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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페인 소설

소설 <리스본의 겨울>에 부엌, 주방, 식당 그리고 거실

by brasero 2021. 3. 18.

스페인 안달루시아주의 그라나다대학교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Antonio Muñoz Molina,1956~)의 소설 ≪리스본의 겨울 El invierno en Lisboa≫(1987)은 스페인의 비평가상과 소설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주인공 재즈 피아니스트 산티아고 비랄보와 미술품 밀수꾼의 아내인 루크레시아의 이룰 수 없는 사랑과 도피와 추적을 서술자이자 관찰자인 '나'의 시점에서 쓴 소설이다.

소설 6장의 한 부분을 읽어 보자.

비랄보는 그들에게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박물관을 방문하는 시골 사람들처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집 안 복도에 들어섰다. 그림들과 전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듯 대충 둘러보고 난 후 소파를 보자 바로 앉아 버렸다. 갑자기 그들 앞에 멈춰 서게 된 비랄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집에 들어와서 부엌 소파에 앉아 말하고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선 쫓아내지도, 왜 그곳에서 그러고 있는지 묻지도 못하는 상황 같았다..... 자신의 소파를 차지한 정체불명의 두 사람에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았다.....(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2017. 83-4쪽)

Biralbo no les dijo que entraran: se internaron en el corredor de su casa con el complacido interés de quien visita un museo de provincias, examinando aprobadoramente los cuadros, las lámparas, el sofá dodnde en seguida se sentaron. De pronto Biralbo estaba parado ante ellos y no sabía qué decirles, era como si al entrar en su casa los hubiera encontrado conversando en el sofá del comedor y no acertara a expulsarlos ni a preguntar por que estaban allí..... se vio a sí mismo parado ante dos desconocidos que ocupaban su sofá...

'그들은' 판화와 고서상인 흑인 투생 모통과 그의 여비서 다프네이이다. 비랄보의 집에 다짜고짜 들어온 그들은 지방 박물관에 들어온 것처럼 즐겁게 그림이나 전등을 살펴보고 소파에 냅다 않았다. 그런 둘을 보고 비랄보는 집에 들어와 보니 낯선 두 사람이 '거실 소파'에서 대화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쫓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 말이다.

두 사람이 앉은 el sofá del comedor를 민음사는 '부엌 소파'라고 했는데 이상하다. 부엌에 무슨 소파가 있는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라 현실과 환상이 섞여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런 기괴함은 '거실'인 comedor'를 '부엌'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엌(주방)은 comedor가 아니라 cocina이다. 

comedor의 사전적 의미는 집에서 식사를 하는공간 '식당'이지만 실제로는 '식당 겸 거실 salón comedor'를 줄여서 하는 말이다. 물론 '거실 salón (sala de estar)과 '식당 comedor'이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집도 있지만 보통 스페인의 아파트나 집에는 부엌(주방)과 구분된 식탁이 있고 한쪽에는 소파도 있는 공간을 편하게 comedor라고 부른다* (주 1 더보기). 물론 이를 salón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스페인과 다르게 식당 겸 거실을 '거실'로 줄여서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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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주방과 떨어진 거실 겸 식당을 comedor라고 하지만, 주방과 거실과 식당이 한 공간에 있으면 comedor americano(미국식 식당 겸 거실)라고 한다.

comedor 거실 겸 식당 - 멀리 식탁과 의자가 있고 소파가 있다. 둥근탁자 camilla도 보인다. camilla는 옛날 아래에 화로를 놓고 다리를 따뜻하게 하는 탁자로 늘 보로 덮혀 있다.

두 사람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장면이 계속된다.

자신의 화통한 웃음소리의 기운에 뒤로 밀려난 듯 투생 모통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기다랗고 거무스레한 손을 다프네의 새하얀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바른 자세로 앉아 살며시 미소 지었다.
"이 집이 마음에 드는군요."
투생 모통은 탐욕과 행복에 찬 시선으로 거의 텅 빈 부엌을 한번 둘러보았다. 오랫동안 갈망했던 친절에 감사라도 하는 듯했다.
"저 음반들, 가구들 그리고 저 피아노.....(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2017. 84-5쪽)

Como si el impulso de su carcajada lo empujara hacia atrás Toussaints Morton apoyó la espalda en el sofá, posando una mano grande y oscura en las rodillas blancas de Daphine, que sonrió un poco, serena y vertical.
-Me gusta esta casa.- Toussaints Morton paseó una mirada ávida y feliz por el comedor casi vacio, como agradeciendo una hospitalidad largamente apetecida-. Los discos, los muebles, ese piano.....

민음사 번역에 따르면, 부엌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텅 빈 부엌을 보고 거기에 있는 가구며 피아노며 음반을 보았다고 했다.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하다. comedor는 '부엌'이 아니라 '거실'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거의 빈 거실의 가구와 피아노와 음반을 본 것이다. 

계속 서 있던 비랄보는 이제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 컵과 얼음을 가지러 가겠다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비랄보가 부엌에서 돌아왔을 때 피아노 옆에서 책을 보다가 덮었다.

비랄보가 주방에서 돌아왔을 때 투생 모통은 피아노 옆에 서서 책을 뒤척이다 탁 덮었다...(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2017. 85-6쪽)

Cuando Biralbo volvió de la cocina Toussaints Morton estaba de pie junto al piano y hojeaba un libro, lo cerró de golpe...

민음사는 cocina를 주방으로 바르게 옮겼다.

비랄보의 애인 루크레시아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다, 비랄보가 루크레시아는 그녀의 남편 말콤과 언제 헤어졌는지 투생 모통에게 물었다.

비랄보가 말했다. 그러자 투생 모통은 비랄보가 잔과 얼음을 들고 식당에서 돌아왔을 때 지었던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2017. 86-7쪽)

... dijo Biralbo, Toussaints Morton lo miró entonces con la misma expresión que lo habia in quietado cuando volvió al comedor con los vasos y el hielo, e inmediatamente rompió a reir.

분명히 비랄보는 앞에서 본 것처럼 컵과 얼음을 가지고 주방(cocina)에서 거실(comedor) 돌아왔다. 그런데 민음사 번역본은 '식당에서 돌아왔'다고 오역했다. 위 원본은 비랄보가  cuando volvió al comedor 거실로 돌아왔을 때'인데 민음사는 '식당에서 돌아왔을때'라고 오역했다.

민음사의 번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si al entrar en su casa los hubiera encontrado conversando en el sofá del comedor 마치 집에 들어와서 부엌 소파에 앉아 말하고 있는
  • Toussaints Morton paseó una mirada ávida y feliz por el comedor casi vacio 투생 모통은 탐욕과 행복에 찬 시선으로 거의 텅 빈 부엌을 한번 둘러보았다.
  • Cuando Biralbo volvió de la cocina 비랄보가 주방에서 돌아왔을 때
  • cuando volvió al comedor con los vasos y el hielo 비랄보가 잔과 얼음을 들고 식당에서 돌아왔을 때

el comedor를 '부엌'으로 오역하고, la cocina는 '주방'으로 바르게  옮기고, al comedor는 '식당에서'로 오역했다. 비랄보의 집에 들어온 두 사람은 '부엌 소파'에 앉아 얘기를 하고 텅 빈 부엌을 보고 거기에 있는 피아노와 가구를 보았고, 비랄보가 이 '부엌'에서 '주방'으로 가서( 부엌에서 주방으로 어떻게 가나, 같은 공간인데) 잔과 얼음을 가지고 왔는데, 비랄보가 간 곳은 분명히 주방인데, 갑자기 '주방'이 아니라 '식당'이다.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거나 공상과학영화를 찍는 것 같다.

바르게 옮기면 아래와 같다.

  • 자기 집에 들어와 보니 그들이 거실 소파에서 얘기를 하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 투생 모통은 탐욕스럽고 행복한 눈길로 거의 텅 빈 거실을 둘러보았다.
  • 비랄보가 주방에서 돌아왔을 때
  • 비랄보가 잔과 얼음을 가지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이 소설을 처음으로 옮긴 웅진출판의 ≪리스본의 겨울≫(1995)은 comedor를 '식당' (79, 80, 81쪽)으로 cocina는 '부엌'(80쪽)으로 일관성 있게 번역했다.