 넓다란 정사각형 무늬 셔츠을 걸친 등을 구부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편선이 옆으로 지나가자 이빨이 죄다 빠진 시꺼먼 구덩이 같은 입을 다물고  눈가에 불그스럼한 주름이 쪼글쪼글 잡힌 푹 꺼진 눈을 얼락녹을락 히뜩거리며 머리를 들었다.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돛이 펄럭거리며 거듭 부풀었고 무거운 배는 기울어져 배 갑판에 앉은 승객들의 등이 물에 젖었다. 뱃머리가 힘차게 물을 가르며 꿀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 갔다. 진정한 알부페라 석호의 녹수는 베네치아의 거울처럼 파랗게 반들거렸고 배들이 뒤집혀 비치고 멀리 호숫가는 뱀처럼 구불구불했다. 호수 바닥에는 하얀 양모 구름이 어렸고 데에사 숲 물가에는 머리를 숙인 개가 뒤따르는 사냥꾼 서넛의 그림자가 물에 비쳤다. 멀리 리베라 지역의 큰 육지 마을들은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울렁출렁 수면이 요동쳤다. 바다처럼 녹색을 띤 호수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조개가 굵은 모래처럼 깔려 있는 호숫가로 누런 파도가 무리를 지은 양들처럼 밀려갔고 비누 거품 같은 물결은 햇살에 무지개 빛으로 반짝거렸다.

배는 데에사 숲 물가를 따라 사구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모래 언덕 꼭대기에는 감시 초소가 있었고 관목이 울창하게 장막을 치고 고문을 받아 일그러진 사지처럼 기이하게 비틀어진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배의 속력에 승객들은 뱃전이 수면을 때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질주에 흥분하였고 멀리 지나가는 다른 배에게 고함을 치며 인사를 했고 팔을 뻗어 찰싹거리는 물결을 느꼈다. 배의 키 부근에 물이 몰려들었다. 배 가까이 물속에 머리를 넣어 고기를 잡는 새 두 마리가 떠 있었다. 머리를 물에 박았다가 한참 만에 빼며 고기잡이에 열중한 검은 새들을 승객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있다. 좀 더 멀리 갈대가 우거진 커다란 갈대섬으로 배가 다가가자 물닭과 청둥 오리가 느긋하게 날아 올랐다. 주민들은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을 아는 듯 했다.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고 몇몇은 다시 열을 올렸다. 엽총으로 쏘면 딱 이야! 저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냥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왜 단속을 하는 걸까? 시시비비를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동안 배 바닥의 환자는 탄식을 했고 까냐멜은 양산 아래를 파고드는 서쪽 햇살이 따가운지 아이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데에사 숲이 멀리 바다로 뻗어 있는 것 같았고 숲과 알부페라 호수 사이는 울창한 초목으로 덮힌 평원이 있었다. 초원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 놓은 것 같은 소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 평원은 산차 초원이었다. 소년이 돌보는 염소 떼가 풀을 뜯고 있었고 알부페라 석호의 후손들은 초원을 산차라고 부르게 된 전설을 기억하고 있었다.

추수 일을 마치고 한몫 단단히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뭍사람들은 산차가 누구인지 또 여자들은 왜 산차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물었고 옆에 있는 외지인에게 호수 사람들은 어릴 때 들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저기 호숫가를 걷고 있는 목동처럼 옛날의 그 목동도 초원에서 염소 떼를 돌보았다. 정말 까마득한 옛날이었고 알부페라 호수 마을의 어떤 노인도 목동을 알지 못했다. 빨로마도 몰랐다.

목동은 원시인처럼 혼자 살았고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동네 사람들은 고요한 아침에 아주 멀리 목동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산차! 산차!”

산차는 늘 목동과 함께 다니는 유일한 친구, 작은 뱀이었다.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영악한 짐승은 목동에게 다가왔고 그러면 그는 가장 좋은 염소의 젖을 짜서 한 사발 내밀었다. 햇살이 비치는 낮에 목동은 뱀을 발치에 놓고 갈대숲에서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감미롭게 불면 파충류는 몸을 일으켜 부드러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발을 감아 조이곤 했다. 어떤 때는 동그랗게 말린 산차를 모래밭에 똑바로 펼쳐놓으면 뱀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고 다급하게 다시 몸을 꼬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이런 놀이가 지겨우면 염소 떼를 숲의 다른 끝 초지로 몰고 갔다. 산차는 작은 강아지 마냥 그를 뒤따르거나 다리에서 목까지 칭칭 감아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마름모꼴 눈을 목동의 눈과 맞추며 세모꼴 입을 쌕쌕거리면 목동의 얼굴 잔털이 일제히 곤두서곤 했다.

알부페라 호수 주민들은 목동이 조화를 부린다고 믿었다. 데에사 숲에서 땔감을 몰래 하는 여자들은 목동이 목까지 산차를 감고 나타나면 악마를 본 것처럼 성호를 그었다. 커다란 뱀들이 우굴거리던 풀숲이 있던 초원에서 목동은 겁도 없이 잠을 잤다. 산차라는 마귀가 목동을 위험에서 지켜 주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뱀은 무럭무럭 자랐고 목동이 청년이 되자 알부페라 주민들을 더 이상 그들을 보지 못했다. 그는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되었다. 초원에 풀을 뜯는 가축도 사라졌다. 뭍에 발을 디딘 어부들도 음산한 소호를 덮고 있는 무성한 갈대를 헤치고 데이사 숲으로 들어가길 꺼려했다. 염소 젖을 주며 보살펴주던 목동이 없어지자 산차는 데에사의 토끼를 수도 없이 잡아먹었다.

팔 년이나 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엘 살레르의 주민들은 발렌시아시로부터 배낭을 지고 지팡이를 잡은 군인이 오는 것을 보았다. 깡마르고 얼굴빛이 누런 보병은 무릎까지 오는 검은 각반을 찼고 붉은 천으로 만든 봄바 상의에 자락이 오금까지 내려오는 흰색 제복을 입었고 땋은 머리에 두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굵고 길게 콧수염을 길렀지만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목동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보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호숫가 숲을 따라 걸어 옛날에 가축을 돌보았던 소호가 있는 초지에 이르렀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높다란 갈대 위에 잠자리가 하르르 날개짓을 하고 있었고 다가오는 군인의 발걸음에 놀란 두꺼비들이 덤불에 가린 웅덩이에서 찰방거렸다.

“산차! 산차!” 옛 시절의 목동이 부드럽게 불렀다.

정적 뿐이었다. 호수의 한가운데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의 나른한 노랫소리만 들렸다.

“산차! 산차!” 온 힘을 다해 숨을 내쉬며 다시 고함쳤다. 

이름을 수차례 불렀다. 무성한 풀이 요동쳤고 육중한 몸뚱이에 눌려 갈대가 부지직부지직 부서졌다. 갈대 사이에서 목동의 눈 높이에서 두 눈이 번쩍였고 납작한 머리를 곧추들고 갈라진 혀를 쇅쇅 날름거렸다. 군인은 피가 얼어붙고 사지가 마비되며 소름이 끼쳤다. 산차였다. 엄청나게 컸다. 어른 키만큼 컸고 풀 속에 끄는 꼬리는 끝이 보이지 않게 길었고 얼룩덜룩한 껍질의 몸뚱이는 소나무 줄기처럼 두터웠다.

 “산차” 무서워 엉겁결에 뒷걸음질 치면서 군인이 이름을 외쳤다. “몰라보게 자랐어! 어마어마하게 컸구나!”

그는 도망가려고 했다. 놀란 죽마고우 뱀은 목동을 알아보고 그의 어깨를 감고 어쩔 줄 몰라 아스라치며 두꺼운 껍질을 고리처럼 감았다. 군인은 저항했다.

“놔, 산차, 놔! 껴안지 마. 이런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커!

산차는 군인의 팔을 감아 옥조였다. 뱀의 입은 옛날처럼 사랑스럽게 아양을 부렸고 내쉰 숨은 콧수염을 흔들어 목동은 몸서리치며 떨었다. 몸통이 감긴 목동은 조이고 또 조여 숨이 막혔고 뼈는 으스러졌다. 알록달록한 고리로 휘감은 뱀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며칠 후 서너 명의 어부들은 으스러진 덩어리, 산차가 조여서 도망치지 못하고 시퍼러둥둥 멍이 든 살과 조각난 뼛조각의 주검을 발견했다. 이렇게 목동은 옛 친구의 품에 안겨 희생되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외지인들은 껄껄거렸고 여자들은 불안해서 다리를 떨었다. 희미한 신음 소리를 내며 치맛자락에 꿈틀거리며 배 바닥에 산차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수에서 벗어난 배는 다시 수로망에 접어들었고 저 멀리 넓디넓은 논들 위로 발렌시아시와 가장 가까운 작은 마을 엘 살레르의 집들이 가물거렸다. 선착장에는 작은 거룻배와 큰 배가 우글거렸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같이 다듬지 않은 배의 돛대가 수평선에 솟아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고인 수로 물에 배는 속력을 줄이며 미끄러져 나아갔다. 노을이 붉게 물든 논 위로 돛은 그림자를 던지며 구름 마냥 지나갔고 승객들의 그림자가 황토색 둔치 바닥에 어른거렸다. 논일을 마친 사람들은 갑판이 수면까지 가라앉은 시꺼먼 거룻배에 서서 부지런히 삿대를 움직여 지나갔다. 이 거룻배는 알부페라 석호에서 말 역할을 했다. 호수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거룻배를 부리는 것을 배웠다. 논일을 나갈 때나 이웃집에 갈 때 배를 몰고 가듯 배는 살아가는 데 필수품이었다. 아이나 여자나 노인이나 모두 민첩하게 상앗대를 움직여 쏜살같이 지나갔다. 진흙 바닥에 삿대를 짚고 고요한 수면을 미끄러져 지나가는 배는 신발과 같았다.

둔치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옆의 수로에는 거룻배들이 미끄러져 지나갔다. 상체를 움직이지 않고 쉼 없이 삿대를 쥔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뱃사공이 둔치 수풀 위로 언뜻 비쳤다.

끈적한 물풀이 덮인 잠잠하고 물이 흐르지 않는 수로에 접어들자 둔치 양쪽으로 넓게 물길이 열렸다. 그물을 닫아 장어를 잡는 어살 말뚝들이 즐비했다. 배 옆의 너렁청한 논에서 큼직한 쥐들이 튀어나와 수로의 감탕 밭으로 사라졌다.

새들을 보고 사냥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수로에 쥐들이 뛰어드는 것을 보고 다시 열통을 터뜨렸다. 멋진 사냥감이야! 괜찮은 저녁거리야!

육지 사람들은 역겨워 침을 뱉었고 알부페라 호수 주민들은 그들을 비웃으며 조롱했다. 맛있다고! 안 먹어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어. 늪쥐는 벼만 먹는다고. 벼가 주식이라구. 수에까 시장에는 껍질을 벗긴 여남은 마리 쥐가 긴 꼬리로 진열대에 매달려 있다고. 부자가 쥐고기를 사먹고 리베라 지역의 귀족들은 다른 고기는 먹지 않아. 까냐멜은 부자 자격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신음을 그치고 이 세상에 쓸개가 없는 두 동물, 비둘기와 쥐를 먹는 게 행복이라고 근엄하게 말했다.

대화는 활기를 띄었다. 외지인들의 혐오는 알부페라 주민들의 열기를 돋구어 신이야 넋이야 말을 늘어놓았다. 데에사의 숲에서 뛰어다니는 동물 이외에는 고기를 모르는 빈궁하고 장어와 진흙 속에 사는 물고기로 평생 영양을 섭취해야 할 운명에 처한 비천한 호숫가 시골내기들은 대담한 위를 외지인에게 자랑하며 허풍을 떨었다. 여자들은 무슨 고기인지 모르고 먹었던 쥐고기 파에야가 정말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사람은 동그랗게 자른 하얀 뱀탕이 장어탕보다 더 맛있다고 추켜세웠고, 지금까지 묵묵하던 귀가 잘려나간 사공도 갓 태어난 암고양이 새끼를 까냐멜 주막에서 친구들과 저녁으로 먹은 적이 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수차례 세계 일주를 한 이런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뱃사람이 요리했다고 말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논들이 어둠에 잠겼다. 뉘엿거리는 노을빛에 물은 하얀 양철판같이 빛났다. 배가 지나가자 수로 바닥에 첫 별들이 반짝반짝 떨렸다.

엘 살레르가 가까워졌다. 바라까 집의 지붕 위로 두 개의 벽기둥 사이에 종이 걸려 있는 데마나 집이 보였다. 데마나 집은 사냥꾼과 뱃사공이 사냥을 하기 전에 호수의 사냥터를 추첨하는 곳이었다. 집 옆에는 우편선의 승객들을 발렌시아시로 태워갈 큰 승합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풍이 그쳤다. 길이 방향으로 돛이 늘어졌고 뱃사공은 항해를 계속하기 위하여 둔치에 삿대를 짚고 배를 밀었다.

호수 쪽으로 흙을 가득 실은 거룻배 한 척이 지나갔다. 이물에서 소녀가 빠르게 삿대를 짚고 있었고 고물에는 파나마모자를 쓴 청년이 그녀를 거들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모두 알았다. 또노의 자식들이 논을 만들기 위하여 흙을 싣고 왔다. 남자보다 더 쓸만하고 지치지 않고 일하는 양녀 라보르다와 빨로마 노인의 손자, 세상을 둘러본 경험을 말하길 좋아하는 꾸바노라는 별명의 또네뜨였다.

“안녕, 콧수염” 친근하게 승객들이 외쳤다.

알부페라 호수 마을 남자들은 다들 면도를 했지만 또네뜨는 구리빛 얼굴에 짙은 콧수염을 길렀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내밀며 언제부터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느냐고 빈정거렸다.

배가 지나갔다. 승객들에게 눈길도 한번 보내지 않았지만 또네뜨는 농담을 들었다.

모두 무례하게 까냐멜을 쳐다보고는 주막에서 하던 얄궂은 농지거리를 던졌다········. 이봐 빠꼬, 조심해! 빠꼬가 발렌시아에 간 사이에 또네뜨는 엘 빨마르에서 밤을 보낸다네········.

주막 주인 까냐멜은 처음에는 이 말을 못 들은 체했다. 하지만 어지간했다 싶어 성질을 부리며 일어나 두 눈에 불을 뿜으며 골을 냈다. 하지만 곧 기름진 몸뚱이가 의지를 꺾어 힘에 겨운 듯 자리에 움츠리고 앉아버렸다. 아프다며 한탄을 하며 앓는 소리를 했다.

“망칙스럽데이········ 망칙스럽데이········.”

<1장 역주>

1. La Albufera 알부페라는 스페인 발렌시아시 남쪽 10km지점에 있는 담수호로 장어, 붕어 등의 물고기과 다양한 조류의 서식지이고 석호 서남쪽으로 발렌시아 파에야의 주재료인 쌀을 생산하는 논 들판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2. El Palmar 엘 빨마르는 알부페라 석호 동남 쪽에 있는 마을로 육지 마을 엘 살레르와 연결되기 전에는 섬이었다.
3. El Perelló 엘 뻬레요는 알부페라 호수의 동남단에 있는 호수 물이 바다로 드나드는 마을이다.
4. Ruzafa 루사파는 발렌시아시 도심 남쪽 2km에 있고 9세기에 공원과 밭으로 조성되었던 곳이다.
5 원본이 발렌시아어이면 경상도 방언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